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정체란 무엇을 말함인가?
(아래글은 다음까페에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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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아주 피곤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일요일이다.
늦게 밥 먹어도
늦게 일어나 세수 안해도
방귀를 뀌어가며 언제까지 자도
아무도 나무라지도
방문을 노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해는 중천.......
창문은 밝디 밝아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나는 내 마음을 순간 내려다 본다!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인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일어날 수가 없다고 버티는 나약한 육체는 무엇인가?
마음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것이 맞는가?
그렇지 않다.
마음도 육체도 구분없이 일어나고 싶지 않고 좀 더 눕고 싶을 뿐이다.
이럴때 표현이
'5분만 더 자고 싶다.'라고 표현한다.
5분만의 주체는 서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육체라는 부위 중 뇌속의 호르몬 분비 상태가 의식부위를 희미하게 한
상태(잠)를 유지하려는 육체의 종합적 작용이다.
더 자고 싶다 일어나야 한다는
그것은 현시각의 느낌이며 또는 그 느낌의 정보적 기억이며 판단이다.
너무 푹자면 몸이 망가지고 하루가 축나며
저녁에 잠들기 힘들며
다음날 더 피곤하다는 경험과 기억이 뇌의 종합판단에
기여하고 있는 순간이다.
더 자고 싶은 주체와 일어나야 한다는 주체는 하나다.
이원적이지 않고 이원적으로 느끼도록 습성화된 것 뿐이다.
그 이원적이라는 것의 발생원은 기억정보다.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성은 경험과 기억의 정보를 의식이 불러다
각성하는 것이다.
마음은 몸과 구별되는듯 싶지만 사실은 몸과 마음은 하나다.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픈것이다.
몸이 아픈데 즐거울 수 없고 몸이 죽도록 통증을 느끼는데 즐겁고 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뇌의 오작동이며 병일 뿐이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도록 진화된 것이 몸이며 우주 원리다.
마음과 몸이 하나임을 진솔하게 증명하고자 하면 이렇게 하라.
그대 머리를 지금 즉시 좌우로 최도속도로 돌려보라.
정신을 잃도록 돌려보라.
아찔할 것이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 때...........
어지럼과 뇌의 고통을 느끼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 상태에서 평안하게 마음 운운할 수 있는가?
쓰러져, 한참을 누워 머리를 식히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머리가 아프다.
구토증이 난다.
정신이 없다.
생각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가하게 마음 운운할 수 없다.
왜인가?
다른 경우속에서 살펴보자!
이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가 이 지구상 가장 요염한 자태로
아무도 보지 않는 호텔 객실에서 피치 못하게 만나 그대를 강력히
유혹하고 있다.
그대의 생식기는 완전 충천하였으며 당장 그녀를 덮치고 싶다.
(그 여성도 그대를 강력히 받아들이고 싶다.)
헌데 그 여자는 취해서는 안되는 여성이다.
이 때..........
그 여성의 섹시함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활홀한 쾌감과 성욕의 주체와
저 여자를 취하면 절대 안된다고 범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 둘은 다른 두사람의 주체인가?
그렇치 않다.
두개의 뇌가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두개의 경험과 기억이 있어 경험과 기억을 저장한 뇌의 다른 정보 사이에
선택이 어려운 종합령이 있을 뿐이다.
이때 마음은 무엇인가?
이때 마음은 없다.
이 사건에서 결과는 3가지다.
첫째는
그냥 그 여자를 덮쳐서 일단 성욕을 맘껏 분출해 버려야겠다.
나를 저지하고 있는 이성은 파 뭍혀버린다.
둘째는
강력한 이성과 절제력으로 그만 참아내고 강력한 색의 황홀함을
무시하고 성욕의 순간을 넘겨버린다.
이때 성욕을 넘긴 서경덕같은 선비의 강인함은 그대가 승리했다고
칭찬하는 사회적 통념이다.
