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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Jun 26, 2019

  

안녕하십니까. 한국의 이우연입니다.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 기업 신일철 주금이 1939년부터 일본으로 간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한국 사법부의 선고와 행정부의 태도는 전시노무동원을 “강제연행”과 “노예노동”으로 오해한 데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일본을 무조건 적대시하는 한국의 “반일종족주의”적인 악 감정 탓입니다. 또 일본의 조총련계 연구자 

박경식이 한일국교정상화를 저지하기 위해 1965년에 출간한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에 있는 근거 없는 주장 때문입니다.

  

그들은 조선인들이 강제로 연행되어 노예로서 노동한 것으로 왜곡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제연행”은 없었습니다. 대다수 

조선인은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일본으로 갔습니다. 나머지는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징용”되었습니다.

  

“노예노동”도 아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조선인들만 따로 떼어내 위험하고 힘겨운 작업에 배치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과 함께 일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가장 많은 조선인들이 일한 광산의 경우, 조선인들은 일본인들과 함께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채탄ㆍ채광은 완력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경험과 숙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조선인들의 계약기간은 2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는 충분한 

기능을 축적할 수 없었습니다. 폭약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유압식 착암기와 같은 개인 기계, 대형의 재단기, 굴삭기, 컨베이어 

등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과 함께 일하는데, 어떻게 조선인만 위험하고 어렵고 힘들 수 있겠습니까?

  

또 그들은 조선인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기업들은 충분한 현금을 갖고 있었습니다. 

생산량을 증가시키면 곧바로 이윤이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인을 차별할 필요도 없었고, 실제 그런 일도 없었습니다. 


조선인들의 임금은 조선은 물론이고, 일본의 다른 직종에 비해서도 훨씬 높았습니다. 탄광부의 월수입은 조선에 있는 교사의 

4.2배,  일본 경찰의 3.7배나 되었습니다.

  

일본인과 다르게 조선인을 “노예”처럼 사역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2017년에 米國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한국의 영화 군함도를 선전하면서 이용한 사진들은 조선인이 아니라, 1929년과 1956년의 일본인들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조선인 들의 사진을 보면, 매우 건장하고 당당한 모습입니다. 그 광고에서 “122명이 죽었다”고 선전하였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선인들은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생활했고, 자유로웠습니다. 성실한 사람들은 고액을 저축하거나 조선의 가족들에게 꾸준히 

송금하여 부채를 청산하거나 농지를 구입했습니다. 그와 함께 도박이나 외식, 조선 여성들이 접대하는 ‘산업위안소’에서 그 

수입을 탕진하는 조선인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이 그만큼 자유로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역사를 과장하고 왜곡하는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 언론인, 정치인들의 언행은 이제는 중단되어야합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저는 한국의 반일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과 함께 역사적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하시마 

주민회를 강력히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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