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주는 교훈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16): 고통이 주는 교훈
한 십년전에 교인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심방을 갔던 때가 있었습니다. 병실입구에 이 환자는 전염성의 병이 있으니 방문객은 마스크랑 위생장갑을 끼고 방문하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목사가 교인을 방문하면서 병원균이 옮을까봐 겁이 나서 마스크와 위생장갑을 끼는 것이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안내문을 무시하고 맨손으로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집에 왔습니다. 손도 씻지 않고 집에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후 슬슬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날 부터 기침이 나고 머리에 열이 나고 정신없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감기약을 사 먹어도 별 차도가 없는 독감에 걸렸던 것입니다. 아내에게 생강차를 끓여 달라고 해서 마셔도 별로 나아 지지가 않았습니다. 독감에서 폐렴으로 진행될까봐 염려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한 일주일 고생한 후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별로 아파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틀전에 제가 한 여섯시간동안 고통에 시달리게 된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 날이 집에서 쉬는 날이라 게으름을 마음껏 부리며 늦잠을 잤습니다.
점심때는 전날에 물에 불려 놓았던 콩을 삶아 믹서기에 간 후 국수를 삶아 콩국수를 혼자서 만들어 먹었습니다. 콩국수에 깨소금을 뿌리고 김치를 잘라 놓고 여유있게 먹는 맛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주방에 있는 식탁에서 랩탑으로 글을 쓸까 하다가 좀 썰렁한 것 같아 따뜻한 침대로 가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중간한 자세로 침대의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글을 쓰다가 낮잠을 잤습니다.
퇴근하는 아내에게 식당에 들러 생선튀김을 사와서 저녁으로 먹자고 했습니다. 위스칸신주에는 금요일에 생선튀김을 파는 식당들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나름의 종교문화적인 배경이 있다고 합니다. 위스칸신의 주민들은 대부분 북유럽에서 이민온 사람들의 후예인데, 그 사람들은 주로 루터파 개신교인들 아니면 카톨릭 교인들이 많습니다.
위스칸신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인 금요일에는 피를 흘리고 죽은 육고기를 먹는 것을 피하고 대신에 생선을 먹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스칸신의 식당에서 금요일의 주메뉴로 “생선튀김” (fish fry)이 많이 나옵니다. 생선튀김이라 해도 이곳은 내륙이라 민물생선인 walleye, perch, smelt등이 주메뉴이며 바다생선인 연어와 대구, 가자미등이 있기는 합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었는데, 침대에 엉거주춤하게 하게 앉아 있던 자세때문에 복부의 근육이 잘 못 땡겼던지 왼쪽 갈빗대 아래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초에 한번 정도로 따끔따끔, 욱신욱신 아픈 것이 꼭 담이 결리는 것 같기도 해서 오른쪽으로 누어 보았다가 왼쪽으로 누어 보았다가 해도 통증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찬장에 있던 진통제를 찾아다가 한 알 먹고 잠을 청해 봐도 고통때문에 신경이 곤두 서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아내는 응급실에 가겠느냐고 물어 왔지만, 이 정도로 응급실에 갔다가는 돈만 버릴 것 같아 안가겠다고 했습니다.
답답해서 한국에 있는 내과의사 친구에게 카톡전화를 해 보았더니 그 친구는 “왼쪽 갈빗대 밑에 아플 일이 없는데”하며 안스러워 하면서도 뾰족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전에도 이런 일이 한번 있었는데, 잠을 자고나면 통증이 없어지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초에 한번씩 왼쪽 갈빗대 아래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네시가 되도록 잠이 안와서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가 새벽 다섯시경에 10에서 1까지 거꾸로 세는 것으로 잠을 청해 보았습니다.
10에서 1까지 거꾸로 세는 것을 두어번 하다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렇게 서너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역시 잠이 보약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랩탑으로 글을 쓸 때 탁자나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써야지, 침대에 엉거주춤하게 기대어 글을 쓰다가 안쓰는 근육이 땡겨서 고생하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되겠다 하는 교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갈빗대 밑쪽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몇시간 당하다 보니, 고통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그렇게 감사하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에 불만을 느낄 때가 오면 저는 고통에 시달려서 잠 못 이루던 밤을 생각하며 고통없이 사는 것이 큰 축복이며 기쁨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리라 마음 먹습니다.
