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자를 증오하는 이유
나는 부자들이 싫다. 인색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에게도 인색할 뿐만 안니라 그들의 자녀에게도 인색하다. 우리는 자녀에게 적어도 한달에 용돈 3백불씩은 주면서 살자. 용돈 3백불은 나가서 점심 사먹고, 저희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초생활비이다. 그 돈으로는 차를 살수도 없고, 비행기를 타고 어디 여행을 하며 호텔에 머무를만한 돈도 아니다. 존슨 대통령이 만든 웰페어도 그렇다. 노인이나 장애자에게 매달 주는 몇백불은 그들의 기초생활비이다. 그들은 그것이 없으면 길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말하자면 그들에겐 매달 받는 몇백불이 생존권인 셈이다. 생존권은 존슨 대통령이 흑인들에게 주었던 평등권보다 더욱 절실한 것이다. 60년대나 1992년에 평등권을 외치며 폭동을 일으킨 흑인들을 보았는가? 만일 생존권을 외치며 폭동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429폭동때 보다 더욱 무서운 불길이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산혁명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려서 전라도 광주에 살때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만큼 살림이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 식구는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재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재산관리를 모두 작은아버지가 하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에게 가면 늘 하시는 말씀이 "돈없어"였다. 돈을 쓸때가 하도 많아서 남에게 돈을 꾸어야 할 지경이라고 하셨다.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벌수록 계속 이곳저곳에다 투자를 하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평생 돈에 쪼달리며 가난한 삶을 살다 죽었다. 반면에 나의 아버님은 공사판에서 일하며 제대로 잡수시지를 못해 결핵에 걸리셨다. 그런 아버님을 위해 쌀과 고기를 사려고 어머님은 어느날 작은아버지의 집에 찾아 가셨지만 빈손으로 돌아오셨다. 그때 아버님이 왜 그러셨을까? 아버님은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 동생의 집을 도륙내고 불을 질러 버리셨다. 불에 타서 까맣게 되어버린 아버님의 시신이 아직도 나의 기억에 생생하다. 졸지에 자식들을 잃은 할아버지도 중풍이 와서 얼마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지금도 나는 전라도 사람들의 이중성격을 보면 무섭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에게 섭섭해도 서운한 감정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과 일본인도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지만 전라도 사람은 겉으로 웃으며 헤헤거리기 까지 한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다. 무딘 칼로는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 전라도 사람이 싸우는 순간은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빼어들었을 때이다. 어쩌면 전라도 사람의 성격이 나에게도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일보 열린마당에 오면 아내의 흉도 보고, 속마음을 모두 말하지만 집에선 입도 뻥긋 안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내와 한번도 부부 싸움을 한적이 없다. 한국인들이 다니는 교회에 가서도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다. 오직 이곳 열런마당에서만 한국인들에 관해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이다.
내가 어려서 전라도 광주에 살때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만큼 살림이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 식구는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재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재산관리를 모두 작은아버지가 하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에게 가면 늘 하시는 말씀이 "돈없어"였다. 돈을 쓸때가 하도 많아서 남에게 돈을 꾸어야 할 지경이라고 하셨다.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벌수록 계속 이곳저곳에다 투자를 하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평생 돈에 쪼달리며 가난한 삶을 살다 죽었다. 반면에 나의 아버님은 공사판에서 일하며 제대로 잡수시지를 못해 결핵에 걸리셨다. 그런 아버님을 위해 쌀과 고기를 사려고 어머님은 어느날 작은아버지의 집에 찾아 가셨지만 빈손으로 돌아오셨다. 그때 아버님이 왜 그러셨을까? 아버님은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 동생의 집을 도륙내고 불을 질러 버리셨다. 불에 타서 까맣게 되어버린 아버님의 시신이 아직도 나의 기억에 생생하다. 졸지에 자식들을 잃은 할아버지도 중풍이 와서 얼마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지금도 나는 전라도 사람들의 이중성격을 보면 무섭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에게 섭섭해도 서운한 감정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과 일본인도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지만 전라도 사람은 겉으로 웃으며 헤헤거리기 까지 한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다. 무딘 칼로는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 전라도 사람이 싸우는 순간은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빼어들었을 때이다. 어쩌면 전라도 사람의 성격이 나에게도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일보 열린마당에 오면 아내의 흉도 보고, 속마음을 모두 말하지만 집에선 입도 뻥긋 안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내와 한번도 부부 싸움을 한적이 없다. 한국인들이 다니는 교회에 가서도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다. 오직 이곳 열런마당에서만 한국인들에 관해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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