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복이 와요'
笑門萬福來(소문만복래)란 말이 있다. 웃는 문에 온갓 福이 굴러들어 온다는 말이다. 웃는 데에 어째서 복이 오는가? 우선 웃어야 하는 조건이 충족되면 결과적으로 福이 굴러들어 온다고 봐야 할지, 아니면 福이 많이 들어왔으니까 저절로 웃게 되는 건지?
내가 고교시절에 實存哲學(실존철학)이란 것이 유행했는데 내 반에 어떤 친구가 "神은 죽었다"라는 명구를 칠판에 대문짝만 하게 써놨었다. 마침 영어선생이신 이아무개 담임선생이 들어서서 그것을 읽자마자 누가 이런 거를 써놨는 가를 우리들에게 물었다. 한 녀석이 마지 못해서 알은 척을 하니까 그 선생이 불러내서 금마의 빰을 세게 때렸다.
나는 당시에 그 말이 뭐를 나타내길래 그래 얻어맞아야 하는 지를 몰랐다. 하지만 그 녀석은 뭔가를 알았던지 그런 짓을 했었는데, 들리는 말로는 계룡산에서 한동안 道(도)를 닦고 내려왔다더군. 한편 이아무개 선생은 기독교人이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대학엘 들어가서야 그넘의 실존철학이 뭔가를 알아보기에 이르렀다. Nietzsche란 독일의 철학자가 19세기 말에 'Thus Spoke Zarathustra'란 책을 발간하면서 기독교는 속된 말로 글러먹었다고 했다고.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가?" 인간은 그 생겨먹은 것이 누구에게 속해야 "제 구실을 한다는 것"이 아니란 거다. 그 생각과 믿음 그 자체는 자유로운 인간 본연에서 유래되기 때문이다는 쪼인데, 기독교가 전 구라파의 문명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에서는 혁명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내가 76세에 이르도록 이 문제를 다루며 생각하던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님이던 여호와던 내 정신적 바탕을 그들의 말고삐에 매어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웃으려면 어째야 하고 울지 말아야 할량이면 저래야 한다는 '조건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일컨대 율법에 어긋나서는 않된다는......그것이 하나님이 값없이 주셨던 말던. 내가 웃고 싶으면 웃을 수 있고, 어쩌다 福이 넝쿨째 떨어져서 웃던지 말던지 교회에서 상관할 일이 아니다.
내가 이런 저런 책을 뒤지다가 발견한 사실은 유럽에서 내노라 하는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이 너나 할것 없아 궁극적으로 佛家(불가)의 가르침에 歸依(귀의)하는 것을 놓칠 수가 없더군.
그들이 왜 그러는가? 기독교에서는 말만 풍성하지만 실천이 부족하다. 특히 마틴 루터가 "여호와의 恩惠(은혜)로서 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한 이상 신교의 모든 입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구원사상을 노래해 왔다.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좋은 경사가 있는가? 저절로 입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예전대로 세상을 살면서 온갓 罪를 짓는다.
한국사회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젊은 여자들이 하나 같이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웃는다. 심지어 사내녀석들도 이래 하는데 도대체 그 福의 근원을 어째서 막느냔 말이다. 그냥 껄껄이든지, 하하하 통쾌하게 웃던지, 히히히 마지 못해 웃던지, 그것도 아니면 천아무개 내 독일어 선생처럼 입을 한껏 다물고 웃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지.
하긴 그것도 웃는 거는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왜 그러는가? 孔子말씀이 "君子는 희로애락을 나타내서는 않된다"고 했다누먼. 그게 아니면 독일어 선생이니 '니췌'의 實存철학의 외침에 영향을 받아서 삶의 엄숙함을 통달하려 했는지, Who knows?
좌로 치나 우로 치나, 웃으면 福이 올 이치에는 조금의 의문이 없다고 하겠다. 내가 실제로 살고 보니 그 말이 맞아 떨어지더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좋은 것이 바로 웃음이다~ 그런 말씀이외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일부러 성난 얼굴로 살아보았자 들어올 福도 걷어참은 물론이요, 혹 어쩌다 좋일 일이 생기면 다~ 내가 잘나서 그렇다고 웃고 치웁시다요. 아멘 하십니까?
