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병폐(3),[호칭과 자아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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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호칭의 사용은 자아를 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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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기 국무총리 지명자 김용준 씨가 국회 청문이 끝나기 전 자진 사퇴하였다.
이렇게 된 데는 오랜 호칭 속에 묻혀 살다보면 대명사로 쓰인 그 호칭이 바로 내가
되어버리고 본래의 나는 망각케 되어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미리 내가 누군지를 잘 알았으면 지명과 동시 바로 이를 고사(固辭)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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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은 어느 미국 거주 교포가 올린 글을 전체의 뜻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정리해서 여기 퍼(?)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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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윤광현(앤도버거주)--
한국인은 말에 얽힌 갈등이 많다.
귀때기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김영삼 대통령이 Clinton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나이도 어린 게, 버르장머리 없이..) 등은 우리시대의 갈등을 미국 대통령에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한국어 화자(말하는 사람)는 상대방에게 말을 걸기 전에 우선 자신과 상대의 위계를 판단해야 한다. 이 위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핵심적인 것은 나이와 사회적 신분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어체계는 완고하여 함부로 말하기를 꺼려하여 매우 조심스럽다.
그래서 예로 영어에서는 You나 First name 등으로 쉽게 쓰는 2인칭 대명사가 한국어에서는 손아랫사람이나 허물없는 친구를 가리킬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 화자는 연령적, 친족적, 직업적, 신분적 위계를 표시하는 명사(예컨대 아저씨, 선배님, 할아버님, 회장님, 박사님, 집사님, 장로님 등)를 대명사처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과 친해지려면 상대방과 나 사이에 서로 부르는 호칭이 미리 개발되고 정해져서 그 호칭으로 불러야 깊이 친해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한국말에서는 손아래 사람이나 허물없는 친구에게 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냥 상대방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거나 거기에 이름에 붙여 어떤 경어(Mr.등)를 붙이더라도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 사람들이 하면 Mr. Mrs. 등이 경어에 해당되지만 한국 사람끼리 얘기할 때는 좀 다르다. (예를 들면 Mr. Yoon이나 윤광현 씨 등을 한국 사람이 쓸 경우.) 설사 화자가 손위 사람이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냥 그렇게 이름을 부르면 귀에 거슬린다.
그래서 한국 사람끼리는 이름이 아닌 서로 부를 호칭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나 이런 경우 마땅히 상대방을 부르는 대명사가 없으면 좀 부르기가 난감하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집사도 아닌데 무조건 남자는 집사님, 그냥 자영업을 하고 있으면 사장님, 여자는 무조건 사모님 아니면 누구 엄마 등으로 부르려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껄끄럽다.
그래서 한인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유난히 이 신분적 위계를 표시하는 대명사를 얻고자 하고 또 그대로 불리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호칭을 얻기 위해 쓸데없이 이름만 있는 기관을 만들고 직위를 만들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정력,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그리고 한 번 얻은 호칭을 평생 간직하고 남들이 불러주기를 원한다. (소위 전 회장, 전 이사장등) 한인사회에서 경어체계는 언어예절의 가장 두드러진 형식이고 이 언어예절은 한 공동체의 파열을 막고 서로를 이어주는 거푸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자질구례해지거나 너무 경직되게 운용될 때는 공동체 구성원의 생기와 친밀감을 옥죄는 사슬이 될 수 도 있다.
경어예절은 특히 한국어 경어체계에서 보듯이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이고 상호적이라기보다 일방적이다. 말하자면 경어체계는 아주 깊은 수준에서 민주주의와는 적 대 적이다.
그래서 한국어 경어체계의 흔들림과 경어 체계의 집착에 관한 대립은 한국 민이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성장통(成長痛)일 수 있다.
그래서 여기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공동체 구성원의 생기와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그런 호칭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위계를 표시하는 명사를 붙이지 않고 그냥 이름에 님이나 선생님으로 통일해서 부른다든지..)
그러나 이것은 한국 민의 언어습관을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허물어지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서서히 공감대를 형성해가면서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여 좋은 대안을 개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좋은 제안을 기대해본다.
-- 펌 글 끝 -----
위에서 개인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의 두 병폐를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오랜 대명사(호칭)의 사용으로 본래의 나를 잊어버리게 되는 자아망각 현상이란 개인적인 문제와
이러한 호칭 속에 평등의식에서 벗어나 무언가 남의 위에 서 보려는 화합하려하지 않고 군림해 보려는 불평등의식이 사회에 만연케 되는 사회적 병폐를 볼 수 있다.
