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지난 5월 13일 월요일 오후에 저의 스승님이신 강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중3 담임을 하셨고, 지리를 가르치셨던 분입니다. 1960년 대였으니 벌써 반 백년이 지났습니다.
그 시절 우리 선생님은 정말 특별하신 분이셨습니다. 소위에 신분으로 6.25 참전 용사이셨습니다. 불행히도 전쟁 중에 팔 하나를 잃으셨기에 왼팔 하나는 늘 주머니 속에 넣고 계셨지만 한 손으로 못 하시는 것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정말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기에 남학생도 여학생도 모두 모두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지요. 요새말로 킹카이셨으니까요.
한국에 있을 적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대학을 다니지 못했던 터라 여러가지 직업을 찾아 헤매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여러 가지를 배우려 다니기도 했습니다. 속기와 속독 그리고 미술, 붓글씨, 꽃꽂이 등을 배우면서 유명해 질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매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단체지만 미술전시회, 붓글씨 전시회, 꽃꽂이 전시회 등 문화생활에 힘을 썼지요. 그 때마다 강 선생님께 연락을 했더랬습니다. 학창시절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졸업을 하고 나서 이룰 수 있었습니다. 강 선생님께서는 제가 초대할 때마다 전시회에 와 주셨으니까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20여년을 지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직장문제로 인해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뒤 나는 뒤늦게 대학공부를 시작했고, 급기야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었지요. 미국에 도착하여 하나 둘씩 학교 동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20여년 전에 일입니다. 미국에서 만난 동문들은 모두 미국 생활에 자리를 잡고 세계여행을 간다느니, 골프를 친다느니 여유로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난 그 때 가난한 유학생활을 시작했었지요. 한국에서 대충 다니던 무인가 학력은 인정을 받을 수가 없어 대학부터 시작을 했으니 친구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했겠는지요. 그렇게 어렵게 다닌 학교를 10여년을 다닌 뒤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동문들을 만나면서 강 선생님께서 미국에 그것도 엘에이 가까운 지역에 사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친구들의 눈치를 받으며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목사가 될 무렵부터는 자주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14년 전 제가 목사안수를 받는 날에 오셔서 참석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 후 강 선생님은 저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는 기도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아침 5:30분이 저를 위한 기도에 시간이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미국에 두 분에 스승님이 계셔 부모님 역할을 톡톡히 해주시고 계십니다. 또 한분의 선생님은 어머니 날에 여행을 가신 모양입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시는 분이시라 빠른 시일에 뵙기로 했지요.
아무튼 스승님이 두 분이나 살아계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어느 선생님은 학생들 마음에 색깔을 칠하고 생각의 길잡이가 되고, 학생들과 함께 성취하고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길을 밝혀 젊은이들을 인도하며, 지식과 진리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는 평생 직업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치고 미소 지을 때마다 배우는 이들의 미래는 밝아지지요. 시인, 철학자, 예술가, 영웅들의 탄생은 선생님과 함께 그가 가르치는 지혜로부터 시작하니까요.
사람이 훌륭한 부모를 만나면 일생이 평안할 수 있지요.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도 그리 어렵지 않지요.
그러나 아무리 열악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을 하더라도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삶의 모양이 달라지고, 생활 방식이 달라질 수 있지요. 일생에서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복 중에 복이지요.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그 분들이 가르치시는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
요사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교사들의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선생님들을 무서워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아주 존경받는 선생님은 아니어도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일부 교사들의 촌지 수수 문제로 인해 문제가 되기도 했구요, 그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일부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을 학교장 재량의 휴교일로 지정하기도 한답니다.
물론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특별히 자기의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 도를 넘어 담임 선생님까지도 돈으로 매수하려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 잘 보여야 점수도 후하게 받을 수 있고, 관심을 더 가져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그 때는 담임선생님이 입학원서를 써 주셔야 어느 학교든 갈 수 있었더랬지요. 선생님께 아무도 모르게 드리는 돈을 우리는 뇌물이라고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우리 한국에서는 선생님들이 성희롱을 했다든지, 성폭행을 했다는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기사는 읽지 못했습니다. 미국 엘에이 교육국에서는 300여명의 교사가 성희롱 사건에 연류되어 해고를 당하고, 현재 조사 중인 교사가 또한 600여명이나 된다네요. 교육을 시켜야 할 교사들이 이렇게 보통사람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는군요.
