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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사진 rainbows79 열린마당톡 2017.05.06 신고
인종차별
피부색에 대한 생각 !
허접한 노동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노동일이 그러하듯 비오는 날 공치는 날 일 나갔다가
비가 와서 일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래디오 턴 온 인종차별에 관한
내용이 나와서 잠시 들었습니다. 방송 마감시간에 아주 잠깐 들어서
전체 방송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흑,백 문제를 다룬 듯 했습니다.
마지막 멘트에 한인들은 어떨까 싶다 이런 말 듣다가 집에 도착해서
턴 오프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 꼭 한번은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일전에 영어권 한인이 연휴를 맞아 빅베어에 에어비앤비란 숙박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방 예약했었는데 도착 당일 체크인 직전에 동양인에게는 방을 줄 수 없다고
백인 집 주인에 숙박을 거부당한 일이 메이저 방송은 물론 한인 방송들이 크게 뉴스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는 월남인 의사가 예약초과를 이유로 비행기에서 보안요원에 의해서
구타당하고 끌려 나온 일도 있었고 아주 자주 흑인들이 경찰의 과잉방어로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과연 미국에 이민이나 직장 , 유학등 여러 가지 이유로 여기 살고 있는 우리는
인종문제에 있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묻겠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자신은 어떠한지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인종차별을 가하는 자들을 자신 있게 비난 할 수 있는가?
예라고 답할 수 있는 분들은 계속 그러하시길 만일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는 분들은 정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아주 자주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우리가 공휴일로 쉬고 있는 마틴 루터킹의 생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셨는지요?
한인들이 목사로만 알고 있는 그가 인종차별로 악명 높은 보스턴 , 거기에 있는 보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실을 수여한 사실을 알고 있는 한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략 150년 전 아프리카에서 평화롭게 살던 흑인들이 노예로 이 곳 아메리카 대륙에 끌려와
오늘에 이르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수의 흑인들이 노예로서 강제노동과 죽임을 당한 사실과
그들의 투쟁과 희생의 결과로서 우리가 거저 얻은 소수민족으로서의 인권에 대해서 생각 해보셨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말입니다.
지각 있는 백인들은 인디언 , 흑인에 대한 파괴와 살상에 대해 미안하고 부끄러워하며
반성을 합니다. 또 현재까지도 반성은커녕 그러한 역사를 백인이 유색인종보다 우월한 근거로 삼고 지금 이 순간에도 노예나 범죄자 집단으로 치부하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백인들 거기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떤 백인 인류학자는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피부색으로서 인종구분과 우월을 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두개골이 백인들의 것이 타 인종보다 미적으로 아름답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억 하실 겁니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진화론 !
거기서 나왔던 원숭이와 인간으로의 분화 두개골의 형태 !
그것을 가지고 인류의 기원과 조상을 구분하려 노력하는 인류학자들 그러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명확 사실관계를 밝히지 못하고 추측으로 일관된 학설들 그저 가정입니다.

네 이 학자도 결국에는 백인이 타 인종에 비해 우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새뮤얼 헌팅턴이란 미 하버드대 교수가 자신의 저서 문명 충돌론이란 저서에서 인종과 종교를 말하며 그에 근거해 백인종이 타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책을 안 읽어본 저로선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하지만 최고 명문대의 교수라는 자도 인종에 대한 편협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이자는 인류와 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치학자에 불구합니다.
그에 대해서 제 개인적인 반박하는 주장을 길게 아주 여러번에 걸쳐서 문명 충돌 이런 제목으로 민족과 종교 문화에 근거해서 모든 반목과 대립은 각 민족과 대륙의 열등감에서 시작한다는 관점으로서 다른 한인 사이트에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만 평화 공존을 위해서는 각 개인이 민족이 국가가 대륙이 상호 이해와 존중만이 인류가 지향해 나갈 길이란 주장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도 일본 - 뿌리깊은 열등감 이런 제목으로 한번 게시한 적이 있는데 전에 제가 문명 충돌론 –뿌리깊은 열등감 으로 게시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기 이 사이트에 올린 이유는 일인들이 여기 한인들이 각자의 생각이나 의견을 교환하는 장에 들어와 한인들 사이를 분열 시키려는 악랄한 의도로 도배 , 그래서 그들 보라고 의도적으로 올렸습니다.
