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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사진 zenilvana 열린마당톡 2014.12.10 신고
歷代 대통령 통치 스타일-김대중 편

[
글·오민수 월간중앙 기자;자료 도움·김두봉 역사연구가(simu@joongang.co.kr;)

●DJP연합 드라마의 조연 가락중앙종친회, DJP 공조 파기 이후…

●형 때문에 고생한 동생들, 大義씨는 먼저 죽고 大賢씨는 언론을 피하고

●인텔리 집안 妻家, 처조카 영작(한양대 석좌교수)·형택(預保 전무)에 관심


金大中·金海 金氏, 변방 三韓甲族 후예의 등극

김대중 대통령의 본관은 김해(金海) 김씨(金氏)다. 서기 42년 가락국(가야국)을 창건한 김수로(金首露)왕을 시조로 모셔 가락(駕洛) 김씨라고도 한다. 김해 김씨는 한국 최대 씨족이다. 김해 김씨 종친회인 ‘가락중앙종친회’는 전국의 종친(김해 허씨와 인천 이씨 포함)을 대략 600만명으로 추산한다.

남북한을 다 합하면 8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스웨덴 인구(750만명)보다 많은 숫자다. 김해 김씨는 신라(新羅) 김씨(金氏)의 알지계(閼智系)와 함께 김씨(金氏)의 양대산맥을 이루며 명문거족으로 번성했다.


600만 종친 거느린 최대 성씨

가락중앙종친회는 김해 김씨를 비롯, 김해 허씨(許氏), 인천(仁川) 이씨(李氏)로 구성됐다. 3성(姓)이 한데 모인 이유는 물론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가락국 수로왕과 아유타국(인도)에서 건너온 공주 허황옥의 혼인은 역사상 최초의 ‘국제결혼’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10남2녀를 낳았다. 그런데 허황옥의 간곡한 청으로 장남만 아버지 성을 따르고 2남은 허씨 성을 따랐다. 인천 이씨는 허씨에서 갈라졌다.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해 하동 7불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3성은 해방 이후 따로 종친회를 조직했다가 1964년 4월 시조의 나라 이름을 따 가락종친회로 통합하고 1967년 12월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김대통령은 김해 김씨 안경공파(安敬公派) 13대손이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도 김해 김씨 안경공파다. 김해 김씨 148개 분파 중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같은 종친, 같은 문파가 배출(현 정권 출범 당시)한 것도 기네스북감이다. DJ와 JP, 그리고 DJ의 정치적 선배이자 장면 정권에서 보사부 장관을 지낸 김판술(92)씨 등 세사람은 가락중앙종친회 고문이다. 현재 종친회장은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이 맡고 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해임안 문제로 끝내 갈라선 DJP 공동정권을 가장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본 ‘세력’이 있다면 아마도 가락중앙종친회일지 모른다. 물론 가락종친회는 정치집단이 아니다. 그러나 전국 면단위까지 지부 조직을 갖추고 있는 이 거대 씨족의 정치적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1997년 대선때 양김의 후보단일화를 위해 막후에서 뛴 사람들은 양김의 측근들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가락종친회는 양김 후보단일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고, 마침내 김해 김씨 정권을 탄생시켰다.

기자는 DJP 공동정권이 붕괴된 직후인 9월6일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에 있는 가락중앙종친회를 찾았다. 사무실 중앙에 걸려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휘호가 인상적이었다. ‘동방대성 點璣㈐?천파일본 만지동근’(東方大姓 三韓甲族 千派一本 萬枝同根·동방의 대성이고 삼한갑족이며 파는 많지만 한 뿌리에서 나왔으며 수만 갈래로 나누어져 있지만 그 근원은 같다). 가락종친회에 대한 기초자료를 챙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종친회의 두 어른인 DJP가 순식간에 정치적 동반자에서 정적(政敵)으로 돌변하는 과정을 지켜본 그들의 심정이 어떤지 궁금했다. 종친회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가 정치세력은 아니지만 지난 대선때 전국의 각 종친회 조직이 DJP 공동정권의 승리를 위해 애쓴 것은 사실입니다. 김대통령이나 김종필 명예총재 모두 종친회에 대한 기여도가 매우 큰 분들이고, 종친회에서도 두분이 함께 국정을 이끄는 데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가졌는데…. 정치하시는 분들이 결정한 일에 대해 뭐라고 의견을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두분이 다른 길을 걷는 것이 안타깝죠.”
불과 한달 반 전만 해도 가락중앙종친회는 DJP 공동정권 밑에서 마침내 가락인의 한이 풀리고 1,500년 묵은 기원이 영글어가는 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다.

