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野壇法席)의 어원(語源) (펌)
== 이 글은 "기뻐하라! 찬양하라! Century Music Ensemble"에서 퍼 왔음.
--
교회 여름 성경학교 기간에 교사로 봉사하는 권사님이계셨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유초등부 학생들이 떠든다고 아무리 큰소리로 야단을 쳤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를 안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자 권사님께서는 담당 전도사님을 찾아 와서 학생들이 야단법석을 쳐서 도저히 공과 공부를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야단법석(野壇法席)이 무슨 뜻이 예요?
1.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어원
야단법석이란 야(野;들 야), 단(壇;제터 단), 법(法;법 법), 석(席;자리 석)으로서 한자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단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과, 법석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원적으로 설명하면 들판에 서서 설법할 수는 없고, 설법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들(野)에다 단(壇)을 쌓았다”하여 야단(野壇)이 되고, 쌓은 단 위에다 설법(法)의 자리(席)를 마련하여 법석(法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인 야외에 쌓은 단에서 설법의 자리를 마련, 그 위에 앉아서 설법했다”는 의미로 그 설법의 자리가 바로 야단법석 것입니다.
2.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의미
야단법석이란 순수한 불교 용어로서 야단법석은 법당 아닌 곳 넓은 들판이나 광장 등에서 임시로 제단을 마련하고 야외법회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석가모니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할 때 최대 규모의 사람이 모인 것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로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말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도의 가필라성의 왕자로 태어 19세에 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았지만, 생,로,병,사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29세에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수행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 후 설산에 들어가 6년간 고행 수행으로 불도를 깨닫고, 그 깨달은 사상을 처음으로 들(野)에다 단(壇)을 쌓아 놓고 단 위에서 5명의 수행자에게 첫 설법을 하였습니다. 그 설법의 자리가 바로 야단법석인 것입니다.
3.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유래
그러면 왜 이 야단법석이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말로 변해버렸을까요? 절에서 큰 법회를 열면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주를 많이 한 부자와 신도들도 오지만, 옛날 배고픈 시절에 절에서 큰 행사를 한다고 소문이 펴졌습니다.
그러면 배고픈 시절이라 얻어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았고 합니다. 시주한 부자나 신도들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을 직접 보고 예불을 드릴 수가 있지만, 밥이나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은 밖에서 밥 주기만을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의 입장에서는 얻어먹으러온 사람들도 불쌍한 중생인데, 밥만 주어 그냥 가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이였습니다. 그래서 설법하시는 모습의 부처님을 크게 그려 괘불석주(掛佛石柱) 기둥에 걸어놓았습니다. 밥만 얻어먹은 후 그냥 가지 말고, 그린 부처님이라도 보고 예불을 드리고 가라는 뜻 이였습니다.
“괘불석주에 걸어놓은 부처님의 모습이 야단법석” 위에서 최초로 설법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괘불석주에 걸어놓은 부처님도 “야단법석(野壇法蓆)”이라 합니다.
밥을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은 예불에는 정신이 없고, 오직 밥을 먼저 얻어먹는데 만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단법석 앞에서 밥을 나누어주니까 밥을 먼저 얻어먹으려면 야단법석 가장 가까운 앞자리에 앉거나 서야만 했습니다. 저 뒤에 서있다가는 밥이 떨어지면 못 얻어먹을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에 먼저 서려고 서로 밀치고 당기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야단법석 앞에서 절에 행사가 있을 대마다 계속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야단법석의 본래의 뜻을 잊어버리고, 여럿이 모여서 다투고, 시비하는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던 말이 야단법석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순수한 불교 용어라는 것입니다.
4. 야단법석(野壇法蓆)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
야단법석은 순수한 불교용어 이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생활 용어로 정착 된 것을 보면서, 한국 불교가 참으로 한국문화에 깊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불교가 1600년이란 역사 속에서 한국인 생활문화에 관련된 용어로 정착 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 속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무심코 우리들은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떤다.”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학교에서 아이들이 떠든다고 야단법석이라고 말한 것은, 불교적인 용어로 이해한다면 성경학교가 아니라, 불교 여름학교에서 아이들이 설법에 집중하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었다는 의미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무심코 사용한 언어에는 분명한 뜻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불교적인 언행 생활에서 거듭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단법석은 순수한 불교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아야하고 알았으면 이제는 한국 교회 안에서 야단법석(野壇法蓆)이란 용어 사용을 금지해야 합니다.
===
아래 글에 야단법석이 내일 있을 것이라 해서 야단법석에 대한 의미를 퍼왔습니다.
좋은 시간 가지길 바랍니다!
