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립습니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한국에서 살 때 어머니 주일에는 늘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왠지 끝까지 부를 수가 없었지요. 괜시리 목이 메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효녀는 절대 못되지요. 그냥 어머니 생각만 하면 뭔지 모를 울렁증이 생겨 울먹였지요.
저의 어머니는 늘 저를 편애하시어 동생들로부터 언니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렀답니다. 1남 5녀를 낳으시고도 떳떳하셨던 우리 어머니, 공부를 하시지 않으시고도 신여성이셨던 우리 어머니, 김활란 박사와 임영신 박사를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 늘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꼭 시집을 가야만 되는 것이 아니니 김활란 박사나 임영신 박사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여성지도자가 되거라. 부모를 잘 못 만나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못해서 미안하다만, 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해보거라” 이렇게 노래처럼 읊으셨더랬지요. 단 한번도 시집을 가야된다는 친구들의 어머니들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분이셨습니다.
40대 후반에 홀로 유학길을 떠나는 나이 든 딸을 보내시며, 언제 또 볼 수 있겠느냐고 슬그머니 눈물을 닦으시던 어머니셨지요. 다 늙어서 하는 공부, 돈을 벌어가면서 하는 공부였기에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내 귀에는 쟁쟁하게 들립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될 말은 하지 말고, 하나마나 한 얘기 하지 말고, 안 하느니만 못한 얘기 하지 말라” 시던 우리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으니 여자라고 기죽지 말라시며 양력 생일을 기억하라고 일러 주시던 현명하신 우리 어머니, 70 줄에 들어선 지금에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깨닫는 철없는 딸입니다.
젊으셨을 때는 정말 억척이셨드랬지요. 연세 들으셔도 도무지 연세와는 상관없이 사신 어머니, 늘 푸른 나무처럼 좀처럼 남들처럼 연세드신 티가 나지 않으셨던 어머니, 돌아가실 때도 너무도 정신이 똑똑하셨더랬노라고 동생들을 통해, 언니를 통해 들었지요. 보고 싶은 딸, 미국에서 큰일을 해야 하니까 걱정하지 않도록 알리지 말라며 숨을 거두신 어머니셨답니다.
직장엘 다닐 때나 학교엘 다닐 때나 늘 밖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시던 어머니,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부담스러워 오히려 왜 나와 기다리느냐며 짜증을 부렸더랬지요. 지금은 그 어머니가 계시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여러 가지 보여드릴 것이 많은데, 김활란처럼, 임영신처럼 훌륭하지는 않아도 어머니 둘째와 셋째 그리고 넷째 딸들이 미국에서 신문에도 나고, TV에도 나온다고 기뻐하셨을 터인데 너무나 아쉽습니다.
저는 요즘 특별한 취미 하나가 생겼습니다. 주일 아침 짜투리 시간이 생겨 Food4Less에 잠시 들렸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안 오이가 아주 헐값이더라구요. 커다란 봉지로 5봉지나 샀지요. 오이가 싱싱하고 맛있어 보여 무조건 샀습니다. 일을 저지르고 보니 너무 많이 산 것 같았습니다. 시험 삼아 오이지를 담기로 했죠. 그런데 김치조차 담을 줄 모르는 제가 물론 오이지를 어떻게 담는지도 모르지요. 김치병을 모아보았지요. 그 김치병에 차곡차곡 세워서 오이를 담고 움직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곤 뜨거운 수돗물에 소금물을 넣고 그 물을 그대로 병에 부었지요. 그리곤 4-5일 지났습니다. 오이지를 꺼내어 먹어보니 아주 일품입니다. 우리 식구만 먹기에 많기도 하려니와 내 솜씨 자랑도 하고 싶어 친구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들 칭찬합니다. 너무 맛이 있다고. 이제는 일부러 오이를 사러 다닙니다. 오이지 담아서 나누어 주려고. 우리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나눔의 법칙입니다. 맛있는 것은 혼자 먹으면 아니되고, 익은 음식 아끼면 아니된다는 거였습니다.
우리가 세를 살고 있는 집 뒤에는 꽤 넓은 땅이 있습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저는 꽤 많은 화분을 가지고 있지요. 화분에 물을 주니 땅에 물이 흘러 정말 많은 잡초들이 자랍니다. 그 중에 야생아욱과 민들레는 아주 좋은 채소가 되지요. 야생아욱은 살짝 데쳐서 된장국을 끓이면 일품이지요. 민들레는 셀러드로 일품이구요. 올개닉 채소가 되는 것이지요. 아침이면 화분에 물을 주고 야생 채소를 채집하게 되었지요. 우리 식구만 먹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들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니 나도 아주 좋고 행복하지요. 이것도 우리 어머니의 정신이 들어있는 까닭이 아니겠는지요. 야생채소를 뜯는 것이라도 노동은 노동이지요. 때론 손목이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지요. 그래도 친구들이 좋아하면 나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우리 어머니의 정신이 아주 조그만 생활에서도 나타나더라구요. 우리 어머니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한국에서 살 때 어머니 주일에는 늘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왠지 끝까지 부를 수가 없었지요. 괜시리 목이 메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효녀는 절대 못되지요. 그냥 어머니 생각만 하면 뭔지 모를 울렁증이 생겨 울먹였지요.
