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姓)을 갈아?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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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한국 姓들은 왜 중국 姓에서 비롯되었을까? 250여 한국姓중
인구비 64%에 해당하는 10대 姓은, 金, 李, 朴, 崔, 鄭, 姜, 趙, 尹, 張,
林 이라는데 모두 중국 글자인 漢字임을 차치하고도, 한국기원(起源)의
姓인‘朴’외에는 모두 획 하나 다르지 않은 중국姓들이다.
나머지 240여 姓들 역시 마찬가지.
글자 없던 시절… 글이나 빌지 어찌 姓까지…… 그래도 요즈음 본국에서는 순우리
말 이름짓기가 드문 일이 아닌것 같아 다행이다… 비록 姓까지는 아니지만,
그나마 그것도 한글덕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 같다.
한국에 비하면 일본의 姓은 상당히 독창적이다. 佐藤(사토), 鈴木(스즈키), 田
中(다나카), 渡邊(와타나베), 伊藤(이토), 山本(야마모토), 中村(나카무라),
加藤(카토), 吉田(요시다) 등의 姓들은 중국 글로 표기되었으나 중국에는 없는
일본인 특유의 姓들이다.
1960년대 출간된 유 주현의 ‘조선총독부’ 에는 일본인의 姓을 조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오래전 읽은 책이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내
용이었던 것 같다. 일본 명치유신(19 세기) 근간에야 일본의 평민들이 성을 가
지게되었는데, 글을 모르는 그들에게 관리들이 일일이 돌아다니며 이름을 지어주
었다. 姓의 개념이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그들에게 그것은 큰 사건이었다. 그
리하여, ‘田中’ (다나까)의 기원은 “어머니가 밭에서(田中) 일을하다가 그를
출산했다는” 말을 듣고, 관리가 “ 그래 됐다! 게다가 너는 둘째이니 ‘次郞’
그러니 너는 이제부터 ‘田中次郞’(다나카 지로)이다.”
사실인지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 일제 때 우리 어른들은,
“불과 수십년전만 해도 姓도 없어서 그런식으로 姓을 만든 야만스런
倭人들”이라 비웃으며 그들로부터 받은상처를 조금이라도 달래보고자
했던 것 같다. 하긴, 전후 관계를 살펴볼 때, 개연성이 적실하니
그들의 창씨유래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근거가 오히려 달리지 않
을까?
그런데 그때 우리 어른들의 조소에 고개를 주억이며 동조했던 내게, 창씨에 대한
일본인들의 그런 발상이 요즈음은 오히려 참신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곽’선생님은 슬하에 듬직하고 잘생긴 아드님을 두셨는데, 말씀을 즐기시던 그분
은 언젠가 환담을 나누던 중, 姓名과 관련된 아드님의 어릴 적 일화를 희화적으
로 표현하여 같이 웃었던 기억이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드님이
kindergarten(유치원) 인지 elementary school(초등학교)
다닐 때 ‘곽’이라는 姓의 영어식 발음으로 인하여 아이들로부터 놀림깨나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즉, ‘곽’ 의 영어식 철자인 ‘Kwak’은 ‘Quack’과
동음이어로, ‘quack’은 의성어로서 집오리의 울음소리인 ‘쾍쾍’
혹은 명사로서 ‘돌팔이 의사’라는 뜻이 있다.
‘K’를 ‘G’로 바꾸어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어떤 분은 ‘Kwok’을 쓰기도 하는데… ‘쾍’이나 ‘콱” 혹은 ‘쿽”이나,
50보 100보….. 그리하여 그 착하고 듬직한 아드님 죠이(Joey)를
‘콱! 조이’라 (집에서는‘조이’) 부르게 된 사연이 생겨나게되었던 것.
언변좋은 곽선생님의 유머러스한 설명을 듣고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린나이에
부당하게 겪었을 ‘죠이’의 아픔이 가여워 나도 모르게 한 마디 하였다. “그런
경우라면 저는 姓을 바꾸었을 것 같은데요. 姓이 무엇이라고 자식에게 그런 괴로
움을 주겠읍니까?”
