일상

코로나 와 역이민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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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도 없었고 평소 생각도 안해본 역이민을 하게된 60대 부부의 이야기.

미국 뉴욕에 살던 저희 60대 부부는 약20년 가까이 미국에 살았습니다. 

 처음 미국테네시주 의 멤피스시( City of Memphis Teenneessee State U.S.A)에서 약15년 살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미국인들이 평생에 꼭 한번은 방문하기를 원하는 곳이고 ‘페덱스(Head quarter of Fedex )’ 본사가 있는 도시 입니다. 


그후 저희 부부는  캘리포니아 주 랭캐스터시(Lancaster city)로 이사를 갑니다. 엘에이(Los Angeles city)에서 약 1시간 거리의 사막에 있는 도시입니다. 제가 은퇴하고 싶어서 환경과 노인들에게 기후가 좋다는 얘기를 평소에 들어 왔던터라서 망설이는 아내를 설득하여 이사를 했습니다. 1년 가까이 살면서 이곳 저곳 여행도 하며 즐겼습니다만, 도시만 벗어나면 온통 눈에 보이는 세계는 누런 모래나 황토로된 언덕이나 산뿐입니다. 주택들도 왜인지 모르지만 누런 계통의 색을 하고 있어서 날이 갈수록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여행으로 들르기엔 좋은 곳이라 생각합니다만 수자원도 부족해서 록키산맥에서 커다란 수로를 건설해서 물을 사다 쓰고 있지요. 가로수로 심어진 야자나무나 꽃밭등에 이물을 사용해서 가꿉니다. 단 며칠이라도 이 비싼 물을 주지 않으면 도시의 푸르름을 주는 나무나 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라죽어서 누런 세상이 되고 말겁니다. 셰계 GDP의 6위가 왜, 캘리포니아주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요즘은 서부개척시대의 황금 개발이 끝나서 이제 영화가 주산업이고 석유가 좀 생산되고,  무엇이든 돈이 아니면 돌아가지 않는 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여행을 하며 지나다 보면 재정이 부족한 도시들은 가로수도 물이 부족한지 시들 시들한것을 봅니다. 농사도 모두 이물을 이용해서 짓습니다. 일조량이 미국에서는 최고로 좋은 사막지역중에 하나라서  농산물도 품질 좋기로 유명하지요.  1년 남짓 살았을 때 아들이 뉴욕에 오라고 합니다.


 해서 미련이 좀 남긴 했지만 뉴욕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뉴욕에 적응이 좀 됐네요.  (아내) 헌데 어느날 제가 갑자기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 배쪽에  생겨서 큰 아들이 운전해서 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이런고통이 이상하게도 한밤중에만 나타나네요. 여러가지 조치를 해서 집에 돌아오고 다시 통증이 와서 또 응급실로 가서 치료받고 이러기를 여러차례하면서 MRI를  찍어 보니 담낭에 돌이 많이 있고 담관이 부어서 제거수술을 해야 된다네요. 헌데 제가 너무 무서워서 수술을 거절했습니다. 약 두주후에 또 통증이 와서 남편이 운전을 해서 병원응급실로 갔습니다. 조치를 한 후에 저는 수술을 결심을 하고 수술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드디어 날짜가 잡혔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온 세상이 어지러워가던 3월 하순입니다. 약6개월정도 걸렸네요.  수술이 예정된 날짜가 2020년 4월10일 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매일 매일 인터넷 기사를 보며 조심을 하고 외출을 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삼월 하순 경 입니다. 하루는 기사를 보니 , 한국은  1월에 환자가 발생을 했고 안정이 돼간다는 기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코로나가 여기 저기서 확산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신문 기사내용을 보니 제가 수술하기로 예약이 된 병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이 됐고 병원 외곽에 천막을 치고 시체를 둘곳이 없어서 “냉동트럭”에 안치하는 사진까지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보고 저는 멘붕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들들에게 한국에 가겠다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리고는 3일후엔가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 남편인  제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술이 취소 됐다고 알려 주는 안내전화라고 하네요. 질문을 했지요. 그러면 아내가 응급사태가 다시오면 어떻게 하야 하느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수술은 언제 할수 있겠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답변 합니다. 계속 모른다고 만 합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더 할말이 없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래서 한국행 비행기표를 아내것만 끊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내의 비행기표를 사고 나서 한 삼일동안  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병약한 아내가 수술하다 잘못되면 어쩌나, 혹, 죽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돕니다. 처형도 58세에 급성맹장으로 세상을 떠났고, 장모님은 52세에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장인 어른은 40대에 간암으로 돌아가셔서 사진밖에 못 봤고 처 사촌들 도 벌써 앞서 가신 분들이 여러분이고, 처 삼촌들도 사오(40~50)대에 대부분 돌아가시고 막내 처삼촌만 겨우 환갑을 넘기시고 62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고민 끝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 결심하고 한국에 아내와 함께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냉장 냉동 설치와 수리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비즈니스를 포기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습니다만, 귀국을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비행기의 표를 사려고 인터넷을 보니 딱 한(1)좌석이 다행히 남아 있어서 그걸 샀습니다. 오면서 탑승객들에게 들으니 뉴욕에만 한국행 비행기가 있고 다른 도시는 비행기 한국행이 다 끊겨서 뉴욕으로 와서 탔다고 하는 군요. 