한반도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장마가 가는 비를 흩뿌리던 7월19일, 경상남도의 고도(古都) 김해시. 역사학계에서 주목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바로 500년 가야사를 복원하기 위한 ‘가야문화환경정비사업’ 기공식이었다.

신라(新羅)에 무너져 정사(正史)에서 푸대접받아온 ‘망국(亡國) 가야국’의 역사적 위상을 되찾아 주려는, 가락국의 시조 수로(首露)왕의 후예들인 가락중앙종친회가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온 일이 하나둘씩 열매를 맺어가는 뜻깊은 자리였다. 1,300억원이 투입되어 2003년까지 완공되는 김해 고도 복원사업은 가락인들의 꿈이었으며 동시에 김대중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광복후 일본의 실증주의 사학이 지배한 우리 역사학계에서 가야사는 아직도 ‘복원’되어야 할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정사로 인정받는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아예 가락국이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역사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가락국 멸망 이후 김해 김씨가 배출한 최고의 인물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이다. 수로왕의 12세손인 김유신은 김해 김씨 문중에서 중시조로 불린다.

하지만 고려 시대로 접어들면서 간헐적으로 중앙 정치 무대에 인물을 배출하던 김해 김씨는 조선으로 넘어와서는 영 빛을 보지 못한다. 조선 성종 때 “용재총화”의 저자인 성현은 가락 김씨를 “옛날에는 성했다 지금은 쇠한 씨족”이라고 표현했다.

조선시대에 배출된 366명의 정승 중에서 김씨가 52명인데, 이중 김해 김씨는 숙종때 우의정을 지낸 갑봉 김우항뿐이다. 문과 급제자도 122명으로 턱없이 적다. 오늘날 인구가 30만명 안팎인 청송(靑松) 심씨(沈氏)가 224명, 20만명인 여흥(驪興) 민씨(閔氏)가 233명을 배출한 것에 비하면 김해 김씨 문중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위축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김해 김씨가 조선조에 배출한 역사적 인물이 없지는 않다. 무오사화때 억울하게 희생된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과 조선 제1의 화가 김홍도,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등이 그들이다.


정치적 변방이던 가락종친회의 恨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 씨족 중에서 가장 후손이 많고 역사가 오래 된 김해 김씨 문중에게는 조상님께 떳떳하지 못한 뿌리깊은 죄책감 같은 것이 있다. 김해 김씨는 현재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거대 성씨’(巨大姓氏)로서 한민족 최대 세력으로 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상의 역사를 복원하지 못했다. 인구수로는 삼한갑족이되 오랜 세월 정치적 변방으로 밀려난 현실적 힘의 약세 탓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행사 관련 기사가 다음날 조간신문 문화면이 아닌 정치면에 실렸다는 점이다. 여야 지도부가 이 행사에 대거 ‘출동’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와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참석해 축사를 했고, 한나라당에서도 김종하 국회부의장과 김영일 국회 건설교통위원장, 김혁규 경남도지사가 축사를 했다. 김대통령은 정순택 교육문화수석을 통해 치사를 남겼다.

‘워딩’은 모두 달랐지만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요컨대 고구려·백제·신라 3국 위주로 기술된 한민족 고대사를 가락국을 포함한 4국 시대로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야 유물의 발굴로 인해 역사학계에서 얼마 전부터 논쟁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여야의 정치지도자들이 정식으로 ‘발제’했다는 점에서 예사로 보아넘길 문제는 아니다. 요컨대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는 문제인 것이다.

어쨌든 이날 행사에 대한 유력 언론들의 정치면에 실린 기사 요지는 천편일률적이었는데, 제목도 ‘여야, 김해 김씨 구애(求愛) 경쟁’ 등으로 비슷했다. 행사의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표밭을 의식한 여야 지도부의 행태를 꼬집는 투였다.


DJ의 종친 사랑

대체 가락종친회가 뭐길래 여야 지도부는 언론으로부터 ‘구애’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면서 이런 풍경을 연출하는 것일까.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1, 2위가 수시로 엎치락 뒤치락하던 1997년 대선 레이스에서 DJP연합군단과 이회창사단은 ‘피차간에’ 가락중앙종친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똑똑히 보았다.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에 앞서 최근 대두하고 있는 ‘JP 대망론’과 관련한 해프닝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 5월3일 자민련 변웅전 대변인은 김봉호 가락중앙종친회 회장의 말을 옮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 대권도 김해 김씨에서 나올 것이라고 인도의 점성가가 말했는데 이는 JP를 가리킨 것이다.”