세째는
이 강력한 쾌감과 생식본능의 용솟음 침과 강력한 절제와 이성의 판단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도 못한 채 다른 사건으로 촛점이 이동하여 성욕 분출과 절제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경우이다.
이 세가지 결과가 일어났다.
이 사건 결과가 일어나는 중이나 후에 마음은 어디 있었고
마음은 어떤 작용을 하고 있었는가?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마음은 성욕과 절제와 제3의 결과 사이에서 아무런 작용, 즉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징 에이드, 다시말해 이미지적 도움을 주는
신체 기관이란걸 알게 될 것이다.
이 기적같은 섹시녀를 범할 것인가? 말 것인가?란 본능과 이성이 종합판단의
휘하에서 어찌하면 될지 그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이다.
사건 후에는 다시 마음은 이미지를 만든다.
(이미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느낌의 종합적 기억이다.)
기적의 섹시녀를 덮치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그 즉시 마음을 내려다 보라.
마음에 이미지적 외상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아날로그한 상처가 아니다.
마음은 부교감신경 다발이다.
"그래선 안되는데 내가 나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녀를 범했으니
나는 이 결과를 감당할 수가 없다.
천추의 한을 남겼다.
나는 이제 어찌하면 되는가?"라고 하는 문제의식이 생겼고
마음 바로 위의 의지뇌가 이 문제를 가장 급선무의 문제의식으로 모니터에
상근시로 떠 올렸다.
(이때 그대 표정은 어두워졌고 혼란스러워졌고 근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것이 마음의 작용이다.
절제한 후에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이겼고 유혹을 물리쳤으며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아름다운 경험과 자신감을 주었다.
내가 자랑스럽다.
다음에도 내가 나를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얻었다."
이런 만족감이 있을 것이다.
마음은 안정되고 외상이 없으며 평안하고 자신감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번째 결과로 이도 저도 선택 못한 경우는 '다행이다'라는 요행의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마음은 이같이 어떤 판단에 대한 경험에 대한 결과의 이미징 작업을 하는 기억 보조장치다.
우리의 간이나 심장처럼 지 스스로 작동하는 신경의 다발 부위다.
바로 몇시간 몇날 몇년이고 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사라진다.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은 자작.동 이미징 기능을 하는 신경 다발이 필요없어져
그 기능이 멈춘것을 의미한다.
매우 중요한 신경 다발이 기능할 필요가 없고 잠시 멈추게 되면 다른 작용을 하는
신경 다발이 당연히 작동하게 된다.
그 신경다발은 의식을 보는 신경다발이다.
이 신경다발은 어렴풋하게 우리가 느끼고 산다.
그러나 본격 작동은 마음 작용을 일으키는 이미징 시냅스가 쉬어야 한다.
이것이 깨달음의 해부학적 외신경학적 실체다.
기도(기도는 탐욕.본능의 한 분류다.)나 종교적 신비감이나 열광은 모두 이 마음과
본능의 저차원적 한 작동에 불과하다.
마음이 사라지면 뇌의 모니터 구실을 하는 제2의 후(Afterward)시각세포에 그대의
의식이 오롯이 떠오른다.
이것이 시간과 공간과 신과 우주와 생명과 만물의 근원물질인 의식, 곧 무이며 공이며
모든것의 근원물질이다.
의식은 잡혀지지 않는 물질이며 모든 것의 근원이며 생명의 근원이다.
인간 뇌가 정상 작동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지 의식이 잡힌다.
마치 전파를 잡아내는 안테나 처럼....
이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이런 의식을 의식하고 볼 수 있는 기능이 인간의 뇌안에 있음을 실증한 지역이
주로 인도이며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사람이 예수.마호멧,노자도 아닌 싯달타이다.
그는 종교 초월의 핵심이요
인간과 만물의 핵심인 신경의 다발, 마음이 아닌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마음을 제거하고 보이는 의식(마음)이란걸 깨닫고
어리석은 종교를 일거에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의식을 불교에서 마음,공,무,견성..........이라 불렀다.
