쟌-나비의 의미
한때 ‘탈주범 신창원’이를 두고 ‘교활한 쟌-나비’라 지칭 하였는데 그만큼 교묘히 눈속임 탈주극을 벌린 자이니 그러한 별명이 붙었나 보다. 하여간 그리하여 ‘쟌-나비’라는 뜻이 무엇인가 궁금하여 알아보니 이러한 결과물이 나왔다. 아마도 알아두면 좋은 자료로 이용 할수 있을 것 같아 올려본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전라 좌수사 자리에서 파직된 원균이 갓 부임한 이순신에게 멱살을 쥐고 ‘전생이 쟌-나비라도 됐나? 아님 연희패라도 됐나?’하는 대목이 있는데 연희패(演戱牌)는 떠돌이 광대패 등을 말한다.’ 정도이며 ‘寄生的 짓거리 하는 자보고 ‘쟌나비-연희패’라 하는것은 주로 창의적이지 않고 남이 하는 것을 모방하되 그 따온 모체를 욕보이며 음해하는 자들을 보고 ‘쟌-나비’적 또는 연희패적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래로, ‘쟌-나비는: 교활하다. 비열하다. 잘난 체를 한다. 비판적이다. 질투심이 많다. 복수심이 강하다. 장난끼가 심하다. 허영심이 심하다. 야심적이다. 참을성이 없다. 가짜 예술가다.’등 의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있었고, 사자성어 朝三暮四(조삼모사)에서도 그 뜻을 알수 있듯이 성질이 급한 동물로 되어있다.
꿈 해몽으로 보니
경박함, 교활함, 예능, 재주꾼, 중개인, 배우, 사기꾼,(tricky)등으로 한마디로 재수 없는 꿈이라 하는데 황금빛 원숭이는 재상이 될 꿈이라는 말도 있었다. (거 머, 마음가는대로 생각 하시고) 이러하듯, 쟌-나비적인 행동이나 이름등도 희롱거리가 되기에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상례일 것이다. 그런데 人格에서도 특정 인생의 성질을 볼 수 있다 하겠는데, 잘 모르고 행동하였다면 그럴 수 있다 지만, 잘 알면서 그것도 君子的으로 잘 아는 人生이 ‘쟌-나비’적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기위에 사람이 없다는 뜻의 ‘眼下無’적인 행위로서 ‘나는 하나 너희는 못한다’는 威勢的이며 ‘王 권적’행위에 해당 하는 짓거리 하겠는데, 누가 뭐라 든 질타할수록 ‘희열’을 느끼는 자가 아니라면, 꿈 해몽이나 고사등, 역사에서 보듯이 ‘쟌-나비’적인 행동과 행위적 명칭은 되도록 삼가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하겠다.
우연히 그의 옥중일기를 읽어보고는 적어도 신창원에게는 '쟌-나비'라고 부르지 않기로하였는데, 그는 적어도 남자다움이 있었고 영혼이 비교적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옥중일기 끝내며,
“왜 인줄 아는가? 지금은 그 가학성 변태 성욕자 같은 자들의 노리개 감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 왜 그들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가?” 라며 人權을 말하는 가운데, 眞實이 중요한 이유에 대하여서도 한마디 하였다.
“내가 죽는 날까지 도망자의 신분이기에 남을 속이고 있지만 여기에 적은 말은 진실뿐임을 밝힙니다.” -신창원-
‘나’를 둘러싸고 변태적 즐감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아마도 이곳 열탕에는 無일 것이라 보며 ‘씨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을 생각해본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전라 좌수사 자리에서 파직된 원균이 갓 부임한 이순신에게 멱살을 쥐고 ‘전생이 쟌-나비라도 됐나? 아님 연희패라도 됐나?’하는 대목이 있는데 연희패(演戱牌)는 떠돌이 광대패 등을 말한다.’ 정도이며 ‘寄生的 짓거리 하는 자보고 ‘쟌나비-연희패’라 하는것은 주로 창의적이지 않고 남이 하는 것을 모방하되 그 따온 모체를 욕보이며 음해하는 자들을 보고 ‘쟌-나비’적 또는 연희패적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래로, ‘쟌-나비는: 교활하다. 비열하다. 잘난 체를 한다. 비판적이다. 질투심이 많다. 복수심이 강하다. 장난끼가 심하다. 허영심이 심하다. 야심적이다. 참을성이 없다. 가짜 예술가다.’등 의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있었고, 사자성어 朝三暮四(조삼모사)에서도 그 뜻을 알수 있듯이 성질이 급한 동물로 되어있다.
꿈 해몽으로 보니
경박함, 교활함, 예능, 재주꾼, 중개인, 배우, 사기꾼,(tricky)등으로 한마디로 재수 없는 꿈이라 하는데 황금빛 원숭이는 재상이 될 꿈이라는 말도 있었다. (거 머, 마음가는대로 생각 하시고) 이러하듯, 쟌-나비적인 행동이나 이름등도 희롱거리가 되기에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상례일 것이다. 그런데 人格에서도 특정 인생의 성질을 볼 수 있다 하겠는데, 잘 모르고 행동하였다면 그럴 수 있다 지만, 잘 알면서 그것도 君子的으로 잘 아는 人生이 ‘쟌-나비’적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기위에 사람이 없다는 뜻의 ‘眼下無’적인 행위로서 ‘나는 하나 너희는 못한다’는 威勢的이며 ‘王 권적’행위에 해당 하는 짓거리 하겠는데, 누가 뭐라 든 질타할수록 ‘희열’을 느끼는 자가 아니라면, 꿈 해몽이나 고사등, 역사에서 보듯이 ‘쟌-나비’적인 행동과 행위적 명칭은 되도록 삼가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하겠다.
우연히 그의 옥중일기를 읽어보고는 적어도 신창원에게는 '쟌-나비'라고 부르지 않기로하였는데, 그는 적어도 남자다움이 있었고 영혼이 비교적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옥중일기 끝내며,
“왜 인줄 아는가? 지금은 그 가학성 변태 성욕자 같은 자들의 노리개 감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 왜 그들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가?” 라며 人權을 말하는 가운데, 眞實이 중요한 이유에 대하여서도 한마디 하였다.
“내가 죽는 날까지 도망자의 신분이기에 남을 속이고 있지만 여기에 적은 말은 진실뿐임을 밝힙니다.” -신창원-
‘나’를 둘러싸고 변태적 즐감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아마도 이곳 열탕에는 無일 것이라 보며 ‘씨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을 생각해본다.

좋아요 0
태그
DISCLAIMER
이곳에 게시된 글들은 에이전트 혹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올린 게시물입니다. 커뮤니티 내용을 확인하고 참여에 따른 법적, 경제적, 기타 문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케이타운 1번가는 해당 컨텐츠에 대해 어떠한 의견이나 대표성을 가지지 않으며, 커뮤니티 서비스에 게재된 정보에 의해 입은 손해나 피해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