다음 순간 곽선생님이 보이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곤혹스런 표정을 인지하고
는… 아차! 이게 아닌데… 역시 곽선생님은 옛날 분이시구나. 상처받았을 어린 마
음에의 동정과 안쓰러움의 표현이 자칫 전통보수적 어른에의 모욕으로 오해될 수
도 있었던 미묘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姓을 바꾼다’는 말을 심한 욕으로 받아들였
다.(요즈음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또 흔히 결연한 의지를 표현할 때 이 말을 인
용하기도 하였다. 일제말기 일본식 창씨개명의 수치스런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것
일까? “x x x 이라면, 내가 성을 갈겠다!” 에서와 같이, 가장 신성한 그무
엇, 즉 서양 사람이라면 “하늘에 맹세코”, “내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정도
의 뉴앙스로, 가문의 이름인 姓을 바꾼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악덕으
로 치부되었었다.
‘본시 내 조상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닌, 중국인의 것을 가감없이 그대로 베껴써
온 우리의 姓’에 대한 불만이 또한 나의 ‘개명발언’의 저변에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곽선생님이 어찌 반응하셨던, 그 이래 나는 가끔 나 자신의 ‘창씨개명’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미국에 산다고해서 미국식으로 개명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것은 한자가 아닌 순 한국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핏 떠오른 순한국 말
은 ‘서울’… 내가 서울출신이니 ‘서울’이라하면 어떨까. 영어표기로
도 ‘Soul’(영혼)을 연상케하는 ‘Seoul’이니 의미도 괜찮을 것같고 듣기도 좋
고… ‘서울’의 고어(古語)로 알려진 ‘셔라블’이나 ‘셔블’은 어감좋기로 이
름난 불란서어와도 비슷하니 그것도 탐난다. 아! 셔블은 미국어
의 ‘shovel’(삽)과 비슷한 발음이니 안되겠다.
그런데, 본국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결정에 의해서만 그리고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만 개명이 가능함은 당연한 일일 터. 유일한 기회는 미국 시민권 취득시라고 들
은 적이 있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어 오던 시민권을 신청하게된 것
은 2003년 가을이었다. 신청양식에 ‘창씨 개명’여부를 묻는 항이 있었던 것으
로 기억하는데, 나는 ‘옳지!’하고 내심 반겼다.
그러나, 뉘 알았으리오. 생각ㅎ지 않은 복병이 있을 줄이야. 그것은 나의 두아
이들이었다. 쌍팔년생인 아들과 1년 터울의 딸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의
반사적으로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Why? I like it. It sounds
O.K. to me!”
십오륙세 사춘기의이러한 즉각적 ‘Why’반응은 항상 ‘강한 거부’, ‘반대’를
의미하며, 그 직선적인 감정과 느낌은 그들 나름의, 이유있는 반항으로 받아들여
주어야할 경우도 있으리라. 어쨌든, 이렇게 반대가 거세어서는 姓바꾸기가 애시
당초 그른 일일까? 그 바람에 나의 ‘서울’, ‘셔라블’, ‘셔블’ 案은 꺼내보
지도 못하고 보류/사장되는 운명을 맞게되었다.
아!! 그리고, 나는, 이곳 미국에 사는 나는, ‘아버지’…한국에서와 같은 권위
의 화신인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Father)가 아닌, 늘 부드러워야
만 하는‘아빠’(Dad)임을 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이 아빠가 가족의 이름인
last name(姓)을 자녀의 의사에 반하여 바꿀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도 없고… 나의 설명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이 새로운 종족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
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처럼의 ‘개명’의 기회는 이렇게 조금은 허무하게 지나가고 말았는데, 그후로
도, 가끔 잃어버린 절호의 ‘개명’기회를 생각해내고는, 무력하고 결단성
없었던 나자신에게 조금은 씁쓸하고, 가질 수도 있었던 새로운 姓, ‘서울’
또는 ‘셔라블’에 대한 미련에 얼마간의 서글픔 또는 고소를 머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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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한국 姓들은 왜 중국 姓에서 비롯되었을까? 250여 한국姓중
인구비 64%에 해당하는 10대 姓은, 金, 李, 朴, 崔, 鄭, 姜, 趙, 尹, 張,
林 이라는데 모두 중국 글자인 漢字임을 차치하고도, 한국기원(起源)의
姓인‘朴’외에는 모두 획 하나 다르지 않은 중국姓들이다.
