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고 살았으면 좋을 말(일)(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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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이어
욕먹을 각오하고 이 글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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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 질 문화? ”
한 때 고 조양호 대한항공 일가의 막말로 인한 사태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더니
이어 각 분야의 “있다는 자(?)”들의 갑 질이 일반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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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자는 이런 문제는 갑 질하는 자들이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역지사지의 공감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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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모르겠으나 그들 갑 질 행위는
우월적인 사회위계의 힘을 이용한 차별적 횡포라는 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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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갑 질은 결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구조적이고 집합적인 문제로 뭔가
이를 해결키 위한 사회 전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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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심코 자기 스스로를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고
내가 그(들) 보다 우월하다는 이른바
‘차별적 과시’를 통한 ‘구별 짓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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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우리가 말 하는 이런 일들이
“있는 자”에 한 한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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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로 인해 ‘을’의 위치에서 고통과 서러움을 당했던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맥락에서는 ‘갑’의 위치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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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을’에게 ‘갑 질’의 횡포를 가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을’인 동시에 또한 ‘갑’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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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을 본다면 어느 누구도
“나는 갑 질을 한 일이 없어!” 하고 비난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자괴심(自愧心)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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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뿌리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유교의 차등적 윤리규범에 기초한 형식,
위계적 권위주의 문화에 있다고도 보여 진다.
우습게도 이런 갑 질 문화가 한국말의 존 비어를 발전시켰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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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해법은
‘갑 질’의 사회적 문제점과 그 비인권적 및 범 법적 문제점을
경고하고 토론하는 시민문화 의식과
태도를 형성(배양)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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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적 뿌리를 갖는 ‘갑 질’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여기에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는 떳떳한 사회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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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질은 국민의 질을 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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