이 양자를 해결하는 길은, 누구에게나 하는 말과 글에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려 애 쓰다”
보면 자신의 일탈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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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랜 호칭의 사용은 자아를 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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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기 국무총리 지명자 김용준 씨가 국회 청문이 끝나기 전 자진 사퇴하였다.
이렇게 된 데는 오랜 호칭 속에 묻혀 살다보면 대명사로 쓰인 그 호칭이 바로 내가
되어버리고 본래의 나는 망각케 되어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미리 내가 누군지를 잘 알았으면 지명과 동시 바로 이를 고사(固辭)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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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은 어느 미국 거주 교포가 올린 글을 전체의 뜻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정리해서 여기 퍼(?)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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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윤광현(앤도버거주)--
한국인은 말에 얽힌 갈등이 많다.
귀때기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김영삼 대통령이 Clinton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나이도 어린 게, 버르장머리 없이..) 등은 우리시대의 갈등을 미국 대통령에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한국어 화자(말하는 사람)는 상대방에게 말을 걸기 전에 우선 자신과 상대의 위계를 판단해야 한다. 이 위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핵심적인 것은 나이와 사회적 신분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어체계는 완고하여 함부로 말하기를 꺼려하여 매우 조심스럽다.
그래서 예로 영어에서는 You나 First name 등으로 쉽게 쓰는 2인칭 대명사가 한국어에서는 손아랫사람이나 허물없는 친구를 가리킬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 화자는 연령적, 친족적, 직업적, 신분적 위계를 표시하는 명사(예컨대 아저씨, 선배님, 할아버님, 회장님, 박사님, 집사님, 장로님 등)를 대명사처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과 친해지려면 상대방과 나 사이에 서로 부르는 호칭이 미리 개발되고 정해져서 그 호칭으로 불러야 깊이 친해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한국말에서는 손아래 사람이나 허물없는 친구에게 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냥 상대방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거나 거기에 이름에 붙여 어떤 경어(Mr.등)를 붙이더라도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 사람들이 하면 Mr. Mrs. 등이 경어에 해당되지만 한국 사람끼리 얘기할 때는 좀 다르다. (예를 들면 Mr. Yoon이나 윤광현 씨 등을 한국 사람이 쓸 경우.) 설사 화자가 손위 사람이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냥 그렇게 이름을 부르면 귀에 거슬린다.
그래서 한국 사람끼리는 이름이 아닌 서로 부를 호칭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나 이런 경우 마땅히 상대방을 부르는 대명사가 없으면 좀 부르기가 난감하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집사도 아닌데 무조건 남자는 집사님, 그냥 자영업을 하고 있으면 사장님, 여자는 무조건 사모님 아니면 누구 엄마 등으로 부르려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껄끄럽다.
그래서 한인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유난히 이 신분적 위계를 표시하는 대명사를 얻고자 하고 또 그대로 불리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호칭을 얻기 위해 쓸데없이 이름만 있는 기관을 만들고 직위를 만들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정력,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그리고 한 번 얻은 호칭을 평생 간직하고 남들이 불러주기를 원한다. (소위 전 회장, 전 이사장등) 한인사회에서 경어체계는 언어예절의 가장 두드러진 형식이고 이 언어예절은 한 공동체의 파열을 막고 서로를 이어주는 거푸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자질구례해지거나 너무 경직되게 운용될 때는 공동체 구성원의 생기와 친밀감을 옥죄는 사슬이 될 수 도 있다.
경어예절은 특히 한국어 경어체계에서 보듯이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이고 상호적이라기보다 일방적이다. 말하자면 경어체계는 아주 깊은 수준에서 민주주의와는 적 대 적이다.
그래서 한국어 경어체계의 흔들림과 경어 체계의 집착에 관한 대립은 한국 민이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성장통(成長痛)일 수 있다.
그래서 여기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공동체 구성원의 생기와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그런 호칭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위계를 표시하는 명사를 붙이지 않고 그냥 이름에 님이나 선생님으로 통일해서 부른다든지..)
그러나 이것은 한국 민의 언어습관을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허물어지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서서히 공감대를 형성해가면서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여 좋은 대안을 개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좋은 제안을 기대해본다.
-- 펌 글 끝 -----
위에서 개인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의 두 병폐를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오랜 대명사(호칭)의 사용으로 본래의 나를 잊어버리게 되는 자아망각 현상이란 개인적인 문제와
이러한 호칭 속에 평등의식에서 벗어나 무언가 남의 위에 서 보려는 화합하려하지 않고 군림해 보려는 불평등의식이 사회에 만연케 되는 사회적 병폐를 볼 수 있다.
이 양자를 해결하는 길은, 누구에게나 하는 말과 글에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려 애 쓰다”
보면 자신의 일탈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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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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