하긴 성직자들의 성범죄 역시 만만치는 않지요. 성직자들의 성범죄로 인하여 교황청 재정이 흔들릴 정도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아주 다행인 것은 새로 부임하신 새로운 교황님의 소식은 너무도 존경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 분의 소식은 경건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검소하신 생활이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고도 남음이 있으니 말입니다.
요즘 ‘허준’ 에 대한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이 사실이든 설화이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의도 학자도 모두 스승들의 작품이 아니겠는지요?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들이 꽃 한 송이를 달아주기를 기대하기보다 반성문을 쓴 교수가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지요. 국민대 교양과정부 이의종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랍니다. 그의 반성문에는 대학에서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이 안고 있는 모순의 핵심을 낱낱이 지적해 눈길을 끌고 있답니다.
이교수의 글에는 스승으로서 살아야할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군요.
‘가슴 두근거림 없이 매년 신입생을 맞이해 온 삶’이나 ‘학생들에게 행복한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를 가르치기보다는 성공의 처세술을 가르치는데 쫓기고, 자신의 전공 분야만 고집함으로써, 학생들을 편협한 학문의 세계에 묶어두려 한 것’, ‘학생들이 학교 밖 학원을 다니며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따로 배우게 한 것’, ‘학생의 학습 성과는 철저히 평가하면서, 교수 자신의 교수성과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가르쳐온 것’... 등등을 반성한다고 적고 있답니다.
자신을 삶을 성찰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지만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지요. 스승의 날, 교사로서 제할 일은 제대로 못하면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데 대접받기보다 대접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성찰은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니겠는지요.
특히 이 땅의 지식인들은 오만과 독선으로 기득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양심조차 마비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지요. 정치계와 학계를 오가면서 학자인지 사이비정치인인지 구별조차 안 되는 교수, 유명세를 핑계로 학생들의 수업권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답니다.
아주 작은 수의 교육자들이지만 반성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아주 다행이라는 행각이 듭니다.
그 시절 우리 선생님은 정말 특별하신 분이셨습니다. 소위에 신분으로 6.25 참전 용사이셨습니다. 불행히도 전쟁 중에 팔 하나를 잃으셨기에 왼팔 하나는 늘 주머니 속에 넣고 계셨지만 한 손으로 못 하시는 것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정말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기에 남학생도 여학생도 모두 모두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지요. 요새말로 킹카이셨으니까요.
한국에 있을 적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대학을 다니지 못했던 터라 여러가지 직업을 찾아 헤매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여러 가지를 배우려 다니기도 했습니다. 속기와 속독 그리고 미술, 붓글씨, 꽃꽂이 등을 배우면서 유명해 질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매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단체지만 미술전시회, 붓글씨 전시회, 꽃꽂이 전시회 등 문화생활에 힘을 썼지요. 그 때마다 강 선생님께 연락을 했더랬습니다. 학창시절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졸업을 하고 나서 이룰 수 있었습니다. 강 선생님께서는 제가 초대할 때마다 전시회에 와 주셨으니까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20여년을 지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직장문제로 인해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뒤 나는 뒤늦게 대학공부를 시작했고, 급기야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었지요. 미국에 도착하여 하나 둘씩 학교 동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20여년 전에 일입니다. 미국에서 만난 동문들은 모두 미국 생활에 자리를 잡고 세계여행을 간다느니, 골프를 친다느니 여유로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난 그 때 가난한 유학생활을 시작했었지요. 한국에서 대충 다니던 무인가 학력은 인정을 받을 수가 없어 대학부터 시작을 했으니 친구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했겠는지요. 그렇게 어렵게 다닌 학교를 10여년을 다닌 뒤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동문들을 만나면서 강 선생님께서 미국에 그것도 엘에이 가까운 지역에 사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친구들의 눈치를 받으며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목사가 될 무렵부터는 자주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14년 전 제가 목사안수를 받는 날에 오셔서 참석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 후 강 선생님은 저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는 기도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아침 5:30분이 저를 위한 기도에 시간이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미국에 두 분에 스승님이 계셔 부모님 역할을 톡톡히 해주시고 계십니다. 또 한분의 선생님은 어머니 날에 여행을 가신 모양입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시는 분이시라 빠른 시일에 뵙기로 했지요.