나머지 240여 姓들 역시 마찬가지.
글자 없던 시절… 글이나 빌지 어찌 姓까지…… 그래도 요즈음 본국에서는 순우리
말 이름짓기가 드문 일이 아닌것 같아 다행이다… 비록 姓까지는 아니지만,
그나마 그것도 한글덕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 같다.
한국에 비하면 일본의 姓은 상당히 독창적이다. 佐藤(사토), 鈴木(스즈키), 田
中(다나카), 渡邊(와타나베), 伊藤(이토), 山本(야마모토), 中村(나카무라),
加藤(카토), 吉田(요시다) 등의 姓들은 중국 글로 표기되었으나 중국에는 없는
일본인 특유의 姓들이다.
1960년대 출간된 유 주현의 ‘조선총독부’ 에는 일본인의 姓을 조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오래전 읽은 책이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내
용이었던 것 같다. 일본 명치유신(19 세기) 근간에야 일본의 평민들이 성을 가
지게되었는데, 글을 모르는 그들에게 관리들이 일일이 돌아다니며 이름을 지어주
었다. 姓의 개념이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그들에게 그것은 큰 사건이었다. 그
리하여, ‘田中’ (다나까)의 기원은 “어머니가 밭에서(田中) 일을하다가 그를
출산했다는” 말을 듣고, 관리가 “ 그래 됐다! 게다가 너는 둘째이니 ‘次郞’
그러니 너는 이제부터 ‘田中次郞’(다나카 지로)이다.”
사실인지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 일제 때 우리 어른들은,
“불과 수십년전만 해도 姓도 없어서 그런식으로 姓을 만든 야만스런
倭人들”이라 비웃으며 그들로부터 받은상처를 조금이라도 달래보고자
했던 것 같다. 하긴, 전후 관계를 살펴볼 때, 개연성이 적실하니
그들의 창씨유래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근거가 오히려 달리지 않
을까?
그런데 그때 우리 어른들의 조소에 고개를 주억이며 동조했던 내게, 창씨에 대한
일본인들의 그런 발상이 요즈음은 오히려 참신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곽’선생님은 슬하에 듬직하고 잘생긴 아드님을 두셨는데, 말씀을 즐기시던 그분
은 언젠가 환담을 나누던 중, 姓名과 관련된 아드님의 어릴 적 일화를 희화적으
로 표현하여 같이 웃었던 기억이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드님이
kindergarten(유치원) 인지 elementary school(초등학교)
다닐 때 ‘곽’이라는 姓의 영어식 발음으로 인하여 아이들로부터 놀림깨나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즉, ‘곽’ 의 영어식 철자인 ‘Kwak’은 ‘Quack’과
동음이어로, ‘quack’은 의성어로서 집오리의 울음소리인 ‘쾍쾍’
혹은 명사로서 ‘돌팔이 의사’라는 뜻이 있다.
‘K’를 ‘G’로 바꾸어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어떤 분은 ‘Kwok’을 쓰기도 하는데… ‘쾍’이나 ‘콱” 혹은 ‘쿽”이나,
50보 100보….. 그리하여 그 착하고 듬직한 아드님 죠이(Joey)를
‘콱! 조이’라 (집에서는‘조이’) 부르게 된 사연이 생겨나게되었던 것.
언변좋은 곽선생님의 유머러스한 설명을 듣고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린나이에
부당하게 겪었을 ‘죠이’의 아픔이 가여워 나도 모르게 한 마디 하였다. “그런
경우라면 저는 姓을 바꾸었을 것 같은데요. 姓이 무엇이라고 자식에게 그런 괴로
움을 주겠읍니까?”