결론은 우리가 남을 비난하고 타 인종과 민족을 경멸하고 차별하기 전에 스스로 우리는 어떠한가 하는 최소한의 반성과 자각이 먼저라는 생각에 여기 글을 올리고 보시는 한국인은 물론이고 일인들에게도 하고픈 말입니다.


여기 문명 충돌론을 간략하게 정리한 글이 있어 덧붙입니다

문명충돌론
[文明衝突論 ]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래의 상투적 대립구조 속에서는 더이상 인류의 공생공영을 추구할 수 없다는 자성이 일면서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갈등과 대결만을 양산해온 국가나 민족, 정치나 경제, 이데올로기 등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조화시킬 수 있는 공분모적 복합체인 문명과 그 상호관계에서 소기의 대안과 해법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현대적 문명담론이다.20세기 후반 냉전시대의 마감으로 평화와 안전을 기대하던 인류가 민족분쟁이나 종교분쟁, 국지전쟁 같은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국제적 분란에 휩쓸리자 그 대응논리나 분석의 틀로 이러저러한 문명담론이나 패러다임이 등장하였다. 동방에 대한 서방의 지배주의적 사고방식을 갈파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오리엔탈리즘’을 비롯하여, 동서방 서로를 타자화(他者化)한 새무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문명충돌론’,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여 나온 하랄트 뮐러(HaraldMüller)의 ‘문명공존론’, 그리고 ‘문명교류론’은 그 대표적인 담론들이다.동서방의 타자화 담론은 서로의 관계담론이라기보다는 인식론적 차원에서 균형 잡힌 서양의 ‘동양 만들기’와 동양의 ‘서양 만들기’를 지향하는 담론이며, ‘문명공존론’은 문명의 충돌에 반한 다원적 문명의 공존을 설파하는 담론이라는 데서는 분명 진일보한 담론이다. 그러나 단순한 인식론과 공존을 뛰어넘은 실천적 조화의 문명관계까지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이와 같이 타자론이나 공존론은 문명의 관계담론치고는 미숙이나 한계를 면치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학문적 정립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비해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현대적 문명담론 중에서 그야말로 ‘태풍의 눈’이 되어 ‘5대양 6대주’ 사람들이 읽고 나서 ‘감동을 받고, 호기심을 느끼고, 분개하고, 위기감을 느끼고, 당혹스러워하였다’고 할 정도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여진은 학계의 문명담론을 강타하고 있다.지금까지 슈펭글러(O. Spengler, 1880~1936)나 토인비와 같이 문명으로 세계역사를 설명하는 역사가나 문화인류학자, 철학자는 있었지만, 헌팅턴처럼 정치학자가 문명으로 국제정치를 재량(裁量)한 전례는 거의 없었다. 이것은 지난 수세기 동안 오로지 국가만을 단위로 하여 국제정치를 분석하고 이해해오던 국제학계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으며, 따라서 헌팅턴의 문명 패러다임이 새로운 시도임에는 틀림이 없다.헌팅턴은 1993년 여름 『포린 어페어즈』(ForeignAffairs)지에 「문명의 충돌」이란 논문을 발표했는데, 즉각 세계적인 큰 반향과 더불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연이어 몇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으며, 그것을 『문명의 충돌과 세계질서의 재편』(TheClashofCivilizationsandtheRemakingofWorldOrder)이란 저서로 한데 묶어 1996년에 출간하였다. 헌팅턴의 이른바 ‘문명충돌론’이 바로 이 저서에 집약되어 있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문화적 동질성이 한 나라의 우방과 적국을 규정하는 본질적 요인이다. 냉전구조에 편입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국가가 문화정체성 없이 존재할 수는 없게 되었다. ‘너는 어느 편인가?’라는 물음은 ‘너는 누구인가?’라는 훨씬 근원적인 물음으로 바뀌었다. 모든 나라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답변, 곧 한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이 세계정치에서 그 나라가 차지하는 위치, 그 나라의 친구와 적수를 규정한다”, “문화가 중요성을 갖는 세계에서 소대는 종족, 중대는 민족, 군 전체는 문명에 해당한다.”이 두 문장에서 그가 주장하는 ‘문명충돌론’이란 과연 무엇인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 기본 내용은 오늘의 탈냉전시대에는 지금까지 부상하지 않고 있던 정치나 경제 외적 가치인 역사나 조상 · 언어 · 종교 같은 문명적 요소(‘문화적 동질성’ ‘문화 정체성’)와 그 충돌이 세계를 움직여가는 핵심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헌팅턴은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저서가 ‘사회과학서’가 아님을 밝히면서, 국제정세의 추이를 통찰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문명충돌’이란 패러다임이 그 어떤 패러다임보다도 ‘더 의미있고 유용한 렌즈를 제공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는 그 ‘유용성’을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세계정세를 이해하는 데 한정하고 있다. 