이 의식은 통상의 신경 다발인 마음이 아니고
그저 그렇게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이름을 '마음'이라 붙인 것이다.
따라서 금강경의 말씀대로 마음은 마음이 아니고 이름이 그저 마음인 것이다.
이 말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한줄의 핵심이다.
이 마음을 일으키는 그 신경다발은 뇌에 있으며
그 이미징을 나타내는 모니터는 가슴에 있다.
이 가슴의 모니터에는 뇌에서 뻗어내려간 신경의 다발이 있다.
이 모두 신경 시냅스에서 일어난 효소작용,호르몬 작용,신경전달물질,
그리고 불꽃, 즉 전기작용이다.
마음의 작용에도 에너지가 육체와 똑같이 소비된다.
마음을 방치하고 그대로 두면 무한에너지가 마음에 허비된다.
그래서 '마음을 잡으라(포도당 에너지를 극소화하라)는 의식명령의 속언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생겨난 것이다.
마치 팔에 상처가 나면 그 부위에 백혈구,적혈구가 모여 면역력을 보강하려는 육체의
작용과 같이 혈류가 모이고 당연히 치료하려는 작용이 활발해 진다.
소나무에 송진이 나고...
잎파리에서는 강력한 방향(피톤치드[phytoncide]...등)을 내품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식물처럼....
다시 정리하자면
의식을 발생시키는 뇌부위가 있고
그 아래에
의지 부위가 있고
그 아래
마음이라는 이미지 저장소및 해석소가 있고
그 아래
기억소자가 있는데 이는 셋으로 나뉜다.
하나 장기 저장소
둘은 단기 저장소
셋은 이 둘 사이에서 기억 정보을 지우고 분류하고 삭제하고 중요도 레벨를 먹이고
감정을 입히고 모니터로 시급성에 따라 올리는 작용을 하는 기관내 기관이 있다.
모두 뇌 안의 일이다.
중요한건 마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건 의식이다.
오늘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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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아주 피곤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일요일이다.
늦게 밥 먹어도
늦게 일어나 세수 안해도
방귀를 뀌어가며 언제까지 자도
아무도 나무라지도
방문을 노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해는 중천.......
창문은 밝디 밝아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나는 내 마음을 순간 내려다 본다!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인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일어날 수가 없다고 버티는 나약한 육체는 무엇인가?
마음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것이 맞는가?
그렇지 않다.
마음도 육체도 구분없이 일어나고 싶지 않고 좀 더 눕고 싶을 뿐이다.
이럴때 표현이
'5분만 더 자고 싶다.'라고 표현한다.
5분만의 주체는 서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육체라는 부위 중 뇌속의 호르몬 분비 상태가 의식부위를 희미하게 한
상태(잠)를 유지하려는 육체의 종합적 작용이다.
더 자고 싶다 일어나야 한다는
그것은 현시각의 느낌이며 또는 그 느낌의 정보적 기억이며 판단이다.
너무 푹자면 몸이 망가지고 하루가 축나며
저녁에 잠들기 힘들며
다음날 더 피곤하다는 경험과 기억이 뇌의 종합판단에
기여하고 있는 순간이다.
더 자고 싶은 주체와 일어나야 한다는 주체는 하나다.
이원적이지 않고 이원적으로 느끼도록 습성화된 것 뿐이다.
그 이원적이라는 것의 발생원은 기억정보다.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성은 경험과 기억의 정보를 의식이 불러다
각성하는 것이다.
마음은 몸과 구별되는듯 싶지만 사실은 몸과 마음은 하나다.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픈것이다.
몸이 아픈데 즐거울 수 없고 몸이 죽도록 통증을 느끼는데 즐겁고 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뇌의 오작동이며 병일 뿐이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도록 진화된 것이 몸이며 우주 원리다.
마음과 몸이 하나임을 진솔하게 증명하고자 하면 이렇게 하라.
