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 회담으로 발전하는 북미회담
역사적으로 수많은 세기적 만남과 회담들이 있었습니다. 20세기말의 세기적 만남은 뭐니뭐니 해도 중공과 미국의 북경 정상회담이었을 것입니다.
이 번 북미회담은 21세기에 들어와서 첫 번째 세기적 만남이 아닌가 싶습니다.
1905년 대한제국을 삼키려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와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하워드 테프트 육군장관 사이에 소위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이 밀약내용은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은 대한제국을 지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와 일본이 미국에서 포츠머스 조약을 맺고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대한제국의 지배권을 인정받습니다. 드디어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장악을 위한 통감부 설치를 위해 무력과 강압에 의한 불평등한 강제협정이 맺어지는데, 우리는 이것을 을사늑약이라 부릅니다. 당시 고종이하 몇 충신들은 이 늑약에 도장을 찍거나 싸인을 하지 않았고 소위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도장을 찍습니다. 외무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내무대신 이지용,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이후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시작하다가 1910년 한일합병으로 완전히 나라가 통째로 일본제국주의 자들의 손으로 넘어 갑니다.
1907년 고종은 대한제국 최초의 검사였던 이준을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네델란드 헤이그로 보냅니다.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불평등성을 만방에 알리고 이 늑약을 취소시켜 빼앗긴 외교권을 회복할 목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에 있던 이위종과 이상설과 합세하여 세 사람이 만국평화회담이 개최된지 10일 뒤에 헤이그에 도착했으나 초대받지 않은 나라와 인물로 취급되어 거부당하고 회담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쫒겨납니다.
그러나 당시 회담 밖에서는 유럽시민운동이 촉발되었는데, 이들 시민운동가들에게 장외 외교활동을 시작하다가 세 명 중 한 사람인 이위종이 돌아가며 장외외교활동도 중지되고 이준은 헤이그에서 사유가 분명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 사건은 이후 독립운동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고 1963년 그의 유해가 5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21세기 초 세기적 만남으로 발전되고 있는 북미회담을 몇 일 앞두고 전 세계가 예의주시하며 긴장하고 예의주시하며 여러 주변 국가들이 물밑에서 엄청나게 발들을 빠르게 놀리고 있습니다. 소위 저팬패싱으로 애를 태우는 일본 총리 아베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그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만나며 자신들의 위치와 몫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있습니다. 북미회담을 반대하는 유일한 국가인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서도 북미회담을 반대하는 유일한 야당인 자유한국당. 이들은 서로 맞닿아 있으며, 어제 드디어 제일 야당 대표인 홍준표는 이 번 북미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반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넘긴다 해도 1905년의 을사오적들처럼 그 밀약에 도장을 찍을 자들 입니다.
1905년 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제국에게 무력에 의한 강압으로 뺴앗기고 그 억울함과 부당성과 불평등성을 호소하기 위해 참석하기 원했던 네델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그 때는 세계 어느 나라도 대한제국의 존재를 알기나 알았을까? 고종의 특사로 파견된 이준은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보잘 것 없는 자신과 힘 없는 나라를 생각하며 입에 칼을 물었을까? 우리는 그를 이준열사라고 배웠다.
그러나 그 때 이후 113년만에 열리는 세기적 북미회담은 완전 다르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일본의 방해는 여전하다. 일본과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방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제일 야당의 방해, 일본의 방해, 미국내 매파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자들의 방해, 트럼프를 혐오하는 기성정치세력과 질서들 그리고 수많은 언론들의 방해들을 뚫고 열리는 회담이다. 회담 자체가 세기적이라는 것부터 그 위상을 말해 준다. 남북의 정상들을 만나기 위해 세계의 여러나라들이 줄을 서 있다. 더 이상 남북을 두고 다른 나라들 간의 밀약은 통하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 남북이 이토록 전 세계의 이목과 관심을 집중시키는 나라가 된 적이 있었는가? 어떤 종류의 힘이 됐든 나라의 힘을 느낀 적이 있었는가?