그 역시 그의 이론은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라 한시적인 것임을 자인하고 있다.그의 이론은 새로운 국제정세 속에서 문명을 중시하고 문명담론을 정면화하였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명충돌론’은 몇가지 근본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그가 착안한 정치학이 아니라 문명 본연의 시각에서 통찰하면 적어도 다음의 3가지 측면에서 이론적 및 실천적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그 오류는 첫째로, 복합적인 문명개념을 단순한 가치체계로 축소했다는 데 있다. 그는 문명의 개념을 가치체계, 그것도 주로 종교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종교 가치체계로 축소하고 단순화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를 일차적 기준으로 하여 1993년에 발표한 첫 글에서 세계문명을 ① 기독교 ② 정교 ③ 이슬람교 ④ 유교 ⑤ 불교 ⑥ 힌두 ⑦ 아프리카(비이슬람권) ⑧ 일본 등 8대 문명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 유형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일자, 3년 후에 펴낸 책에서는 ① 중화 ② 일본 ③ 힌두 ④ 이슬람 ⑤ 정교 ⑥ 서구 ⑦ 라틴아메리카 ⑧ 아프리카 등 8대 문명으로 수정하였다.그는 종래의 ‘유교문명’을 ‘중화(Sinic)문명’으로 개칭하면서 여기에 해외 화교공동체와 베트남 · 한국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기독교문명’은 ‘서구문명’과 ‘라틴아메리카 문명’으로 이분하였다. 그런가 하면 불교는 탄생지 인도에서 소멸하고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이미 토착문화에 통합되어 ‘거대 문명의 바탕’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문명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불과 3년 동안 헌팅턴의 문명관은 이렇게 오락가락한다. 여기서 문명 유형화는 분명히 문명권 분류다.그는 ‘기독교’를 ‘서구’와 ‘라틴아메리카’로 나누고, 불교를 제외시킴으로써 종교의 개입을 희석하고자 한 것 같지만, 종교를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적 특성’으로, ‘문명이 의지하는 토대’로 인지하면서 여전히 문명유형화에서 종교를 절대적 기준가치로 삼고 있다.문명이나 문명권의 이러한 유형화야말로 문명사에서는 전무후무한 ‘독창’이다. 원래 문명권이란 공통된 문명요소들을 공유한 문명의 역사문화적 및 지역적 범주를 말하는 것으로, 그러한 문명권은 문명 구성요소의 특수성과 시대성 및 지역성이 보장되고 생명력이 유지되어야 비로소 형성 가능한 것이다.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여러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포괄적 문명을 어떤 개별 분야에 한정시키거나 그 구성요소들을 단순화하는 것은 문명의 본연에 어긋난다. 사실 문명의 구성요소로 본다면, 순수한 종교보다는 종교를 바탕으로 한 복합적 종교문화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 헌팅턴처럼 이질성과 갈등의 소지가 많은 종교만을 거론하는 것은 문명을 충돌의 화신으로 오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우려가 크다.그리고 종래 중국의 천하 중심과 모화사상을 대변함으로써 이미 역사의 퇴물이 된 소위 ‘중화(中華)’ 개념을 문명에 끌어들이는 것은 실로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일본을 하나의 문명권으로 설정한 것은 기상천외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헌팅턴은 그 원인에 관해서는 한마디로 일본문화의 ‘특수성’을 들고 있다.그는 기원후 100년에서 400년 사이에 중국문명의 영향을 받아 출현한 일본문명을 ‘독자적’ 문명이라고 단정하면서, “가장 중요한 고립국 일본은 일본문명의 유일한 국가이자 핵심국이다. 일본의 특이한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는 전혀 없으며, 일본에서 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극히 소수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그 나라의 문화에 동화되었다”라고 해석한다.