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와 McGoli는 같은 인물이었다
Abe. Lincoln이 유명한 말을 했다. "몇 않되는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있어도 많은 사람을 장기간 속일 수는 없다"는 쪼의 말을 했었다. 여기 열당은 많은 독자들을 상대로 한다. 개중에는 '막걸리'선생의 가면과 성형수술로 자신을 감추려는 것을 곧 발견하는 사람이 섞여있다.
그 첫 주자(走者)가 샹하이선생이었다. 내가 가만히 추리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 그럼 나는 어찌 그를 단정해서 기라 했는가? 첫째 단서는 본인이 막걸리를 마셨다는 글이 두어번 올라왔었고, 그것도 대낮에 마셔서 딸딸 얼큰한 기분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두번째로 짚히는 것은 한글의 떼어쓰기를 문제삼아서 한글이 과학화 된 글자라면서 그런 떼어쓰기로 인하여 국제화가 않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세번째는 글을 많이 써본 사람의 필적(筆跡), 다시 말해서 글을 쓰는 발자취가 사뭇 달인의 경지를 엿보였다는 것... 그래서 제일 처음의 글에서 "글을 많이 써본 흔적"이 보이니 자주 이곳에 나와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물론 알아보질 못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이 이에 매우 적합한 경우라 해야하겠지. 몇번의 등장을 눈여겨 봤던 차에 샹하이선생이 McGoli는 알렉산드라 하기에 "아하! 내가 모르고 지나쳤구나" 하는 깨딻음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인간사에서도 많은 발명 또는 발견이 이와같은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참으로 어려운 숙제같아서 고심에 고심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사람은 길을 건너다가 '아인슈타인'이 제창한 '상대성 특별 이론'을 일반이론으로 받아주는 실마리를 찾았고, 어떤 사람은 benzene의 분자구성을 꿈에서 발견하였다. 아시다시피 모든 분자구성은 여러 모양의 가지를 치는 것으로만 연결하려고 했어도 6 각형의 네모난 형태를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McGoli선생의 화장술과 성형 정도가 그리 심하질 않아서 몇일 만에 발견되었지만, 인류의 문명 및 문화발전에서 수많은 진리랄까 과학적 증거는 이러한 수수꺼끼를 엉뚱한 곳에서 발견했다.
Cogito ergo sum, 즉 "I think, therefore I am"이란 말을 한 사람은 René Descartes란 불란서의 수학자 및 철학자였다. 그가 숲 속을 산책하다가 폭우를 맞나서 어떤 외딴집에 피했다가 잠이 들었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면서 "아하~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나라는 인간이구나"...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 교리에 얶매여 살던 당시에는 누구나 자기의 존재를 '야외' 즉 God이란 존재와 결부해서 생각하고 해석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 그 자체는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독교종교가 뭐라하던 스스로를 알아내는 철학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Alex던 McGoli던 이 두 육체가 생각하는 그 패턴은 오직 하나...그것을 어찌 감춘다는 말이냐? 신약성경 누가복음 12장 2절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이처럼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은 일정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뭔가를 내가 여러차레에 걸처서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을 inside out 해야 한다고 거듭 설명했던 것이다. 자신의 속에 깔려있는 온갓 잡념들, 그것이 돈이던지, 애정이던지, 미워하는 거든지, 자신을 나타내려 하는 거든지, 열당에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거든지...You name it.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너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고, 佛家(불가)에서는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가르침이 우리로 하여금 지금 보고있는 것은 결국 비어있는 것이건만 그 빈 것에 실지로 세상의 진리가 숨어있다고... 소위 山은 山, 물은 물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한 우리는 죽는 날까지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다가 끝난다.
禪涅槃
그 첫 주자(走者)가 샹하이선생이었다. 내가 가만히 추리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 그럼 나는 어찌 그를 단정해서 기라 했는가? 첫째 단서는 본인이 막걸리를 마셨다는 글이 두어번 올라왔었고, 그것도 대낮에 마셔서 딸딸 얼큰한 기분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두번째로 짚히는 것은 한글의 떼어쓰기를 문제삼아서 한글이 과학화 된 글자라면서 그런 떼어쓰기로 인하여 국제화가 않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세번째는 글을 많이 써본 사람의 필적(筆跡), 다시 말해서 글을 쓰는 발자취가 사뭇 달인의 경지를 엿보였다는 것... 그래서 제일 처음의 글에서 "글을 많이 써본 흔적"이 보이니 자주 이곳에 나와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물론 알아보질 못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이 이에 매우 적합한 경우라 해야하겠지. 몇번의 등장을 눈여겨 봤던 차에 샹하이선생이 McGoli는 알렉산드라 하기에 "아하! 내가 모르고 지나쳤구나" 하는 깨딻음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인간사에서도 많은 발명 또는 발견이 이와같은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참으로 어려운 숙제같아서 고심에 고심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사람은 길을 건너다가 '아인슈타인'이 제창한 '상대성 특별 이론'을 일반이론으로 받아주는 실마리를 찾았고, 어떤 사람은 benzene의 분자구성을 꿈에서 발견하였다. 아시다시피 모든 분자구성은 여러 모양의 가지를 치는 것으로만 연결하려고 했어도 6 각형의 네모난 형태를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McGoli선생의 화장술과 성형 정도가 그리 심하질 않아서 몇일 만에 발견되었지만, 인류의 문명 및 문화발전에서 수많은 진리랄까 과학적 증거는 이러한 수수꺼끼를 엉뚱한 곳에서 발견했다.
Cogito ergo sum, 즉 "I think, therefore I am"이란 말을 한 사람은 René Descartes란 불란서의 수학자 및 철학자였다. 그가 숲 속을 산책하다가 폭우를 맞나서 어떤 외딴집에 피했다가 잠이 들었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면서 "아하~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나라는 인간이구나"...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 교리에 얶매여 살던 당시에는 누구나 자기의 존재를 '야외' 즉 God이란 존재와 결부해서 생각하고 해석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 그 자체는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독교종교가 뭐라하던 스스로를 알아내는 철학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Alex던 McGoli던 이 두 육체가 생각하는 그 패턴은 오직 하나...그것을 어찌 감춘다는 말이냐? 신약성경 누가복음 12장 2절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이처럼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은 일정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뭔가를 내가 여러차레에 걸처서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을 inside out 해야 한다고 거듭 설명했던 것이다. 자신의 속에 깔려있는 온갓 잡념들, 그것이 돈이던지, 애정이던지, 미워하는 거든지, 자신을 나타내려 하는 거든지, 열당에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거든지...You name it.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너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고, 佛家(불가)에서는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가르침이 우리로 하여금 지금 보고있는 것은 결국 비어있는 것이건만 그 빈 것에 실지로 세상의 진리가 숨어있다고... 소위 山은 山, 물은 물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한 우리는 죽는 날까지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다가 끝난다.
禪涅槃

좋아요 0
태그
DISCLAIMER
이곳에 게시된 글들은 에이전트 혹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올린 게시물입니다. 커뮤니티 내용을 확인하고 참여에 따른 법적, 경제적, 기타 문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케이타운 1번가는 해당 컨텐츠에 대해 어떠한 의견이나 대표성을 가지지 않으며, 커뮤니티 서비스에 게재된 정보에 의해 입은 손해나 피해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