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떤 꽃은 일찍 진다

2026.05.12

                                                         어떤 꽃은 일찍 진다 (May 11, 2026)


오늘 아침 일찍 아동병원의 간호사로 부터 병원에 빨리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 살도 안된 아기가 곧 죽을 것 같은데, 와서 부모님을 좀 위로해 달라는 것이었다. 옷을 갈아 입고 차를 몰고 병원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트를 타고 8층 신생아 병실에 도착해 보니, 아이는 담요에 쌓여 얼굴이 얼음처럼 창백해 있는 걸로 보아 이미 사망한 것 같았다.


병실의자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중년의 백인 남녀는 죽은 아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인지 부모님인지 얼른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이의 부모님이시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렇다고 했다. 생사를 헤매는 아이를 보살피며 밤을 새다가, 아침에 아이가 죽는 것을 지켜 봐야 했던 슬픔과 피로가 겹쳐 중년의 부모가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인 것 같았다.


나는 죽은 아이의 부모님에게, “다른 자녀가 있는지 아니면 죽은 아이가 유일한 자녀였는지요?”하고 물어 보았더니, “죽은 아이가 유일한 딸이었고, 다른 자녀는 없다”고 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종교는 있으신지요?”하고 물어 보았더니, 남편이 “어렸을 때 카톨릭이었는데, 지금은 종교가 없다”고 하고, 아내도 고개를 흔들며, “종교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죽은 아이를 위해 세례를 베풀어 줄 수 있느냐고 물어 왔다. 언젠가 나와 다른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미국인 동료 채플린이, “나는, 신앙원칙상, 죽은 아이에게는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그 원칙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이가 죽어서 슬퍼하는 부모가 죽은 아이를 위해 세례를 베풀어 달라는 부탁을 해 올 때, 나는 “죽은 아이에게는 세례를 베풀어 줄 수 없습니다”란 말을 할 수 없었고, 슬픔에 잠긴 부모님을 위로하고, 아이의 영혼이 좋은 곳에 가서 안식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나는 손가락을 물에 적셔 죽은 아이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며,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노라”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잠시 왔다,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 영원한 안식과 복락을 누리라”는 기도를 드렸다.


어머니는 침울하게 앉아 있었고, 아버지는 눈물을 닦으며, 미숙아로 태어나 병원에서 7개월 동안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린 딸을 보내야 하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병실에는 일가 친지들이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보낸 많은 카드와 장난감들이 즐비하게 늘려 있어 마치 장난감 가게를 연상시킬 정도 였다. 위니 드 푸 곰인형들과 당나귀 이오리 인형, 어린이용 기타와 작은 성탄트리등으로,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기는 죽고 말았다.


흔히 교회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왜 사랑과 능력과 지혜가 많으신 하나님이 한 살도 안된 아이를 죽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일 뿐이고, 하나님은 침묵하시기 때문에, 왜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 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가족치료이론의 창시자, 버지니아 사티어가 한 말이 생각났다: “인생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인생에는 별이 별일이 다 일어남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인생의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Life is not the way it’s supposed to be. It is the way it is. The way you cope with it is what makes the difference. -Virginia Satir)


어린 딸이 병에 걸려 죽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품은 아버지가 아미쉬 학교에 총을 들고 가서 아미쉬 학생들을 총을 쏘아 죽인 일이 미국에서 있었고, 어린 아들이 병에 걸려 죽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주셨다가 하나님이 데려 가셨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늘의 뜻을 받아 드리고 따를 수 밖에”라고 했던 다윗 왕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아이를 잃고 슬픔에 잠긴 부모님에게, “무슨 말로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슬픔과 고통을 벗어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아이는 부모님의 딸만 아니라, 하나님의 딸이니, 하나님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란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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