 4월13일 아내와 함께 한국에 돌아 왔습니다.   (아내) 두주간 격리를 끝내고 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끝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 나왔네요. 현단계는 수술 안해도 됩니다. 6개월 마다 검사해서 경과가 나빠지면 수술합시다. 이러네요. 귀국 한지 2개월 입니다. 오늘이 2020년6월12일 이니까요.  격리기간 빼면 5주만에 제 병 문제가 해결 됐습니다. 약 10일전에 의사 소견이 나왔고 제가 주거지 문제로 허비한 시일을 빼면 3~4주 걸렸네요. 정말 빠르고 좋습니다. 미국병원에서 아직도 답이 없습니다. 이메일로 연락이 오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뉴스에는 뉴욕이 코로나가 진정 됐다는데 의료 시스템은 아직 회복이 안된 모양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이게 선진국 미국이 맞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정말 미국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미국의 미래도 어둡게 생각됩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왜냐면 저의 두아들이 사는 곳이 지금 ‘미국’ 이니까요. 우리 부부는 탈출을 했지만, 두아들이 코로나 걸릴까봐 너무 무섭네요. “헬조선” 미국에 있을 때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제 소견에 “의료 만큼”은 “천국 조선” 으로 보입니다.  ( 남편) 아! 정말 다행입니다. 남편인 저로서는 수술중에 죽을까봐 잘못 될까봐 정말 걱정이었거든요. 처가의 병력 과 수명 때문에요. 미국 ‘의료 시스템’ 은 비용도 엄청나지요. 제가 10년 전에 집을 고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5일간 병원에 있었고 ‘ 비용이 5만 불 좀 더 나왔지요, 지금 환률로는 6천만원이 좀 더 됩니다. 매일  진단과 MRI 찍었고, 5일간 병실, 식사  비용이 이렇습니다. 골반 뼈에 금이 간 상태 였습니다. 수술하는날  당일 아침에 의사가 와서 하는 말이 수술중에 죽을수도 있다고 말해서 수술을 거부 했고 지금도 약간 후유증 있습니다. 책상다리를 못해요. 방 바닥에 앉기가 힘듭니다.  (아내) 저와 남편은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살려고 생각합니다. 노인이 된 지금 아프지 않고 살다가 죽음을 맞는것이 최대의 소망입니다.  어쩔수 없이 아프더라도 치료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염병이 앞으로는 더 창궐할 거라는데요. 이제 저희 부부는  ‘의료 선진국’ 한국에서 살렵니다. 수십년간 선진국이라던 G 쎄븐(G7)국가들 이번 코로나 사태에 국가 역량을 보니 후진국으로 느껴졌습니다. 저희 만의 생각일까요?. 우리 부부에게는 전염병 코로나가 준, 두달전만 해도 계획에도 없었던 :역이민 입니다.


후기:

2021년 1월 아내가 대전 보훈병원에서 담낭제거 수술을 했고 지금은 회복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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