인도 점성가 예언의 신빙성 여부는 제쳐두자. 대통령선거가 씨족장을 뽑는 추장선거가 아닌 다음에야 국정을 책임진 공당의 대변인 입에서 나올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대변인이 버젓이 유권자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이 말이 다시 ‘JP 대망론’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김해 김씨 문중의 오랜 꿈이 재집권을 향해 또 다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권자의 15%를 차지하는 가락종친회 문중의 선거에서의 위력을 의식한 발언이었을까?

선거에서 가락중앙종친회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두가지.

첫째, 지난 대선 개표때 경북 봉화군 상운면 제4투표소에서는 아무도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싹쓸이’하다시피 한 경북이었다. 그런데 유독 이 투표소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리드했다. 김해 김씨 집성촌에서 몰표가 나온 탓이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1992년 대선 때까지는 가락중앙종친회가 단결하지 못했다. JP가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7년에도 김해 김씨 종친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DJP가 똘똘 뭉친 1997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영남, 특히 경남에 기반을 둔 김해 김씨 문중표만 끌어들이면 박빙의 리드를 굳힐 수 있는 국면이었다. DJ는 당연히 가락종친회에 정성을 쏟았고, 가락종친회 문중에서도 적극 호응했다.

둘째, 충북 진천은 전통적으로 여당 세(勢)가 강한 지역이지만 1992년 대선때 ‘뜻밖에도’ 김대중 후보가 김영삼 후보를 눌렀다. 충청남북도 34개 선거구 중에서 DJ는 유일하게 진천에서만 1위를 했다. 진천은 김해 김씨 집성촌이자 김해 김씨의 중시조인 김유신이 태어난 지역이기도 하다. 가락국을 합병한 이후 신라는 가락국 유민들을 접경지역으로 이주시켜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정책을 폈는데,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태수로서 고구려와 대치했던 곳이 이곳인 만큼 망국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DJP가 손을 잡은 1997년 대선때 DJ는 이 지역에서 이회창 후보를 더블스코어로 앞섰다.

물론 이처럼 김해 김씨 집성촌에서 몰표가 나오는 예외적인 경우를 빼놓고, 1997년 대선에서 실제로 전국의 종친들이 누구를 찍었는지는 통계로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가락중앙종친회가 종중 차원에서 DJP 후보단일화 압박에서부터 표몰이에 이르기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사건’도 많았다.

1997년 1월 가락중앙종친회 신년교례회때 DJ와 JP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영정 앞에서 후보단일화를 맹세했다. 한국내 최대 씨족임에도 불구하고 서기 532년 나라가 망한 이후 1,500년 동안 단 한번도 ‘왕’을 내지 못한 한을 풀어보자는 문중의 염원이 양김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치권은 600만명 거족(巨族)의 움직임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가락중앙종친회 단일후보가 되기까지

그해 10월16일 경남 김해시에서는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 등 3개 성씨의 종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락국 시조대왕(김수로왕) 추향대제가 열렸다. DJ와 JP도 나란히 참석했다. 원래 중앙종친회에서는 이날 ‘고유제’도 함께 올릴 예정이었다. 고유제는 문중의 인물이 나라의 최고 권좌에 오르는 것을 조상들께 알리는 행사로 대선 출마 신고식인 셈이다. 그러나 JP의 요청으로 고유제는 뒤로 미뤄졌는데 내각제 합의 문제로 양측의 후보단일화 문제가 타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김종하·김형오·김무성 등 김해 김씨 소속 의원을 보내 김해 김씨 종친표를 의식한 물밑 활동을 벌였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11월3일 마침내 DJP 합의문을 발표했고, 11월21일 경남 김해에서는 가락중앙종친회 고유제가 열렸다. 이날 가락중앙종친회 김영준 회장은 “김대중 고문과 김종필 고문은 종친회 발전에 앞장선 분들이다. 이번 대사를 성공적으로 이끌도록 모두 단합해 전진하자”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대선에서 DJ를 찍자는 노골적 표현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종중 차원의 DJ 지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DJ도 고유제를 마친 뒤 인사말을 통해 “김종필 총재의 양보 덕분에 가락종친회의 단일후보로 나서게 됐다. 가락종친회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으면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솔직히 내가 가장 약한 곳이 영남지역인데, 이곳에서도 남 못지않게 표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중앙선관위에서는 중앙종친회 김영준 회장의 발언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경고조처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DJ가 ‘가락종친회 단일후보’로 나서자 한나라당 가락종친회 회원들이 자격 시비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당시 김종하·김영일·김용갑 의원 등 가락종친회 소속 여당 의원 16명은 성명서를 내고 “김대중 총재가 진짜 우리 문중 사람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신 때부터 DJ를 곤혹스럽게 했던 ‘성씨 시비’를 재론한 것이다.

