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방의 횡설수설(욕심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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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 원(願)의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것인가?
누가 이렇게 짧게 둘을 구분 짓기도 한다.
.
욕심은 이루지 못하면 괴롭지만
원은 이루지 못해도 괴롭지 않다고 했다.
.
원을 세우고 열심히 했는데 안 됐다면 다시 하면 된다.
여러 번 해서도 안 되면 또 하면 된다. 여기엔 괴로움이 따르진 않는다. 단 이루지 못 했을 때 어떤 허탈감이야 느끼겠지만..
.
그러나 우린 무엇을 얻으려 하였거나 누가 나에게 이렇게 하여 주겠지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게 바로 욕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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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은 실패한다고 괴롭지 않다는 것, 이것이 원과 욕심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 할 수 있다. 원을 세운 사람은 안 된다고 좌절하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저 될 때까지 계속 노력하는 것뿐이다.
.
그런데 인간이란 사회적인 동물이다.
어떤 경우라도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서로 주고받으면서 의존하고 상관되게 마련이다. 이 와중에 우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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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로움의 원천이 바로 욕심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 무언가 구하려고 하는 일도 욕심일까?
이건 욕심이 아니라본다.
.
살아있는 생물체는 어떤 형태(?)든 먹어야 하니 그러려면 근본적인 삶을 지탱키 위해 하는 일은 욕심이라 볼 수는 없다. 이는 인간이나 자연계의 생물들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하나의 본능이라고 봐야지 어떤 의도적인 마음 작용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
그러나 작은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큰 집을 사려고 애를 쓰는 것은 이건 욕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 큰 집을 사려다 사지 못 하면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얻지 못 함에 괴로움을 갖기 때문이다.
.
이렇듯 우리가 욕심과 원의 차이를 구분 지을 줄 알고 욕심의 범위도 스스로가 한계를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거기엔 마음의 평안을 스스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혹자는 욕심을 비우는 길이 마음에 평안을 얻는 첩경이라 하였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심의 한계를 알고 구분지어 살기도 힘이 들지만 욕심을 버리기란 말이 그렇지 쉬운 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욕심을 줄이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이제 나이가 좀 차고 보니 나 자신이 원과 욕심의 한계를 분명이 그을 수 있고 하나의 원을 가지고 살길 나 자신에게 바라는 것도 하나의 노탐(老貪)에 속할까?
.
아마도 이렇게 저렇게 횡설수설 하다 아무런 한 일도 없이 어영부영하다 가족이나 이웃과 사회에 힘만 들게 하는 한 인생으로 마무리 되는 건 아닐지 의구심만 깊어지는구나.
.
남은 시간 하루 빨리 욕심은 줄이고
원은 세워 원에 매달려 살다 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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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건강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욕심과 원(願)의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것인가?
누가 이렇게 짧게 둘을 구분 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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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은 이루지 못하면 괴롭지만
원은 이루지 못해도 괴롭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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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세우고 열심히 했는데 안 됐다면 다시 하면 된다.
여러 번 해서도 안 되면 또 하면 된다. 여기엔 괴로움이 따르진 않는다. 단 이루지 못 했을 때 어떤 허탈감이야 느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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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린 무엇을 얻으려 하였거나 누가 나에게 이렇게 하여 주겠지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게 바로 욕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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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은 실패한다고 괴롭지 않다는 것, 이것이 원과 욕심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 할 수 있다. 원을 세운 사람은 안 된다고 좌절하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저 될 때까지 계속 노력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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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간이란 사회적인 동물이다.
어떤 경우라도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서로 주고받으면서 의존하고 상관되게 마련이다. 이 와중에 우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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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로움의 원천이 바로 욕심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 무언가 구하려고 하는 일도 욕심일까?
이건 욕심이 아니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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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생물체는 어떤 형태(?)든 먹어야 하니 그러려면 근본적인 삶을 지탱키 위해 하는 일은 욕심이라 볼 수는 없다. 이는 인간이나 자연계의 생물들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하나의 본능이라고 봐야지 어떤 의도적인 마음 작용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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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은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큰 집을 사려고 애를 쓰는 것은 이건 욕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 큰 집을 사려다 사지 못 하면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얻지 못 함에 괴로움을 갖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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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리가 욕심과 원의 차이를 구분 지을 줄 알고 욕심의 범위도 스스로가 한계를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거기엔 마음의 평안을 스스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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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욕심을 비우는 길이 마음에 평안을 얻는 첩경이라 하였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심의 한계를 알고 구분지어 살기도 힘이 들지만 욕심을 버리기란 말이 그렇지 쉬운 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욕심을 줄이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이제 나이가 좀 차고 보니 나 자신이 원과 욕심의 한계를 분명이 그을 수 있고 하나의 원을 가지고 살길 나 자신에게 바라는 것도 하나의 노탐(老貪)에 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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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렇게 저렇게 횡설수설 하다 아무런 한 일도 없이 어영부영하다 가족이나 이웃과 사회에 힘만 들게 하는 한 인생으로 마무리 되는 건 아닐지 의구심만 깊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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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 하루 빨리 욕심은 줄이고
원은 세워 원에 매달려 살다 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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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건강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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