그대 머리를 지금 즉시 좌우로 최도속도로 돌려보라.
정신을 잃도록 돌려보라.
아찔할 것이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 때...........
어지럼과 뇌의 고통을 느끼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 상태에서 평안하게 마음 운운할 수 있는가?
쓰러져, 한참을 누워 머리를 식히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머리가 아프다.
구토증이 난다.
정신이 없다.
생각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가하게 마음 운운할 수 없다.
왜인가?
다른 경우속에서 살펴보자!
이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가 이 지구상 가장 요염한 자태로
아무도 보지 않는 호텔 객실에서 피치 못하게 만나 그대를 강력히
유혹하고 있다.
그대의 생식기는 완전 충천하였으며 당장 그녀를 덮치고 싶다.
(그 여성도 그대를 강력히 받아들이고 싶다.)
헌데 그 여자는 취해서는 안되는 여성이다.
이 때..........
그 여성의 섹시함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활홀한 쾌감과 성욕의 주체와
저 여자를 취하면 절대 안된다고 범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 둘은 다른 두사람의 주체인가?
그렇치 않다.
두개의 뇌가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두개의 경험과 기억이 있어 경험과 기억을 저장한 뇌의 다른 정보 사이에
선택이 어려운 종합령이 있을 뿐이다.
이때 마음은 무엇인가?
이때 마음은 없다.
이 사건에서 결과는 3가지다.
첫째는
그냥 그 여자를 덮쳐서 일단 성욕을 맘껏 분출해 버려야겠다.
나를 저지하고 있는 이성은 파 뭍혀버린다.
둘째는
강력한 이성과 절제력으로 그만 참아내고 강력한 색의 황홀함을
무시하고 성욕의 순간을 넘겨버린다.
이때 성욕을 넘긴 서경덕같은 선비의 강인함은 그대가 승리했다고
칭찬하는 사회적 통념이다.
세째는
이 강력한 쾌감과 생식본능의 용솟음 침과 강력한 절제와 이성의 판단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도 못한 채 다른 사건으로 촛점이 이동하여 성욕 분출과 절제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경우이다.
이 세가지 결과가 일어났다.
이 사건 결과가 일어나는 중이나 후에 마음은 어디 있었고
마음은 어떤 작용을 하고 있었는가?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마음은 성욕과 절제와 제3의 결과 사이에서 아무런 작용, 즉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징 에이드, 다시말해 이미지적 도움을 주는
신체 기관이란걸 알게 될 것이다.
이 기적같은 섹시녀를 범할 것인가? 말 것인가?란 본능과 이성이 종합판단의
휘하에서 어찌하면 될지 그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이다.
사건 후에는 다시 마음은 이미지를 만든다.
(이미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느낌의 종합적 기억이다.)
기적의 섹시녀를 덮치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그 즉시 마음을 내려다 보라.
마음에 이미지적 외상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아날로그한 상처가 아니다.
마음은 부교감신경 다발이다.
"그래선 안되는데 내가 나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녀를 범했으니
나는 이 결과를 감당할 수가 없다.
천추의 한을 남겼다.
나는 이제 어찌하면 되는가?"라고 하는 문제의식이 생겼고
마음 바로 위의 의지뇌가 이 문제를 가장 급선무의 문제의식으로 모니터에
상근시로 떠 올렸다.
(이때 그대 표정은 어두워졌고 혼란스러워졌고 근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것이 마음의 작용이다.
절제한 후에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이겼고 유혹을 물리쳤으며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아름다운 경험과 자신감을 주었다.
내가 자랑스럽다.
다음에도 내가 나를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얻었다."
이런 만족감이 있을 것이다.
마음은 안정되고 외상이 없으며 평안하고 자신감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번째 결과로 이도 저도 선택 못한 경우는 '다행이다'라는 요행의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마음은 이같이 어떤 판단에 대한 경험에 대한 결과의 이미징 작업을 하는 기억 보조장치다.