禪涅槃
내가 고교시절에 實存哲學(실존철학)이란 것이 유행했는데 내 반에 어떤 친구가 "神은 죽었다"라는 명구를 칠판에 대문짝만 하게 써놨었다. 마침 영어선생이신 이아무개 담임선생이 들어서서 그것을 읽자마자 누가 이런 거를 써놨는 가를 우리들에게 물었다. 한 녀석이 마지 못해서 알은 척을 하니까 그 선생이 불러내서 금마의 빰을 세게 때렸다.
나는 당시에 그 말이 뭐를 나타내길래 그래 얻어맞아야 하는 지를 몰랐다. 하지만 그 녀석은 뭔가를 알았던지 그런 짓을 했었는데, 들리는 말로는 계룡산에서 한동안 道(도)를 닦고 내려왔다더군. 한편 이아무개 선생은 기독교人이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대학엘 들어가서야 그넘의 실존철학이 뭔가를 알아보기에 이르렀다. Nietzsche란 독일의 철학자가 19세기 말에 'Thus Spoke Zarathustra'란 책을 발간하면서 기독교는 속된 말로 글러먹었다고 했다고.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가?" 인간은 그 생겨먹은 것이 누구에게 속해야 "제 구실을 한다는 것"이 아니란 거다. 그 생각과 믿음 그 자체는 자유로운 인간 본연에서 유래되기 때문이다는 쪼인데, 기독교가 전 구라파의 문명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에서는 혁명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내가 76세에 이르도록 이 문제를 다루며 생각하던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님이던 여호와던 내 정신적 바탕을 그들의 말고삐에 매어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웃으려면 어째야 하고 울지 말아야 할량이면 저래야 한다는 '조건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일컨대 율법에 어긋나서는 않된다는......그것이 하나님이 값없이 주셨던 말던. 내가 웃고 싶으면 웃을 수 있고, 어쩌다 福이 넝쿨째 떨어져서 웃던지 말던지 교회에서 상관할 일이 아니다.
내가 이런 저런 책을 뒤지다가 발견한 사실은 유럽에서 내노라 하는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이 너나 할것 없아 궁극적으로 佛家(불가)의 가르침에 歸依(귀의)하는 것을 놓칠 수가 없더군.
그들이 왜 그러는가? 기독교에서는 말만 풍성하지만 실천이 부족하다. 특히 마틴 루터가 "여호와의 恩惠(은혜)로서 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한 이상 신교의 모든 입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구원사상을 노래해 왔다.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좋은 경사가 있는가? 저절로 입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예전대로 세상을 살면서 온갓 罪를 짓는다.
한국사회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젊은 여자들이 하나 같이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웃는다. 심지어 사내녀석들도 이래 하는데 도대체 그 福의 근원을 어째서 막느냔 말이다. 그냥 껄껄이든지, 하하하 통쾌하게 웃던지, 히히히 마지 못해 웃던지, 그것도 아니면 천아무개 내 독일어 선생처럼 입을 한껏 다물고 웃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지.
하긴 그것도 웃는 거는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왜 그러는가? 孔子말씀이 "君子는 희로애락을 나타내서는 않된다"고 했다누먼. 그게 아니면 독일어 선생이니 '니췌'의 實存철학의 외침에 영향을 받아서 삶의 엄숙함을 통달하려 했는지, Who knows?
좌로 치나 우로 치나, 웃으면 福이 올 이치에는 조금의 의문이 없다고 하겠다. 내가 실제로 살고 보니 그 말이 맞아 떨어지더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좋은 것이 바로 웃음이다~ 그런 말씀이외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일부러 성난 얼굴로 살아보았자 들어올 福도 걷어참은 물론이요, 혹 어쩌다 좋일 일이 생기면 다~ 내가 잘나서 그렇다고 웃고 치웁시다요. 아멘 하십니까?
禪涅槃

좋아요 0
태그
DISCLAIMER
이곳에 게시된 글들은 에이전트 혹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올린 게시물입니다. 커뮤니티 내용을 확인하고 참여에 따른 법적, 경제적, 기타 문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케이타운 1번가는 해당 컨텐츠에 대해 어떠한 의견이나 대표성을 가지지 않으며, 커뮤니티 서비스에 게재된 정보에 의해 입은 손해나 피해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