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짝꿍, 예수 그리스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참된 행복을, 참된 삶의 만족을 이 세상에서 찾고자 합니다. 돈을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 같아서 돈을 따라가기도 하고, 세상의 권세를 잡으면 그것이 행복할 것 같아서 권세를 따라가기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행복할 줄 알고 사람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 것을 많이 갖는다고 해서 마음에 참된 행복과 평안이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가지니까 오히려 돈과 함께 근심이 쌓입니다. 세상의 권세를 쥐고 인기를 얻고 사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더니 마음에 불안이 가득합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그 사람을 만나 참 행복을 누릴 줄 알고 사람을 만났더니만 오히려 마음에 갈등과 고통이 더 심해지는 그러한 경우가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을 얻으려고 하면 우리는 오히려 행복을 얻으려 하다가 더 큰 실망과 절망을 얻게 될지 모릅니다. 잠시 그것이 기쁨을 줄 수 있고 잠시 내게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내 삶 속에 영원한 만족과 기쁨과 평안함을 주지 못합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이 만난 한 사마리아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행복할 줄 알고 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행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두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세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네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다섯 번째 결혼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이제는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한 사람과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절망과 슬픔과 상처만 깊어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참된 삶의 만족을 찾을 수가 있습니까? 어디에서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이 세상 삶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고민해 보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영원한 삶의 만족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행복과 만족을 발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완전한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사람을 통해서는 내 삶에 참된 행복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모습 속에도 부족한 것이 있고 나의 모습에도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서로 부딪힙니다. 그래서 갈등과 상처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눈을 들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문제 해결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 마음에 상처가 치료함을 받고 모든 결박이 풀어지고 육신의 질병에서 놓여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 예수님께서 절망에 처한 우리를 찾아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상처로 가득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7절에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그 여인은 상처투성이의 여인이었습니다. 동네의 어떤 사람도 그 여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비웃고 무시하고, 그리고 그녀가 지나가면 뒤에서 수군거렸습니다. 그래서 이 사마리아 여인은 대낮에, 아무도 물을 길으러 오지 않을 때 사람을 피해서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물을 길으러 왔는데 그 곳에 웬 처음 보는 유대인이 앉아 있다가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하고 사마리아인하고는 서로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이방족속과 혼혈한 민족이라고 그래서 개나 돼지처럼 취급하는 그러한 관계였기 때문에 서로가 만나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에 조선시대에 양반과 상놈이 있어서 계급을 두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을 우습게 보고 대화를 하지 않는데 그 유대인이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을 모두가 비웃고 깔보고 짓밟는 사람을 주님이 관심을 갖고 찾아오셔서 주님의 사랑을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목사요 저술가요 자선사업가인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기생첩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시절이 매우 불우했습니다. 그가 자라나면서 그는 늘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성격이 비뚤어졌습니다. 마음이 어둡다보니 몸에 병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몸에 암을 지닌 채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그가 따뜻한 햇볕을 찾아 양지에 앉아서, 담 밑에 그가 앉아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방 전도하는 사람들이 북을 치며 전도지를 나누어줍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 순간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나같이 가난하고 버림받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래서 물었습니다. 전도지를 주는 사람에게. “여보시오. 여보시오. 나같이 기생의 자녀로 태어나서 버림받고 가난하고 아무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그렇고말고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번도 이와 같이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져다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이 그 순간 그에게 강물처럼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신학교에 가서 졸업을 한 다음 주의 종이 되었고, 그리고 일생동안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의 이웃으로 평생을 살고 일본 전체에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끼친 영향력을 남긴 귀한 인물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많고 버림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찾아온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 있는 여인을 찾으신 예수님이 바로 오늘 절망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바로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셔서 절망에 처한 주님의 백성들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과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 순간 운명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새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치료와 용서가 강물처럼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과거를 아십니다. 나의 슬픔을 아십니다. 나의 문제를 아십니다. 나의 자라나면서 마음속에 있는 고통을 아십니다. 내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도 아시고 내 마음 속에 있는 내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고통도 주님은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 분이 오늘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지금 이 곳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에게 마음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내 마음에 모셔 들입니다. 주님이여 내 삶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의 운명이 바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참된 희망과 삶의 목적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이 있습니다. 그 분은 말했습니다. 오늘 날의 삶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절망은 삶의 가치를 잃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분은 제 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아우슈비츠 독일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는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죽음의 절망으로 뒤덮인 곳에서도 마음속에 꿈을 가졌습니다. 내가 꼭 살아남아서 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못 다해준 사랑을 꼭 내가 실천해야 되겠다. 그래서 그 죽음의 고비 고비를 넘겨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풀려나게 되었는데 나와 보니 자기 아내는 이미 수용소에서 죽었어요. 그러나 그는 아내도 잃고 건강도 잃고 모든 것을 잃었지만은 감옥 안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고 그는 절망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 깨우쳐주는, 희망을 전하는 희망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큰 꿈과 희망을 갖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우리 삶에 영생의 생수를 흘러넘쳐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마음의 공허함을 이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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