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방의 세상이야기(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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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분이 어느 댓글에서,
["믿음 ;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은 마음." - Friedrich Nietzsche.]
--라고 올렸다.
이 걸 보니 너무 마음에 닿는 표현이라 혹 이와 같은 좋은 글이 또 있나 찾다 아래의 글이 있기에 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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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믿음>
앞을 보지 못하는 다섯 명의 과학자가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코끼리 한 마리가 햇빛을 가려 과학자들에게 서늘한 그림자가 드려졌다.
과학자들은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첫 번째 과학자가 그것을 쫓아낼 방법을 찾기 위해 손을 뻗어 긴 코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건 소방차 호스인 것 같네, 어딘가 불이 났나 봐.”
코끼리 발을 만진 두 번째 과학자는 “이건 소방차가 아닐세. 이건 눈 깜박할 사이에 자라는 떡갈나무지”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과학자도 각각 코끼리의 꼬리, 귀, 등을 만지며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
그들이 서로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싸우는 동안 코끼리는 멀리 가 버렸고,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물었다. “서커스 코끼리 못 보셨나요? ··· 코는 소방차 같이 생겼고, 다리는 나무줄기, 꼬리는 화장실 솔 같아요.”
과학자들은 동시에 “코끼리는 이리로 지나가지 않았소.”라고 외친 후 계속해서 싸웠다. 그들은 모두 여전히,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 마르틴 발트샤이트의 동화 ‘다섯 명의 과학자와 코끼리’다.
다섯 명의 과학자 모두 좋은 생각을 해냈지만 결국 모두 진실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동화책을 읽으면 진실 앞에서도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고집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말 그대로 ‘소경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잘못된 인식에 벗어나 ‘참’이라는 진실 즉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3차 7개 절기의 유월절(마 26:17), 무교절(출 12:18), 초막절(요 7:2)과 안식일(눅 4:16) 등을 지키길 원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규정한 진실은 ‘유월절과 같은 하나님의 절기’다.
반면
크리스마스는 ‘고대 로마의 동지절’이고
일요일 예배는 ‘로마 미트라교(태양신교)의 제삿날인 일요일(Sunday)’을 받아들인 것,
추수감사절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에 이주해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 데 유래한 것’으로 사람이 만든 절기다. 즉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가 아니다.
이 같은 사실은 공중파 방송과 서적, 언론 등을 통해 이미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진실 앞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예수님의 탄생일로 믿고 싶어 한다.
마치 코끼리 다리를 나무줄기로 믿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과학자처럼 말이다.
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과학자들은 끝내 진실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크리스마스, 일요일 예배, 추수감사절 등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떨까?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편견과 고집을 과감하게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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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삶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옮기는 데서 비롯된다.
적게 보고 적게 알더라도
진실을 찾을 수 있다면
많이 보고 많이 아는 것 보다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추 : 이 글은 비단 종교 뿐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에서 “믿음. 맹신” 등이 여러 형태의 우(遇)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픈 글임.
또한 이 어리석음은 본인은 물론 이웃과 사회, 그리고 크게는 국가까지도 힘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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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한 분이 어느 댓글에서,
["믿음 ;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은 마음." - Friedrich Nietzsche.]
--라고 올렸다.
이 걸 보니 너무 마음에 닿는 표현이라 혹 이와 같은 좋은 글이 또 있나 찾다 아래의 글이 있기에 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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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믿음>
앞을 보지 못하는 다섯 명의 과학자가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코끼리 한 마리가 햇빛을 가려 과학자들에게 서늘한 그림자가 드려졌다.
과학자들은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첫 번째 과학자가 그것을 쫓아낼 방법을 찾기 위해 손을 뻗어 긴 코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건 소방차 호스인 것 같네, 어딘가 불이 났나 봐.”
코끼리 발을 만진 두 번째 과학자는 “이건 소방차가 아닐세. 이건 눈 깜박할 사이에 자라는 떡갈나무지”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과학자도 각각 코끼리의 꼬리, 귀, 등을 만지며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
그들이 서로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싸우는 동안 코끼리는 멀리 가 버렸고,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물었다. “서커스 코끼리 못 보셨나요? ··· 코는 소방차 같이 생겼고, 다리는 나무줄기, 꼬리는 화장실 솔 같아요.”
과학자들은 동시에 “코끼리는 이리로 지나가지 않았소.”라고 외친 후 계속해서 싸웠다. 그들은 모두 여전히,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 마르틴 발트샤이트의 동화 ‘다섯 명의 과학자와 코끼리’다.
다섯 명의 과학자 모두 좋은 생각을 해냈지만 결국 모두 진실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동화책을 읽으면 진실 앞에서도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고집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말 그대로 ‘소경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잘못된 인식에 벗어나 ‘참’이라는 진실 즉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3차 7개 절기의 유월절(마 26:17), 무교절(출 12:18), 초막절(요 7:2)과 안식일(눅 4:16) 등을 지키길 원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규정한 진실은 ‘유월절과 같은 하나님의 절기’다.
반면
크리스마스는 ‘고대 로마의 동지절’이고
일요일 예배는 ‘로마 미트라교(태양신교)의 제삿날인 일요일(Sunday)’을 받아들인 것,
추수감사절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에 이주해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 데 유래한 것’으로 사람이 만든 절기다. 즉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가 아니다.
이 같은 사실은 공중파 방송과 서적, 언론 등을 통해 이미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진실 앞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예수님의 탄생일로 믿고 싶어 한다.
마치 코끼리 다리를 나무줄기로 믿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과학자처럼 말이다.
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과학자들은 끝내 진실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크리스마스, 일요일 예배, 추수감사절 등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떨까?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편견과 고집을 과감하게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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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삶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옮기는 데서 비롯된다.
적게 보고 적게 알더라도
진실을 찾을 수 있다면
많이 보고 많이 아는 것 보다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추 : 이 글은 비단 종교 뿐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에서 “믿음. 맹신” 등이 여러 형태의 우(遇)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픈 글임.
또한 이 어리석음은 본인은 물론 이웃과 사회, 그리고 크게는 국가까지도 힘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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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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