저의 어머니는 늘 저를 편애하시어 동생들로부터 언니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렀답니다. 1남 5녀를 낳으시고도 떳떳하셨던 우리 어머니, 공부를 하시지 않으시고도 신여성이셨던 우리 어머니, 김활란 박사와 임영신 박사를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 늘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꼭 시집을 가야만 되는 것이 아니니 김활란 박사나 임영신 박사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여성지도자가 되거라. 부모를 잘 못 만나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못해서 미안하다만, 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해보거라” 이렇게 노래처럼 읊으셨더랬지요. 단 한번도 시집을 가야된다는 친구들의 어머니들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분이셨습니다.
40대 후반에 홀로 유학길을 떠나는 나이 든 딸을 보내시며, 언제 또 볼 수 있겠느냐고 슬그머니 눈물을 닦으시던 어머니셨지요. 다 늙어서 하는 공부, 돈을 벌어가면서 하는 공부였기에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내 귀에는 쟁쟁하게 들립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될 말은 하지 말고, 하나마나 한 얘기 하지 말고, 안 하느니만 못한 얘기 하지 말라” 시던 우리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으니 여자라고 기죽지 말라시며 양력 생일을 기억하라고 일러 주시던 현명하신 우리 어머니, 70 줄에 들어선 지금에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깨닫는 철없는 딸입니다.
젊으셨을 때는 정말 억척이셨드랬지요. 연세 들으셔도 도무지 연세와는 상관없이 사신 어머니, 늘 푸른 나무처럼 좀처럼 남들처럼 연세드신 티가 나지 않으셨던 어머니, 돌아가실 때도 너무도 정신이 똑똑하셨더랬노라고 동생들을 통해, 언니를 통해 들었지요. 보고 싶은 딸, 미국에서 큰일을 해야 하니까 걱정하지 않도록 알리지 말라며 숨을 거두신 어머니셨답니다.
직장엘 다닐 때나 학교엘 다닐 때나 늘 밖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시던 어머니,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부담스러워 오히려 왜 나와 기다리느냐며 짜증을 부렸더랬지요. 지금은 그 어머니가 계시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여러 가지 보여드릴 것이 많은데, 김활란처럼, 임영신처럼 훌륭하지는 않아도 어머니 둘째와 셋째 그리고 넷째 딸들이 미국에서 신문에도 나고, TV에도 나온다고 기뻐하셨을 터인데 너무나 아쉽습니다.
저는 요즘 특별한 취미 하나가 생겼습니다. 주일 아침 짜투리 시간이 생겨 Food4Less에 잠시 들렸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안 오이가 아주 헐값이더라구요. 커다란 봉지로 5봉지나 샀지요. 오이가 싱싱하고 맛있어 보여 무조건 샀습니다. 일을 저지르고 보니 너무 많이 산 것 같았습니다. 시험 삼아 오이지를 담기로 했죠. 그런데 김치조차 담을 줄 모르는 제가 물론 오이지를 어떻게 담는지도 모르지요. 김치병을 모아보았지요. 그 김치병에 차곡차곡 세워서 오이를 담고 움직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곤 뜨거운 수돗물에 소금물을 넣고 그 물을 그대로 병에 부었지요. 그리곤 4-5일 지났습니다. 오이지를 꺼내어 먹어보니 아주 일품입니다. 우리 식구만 먹기에 많기도 하려니와 내 솜씨 자랑도 하고 싶어 친구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들 칭찬합니다. 너무 맛이 있다고. 이제는 일부러 오이를 사러 다닙니다. 오이지 담아서 나누어 주려고. 우리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나눔의 법칙입니다. 맛있는 것은 혼자 먹으면 아니되고, 익은 음식 아끼면 아니된다는 거였습니다.
우리가 세를 살고 있는 집 뒤에는 꽤 넓은 땅이 있습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저는 꽤 많은 화분을 가지고 있지요. 화분에 물을 주니 땅에 물이 흘러 정말 많은 잡초들이 자랍니다. 그 중에 야생아욱과 민들레는 아주 좋은 채소가 되지요. 야생아욱은 살짝 데쳐서 된장국을 끓이면 일품이지요. 민들레는 셀러드로 일품이구요. 올개닉 채소가 되는 것이지요. 아침이면 화분에 물을 주고 야생 채소를 채집하게 되었지요. 우리 식구만 먹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들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니 나도 아주 좋고 행복하지요. 이것도 우리 어머니의 정신이 들어있는 까닭이 아니겠는지요. 야생채소를 뜯는 것이라도 노동은 노동이지요. 때론 손목이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지요. 그래도 친구들이 좋아하면 나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우리 어머니의 정신이 아주 조그만 생활에서도 나타나더라구요. 우리 어머니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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