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70~80년대 국세가 급상승하면서 일본 지식계가 부르짖던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추세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헌팅턴의 문명 단순화나 축소화는 문명에 대한 그의 편단(偏斷)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문명은 언어 · 역사 · 종교 · 관습 · 제도 같은 공통된 객관적 요소와 사람들의 주관적 귀속감 모두에 의해 정의된다”고 하면서, “어떤 문명이나 문화에서든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는 언어와 종교”라고 언어와 종교를 극구 강조한다.그리하여 그는 주로 종교나 언어, 역사나 관습, 제도(그는 ‘객관적 요소’라고 했지만), 그리고 귀속감 같은 주관적 요소들을 문명으로 정의하였다. 이것은 문명을 인간집단의 생활양식의 총체나 노동을 통해 얻은 결과물의 총체로 보는 ‘총체론적 전망’(totalistview)과는 상치되는 ‘관념론적 전망’(mentalistview)으로, 헌팅턴은 문명을 독일식 전통적 문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문명개념을 주로 종교체계 같은 관념론적 가치체계로 단순화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그는 또 ‘문명과 문화는 모두 사람들의 총체적 생활방식을 가리키고 있다’ ‘문명은 가장 광범위한 문화적 실체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문명에 대한 이해에서 총체론적 전망을 따르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문명과 문화를 총체와 개체 관계로 구분짓는 것 같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혼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문명에 대한 헌팅턴의 이해는 천방지축 오리무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명충돌론’이 내포한 두번째 오류는 문명간의 차이를 문명 본연의 ‘충돌’인 양 착각하고 문명간의 상생(相生)관계를 상극(相剋)관계로 오도한다는 데 있다. 헌팅턴은 현대세계에서 문화집단들 사이의 갈등이 커짐에 따라 그러한 갈등이 세계정치에서 ‘점점 중요한 뜻을 갖는다’고 하면서, 그러한 갈등과 충돌의 원인은 종교들 간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문화적 사안들은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 다시 말하여 제로섬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으로 설명한다.즉 이질문명간의 관계는 절충이나 조화가 안되고,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수화불상용적(水火不相容的) 상극관계이므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충돌의 또다른 원인을 헌팅턴은 이른바 ‘분쟁의 보편성’에서 찾고 있다. ‘증오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며,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의하고 행동 욕구를 느끼기 위해서는 적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분쟁의 보편성’ 논리다.그래서 정치에서 적용되는 ‘우리’와 ‘그들’이라는 대립구조가 문명에서도 그대로 적용된 결과 ‘냉전의 종식은 분쟁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문화에 뿌리를 둔 새로운 정체성, 상이한 문화에서 유래한 집단들 사이의 새로운 갈등 양상을 낳았다’고 그는 진단한다.이러한 맥락에서 헌팅턴은 국제적 무역이나 교류는 국제적 유대나 협조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분쟁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1980년대 국제무역량이 세계 총생산액의 15%밖에 안되었는데도 1990년대의 냉전 종식이 있었는데, 1913년에 그 비율이 무려 33%였지만 이듬해에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무역과 교류가 평화나 유대감을 조성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은 사회과학에서 밝혀진 사실과 맥을 같이한다’고 학문적 근거까지 들먹이고 있다.그가 말한 ‘사회과학에서 밝혀진 사실’이란 사회심리학에서의 변별이론(distinctivenesstheory)과 사회학에서의 세계화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특정한 상황 하에서 사람들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의한다고 하는 변별이론을 문명교류에 적용해서 ‘통신 · 무역 · 여행의 증가로 문명과 문명의 접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차츰 자신들의 문명적 정체성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고 지적한 것은 정당하나, 그 중요성으로 인해 타문명과의 갈등이 가중된다는 것은 ‘헌팅턴식 충돌론’일 따름이다.그는 20세기 후반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이 증폭된 배경의 하나로 두 문명간의 접촉과 교섭이 잦아지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차이를 인식하게 된 것을 지목하고 있다. 