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불공정성
15만원 훔친 죄로 징역 3년...정말 불공정한 대한민국
[판결 대 판결 ②] 무직자와 재벌회장... 어느 60대 남성 전과자의 극과 극
14.03.10 21:47l최종 업데이트 14.03.10 21:47l김용국(jundor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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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대 판결'은 복잡한 법원 판결들을 알기 쉽게 정리, 비교, 분석하는 연재기획입니다. 판결 중에서 인권이나 개인의 자유와 관련된 판례, 비판하거나 칭찬할 만한 판결, 서로 상반되는 판결,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특이한 판결 등 개인이나 사회에게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판결들을 서로 묶어서 소개합니다.-기자 말

'유전무죄 무전유죄'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한 비판 중에 쉽게 떠올릴 만한 말이다.

좀 더 엄밀히 따져보면 법원으로선 다소 억울할 법하다. 법원이 무턱대고 가진 자들의 죄를 덮어줄 만큼 부도덕하지는 않다. 반대로, 가난하다고 해서 죄없는 사람을 무작정 가두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 말은 사법불신을 상징하는 표현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타당하다.

어느 판사는 "돈이 많다고 해서 죄를 지어놓고도 법원에서 무죄를 받기는 힘들다"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대해 "돈이 있는 자는 형이 가볍고, 돈 없는 자는 형이 무겁다는 비판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경제력이나 신분 차이에 따라 형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변을 대신해 줄 판결 2개를 소개한다.

60대 남성 두 명이 있다. 한 사람은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며 근근히 하루하루 살아온 윤아무개(63)씨이고, 또 한 사람은 4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재계 10위권 재벌의 총수 김승연(62) 한화그룹 회장이다.

두 사람이 법의 심판대에 섰다. 윤씨는 15만 원을 훔친 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복역 중인 반면, 김 회장은 회사에 15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끼치고도 풀려났다. 왜 그랬을까.

어느 60대 무직자, 15만원 절도에 3년 실형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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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의금 봉투에 들어있던 돈은 15만 원. 그는 절도죄로 재판을 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피해 액수에 비하면 상당히 중형이다. 어떻게 이런 형이 나왔을까.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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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윤씨의 사건을 보자. 그는 2013년 6월 어느 결혼식장을 찾았다. 그는 축의금 접수대에서 "신랑 측에 건넬 축의금을 신부 측에 잘못 접수하였다"고 속여 접수대 위에 있던 봉투 2개를 챙겼다. 하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하객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축의금 봉투에 들어있던 돈은 15만 원. 그는 절도죄로 재판을 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피해 액수에 비하면 상당히 중형이다. 어떻게 이런 형이 나왔을까.

형법에 나오는 절도(329조)의 법정형은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통상 수십만 원 수준의 소액을 훔친 경우라면 벌금형 선고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윤씨는 동종 전과가 많았기 때문에 벌금형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누범(금고·징역형을 받은 후 3년 안에 금고 이상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것)에 해당됐다.

윤씨에겐 형법 외에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특가법)도 적용됐다. 특가법에 따르면 ▲ 상습적으로 (특수)절도를 저지른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 상습절도 등으로 2번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3년 이내 범죄를 저지른 경우 단기의 2배까지 형을 가중한다.

법원은 "윤씨가 절도 범행으로 수차례 처벌된 전력이 있고, 출소 후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위해 근신하여야 할 누범 기간 중에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엄중히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다만 윤씨가 ▲ 범행 일체를 자백하면서 반성하고 있고 ▲ 피해액이 소액이고 모두 반환된 점 ▲ 출소 후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구하던 중이었던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양형 기준을 보니 윤씨의 경우 징역 3년~6년형(상습, 누범절도)이 적절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기준대로라면 징역 3년 선고는 법원의 '선처'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5만 원을 훔친 죄로 3년간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면, 한마디로 가혹하다.

윤씨는 범행 두 달 전에 출소한 상태였다. 그는 2010년에도 결혼식장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축의금 봉투(10만 원)를 훔쳤다. 이때도 윤씨의 형은 징역 3년이었다. 윤씨에게 적용된 법조항과 양형 사유도 비슷했다.

농사와 막노동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윤씨는 젊은 시절부터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1년 절도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현재까지 절도전과가 14차례나 있었다.

판결도 처음에는 벌금형과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나왔다. 하지만 절도 횟수가 거듭되면서 징역형 선고를 피할 수 없었다. 실형 선고만 9차례나 되었다. 1994년 이후 윤씨의 형량(집행유예 제외)을 합하니 14년 2개월이나 되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윤씨의 범행이 대부분 '좀도둑질'이었다는 점이다. 축의금 봉투를 훔친 경우 외에도 성경책을 훔치다 적발된 사례도 많았다. 윤씨는 대형서점에서 성경책을 몇 권씩 들고 나오다가 걸려서 재판에 넘겨진 경우만 3건이 넘었다. 훔친 성경책을 시가로 따지면 한 차례당 10만 원선이었다.

윤씨의 범행 중엔 흉기를 사용하거나 사람에게 위해를 가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습도벽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그는 좀도둑질만으로 14년 넘게 교도소 생활을 해야 했다. 그에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감옥을 보내는 일밖에 없었을까.

