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의 유래
자료출처: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505324&plink=OLDURL
구세군의 시작은 18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 런던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와 부인 캐서린이 빈민가를 찾아가 서민들을 상대로 자선활동을 한 게 시초였죠. 각 지역마다 사령관을 두고 조직을 군대 형태로 운영해 '구세군'이라는 명칭이 붙게 됐고, 이후 이 운동은 세계 124개국으로 확산됐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08년 영국 선교사 로버트 호가트가 10여명의 사관을 데리고 들어와 구세군을 처음 시작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구세군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자선냄비와 딸랑딸랑 거리는 종소리죠. 이 자선냄비는 1891년 겨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배 한 척이 난파됐을 때 구세군 사관 조지프 맥피가 난민들을 구호하기 위해 부두가에 솥을 걸어두고 돈을 모금하면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맥피는 당시 이 돈으로 따듯한 수프를 끓여 난민들에게 먹였다고 하는데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따뜻한 온정이라는 측면에서 냄비가 구세군의 정신을 잘 살렸다고 볼 수 있겠죠.
한국은 1928년 당시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서울 도심에서 낡은 양은냄비로 첫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선교활동과 난민구호 활동은 있었지만, '냄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이때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구세군 냄비가 지금은 전국에 300개에 이르는데요, 규모가 무척 커져 여기서 종소리를 울리는 자원봉사 구세군만 해도 교대 인력까지 다하면 이제 3만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의 냄비와 지금의 냄비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만큼 구세군 자선냄비는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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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의 시작은 18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 런던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와 부인 캐서린이 빈민가를 찾아가 서민들을 상대로 자선활동을 한 게 시초였죠. 각 지역마다 사령관을 두고 조직을 군대 형태로 운영해 '구세군'이라는 명칭이 붙게 됐고, 이후 이 운동은 세계 124개국으로 확산됐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08년 영국 선교사 로버트 호가트가 10여명의 사관을 데리고 들어와 구세군을 처음 시작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구세군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자선냄비와 딸랑딸랑 거리는 종소리죠. 이 자선냄비는 1891년 겨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배 한 척이 난파됐을 때 구세군 사관 조지프 맥피가 난민들을 구호하기 위해 부두가에 솥을 걸어두고 돈을 모금하면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맥피는 당시 이 돈으로 따듯한 수프를 끓여 난민들에게 먹였다고 하는데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따뜻한 온정이라는 측면에서 냄비가 구세군의 정신을 잘 살렸다고 볼 수 있겠죠.
한국은 1928년 당시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서울 도심에서 낡은 양은냄비로 첫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선교활동과 난민구호 활동은 있었지만, '냄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이때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구세군 냄비가 지금은 전국에 300개에 이르는데요, 규모가 무척 커져 여기서 종소리를 울리는 자원봉사 구세군만 해도 교대 인력까지 다하면 이제 3만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의 냄비와 지금의 냄비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만큼 구세군 자선냄비는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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