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5월 2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3명의 수행원과 함께 판문점을 경유,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했다. 5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3박 4일간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김일성과 2차례, 김영주와 2차례 회담했다.
이후락과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간의 회담은 예정된 일정이었던 반면, 김일성과의 면담은 갑작스럽게 이뤄어진 것이었다. 5월2일 평양에 도착해 김영주와 두 차례 회담을 가진 이후락은 북측이 이끄는 대로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둘러 본 뒤 평양대극장에서 북한의 혁명가극 ‘밀림아 얘기하라’를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 후 이후락이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예고 없이 들이닥친 북측 인원들은 이후락을 김일성의 관저로 데려갔고, 김일성과 이후락의 회담은 여기서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김일성은 처음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7·4남북공동성명은 1972년 7월 4일 남북 간 정치적 대화통로와 한반도 평화정착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발표한 남북한 당사자 간의 최초의 합의 문서이다. 1971년 박정희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제안하면서 개시되었다. 공동성명의 조국통일원칙은 자주적 통일,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민족 대단결 도모였다. 그러나 1973년에 들어와 대화의 동력을 상실하였고, 같은 해 8월 북한이 남북조절위원회 회의를 거부하면서 종료됐다. 그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공동성명 이후 한국에서는 유신체제가, 북한에서는 유일체제가 등장하였다."
'자주국방'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것도 공동성명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자주국방'은 꿈같은 말이며 '우리끼리 통일'이라는말도 헛소리에 지나지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반도의 꿈을 포기할수는없는 일은, 지정학적위치과 문화적동질성과 '언어가통한다'는 공통적 여건이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석기시대문명처럼 남북이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것은 '전략적부실에 있다'고 진단 할수밖에 없다.
우선, '이정표'가 있어야한다.
누구나 이해가능한 이정표 제작에 진심을 담은 한사람의 노력이있다.
'하나로가는길' 제작자 항접반장이 무슨'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냥 자신의 '아젠다가 바르다는것'을 알리고 싶었던것이며, 줄반장의 아젠다는 부가가치가 상당히 높다는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6ksUTEZ6ws
‘하나로 가는길’ 실행에 반장 김창조(김나현)의 손잉크 ‘Endorse’가 필요함!



Ktown스토리
케이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