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방의 세상이야기(감자 네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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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아주 오래 전(40 년도 더 된) 어느 저녁 퇴근길에서...
일행 셋은 퇴근해서 집으로 그냥 가자니 허전하다면서 자주 들리던
서울 청진동의 한 골목 선술집에 들어가 두꺼비 한 병을 시켜
서로 한 잔씩 따라주고는 “카!” 를 연발 하며 소주를 들이키기들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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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이 비면 옆에서 채워주거나 아님 아예 자기 잔을 입 닿은 부분을 손바닥으로
써억써억 한 두 번 문지르곤 앞 사람에게 건넨다.
앞 친군 달다 쓰다 말없이 빈 잔을 받아 들면 술을 가득 채워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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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때 채워진 술잔을 입도 대지 않은 체 그냥 내려놓으면 주도(酒道)가
아니다 하여 반 모금이라도 입은 대고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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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몇 잔을 들이키고 나서 앞 사람 눈을 보노라면 어디서 싸우다 쫓아 온
사람마냥 눈알이 벌겋게 충혈이 된 걸 본다. 물론 내 눈알도 그럴 것이라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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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 이면 그 무겁던 입들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을 해서 이런 저런 해도 될 말
안 해도 될 말 구분이 안 되기 시작하면서 레퍼토리도 다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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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술병이 비면
"아주우움마~, 두~꺼~비~ 하~나~ 더~요~.." 라면서 혀가 중심을 잃고
제멋대로 휘어지며 곡선을 이루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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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땐 누구 할 것 없이 살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선술집 술꾼들의 술 인심 하난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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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좌석에 혼자 앉은 사람이라도 보이기라도 하면,
“선생, 누구 기다리슈? 혼자면 이리로 오슈... 같이 합시다!” 라고 할 정도 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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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한 친구가,
어릴 때 겨울 저녁, 끼니가 어려워 어머니가 감자를 삶아 내 놓는데
그것도 양이 충분치 않아 보통 누나와 둘 몫으로 7개가 저녁상에 올라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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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감자를 누나보다 늘 하나가 더 많은 네 개를 먹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이 있었는데 우리 둘에게 맞춰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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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큰 소리로 웃으면서 이래저래 하면 되지 않겠는가고 한참을 열을 올리고
있는데 그 문제를 낸 친구는, 아무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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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그래?” 하고 그 친구 턱을 들게 하였더니
그 친구 양 눈엔 눈물이 젖어있었다.
“이 사람 감자 얘기 꺼내 놓고 울긴 왜 울어?”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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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숨을 돌린 그 친구,
“그 누난 굶주림을 이겨내지 못해 병이 나더니 어릴 때 죽었어...
나, 그 때 감자 네 개 먹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하면서 훌쩍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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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나니 그 친구가 감자 얘길 꺼 낼 땐 지난날의 아픈 추억을 되씹고
있었는데 우린 그것도 모르고 옆에서 히히덕 거리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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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러나 그 때 그 친구들 살아나있다면 그래도 그 때 말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이제 만날 수 없는 먼 길 뜬지 여러 해가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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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해가 슬슬 반을 넘으려고 하니
문득 그 순간이 떠올라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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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때의 감자 얘기는
그 친구만의 일이 아니고 어쩌면 5-60년대의 우리 서민들의 눈물겹고
고달팠던 삶의 한 단면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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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의 나의 삶,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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