김승연 회장, 1심에선 징역 4년·벌금 51억원 선고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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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받은 뒤 건강악화로 구속집행이 정지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13년 4월 15일 오후 항소심 결심 공판을 받기 위해 구급차를 타고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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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그는 부실 위장계열사의 빚을 계열사가 대신 갚도록 하는 방식 등으로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배임), 양도소득세 탈세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다.

1심인 서울서부지법은 2012년 8월 그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했다. 계열사 지원이 "합리적인 경영판단"이었다는 김 회장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배임 행위"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양형 이유에 대해 "▲ 한화그룹 지배주주로서 경영기획실의 영향력을 이용, 계열사들을 동원하여 부실회사를 부당지원하게 한 점 ▲ 업무상 배임 외에도 상당한 규모의 차명계좌를 탈법적으로 관리하면서 양도소득세를 포탈하여 가중처벌을 받아야 하는 점 ▲ 범행의 최대수혜자이면서도 모든 책임을 실무자에게 전가하는 등 반성하고 있지 아니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을 엄하게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김 회장은 법정에서 곧바로 구속됐다. 김 회장은 항소했고 수감 5개월째인 2013년 1월,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법원의 구속집행 정지결정을 받아 풀려난다.

하지만 병원 침대에 실려 법정에 온 김 회장에게 항소심 법원도 징역 3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했다. 1심(3024억 원)에 비해 배임액수(1797억 원)가 줄고 형량이 1년 줄었지만, '재벌총수 비리에 대한 단죄'가 현실화되는 듯 싶었다. 대법원에서 이대로 확정되면 김 회장은 2년 넘게 수감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3심인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내려보냈다. 배임액 산정과 관련된 계산을 다시 하라는 취지에서였다.

서울고법(제5형사부 재판장 김기정 부장)은 5개월 만에 다시 판결을 내린다. 재판부는 유죄를 유지했지만, 배임액이 1585억 원으로 준 것 말고도 큰 변화가 있었다. 징역 3년을 유지했지만 집행유예(5년)가 따라붙은 것이다. 재판부는 실형 대신 300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세간에서는 "법원의 '재벌 3․5법칙'(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이 어김없이 적용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재판부가 "대규모 기업집단인 한화그룹에서의 지위와 역할 및 피고인들을 포함한 이 사건 관련자들 사이의 역학관계 등을 감안하여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김 회장에게 '선처'를 베푼 까닭은 무엇일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양형에 유리한 사정 여러 가지를 거론했다. 즉 ▲ 피해액이 전액 공탁되고 포탈세액이 전액 납부된 점 ▲ 기업주가 회사의 자산을 자신의 개인적인 치부를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 전형적인 사안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판단되는 점 ▲ 그룹의 총수로서 그동안 나름대로 우리나라 경제건설에 이바지한 공로와 함께 현재 건강상태가 상당히 좋지 못한 점 등을 참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2007년 아들 보복폭행 사건으로 김 회장이 형사처벌을 받았는데, 이 사건은 그 전에 발생한 범죄라서 두 사건을 함께 재판받았으면 감경받았을 사정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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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정치자금 제공에도, 아들 보복폭행에도 '선처'

하지만 김 회장의 전과를 감안할 때 법원의 양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미 여러차례 법원으로부터 선처를 받은 김 회장에게 또다시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김 회장은 1992년 홍콩 은행에 가명으로 분산 예치한 자금으로 미국 LA에 있는 고급 주택을 매수한 사실(외환관리법위반)로 1994년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처벌(집행유예)을 받은 이래 수차례 형사처벌을 받았다.

2002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 서청원 의원에게 10억 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2004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회장은 항소했다. 항소심 법원은 김 회장에게 유리한 사정을 나열하면서 벌금형(3천만 원)으로 형을 깎아준다. 법원은 김 회장이 ▲ 유력한 정치인으로부터 은밀한 지원 요청을 받고 장래의 기업 경영을 걱정하여 수동적으로 응했을 뿐이고 ▲ 동종 또는 실형 전과가 없고 곧 자수하였으며, 잘못을 깊이 반성하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또한 ▲ 비자금 조성이 아닌 순전한 개인재산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했고 ▲ 국가경제와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고, 특히 대한생명의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 점도 감형 사유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2007년 아들 보복폭행 사건으로 또다시 법정에 서게 된다. 그는 자신의 차남이 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직접 해결에 나섰다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집단, 흉기 등 상해)죄로 1심에서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00시간으로 석방되었다. 재판부는 "피해자 9명 중 6명은 특별한 상해를 입지 않았고, 나머지 3명도 중상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피해자들 모두와 합의한 점"을 거론하면서 "피고인이 법 경시 태도 등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이전에는 폭력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재판부는 "아버지로서의 부정이 앞선 나머지 사리분별력을 잃고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고 김 회장의 심정을 헤아려주기까지 한다.

윤씨와 김 회장의 형사사건을 피해금액에 따라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법정에 선 60대 남성 두 사람의 재판결과는 너무도 딴판이다. 두 사람의 인생역정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은 수십만 원대 절도를 여러 건 저질러서 징역 14년을 산 반면, 또 한 사람은 탈세, 배임, 외환관리법, 폭력행위 등 사회적 물의를 빚는 범행을 저지르고도 실형을 피해갔다. 이를 두고 유전집유, 무전실형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무직자의 15만 원 절도에는 징역 3년이, 재벌회장의 1500억대 배임에는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현실. 보통사람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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