아무튼 스승님이 두 분이나 살아계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어느 선생님은 학생들 마음에 색깔을 칠하고 생각의 길잡이가 되고, 학생들과 함께 성취하고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길을 밝혀 젊은이들을 인도하며, 지식과 진리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는 평생 직업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치고 미소 지을 때마다 배우는 이들의 미래는 밝아지지요. 시인, 철학자, 예술가, 영웅들의 탄생은 선생님과 함께 그가 가르치는 지혜로부터 시작하니까요.
사람이 훌륭한 부모를 만나면 일생이 평안할 수 있지요.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도 그리 어렵지 않지요.
그러나 아무리 열악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을 하더라도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삶의 모양이 달라지고, 생활 방식이 달라질 수 있지요. 일생에서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복 중에 복이지요.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그 분들이 가르치시는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
요사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교사들의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선생님들을 무서워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아주 존경받는 선생님은 아니어도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일부 교사들의 촌지 수수 문제로 인해 문제가 되기도 했구요, 그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일부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을 학교장 재량의 휴교일로 지정하기도 한답니다.
물론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특별히 자기의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 도를 넘어 담임 선생님까지도 돈으로 매수하려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 잘 보여야 점수도 후하게 받을 수 있고, 관심을 더 가져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그 때는 담임선생님이 입학원서를 써 주셔야 어느 학교든 갈 수 있었더랬지요. 선생님께 아무도 모르게 드리는 돈을 우리는 뇌물이라고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우리 한국에서는 선생님들이 성희롱을 했다든지, 성폭행을 했다는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기사는 읽지 못했습니다. 미국 엘에이 교육국에서는 300여명의 교사가 성희롱 사건에 연류되어 해고를 당하고, 현재 조사 중인 교사가 또한 600여명이나 된다네요. 교육을 시켜야 할 교사들이 이렇게 보통사람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는군요.
하긴 성직자들의 성범죄 역시 만만치는 않지요. 성직자들의 성범죄로 인하여 교황청 재정이 흔들릴 정도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아주 다행인 것은 새로 부임하신 새로운 교황님의 소식은 너무도 존경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 분의 소식은 경건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검소하신 생활이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고도 남음이 있으니 말입니다.
요즘 ‘허준’ 에 대한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이 사실이든 설화이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의도 학자도 모두 스승들의 작품이 아니겠는지요?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들이 꽃 한 송이를 달아주기를 기대하기보다 반성문을 쓴 교수가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지요. 국민대 교양과정부 이의종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랍니다. 그의 반성문에는 대학에서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이 안고 있는 모순의 핵심을 낱낱이 지적해 눈길을 끌고 있답니다.
이교수의 글에는 스승으로서 살아야할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군요.
‘가슴 두근거림 없이 매년 신입생을 맞이해 온 삶’이나 ‘학생들에게 행복한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를 가르치기보다는 성공의 처세술을 가르치는데 쫓기고, 자신의 전공 분야만 고집함으로써, 학생들을 편협한 학문의 세계에 묶어두려 한 것’, ‘학생들이 학교 밖 학원을 다니며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따로 배우게 한 것’, ‘학생의 학습 성과는 철저히 평가하면서, 교수 자신의 교수성과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가르쳐온 것’... 등등을 반성한다고 적고 있답니다.
자신을 삶을 성찰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지만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지요. 스승의 날, 교사로서 제할 일은 제대로 못하면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데 대접받기보다 대접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성찰은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니겠는지요.
특히 이 땅의 지식인들은 오만과 독선으로 기득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양심조차 마비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지요. 정치계와 학계를 오가면서 학자인지 사이비정치인인지 구별조차 안 되는 교수, 유명세를 핑계로 학생들의 수업권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답니다.
아주 작은 수의 교육자들이지만 반성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아주 다행이라는 행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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