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인 2020 년 미국 대선 부정선거? -이준길 칼럼에 대한 반론

김영훈 (NC Wesleyan College 정치학 교수, 팟캐스트 "미주 한인 우리 세상" 정치 타짜)

 

미국 대선이 끝난 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대선결과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요 하며 지금까지 정치에 무관심을 보이던 미국민들이 근래에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정치학에서는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으로 본다. 그러한 관점에서 미국민들의 이번 대선에 대한 큰 관심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관심이 이번 대선은 부정선거였기 때문에 그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그릇된 선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오히려 이는 미국 정치발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코리안라이프 12 월호에 실린 “세기적인 2020 년 미국 대선 부정선거”라는 제하의 이준길 칼럼은 

(http://koreanlifenews.com/이준길-칼럼-세기적인-2020-미국-대선-부정선거/) 일부 미국민 

들의 광풍과도 같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준길 칼럼의 많은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따라서 그 칼럼을 읽는 독자들이 그릇된 정치적 관심을 가질 수도 있으며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득보다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하에 이 반론을 쓰고자 한다.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는 한인분들이 과연 이번 대선이 부정선거였는지 아니었는지에 대한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리는데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준길 칼럼은 이번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를 우편투표에서 찾고 있다. 

이전에는 우편투표가 제한적으로 이뤄졌으나 민주당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광범위한 우편투표를 밀어 부쳤으며 그로 인해 대규모의 부정선거가 가능했다는 것이 주요 논지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편투표가 이번 대선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우편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이 크게 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했던 2016 년 대선에서도 네 명 가운데 한 명의 유권자가 우편투표에 참여한 바 있다. 그리고 칼럼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우편투표에 반대했으나 민주당의 몽니로 우편투표가 어쩔 수 없이 실행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미국의 정치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러한 주장은 금세 설득력을 잃고 만다. 연방제로 운영되는 미국은 각 주 의회에서 선거제도를 결정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50 개 주 의회 가운데 과반수 이상의 주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치현실에서 민주당이 자당에게만 유리한 우편투표 제도를 강행하고자 한다 해서 그것이 과연 그들 뜻대로 되었을까? 그리고 다수의 정치학 논문은 우편투표가 부정의 온상이라는 주장과 우편투표가 특정 정당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주장이 근거 없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우편투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칼럼이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100% 직접투표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준길 칼럼은 10 가지의 구체적인 대선 부정선거 증거들을 나열하고 있다. 먼저 노쇠하고 

유세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바이든 후보가 획득한 표가 과거 민주당 후보들이 획득한 표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허황된 주장인지는 투표율을 살펴보면 금세 드러난다. 

2012 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6,590 만여표, 2016 년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도 6,590 만여표를 

얻었지만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는 8,100 만여표를 얻었다. 바이든 후보가 이전 두 민주당 

후보보다 1,500 만여표를 더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투표율이 이전 두 대선에 비해 10 여 

포인트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2 년과 2016 년의 투표율이 50% 중반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 

대선에서는 잠정 투표율이 66.7%였다. 이는 1932 년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인데 더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함으로써 승자의 득표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같은 이유로 여섯 번째 증거로 제시된 트럼프 대통령은 2016 년 대선에 비해 1,000 만여표를 더 얻고도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는 식의 주장에도 큰 의미를 둘 수 없다. 

칼럼은 부정선거의 두 번째 증거로 소위 대선승리의 가늠자가 되는 지역에서 바이든 후보가 패하고도 승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칼럼은 특히 오하이오주와 플로리다주에 주목하고 있는데 오하이오주의 경우 1860 년 이후 2016 년 대선까지 오하이오주에서 지고도 대선에서 이긴 경우는 클리브랜드 대통령 (1884 년과 1892 년), 루즈벨트 대통령 (1944 년),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 (1960 년) 뿐이었다. 

그러나 플로리다주의 경우는 어떠한 이유로 대선승리의 가늠자로 언급이 된 것인지 불분명한데 플로리다주에서 지고도 대선에서 이긴 경우가 1872 년 이후 2016 년 대선까지 10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오하이오주로 돌아가서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오하이오주에서 졌지만 

최종적으로 승리했다고 해서 이것이 과연 부정선거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하다. 말 그대로 오하이오주는 대선승리의 가늠자일 뿐이다. 즉 누가 승리할지 헤아려 보는 역할을 하는 주라는 뜻이다. 

이 한 개 주에서 나타나는 일견 흥미로운 대선결과 예측 패턴을 과대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이준길 칼럼은 세 번째 부정선거 증거로 바이든 후보가 밀워키, 디트로이트, 애틀랜타, 

필라델피아에서만 클린턴 후보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을 뿐 다른 모든 지역에서는 클린턴 후보보다 

득표수가 적었지만 당선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모든 주요 도시의 후보별 득표수를 

