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를 먹으며 화목하는 것이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24): 채소를 먹으며 화목하는 것이

언젠가 동네 운동장에 갔다가 아홉살 정도 먹은 미국 아이와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에게, “너는 아버지가 계시니 복받은 줄 알아라.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 가셨다.”고 했더니 그 아이가 하는 말이, “You are lucky.”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우리 아버지가 일찍 돌아 가신 것이 어찌 행운이라는 것이냐?”하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우리 아버지는 술만 먹고 고함만 지르니, 차라리 죽고 없는 것보다 못하다.”하는 말을 하더군요.

프랑스의 철학자 Sartre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The best thing a father can do for his child is to die young.”이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란 뜻이겠지요? 싸르뜨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Sartre 자신의 경험담에서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해군장교이던 싸르뜨르의 아버지는 해외파병중 열병으로 죽었는데 싸르뜨르는 그때 두살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영향력이나 간섭없이 자유롭게 컸던 싸르뜨르는 청소년시절에 Henry Bergson의 철학수필집을 읽으며 철학에 흥미가 끌렸고 나중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문학가, 인권운동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1964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는데, 싸르뜨르는, “글쓰는 사람은 자유롭게 글쓰는 것이 좋지, 상은 무슨 상이냐?”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노벨문학상을 준다고 해도 받기를 거부한 싸르뜨르같은 사람도 있는데, 한국의 소설가들은 “노벨문학상 좀 안 주나?”하고 기다리다가 “올해도 헛탕이구나”하기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치즈공장에 James라는 20대 초반의 청년이 있습니다. 공장의 주차장에 근사한 트럭을 주차하길래 제가 옆에 있던 Ron에게, “James 아버지가 부자인가봐. 젊은 청년이 비싼 트럭을 몰고 다니니.”하고 말했습니다. Ron이 말하기를, “James 의 아버지는 James가 13살때 돌아 가셨다고 해. 저 트럭은 James가 일해서 번돈으로 산 거야.”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제가 James에게 “너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 가셨다고 들었다. 나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 가셨어.”라고 말을 걸었더니, James 는 “우리 아버지는 오랜 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 가셨다.”고 말하면서, “It’s a part of life.”라고 하더군요. “사람이 살다 죽는 것이 삶의 이치아니겠냐?”는 말이겠지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 가셨기 때문에 저는 가난한 집에서 컸습니다. 다행히 저는 어머니와 형님들, 누님들의 보살핌을 받고 자랄 수 있었지만, 국민학교 저의 학급에는 고아원에서 생활하던 고아들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에 비하면 저는 편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한번은 저의 교회 목사님이 저의 어머니에게 마산 월영동에 있는 고아원에 가면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보내온 돈을 줄테니 저를 데리고 가 보라고 했답니다. 미국의 선교단체와 한국의 교회단체가 연합하여 미국의 기독교인 가정과 한국의 가난한 기독교인 가정을 연결시켜 편지와 사진도 주고 받고 일년에 두어번씩 약간의 돈도 보내어 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 목사님이 “교회에서 가장 가난한 집을 추천하여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던지 목사님은 저의 집을 추천하여, 어머니와 저는 월영동 언덕에 있던 고아원에 찾아 갔습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저는 나이가 제일 많은 축에 속했고 대부분은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과 보호자등 약 사십명이 모였습니다. 그중에는 미군이 낳고 버리고간 혼혈아인 것처럼 보이는 눈이 동그랗게 큰 소녀가 할머니처럼 보이는 사람과 같이 온 것이 기억납니다.

인자하게 생기신 고아원 원장인 장로님이 간단한 설교와 기도로 예배를 인도한 후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면 나가서 돈을 받았는데, 당시 돈으로 3천원이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요즘 돈의 가치로 3만원정도 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별로 많지 않던 돈 3천원을 받으러 어머니와 제가 고아원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려니 자존심이 좀 상했지만, 그 돈으로 어머니는 반찬을 사서 우리를 먹여 살렸을 것입니다.

제 동생에게도 미국의 기독교인 가정에서 사진과 편지, 돈 3천원을 보내어 주었는데, 중학교 일학년이던 제 동생이 1976년 여름방학때 냇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죽었기 때문에 그 가족과의 연락은 끊어 지게 되었습니다. 편지내용은 선교단체직원이 번역한 걸로 기억이 되지만, 미국인 기독교인 가정이 동생에게 보내어 준 가족사진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 고마운 미국인 가족이 4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습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한 후 마산의 둘째 누님집에서 신세지고 있을 때 우유대리점을 하던 누님의 집에 주인없는 고양이가 한마리 들어 왔습니다. 누님이 밥을 주자 고양이는 집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 고양이가 밤에 마실을 갔다 오더니 얼마 후에 새끼를 여러마리 낳았습니다. 새끼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 고양이가 젖을 먹이고 얼굴을 핥아 주며 지극정성으로 키우더군요.

그런데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크자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더군요.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들에게 “내가 너희를 이만큼 키워 놓았으면 이제 너희 밥벌이는 너희가 하라”는 뜻으로 새끼 고양이들을 쫓아 버리더리군요.

새끼들이 엄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워 가까이 오면, 어미 고양이가 “캬~”하며 이빨을 무섭게 보이며 새끼 고양이들을 쫓아 버리더군요.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에게, “고양이 말이 말같지 않냐? 유식한 인간말로 해줄까? 자생력을 기르란 말이다. 알것느냐?”하고 새끼들을 넓은 세상으로 쫓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없이 가난하게 자란 저는 돈 많은 아버지를 둔 사람을 부러워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큰 부자로 알려졌던 이병철씨는 “돈병철”이라고 불릴만큼 돈이 많았습니다. 이병철씨의 큰 아들로 태어난 이맹희씨가 얼마전에 84세의 일기로 돌아가셨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난 그 분의 인생이 별로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체를 물려 받을 권력승계과정에서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던지 청와대에 아버지 사업체의 탈세문제를 고발하는 투서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버지에게 발각이 되어 권력승계권이 동생인 이건희씨에게 넘어 갔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유산상속문제로 동생과 불화하는 바람에 여생의 30년을 해외에 떠돌며 중국에서 돌아 가셨고 동생과의 법정소송에서 패소하는 바람에 200억원의 빚을 남겨둔 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삼성의 권력을 승계받고 형과의 법정소송에서 승리한 이건희회장은 딸이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고 본인은 건강을 잃고 병원에 누워 식물인간처럼 지낸다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삼성병원을 통째로 소유한 들 건강을 잃고 누워 있으면, 병원수위보다 나을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에게, “니 밥벌이는 니가 하라”고 쫓아 버렸던 것처럼, 이병철회장이 자식들에게, “내 유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쓴다. 너희 밥벌이는 너희가 하라. 자생력을 기르라. ”고 했더라면 자식들의 인생이 달라졌을지에 대해서는 저는 모릅니다.

이맹희씨가, “아버지의 유산없이도 내 힘으로 살 수 있다.”고 했더라면, 유산문제로 동생과 싸우는 일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 대해서도 모르지만, 부모님이 자식들의 자생력을 키워 주는 것이 유산을 물려 주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삼천년전에 씌여 졌던 성경의 잠언서에는, “채소만 먹더라도 형제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살찐 소를 먹으며 싸우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짧은 인생에 돈욕심을 부리며 서로 싸우다가 죽는 것 보다 서로 양보하며 사랑을 나누며 살다가 가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인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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