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는 신분 상승의 요인
얼마 전에도 특허 관련 글을 열당에 올린 적 있지만 아이디어에서 특허, 그리고 상품에서 돈이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험난하다. 그러나 좀 오래 전에 들은 말이긴 하지만 실지로 미주에서도 유틸리티 특허로 로열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교포들이 꽤나 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발명은 또 다른 발명을 낳아 인간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삶의 가치를 부여해 왔음에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발명가라면 세종의 장영실을 빼놓을 수 없다.
[장영실(將英實)은 조선조의 과학자로서 본관은 아산(牙山)이다. 기생의 소생으로 태어난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의 관노 출신이라고 전해지는데 그 때문인지 정확한 출생일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적부터 아주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전해진다. 사물에의 관찰력 또한 뛰어났으며, 기계의 원리 파악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고, 기계 등을 만들고 고치는 일에 능통했으며, 무기나 농기구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등 금속을 다루는 일에 능숙했다고 한다. 장영실은 비록 관노 출신이었으나 그는 탁월한 재능을 어려서부터 발휘하여 주위로부터 인정받았고, 한양의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세종의 부왕(父王)인 태종(太宗) 때 발탁되어 궁중에서 일하게 되었다. 장영실이 관직에 오르게 된 것은 태종 때가 아닌 세종 때였다. 세종은 제련 및 축성, 무기, 농기구의 수리에 뛰어난 장영실을 가까이 두어 자신이 반드시 이루고자 했던 사업중의 하나인 천문의기 제작사업을 비롯한 과학진흥사업에 참여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제가 행해지던 당시에 노비출신인 자를 궁중에 두어 관리로 중용케 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기에 모든 문무(文武) 대신들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장영실과 같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대신들을 설득하여 결국 장영실을 채용하였다. 이리하여 동래현의 관노가 엄격한 신분제의 벽을 넘어 상의원 별좌[5品]가 된 것이다. '상의원 별좌'라는 것은 임금의 의복을 만들고 대궐안의 재물과 보물의 관리를 맡아 관리하던 관서로써 태조(太祖) 때 세워진 것이다. 장영실을 상위원 별좌로 발탁한 세종은 그를 항시 가까이 두었는데 이는 세종의 총애가 얼마나 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장영실의 작품이 한국지폐 만원권 뒷면 자리에 올려져있거니와 당시의 발명가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일은 극히 드문 경우이나 특별한 기술은지금 이시대까지도 신분 상승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 한가지,
특허에 도전하면 치매도 예방하고 신분상승의 부가가치도 창출하며 경우에 따라 돈도 벌일 수 있다.
발명은 또 다른 발명을 낳아 인간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삶의 가치를 부여해 왔음에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발명가라면 세종의 장영실을 빼놓을 수 없다.
[장영실(將英實)은 조선조의 과학자로서 본관은 아산(牙山)이다. 기생의 소생으로 태어난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의 관노 출신이라고 전해지는데 그 때문인지 정확한 출생일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적부터 아주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전해진다. 사물에의 관찰력 또한 뛰어났으며, 기계의 원리 파악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고, 기계 등을 만들고 고치는 일에 능통했으며, 무기나 농기구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등 금속을 다루는 일에 능숙했다고 한다. 장영실은 비록 관노 출신이었으나 그는 탁월한 재능을 어려서부터 발휘하여 주위로부터 인정받았고, 한양의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세종의 부왕(父王)인 태종(太宗) 때 발탁되어 궁중에서 일하게 되었다. 장영실이 관직에 오르게 된 것은 태종 때가 아닌 세종 때였다. 세종은 제련 및 축성, 무기, 농기구의 수리에 뛰어난 장영실을 가까이 두어 자신이 반드시 이루고자 했던 사업중의 하나인 천문의기 제작사업을 비롯한 과학진흥사업에 참여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제가 행해지던 당시에 노비출신인 자를 궁중에 두어 관리로 중용케 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기에 모든 문무(文武) 대신들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장영실과 같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대신들을 설득하여 결국 장영실을 채용하였다. 이리하여 동래현의 관노가 엄격한 신분제의 벽을 넘어 상의원 별좌[5品]가 된 것이다. '상의원 별좌'라는 것은 임금의 의복을 만들고 대궐안의 재물과 보물의 관리를 맡아 관리하던 관서로써 태조(太祖) 때 세워진 것이다. 장영실을 상위원 별좌로 발탁한 세종은 그를 항시 가까이 두었는데 이는 세종의 총애가 얼마나 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장영실의 작품이 한국지폐 만원권 뒷면 자리에 올려져있거니와 당시의 발명가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일은 극히 드문 경우이나 특별한 기술은지금 이시대까지도 신분 상승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 한가지,
특허에 도전하면 치매도 예방하고 신분상승의 부가가치도 창출하며 경우에 따라 돈도 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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