--
교회 여름 성경학교 기간에 교사로 봉사하는 권사님이계셨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유초등부 학생들이 떠든다고 아무리 큰소리로 야단을 쳤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를 안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자 권사님께서는 담당 전도사님을 찾아 와서 학생들이 야단법석을 쳐서 도저히 공과 공부를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야단법석(野壇法席)이 무슨 뜻이 예요?
1.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어원
야단법석이란 야(野;들 야), 단(壇;제터 단), 법(法;법 법), 석(席;자리 석)으로서 한자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단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과, 법석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원적으로 설명하면 들판에 서서 설법할 수는 없고, 설법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들(野)에다 단(壇)을 쌓았다”하여 야단(野壇)이 되고, 쌓은 단 위에다 설법(法)의 자리(席)를 마련하여 법석(法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인 야외에 쌓은 단에서 설법의 자리를 마련, 그 위에 앉아서 설법했다”는 의미로 그 설법의 자리가 바로 야단법석 것입니다.
2.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의미
야단법석이란 순수한 불교 용어로서 야단법석은 법당 아닌 곳 넓은 들판이나 광장 등에서 임시로 제단을 마련하고 야외법회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석가모니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할 때 최대 규모의 사람이 모인 것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로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말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도의 가필라성의 왕자로 태어 19세에 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았지만, 생,로,병,사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29세에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수행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 후 설산에 들어가 6년간 고행 수행으로 불도를 깨닫고, 그 깨달은 사상을 처음으로 들(野)에다 단(壇)을 쌓아 놓고 단 위에서 5명의 수행자에게 첫 설법을 하였습니다. 그 설법의 자리가 바로 야단법석인 것입니다.
3.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유래
그러면 왜 이 야단법석이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말로 변해버렸을까요? 절에서 큰 법회를 열면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주를 많이 한 부자와 신도들도 오지만, 옛날 배고픈 시절에 절에서 큰 행사를 한다고 소문이 펴졌습니다.
그러면 배고픈 시절이라 얻어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았고 합니다. 시주한 부자나 신도들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을 직접 보고 예불을 드릴 수가 있지만, 밥이나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은 밖에서 밥 주기만을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의 입장에서는 얻어먹으러온 사람들도 불쌍한 중생인데, 밥만 주어 그냥 가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이였습니다. 그래서 설법하시는 모습의 부처님을 크게 그려 괘불석주(掛佛石柱) 기둥에 걸어놓았습니다. 밥만 얻어먹은 후 그냥 가지 말고, 그린 부처님이라도 보고 예불을 드리고 가라는 뜻 이였습니다.
“괘불석주에 걸어놓은 부처님의 모습이 야단법석” 위에서 최초로 설법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괘불석주에 걸어놓은 부처님도 “야단법석(野壇法蓆)”이라 합니다.
밥을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은 예불에는 정신이 없고, 오직 밥을 먼저 얻어먹는데 만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단법석 앞에서 밥을 나누어주니까 밥을 먼저 얻어먹으려면 야단법석 가장 가까운 앞자리에 앉거나 서야만 했습니다. 저 뒤에 서있다가는 밥이 떨어지면 못 얻어먹을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에 먼저 서려고 서로 밀치고 당기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야단법석 앞에서 절에 행사가 있을 대마다 계속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야단법석의 본래의 뜻을 잊어버리고, 여럿이 모여서 다투고, 시비하는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던 말이 야단법석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순수한 불교 용어라는 것입니다.
4. 야단법석(野壇法蓆)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
야단법석은 순수한 불교용어 이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생활 용어로 정착 된 것을 보면서, 한국 불교가 참으로 한국문화에 깊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불교가 1600년이란 역사 속에서 한국인 생활문화에 관련된 용어로 정착 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 속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무심코 우리들은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떤다.”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학교에서 아이들이 떠든다고 야단법석이라고 말한 것은, 불교적인 용어로 이해한다면 성경학교가 아니라, 불교 여름학교에서 아이들이 설법에 집중하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었다는 의미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무심코 사용한 언어에는 분명한 뜻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불교적인 언행 생활에서 거듭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단법석은 순수한 불교적인 용어라는 것을 알아야하고 알았으면 이제는 한국 교회 안에서 야단법석(野壇法蓆)이란 용어 사용을 금지해야 합니다.
===
아래 글에 야단법석이 내일 있을 것이라 해서 야단법석에 대한 의미를 퍼왔습니다.
좋은 시간 가지길 바랍니다!

좋아요 0
태그
DISCLAIMER
이곳에 게시된 글들은 에이전트 혹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올린 게시물입니다. 커뮤니티 내용을 확인하고 참여에 따른 법적, 경제적, 기타 문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케이타운 1번가는 해당 컨텐츠에 대해 어떠한 의견이나 대표성을 가지지 않으며, 커뮤니티 서비스에 게재된 정보에 의해 입은 손해나 피해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