1970년대말 목포지역 가락종친회 명의로 ‘DJ는 가락 김씨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정체불명의 괴문서가 나돈 적이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때 DJ는 가락종친회에서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 이를테면 1980년 봄 가락종친회 춘향대제에 참석한 DJ에게 종친회에서는 금관제복 입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DJ는 검은색 일반제복을 입고 시조묘에 참배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이다. 물론 선대 때부터 종친회 일에 물심으로 공헌한 JP는 당당히 금관제복을 입고 참배했다.

어려서 부친을 잃은 DJ는 장성할 때까지 김해 김씨 종친과는 인연을 맺을 기회가 없었고, 김씨 문중에서 전통적으로 쓰는 돌림자도 사용하지 않아 일부 종친들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했다. 더구나 DJ는 야당 지도자로서 형극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정부를 상대로 문중의 숙원사업을 펼쳐가야 할 입장인 가락종친회와는 거리감이 없지 않았다. 가락중앙종친회 관계자에게 이런 ‘오해’와 관련해 물었더니 “잘 알고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아직도 종친들 사이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족보에 다 나와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종친회에서 고문으로 모시고 있는 분이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

1980년대 이후 DJ는 가락종친회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문중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숙원 사업에는 정치적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9년말 가락종친회의 숙원이었던 수로왕릉과 허왕후릉 정비사업에 대한 평민당 김대중 총재의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당시 가락종친회에서는 이 문중사업을 국가 사업으로 승격시키려고 종친 국회의원들을 앞세워 추진했지만 정당간 이해관계 때문에 예산 확보가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DJ가 예결위를 앞두고 평민당 의원들을 동원해 예산 확보에 발벗고 나섰고, 결국 20억여원의 거금을 확보해 가락 김씨 문중의 성역 정비사업을 국가차원에서 벌여나갈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DJ를 대하는 가락종친회의 태도는 완연히 달라졌다. 1996년에는 경주의 김유신 장군 묘역 부근 삼림이 전소되자 국민회의 총재였던 DJ가 복구사업에 국고 예산 18억원을 확보해 주기도 했다.

인구수로 가락 김씨는 한반도 최대 씨족이기 때문에 건국 이래 정·관·재계에 기라성 같은 인물을 숱하게 배출했다. 워낙 인물이 많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고 의미도 없다. 16대 국회의원 당선자만 헤아려 보자. 역대 국회에서 늘 그러했듯 16대 국회에서도 가락종친회 핏줄들은 원내교섭단체 정족수를 ‘거뜬히’ 넘겼다. 총 25명인데 한나라당 소속으로는

김영춘·김영구·김기배·김형오·김무성·김부겸·김용학·김종하·김호일·김학송·김동욱·김영일·김용갑·김기춘·김정숙·김홍신 등 17명, 민주당 소속으로는 김영배·김덕배·김홍일·김충조·허운나·김한길·김기재 등 7명, 자민련에서는 JP가 유일하다. 전체 인구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약 15%)에 합당한 숫자다.

DJ의 친인척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1998년 1월18일)에서 친인척 관리 방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 역할로 인기 절정이었던 탤런트 유동근씨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친인척 관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경계해야 할 문제로, 지금까지 대통령 주변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지난 선거에서 친인척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친인척부당행위금지법 등 3금(禁)법안을 내놓았다. 친인척 관리를 잘 할 테니 맡겨 달라.”

그 직전 김당선자는 김홍일 의원, 홍업·홍걸씨 등 세 아들 부부를 워커힐호텔로 불러 가족예배 형식을 빌려 대통령의 아들이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 각별하게 조심하라고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아주 엄숙한 자리였다.

“몸가짐에 근신할 것을 아버지로서 재삼, 재사 당부한다. 대통령의 친인척 부패와 비리는 이제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된다.” 전경환·김현철로 상징되는 5공 정권과 문민 정권의 붕괴 과정을 누구보다 똑똑히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DJ는 취임 전부터 단속을 했다.


“친인척 부패와 비리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집권 초기의 초발심은 얼마나 유지되고 있을까. 임기를 1년 반 남겨놓은 상황이어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아직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큰 친인척 비리 사건이 터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작은 사건에 친인척을 둘러싼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집권 기간 친인척이 주요한 직책에 오르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현재 친인척 관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원파트에서 맡고 있는데, 두 사람이 배속돼 있다. ‘연청’(민주연합청년동지회) 출신의 김길성 국장과 경찰에서 파견나온 김형렬 경감이다. 김길성 국장은 대통령의 아들 김홍일 의원과 가까운 사이다.