우리의 간이나 심장처럼 지 스스로 작동하는 신경의 다발 부위다.
바로 몇시간 몇날 몇년이고 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사라진다.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은 자작.동 이미징 기능을 하는 신경 다발이 필요없어져
그 기능이 멈춘것을 의미한다.
매우 중요한 신경 다발이 기능할 필요가 없고 잠시 멈추게 되면 다른 작용을 하는
신경 다발이 당연히 작동하게 된다.
그 신경다발은 의식을 보는 신경다발이다.
이 신경다발은 어렴풋하게 우리가 느끼고 산다.
그러나 본격 작동은 마음 작용을 일으키는 이미징 시냅스가 쉬어야 한다.
이것이 깨달음의 해부학적 외신경학적 실체다.
기도(기도는 탐욕.본능의 한 분류다.)나 종교적 신비감이나 열광은 모두 이 마음과
본능의 저차원적 한 작동에 불과하다.
마음이 사라지면 뇌의 모니터 구실을 하는 제2의 후(Afterward)시각세포에 그대의
의식이 오롯이 떠오른다.
이것이 시간과 공간과 신과 우주와 생명과 만물의 근원물질인 의식, 곧 무이며 공이며
모든것의 근원물질이다.
의식은 잡혀지지 않는 물질이며 모든 것의 근원이며 생명의 근원이다.
인간 뇌가 정상 작동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지 의식이 잡힌다.
마치 전파를 잡아내는 안테나 처럼....
이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이런 의식을 의식하고 볼 수 있는 기능이 인간의 뇌안에 있음을 실증한 지역이
주로 인도이며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사람이 예수.마호멧,노자도 아닌 싯달타이다.
그는 종교 초월의 핵심이요
인간과 만물의 핵심인 신경의 다발, 마음이 아닌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마음을 제거하고 보이는 의식(마음)이란걸 깨닫고
어리석은 종교를 일거에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의식을 불교에서 마음,공,무,견성..........이라 불렀다.
이 의식은 통상의 신경 다발인 마음이 아니고
그저 그렇게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이름을 '마음'이라 붙인 것이다.
따라서 금강경의 말씀대로 마음은 마음이 아니고 이름이 그저 마음인 것이다.
이 말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한줄의 핵심이다.
이 마음을 일으키는 그 신경다발은 뇌에 있으며
그 이미징을 나타내는 모니터는 가슴에 있다.
이 가슴의 모니터에는 뇌에서 뻗어내려간 신경의 다발이 있다.
이 모두 신경 시냅스에서 일어난 효소작용,호르몬 작용,신경전달물질,
그리고 불꽃, 즉 전기작용이다.
마음의 작용에도 에너지가 육체와 똑같이 소비된다.
마음을 방치하고 그대로 두면 무한에너지가 마음에 허비된다.
그래서 '마음을 잡으라(포도당 에너지를 극소화하라)는 의식명령의 속언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생겨난 것이다.
마치 팔에 상처가 나면 그 부위에 백혈구,적혈구가 모여 면역력을 보강하려는 육체의
작용과 같이 혈류가 모이고 당연히 치료하려는 작용이 활발해 진다.
소나무에 송진이 나고...
잎파리에서는 강력한 방향(피톤치드[phytoncide]...등)을 내품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식물처럼....
다시 정리하자면
의식을 발생시키는 뇌부위가 있고
그 아래에
의지 부위가 있고
그 아래
마음이라는 이미지 저장소및 해석소가 있고
그 아래
기억소자가 있는데 이는 셋으로 나뉜다.
하나 장기 저장소
둘은 단기 저장소
셋은 이 둘 사이에서 기억 정보을 지우고 분류하고 삭제하고 중요도 레벨를 먹이고
감정을 입히고 모니터로 시급성에 따라 올리는 작용을 하는 기관내 기관이 있다.
모두 뇌 안의 일이다.
중요한건 마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건 의식이다.
오늘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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