이준열사가 품었던 한을 풀어 줄 날이 멀지 않았슴을 바라보며 이 번 북미 회담이 글자 그대로 세기적 회담이 되길 희망한다.
이 번 북미회담은 21세기에 들어와서 첫 번째 세기적 만남이 아닌가 싶습니다.
1905년 대한제국을 삼키려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와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하워드 테프트 육군장관 사이에 소위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성사되고 이 밀약내용은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은 대한제국을 지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와 일본이 미국에서 포츠머스 조약을 맺고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대한제국의 지배권을 인정받습니다. 드디어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장악을 위한 통감부 설치를 위해 무력과 강압에 의한 불평등한 강제협정이 맺어지는데, 우리는 이것을 을사늑약이라 부릅니다. 당시 고종이하 몇 충신들은 이 늑약에 도장을 찍거나 싸인을 하지 않았고 소위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도장을 찍습니다. 외무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내무대신 이지용,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이후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시작하다가 1910년 한일합병으로 완전히 나라가 통째로 일본제국주의 자들의 손으로 넘어 갑니다.
1907년 고종은 대한제국 최초의 검사였던 이준을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네델란드 헤이그로 보냅니다.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불평등성을 만방에 알리고 이 늑약을 취소시켜 빼앗긴 외교권을 회복할 목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에 있던 이위종과 이상설과 합세하여 세 사람이 만국평화회담이 개최된지 10일 뒤에 헤이그에 도착했으나 초대받지 않은 나라와 인물로 취급되어 거부당하고 회담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쫒겨납니다.
그러나 당시 회담 밖에서는 유럽시민운동이 촉발되었는데, 이들 시민운동가들에게 장외 외교활동을 시작하다가 세 명 중 한 사람인 이위종이 돌아가며 장외외교활동도 중지되고 이준은 헤이그에서 사유가 분명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 사건은 이후 독립운동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고 1963년 그의 유해가 5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21세기 초 세기적 만남으로 발전되고 있는 북미회담을 몇 일 앞두고 전 세계가 예의주시하며 긴장하고 예의주시하며 여러 주변 국가들이 물밑에서 엄청나게 발들을 빠르게 놀리고 있습니다. 소위 저팬패싱으로 애를 태우는 일본 총리 아베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그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만나며 자신들의 위치와 몫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있습니다. 북미회담을 반대하는 유일한 국가인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서도 북미회담을 반대하는 유일한 야당인 자유한국당. 이들은 서로 맞닿아 있으며, 어제 드디어 제일 야당 대표인 홍준표는 이 번 북미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반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넘긴다 해도 1905년의 을사오적들처럼 그 밀약에 도장을 찍을 자들 입니다.
1905년 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제국에게 무력에 의한 강압으로 뺴앗기고 그 억울함과 부당성과 불평등성을 호소하기 위해 참석하기 원했던 네델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그 때는 세계 어느 나라도 대한제국의 존재를 알기나 알았을까? 고종의 특사로 파견된 이준은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보잘 것 없는 자신과 힘 없는 나라를 생각하며 입에 칼을 물었을까? 우리는 그를 이준열사라고 배웠다.
그러나 그 때 이후 113년만에 열리는 세기적 북미회담은 완전 다르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일본의 방해는 여전하다. 일본과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방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제일 야당의 방해, 일본의 방해, 미국내 매파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자들의 방해, 트럼프를 혐오하는 기성정치세력과 질서들 그리고 수많은 언론들의 방해들을 뚫고 열리는 회담이다. 회담 자체가 세기적이라는 것부터 그 위상을 말해 준다. 남북의 정상들을 만나기 위해 세계의 여러나라들이 줄을 서 있다. 더 이상 남북을 두고 다른 나라들 간의 밀약은 통하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 남북이 이토록 전 세계의 이목과 관심을 집중시키는 나라가 된 적이 있었는가? 어떤 종류의 힘이 됐든 나라의 힘을 느낀 적이 있었는가?
이준열사가 품었던 한을 풀어 줄 날이 멀지 않았슴을 바라보며 이 번 북미 회담이 글자 그대로 세기적 회담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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