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감에 뒤쫓기고 있는 패자들
공포감에 뒤쫓기고 있는 패자들
Cogito ergo sum, 사고하기에 존재한다고 하지만, 다르게 이야기하면 인간은 존재하는 이상 늘 뭔가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유일신이란, 사실 그 기원상 유대교의 유일신의 연장선상에서 상상됐고, 유대교의 유일신 같은 경우에는 본래 고대 유대인들의 벼락과 천둥, 번개의 신 야훼 (여호와)였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종교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왔다.
근현대인의 두려움과 걱정은 국가와 자본의 힘에 있다. 국가, 인민, 민중, 국민, 민족이라는 단어는 가시적으로 들리 지만, 자본의 힘, 즉 "시장의 논리"는 우리 생활 순간순간에 접어 들며 살아갈 경제적인 두려움과 걱정을 느껴 주게한다.
공포들의 종류는 다양하다. 공포의 공통분모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낙오"에 대한 공포다. 낙오에 대한 공포감은 아마도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이다. 고대사회에서는 공동체로 부터의 추방은 주검을 의미 했다. 지금도 상당수의 공포감들은 바로 낙오에 대한 공포에 그 근거를 둔다.
현제 한국인들에게 진짜 두려운 건 "왕따" 다. 한국 사회에서 "힘의 서열"상 바닥에 기는 "천민"이 된다는 것은 주검과 같은것이다. 한국인들의 내면속에 흐르는 사회적 "체면"의 상실은 정말 무섭다.
취직 실패 공포 - 취직이 안되는 사람이 굶어죽을 수도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무직에 따르는 경제적 궁핍도 정말로 두렵지만, 무엇보다 신경 쓰여지는 것은 동기, 선후배, 일차적으로 가족들 앞에서의 "면목"이다. "어딜 다니세요?" 같은 질문에 "아, 요즘은 그냥 조금 쉽니다"라고 답할 때에 느끼는 굴욕감 – 낙오자가 됬다고 떳떳하게 말 못하는 그 “체면”, 이것은 곳, “체면” = “공동체에서 추방” = “주검”. 아마, 한국이 자살자의 천국이 된 이유도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교육기관과 언론들이 상정해놓은 "주류 집단"에 속 하지 못하면, 공동체에서의 추방이 한국 사회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곳 그들이 가장 두려워 했던 공포감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
이번 대선, 지난번 총선에서 그 “주류집단”에 끼지 못한 어느 비참한 패자의 모습을 우리는 이곳에서 몇칠간 보고있다. 지난 몇칠동안 국민학교 아이들의 수준에 불과한 언어로 자신의 공포감을 이곳에 흘려 놓는다. 대선에 패한 그들은 “주류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그”주류”를 이끌어 가지 못한다는 그 두려움이 그들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정말로 한국이라는 사회 그리고 그곳의 정체성의 DNA를 조금이라도 가진 우리라면, 우리는 그패자들의 심리를 알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것은 경제적인 복지사회 보다는 이러한 패자들도 아름다운 패자가 될수 있는 “정신적인 복지 사회”가 우선일 것이다.
물론 패자 자신이 스스로 일어 나기 위한 의지가 최우선이다. 그다음, 패자가 되었지만, 다시 일어 설수 있고 제활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정신적인 복지 사회”를 꿈꿔본다. 복지 사회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대선에 패하여 ‘멘붕’에 가까운 정신 상태에 있는 패자들이 아름다운 패자가 될수 있는 “정신적인 복지 사회”가 언젠가는 우리의 DNA에도 흐르기 바란다. 특히’진보’라는 단어를 커다랗게 이마에 박고 사는 우리의 다른 한쪽들이 빨리 아름다운 패자가 되길 기다려본다.
-빈칸(斌干)-
Cogito ergo sum, 사고하기에 존재한다고 하지만, 다르게 이야기하면 인간은 존재하는 이상 늘 뭔가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유일신이란, 사실 그 기원상 유대교의 유일신의 연장선상에서 상상됐고, 유대교의 유일신 같은 경우에는 본래 고대 유대인들의 벼락과 천둥, 번개의 신 야훼 (여호와)였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종교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왔다.
근현대인의 두려움과 걱정은 국가와 자본의 힘에 있다. 국가, 인민, 민중, 국민, 민족이라는 단어는 가시적으로 들리 지만, 자본의 힘, 즉 "시장의 논리"는 우리 생활 순간순간에 접어 들며 살아갈 경제적인 두려움과 걱정을 느껴 주게한다.
공포들의 종류는 다양하다. 공포의 공통분모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낙오"에 대한 공포다. 낙오에 대한 공포감은 아마도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이다. 고대사회에서는 공동체로 부터의 추방은 주검을 의미 했다. 지금도 상당수의 공포감들은 바로 낙오에 대한 공포에 그 근거를 둔다.
현제 한국인들에게 진짜 두려운 건 "왕따" 다. 한국 사회에서 "힘의 서열"상 바닥에 기는 "천민"이 된다는 것은 주검과 같은것이다. 한국인들의 내면속에 흐르는 사회적 "체면"의 상실은 정말 무섭다.
취직 실패 공포 - 취직이 안되는 사람이 굶어죽을 수도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무직에 따르는 경제적 궁핍도 정말로 두렵지만, 무엇보다 신경 쓰여지는 것은 동기, 선후배, 일차적으로 가족들 앞에서의 "면목"이다. "어딜 다니세요?" 같은 질문에 "아, 요즘은 그냥 조금 쉽니다"라고 답할 때에 느끼는 굴욕감 – 낙오자가 됬다고 떳떳하게 말 못하는 그 “체면”, 이것은 곳, “체면” = “공동체에서 추방” = “주검”. 아마, 한국이 자살자의 천국이 된 이유도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교육기관과 언론들이 상정해놓은 "주류 집단"에 속 하지 못하면, 공동체에서의 추방이 한국 사회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곳 그들이 가장 두려워 했던 공포감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
이번 대선, 지난번 총선에서 그 “주류집단”에 끼지 못한 어느 비참한 패자의 모습을 우리는 이곳에서 몇칠간 보고있다. 지난 몇칠동안 국민학교 아이들의 수준에 불과한 언어로 자신의 공포감을 이곳에 흘려 놓는다. 대선에 패한 그들은 “주류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그”주류”를 이끌어 가지 못한다는 그 두려움이 그들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정말로 한국이라는 사회 그리고 그곳의 정체성의 DNA를 조금이라도 가진 우리라면, 우리는 그패자들의 심리를 알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것은 경제적인 복지사회 보다는 이러한 패자들도 아름다운 패자가 될수 있는 “정신적인 복지 사회”가 우선일 것이다.
물론 패자 자신이 스스로 일어 나기 위한 의지가 최우선이다. 그다음, 패자가 되었지만, 다시 일어 설수 있고 제활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정신적인 복지 사회”를 꿈꿔본다. 복지 사회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대선에 패하여 ‘멘붕’에 가까운 정신 상태에 있는 패자들이 아름다운 패자가 될수 있는 “정신적인 복지 사회”가 언젠가는 우리의 DNA에도 흐르기 바란다. 특히’진보’라는 단어를 커다랗게 이마에 박고 사는 우리의 다른 한쪽들이 빨리 아름다운 패자가 되길 기다려본다.
-빈칸(斌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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