파악해 보지는 않았지만 필자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가장 큰 도시 샬롯을 포함하고 있는 메클렌버그 카운티를 살펴보자. 이곳에서 2016 년 클린턴 후보는 295,000 여표를 얻었고 2020 년 바이든 후보는 378,000 여표를 얻었는데 앞서 언급한 투표율과 바이든 후보의 전국 득표수를 감안할 때 이는 전혀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어떠한 근거로 칼럼은 앞서 언급한 네 개의 대도시에서만 바이든 후보가 클린턴 후보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는 주장을 하는지 궁금하다. 또한 칼럼은 이들 네 개의 도시에서 등록된 유권자 수보다 실제로 행사된 표가 더 많이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또한 각 주의 선관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풍문 이상의 공신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어야 하나 아쉽게도 그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네 번째 부정선거의 증거로 칼럼은 민주당의 다른 후보들은 모두 졌지만 오직 바이든 후보만이 이겼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유권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출신의 후보들에게 일괄적으로 투표하는 경향이 있는데 (straight ticket voting) 이번 대선에서는 비록 바이든이 이겼지만 상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짐으로써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 보기 위해 연방 상하원 선거결과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먼저 2020 년 상원선거에서는 총 35 석의 의석을 놓고 양당 후보들이 경쟁을 했는데 이 가운데 23 석이 공화당이 현역인 의석이었다. 이 가운데 아직까지 승자가 결정되지 않은 조지아주 2 석을 제외하고 공화당은 20 석, 민주당은 13 석을 확보했다. 과연 이 상원 선거 결과를 두고 민주당이 패한 선거라고 할 수 있을까? 하원은 그 양상이 조금은 다르다. 총 435 석 가운데 아직 승자가 결정되지 않은 2 석을 빼고 민주당이 222 석, 공화당이 211 석을 확보했다. 2018 년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235 석을 차지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민주당의 패배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여전히 원내 다수당의 지위를 놓치지 않았다. 한 걸음 양보해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졌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그것이 부정선거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미국 유권자들의 선거행태 가운데 앞서 언급한 straight ticket voting 외에도 서로 다른 정당 후보를 택하는 split ticket voting 도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여러 연구들에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준길 칼럼은 또 다른 부정선거의 증거로 역사적으로 프라이머리에서 75% 이상을 득표한 후보는 재선에 성공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프라이머리에서 무려 94%를 득표하고도 재선에 실패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이전에 현직 대통령으로서 재선에 실패한 대표적인 인물들로 부시 대통령 (1992 년)과 카터 대통령 (1980 년)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모두 프라이머리에서 각각 72.8%와 51.13%를 득표했다. 그러나 프라이머리의 득표율과 재선 여부가 어떠한 인과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가 빈약하다. 왜냐하면 프라이머리에는 각 당의 당원들만 참여하는 것임에 반해 대선에는 모든 유권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프라이머리에서 94%의 득표를 했다는 것은 그가 집토끼를 잡아 두는데 강한 후보임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산토끼를 잡는 데 약한 후보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집토끼를 지키면서 산토끼도 잡아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면 높은 프라이머리 득표율이 마냥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이준길 칼럼은 일곱 번째 부정선거 증거로 트럼프를 지지한 흑인들이 4 년 전에 비해 50% 증가한 반면 바이든을 지지한 흑인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후보들이 누렸던 90% 보다 낮은 수준이었음을 내세우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2016 년 대선결과 분석에 따르면 당시 트럼프 후보는 투표에 참여한 흑인 유권자들 가운데 6%의 지지만을 얻은 반면 클린턴 후보는 91%의 지지를 얻었다. 2020 년 대선 투표행태를 인종별로 분석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출구조사를 참조해 그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BBC 출구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후보는 투표에 참여한 흑인 유권자들 가운데 87%의 지지를 얻었고 트럼프 후보는 12%의 지지를 얻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2016 년에 비해 전국적으로 흑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더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부정선거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12%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과 각 주 별로 인종 구성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은 성급하게 부정선거 결론을 내리기 전에 살펴보아야 변수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덟 번째 증거로 칼럼은 바이든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도시들이 개표 작업중 새벽에 개표를 중단했고 그 사이에 바이든을 찍은 표를 밀어 넣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칼럼이 구체적으로 어느 도시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애틀랜타를 포함하고 있는 조지아주의 풀턴 카운티에서 개표 도중 물파이프가 터져서 개표가 중단된 적은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바이든을 찍은 투표용지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여러 언론의 팩트체크를 통해 허위임이 밝혀졌다. 미국이 민주당과 그 추종세력으로만 움직이는 국가도 아니고 앞서 언급했듯이 공화당이 많은 주에서 의회뿐만 아니라 주지사, 연방 상원, 대통령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자유당 시절에나 벌어졌을 법한 부정선거 시나리오를 들이 밀다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 

마지막으로 개표기가 수개표를 하면 무효로 처리될 표들도 유효표로 인식하게 조작되어 있었고 

개표기 시스템 자체적으로 조작 가능 기능이 있었다는 류의 증거에 대해서는 왜 조지아주 전체와 위스콘신주 일부 카운티에서 있었던 수개표 후에도 대선 결과가 바뀌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정치학자 아담 프쉐보르스키 (Adam Przeworski)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으로 사전 불확실성 (ex-ante uncertainty), 사후 불가역성 (ex-post irreversibility),  

반복성 (repeatability)를 꼽았다. 사전 불확실성은 선거가 치뤄지기 전에는 누가 승리할지 모른다는 

점, 다시 말해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고 사후 불가역성은 선거에서 패배한 측이 그 결과를 뒤집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하며 반복성은 선거가 주기적으로 치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 세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그 정치 시스템은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준길 칼럼은 지금까지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의 리더로서 존중받아 왔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발생한 대규모 부정선거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거대한 수치를 안겼다고 주장한다. 필자도 2016 년까지 미국의 민주주의는 공고화되고 여러 면에서 모범적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 민주주의가 큰 퇴행을 겪었다는 주장 또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퇴행의 원인은 대규모 부정선거가 아니라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그 주장 자체임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선거인단이 바이든 후보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한 현재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을 대통령 당선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대규모 부정선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 있다. 민주주의, 권위주의를 막론하고 선거 패배는 후보뿐만 아니라 지지자들 모두에게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거짓으로 점철된 주장만을 신봉하고 퍼뜨리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때 건실했지만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모래성과도 같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바라보며 이 지역 한인들이 이 글을 통해 대선 이후 미국 정치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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