철학자 니체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야 만다.”고 했다는데, 저는 몇시간의 고통을 겪고난 후 고통없이 사는 평범한 일상이 큰 기쁨이요 축복이라는 교훈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한 십년전에 교인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심방을 갔던 때가 있었습니다. 병실입구에 이 환자는 전염성의 병이 있으니 방문객은 마스크랑 위생장갑을 끼고 방문하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목사가 교인을 방문하면서 병원균이 옮을까봐 겁이 나서 마스크와 위생장갑을 끼는 것이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안내문을 무시하고 맨손으로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집에 왔습니다. 손도 씻지 않고 집에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후 슬슬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날 부터 기침이 나고 머리에 열이 나고 정신없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감기약을 사 먹어도 별 차도가 없는 독감에 걸렸던 것입니다. 아내에게 생강차를 끓여 달라고 해서 마셔도 별로 나아 지지가 않았습니다. 독감에서 폐렴으로 진행될까봐 염려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한 일주일 고생한 후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별로 아파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틀전에 제가 한 여섯시간동안 고통에 시달리게 된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 날이 집에서 쉬는 날이라 게으름을 마음껏 부리며 늦잠을 잤습니다.
점심때는 전날에 물에 불려 놓았던 콩을 삶아 믹서기에 간 후 국수를 삶아 콩국수를 혼자서 만들어 먹었습니다. 콩국수에 깨소금을 뿌리고 김치를 잘라 놓고 여유있게 먹는 맛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주방에 있는 식탁에서 랩탑으로 글을 쓸까 하다가 좀 썰렁한 것 같아 따뜻한 침대로 가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중간한 자세로 침대의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글을 쓰다가 낮잠을 잤습니다.
퇴근하는 아내에게 식당에 들러 생선튀김을 사와서 저녁으로 먹자고 했습니다. 위스칸신주에는 금요일에 생선튀김을 파는 식당들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나름의 종교문화적인 배경이 있다고 합니다. 위스칸신의 주민들은 대부분 북유럽에서 이민온 사람들의 후예인데, 그 사람들은 주로 루터파 개신교인들 아니면 카톨릭 교인들이 많습니다.
위스칸신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인 금요일에는 피를 흘리고 죽은 육고기를 먹는 것을 피하고 대신에 생선을 먹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스칸신의 식당에서 금요일의 주메뉴로 “생선튀김” (fish fry)이 많이 나옵니다. 생선튀김이라 해도 이곳은 내륙이라 민물생선인 walleye, perch, smelt등이 주메뉴이며 바다생선인 연어와 대구, 가자미등이 있기는 합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었는데, 침대에 엉거주춤하게 하게 앉아 있던 자세때문에 복부의 근육이 잘 못 땡겼던지 왼쪽 갈빗대 아래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초에 한번 정도로 따끔따끔, 욱신욱신 아픈 것이 꼭 담이 결리는 것 같기도 해서 오른쪽으로 누어 보았다가 왼쪽으로 누어 보았다가 해도 통증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찬장에 있던 진통제를 찾아다가 한 알 먹고 잠을 청해 봐도 고통때문에 신경이 곤두 서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아내는 응급실에 가겠느냐고 물어 왔지만, 이 정도로 응급실에 갔다가는 돈만 버릴 것 같아 안가겠다고 했습니다.
답답해서 한국에 있는 내과의사 친구에게 카톡전화를 해 보았더니 그 친구는 “왼쪽 갈빗대 밑에 아플 일이 없는데”하며 안스러워 하면서도 뾰족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전에도 이런 일이 한번 있었는데, 잠을 자고나면 통증이 없어지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초에 한번씩 왼쪽 갈빗대 아래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네시가 되도록 잠이 안와서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가 새벽 다섯시경에 10에서 1까지 거꾸로 세는 것으로 잠을 청해 보았습니다.
10에서 1까지 거꾸로 세는 것을 두어번 하다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렇게 서너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역시 잠이 보약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랩탑으로 글을 쓸 때 탁자나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써야지, 침대에 엉거주춤하게 기대어 글을 쓰다가 안쓰는 근육이 땡겨서 고생하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되겠다 하는 교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갈빗대 밑쪽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몇시간 당하다 보니, 고통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그렇게 감사하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에 불만을 느낄 때가 오면 저는 고통에 시달려서 잠 못 이루던 밤을 생각하며 고통없이 사는 것이 큰 축복이며 기쁨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리라 마음 먹습니다.
철학자 니체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야 만다.”고 했다는데, 저는 몇시간의 고통을 겪고난 후 고통없이 사는 평범한 일상이 큰 기쁨이요 축복이라는 교훈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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