헌팅턴의 문명상극 논리를 종합해보면, 문명간의 차이는 근본적이고, 문명간의 ‘상호작용’(즉 교류)은 상호 차이를 강화하며, 문화적 차이는 정치나 경제, 이념적 차이보다 변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마디로 문명간의 차이로 인해 서로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명의 근본 속성인 자생성과 그에서 파생되는 보편성과 개별성(차이성), 그리고 문명교류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거나 왜곡인 것이다.문명은 인류 공동의 창조물이고 향유물이며 소유물로 상부상조에 의해 공존한다. 따라서 문명의 절대적 독점이나 우월은 있을 수 없으며 문명간의 교류는 필연이다. 절대적 독점이나 우월이 없는 문명간의 교류는 다름에서 오는 일시적 갈등이나 모순을 평화적이고 순기능적으로 극복하면서 점진적으로 실현된다. 문제는 생태적으로 없는 충돌을 인위적으로 있게 하거나 있다고 보는 데 있다.끝으로 문명충돌론이 드러내는 세번째 오류는 지구촌의 분란을 숙명화한다는 것이다. 냉전시대 이후 새 세기를 맞는 인류의 공동 염원은 평화와 안전이다. 그런데 헌팅턴은 문명간의 단층선에서 문명충돌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함으로써 지구촌의 분란에 불가피성을 부여하고, 인류의 항구적 평화 염원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심층 분석해보면, 그의 ‘충돌론’에는 허구적 이중 잣대가 적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력이 약하여 서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문명과는 갈등의 소지가 적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러시아나 일본 · 인도 문명은 이미 서구에 대한 도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갈등 없이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에 반해 도전의식이 강한 이슬람 문명과 중화문명의 성장, 그리고 그들간의 제휴는 서구와 미래세계에 대한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심각한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문명간의 갈등이나 충돌 여부는 문명의 본연에 기인된다기보다는 서구와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해 좌우된다는 논리다. 그의 이러한 문명 ‘논리’는 자가당착적인 순전히 정치적 안보논리에 불과하다.헌팅턴은 서구 문명에 대한 이슬람 문명과 중화문명의 도전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서구는 도전의식이 강한 이슬람 문명, 중국 문명에 대해서는 늘 긴장감을 느끼며 이들과의 관계는 대체로 적대적이다. 이슬람과 중국은 판이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둘 다 서구에 대한 크나큰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문명의 실력과 자긍심은 서구와의 관계에서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며, 가치관과 이익을 둘러싼 서구와의 충돌 역시 다각화되며 심화되고 있다.”이른바 이슬람의 비관용(intolerance)과 중화의 자기주장(assertiveness)에 바탕을 둔 도전은 결코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진대, 여타 6개 문명권은 합종연횡해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문명충돌론’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그는 저서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이슬람 문명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이슬람 문명을 매우 호전적인 문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검을 앞세운 종교’, 타종교와의 화합 불가능성, 강한 자존심, 갈등을 조정할 만한 핵심세력의 부재, 인구 격증 등으로 이슬람의 ‘폭력성’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이 증폭된 배경으로는 무슬림 인구의 증가와 대규모 실업자의 발생, 무슬림의 자기 문명에 대한 자긍심 회복, 경제적 및 군사적 우위를 고수하면서 이슬람세계의 분쟁에 간여하려는 서구의 시도, 공적 공산주의의 소멸로 인해 서로가 최대의 위협이란 인식, 두 문명의 접촉과 교섭의 증가로 인한 서로의 정체성과 차이 확인 등등을 꼽고 있다.20세기 후반 이슬람과 서구 간의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는 배경에 관한 분석에서 무슬림들의 자긍심 회복이나 서구의 간섭 시도 등은 가능한 지적이긴 하나 이슬람을 근본적으로 폭력의 종교로 보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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