다음 순간 곽선생님이 보이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곤혹스런 표정을 인지하고
는… 아차! 이게 아닌데… 역시 곽선생님은 옛날 분이시구나. 상처받았을 어린 마
음에의 동정과 안쓰러움의 표현이 자칫 전통보수적 어른에의 모욕으로 오해될 수
도 있었던 미묘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姓을 바꾼다’는 말을 심한 욕으로 받아들였
다.(요즈음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또 흔히 결연한 의지를 표현할 때 이 말을 인
용하기도 하였다. 일제말기 일본식 창씨개명의 수치스런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것
일까? “x x x 이라면, 내가 성을 갈겠다!” 에서와 같이, 가장 신성한 그무
엇, 즉 서양 사람이라면 “하늘에 맹세코”, “내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정도
의 뉴앙스로, 가문의 이름인 姓을 바꾼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악덕으
로 치부되었었다.
‘본시 내 조상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닌, 중국인의 것을 가감없이 그대로 베껴써
온 우리의 姓’에 대한 불만이 또한 나의 ‘개명발언’의 저변에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곽선생님이 어찌 반응하셨던, 그 이래 나는 가끔 나 자신의 ‘창씨개명’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미국에 산다고해서 미국식으로 개명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것은 한자가 아닌 순 한국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핏 떠오른 순한국 말
은 ‘서울’… 내가 서울출신이니 ‘서울’이라하면 어떨까. 영어표기로
도 ‘Soul’(영혼)을 연상케하는 ‘Seoul’이니 의미도 괜찮을 것같고 듣기도 좋
고… ‘서울’의 고어(古語)로 알려진 ‘셔라블’이나 ‘셔블’은 어감좋기로 이
름난 불란서어와도 비슷하니 그것도 탐난다. 아! 셔블은 미국어
의 ‘shovel’(삽)과 비슷한 발음이니 안되겠다.
그런데, 본국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결정에 의해서만 그리고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만 개명이 가능함은 당연한 일일 터. 유일한 기회는 미국 시민권 취득시라고 들
은 적이 있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어 오던 시민권을 신청하게된 것
은 2003년 가을이었다. 신청양식에 ‘창씨 개명’여부를 묻는 항이 있었던 것으
로 기억하는데, 나는 ‘옳지!’하고 내심 반겼다.
그러나, 뉘 알았으리오. 생각ㅎ지 않은 복병이 있을 줄이야. 그것은 나의 두아
이들이었다. 쌍팔년생인 아들과 1년 터울의 딸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의
반사적으로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Why? I like it. It sounds
O.K. to me!”
십오륙세 사춘기의이러한 즉각적 ‘Why’반응은 항상 ‘강한 거부’, ‘반대’를
의미하며, 그 직선적인 감정과 느낌은 그들 나름의, 이유있는 반항으로 받아들여
주어야할 경우도 있으리라. 어쨌든, 이렇게 반대가 거세어서는 姓바꾸기가 애시
당초 그른 일일까? 그 바람에 나의 ‘서울’, ‘셔라블’, ‘셔블’ 案은 꺼내보
지도 못하고 보류/사장되는 운명을 맞게되었다.
아!! 그리고, 나는, 이곳 미국에 사는 나는, ‘아버지’…한국에서와 같은 권위
의 화신인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Father)가 아닌, 늘 부드러워야
만 하는‘아빠’(Dad)임을 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이 아빠가 가족의 이름인
last name(姓)을 자녀의 의사에 반하여 바꿀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도 없고… 나의 설명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이 새로운 종족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
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처럼의 ‘개명’의 기회는 이렇게 조금은 허무하게 지나가고 말았는데, 그후로
도, 가끔 잃어버린 절호의 ‘개명’기회를 생각해내고는, 무력하고 결단성
없었던 나자신에게 조금은 씁쓸하고, 가질 수도 있었던 새로운 姓, ‘서울’
또는 ‘셔라블’에 대한 미련에 얼마간의 서글픔 또는 고소를 머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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