DJ은 1924년 1월6일 부친 김운식과 모친 장수금 사이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만덕·진찬 등 누이 둘은 일찍 작고했고, 밑으로 대의(大義)·대현(大賢) 등 남동생 둘이 있다. 대의씨는 대통령선거 하루 전인 1997년 12월17일 간질환으로 숨졌다. 대의씨는 임종 직전 “선거에 이용돼 누를 끼칠 수 있으니 선거가 끝날 때까지 나의 죽음을 형님에게 알리지 말라”고 유언을 남겨 주변 사람들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다. DJ는 동생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던 순간인 12월19일 오전 1시께야 들었다고 한다.

김대의씨는 목포상고를 나와 1971년 대선 때 DJ의 참모로 활약하기도 했다. 동교동 구파 모임인 내외문제연구소 이사를 맡기도 했지만, 정치 전면에는 나서지 않고 형의 정치적 뒷바라지만 하다 형의 등극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대의씨의 부인 민병숙씨는 민한당 국회의원을 지낸 민병초씨의 누나다. 대의씨와 민병숙씨는 2남2녀를 두었다. 장남 홍준(弘準)씨는 단국대 정외과를 나와 대한생명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큰딸 혜경(惠景)씨는 경희대 정외과를 졸업해 출가했다. 남편이 YTN 보도본부 부국장 신동윤씨다. 둘째아들 홍훈(弘勳)씨는 산림청 산하 홍릉임업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막내딸 혜영(惠英)씨는 가정주부다.


언론 피하는 DJ 동생 金大賢씨

DJ의 막내동생 김대현(金大賢)씨는 현재 한국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이다. 사무실이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9층에 있다. 대현씨는 건국대를 졸업하고 22년간 군생활을 한 헌병 소령 출신이다. 형의 경호를 맡았다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1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부인 이숙자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뒀는데, 부인은 지난 9월6일 오전 숙환으로 작고했다. 유족측은 언론의 취재가 부담스러운 듯 빈소가 마련된 일산 국립암센터 영안실에 대한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다.

현 정부 출범뒤 대현씨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언론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께 누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 5월 안동수 법무장관 파동때 과연 안장관을 추천한 인물이 누구인지 의문이 제기됐는데, 당시 기자는 여권의 한 인사로부터 ‘추천인은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제보를 받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김이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측근을 통해 “안동수 장관과는 잘 알지도 못한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만나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대현씨는 지난해 포철 납품 불법로비 사건 때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사건으로 대현씨의 보좌관 문모씨가 구속됐는데, 문씨는 포철 유상부 사장에게 청탁하는 자리에 대현씨의 장남 홍석씨를 대동했다. 현재 아시아나 항공에 근무하는 홍석씨 건은 검찰에서 무혐의로 처리해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DJ의 부친인 김운식씨는 장수금씨와 결혼하기 전 전처 김순례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DJ의 이복형 대봉(大奉)씨는 1972년 작고했고, 이복누나 안례씨는 현재 전남 신안군 도초면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봉씨는 이복동생인 DJ가 목포 지역 국회의원일 때 지구당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대봉씨는 부인 박공심씨와 사이에 3남1녀를 두었는데, 차남인 관선(寬宣)씨가 현재 광주시의회 의원이다. 관선씨는 지난 1995년 첫 지방선거때 광주시의회에 진출, 현재 재선 의원으로 있다.

일찌감치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지난 대선 때는 국민회의 재정국장으로 ‘작은아버지’의 당선을 도왔다. 관선씨는 1998년 지방선거에서 구청장에 출마하려 했으나 대통령이 만류하는 바람에 좌절됐다.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점이 오히려 족쇄로 작용한 경우다. 장남 만선(滿宣)과 3남 홍선(弘宣), 막내 명임(明任)씨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김대통령과 이희호(李嬉鎬) 여사의 결혼은 정대철 현 민주당 최고위원의 부모인 정일형·이태영 부부가 주선해 이루어졌다. 당시 39세였던 정치인 김대중은 ‘아이가 둘 딸린’ 홀아비였고 이희호 여사는 미국 유학을 다녀와 YWCA 총무로 활동하던 신여성이었다. 첫 부인 차용애(車蓉愛)씨는 1959년 DJ가 세번째 낙선한 인제보궐선거 직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씨는 목포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던 부잣집 딸이었는데, 목포여중을 나온 뒤 일본에서 여학교를 다닌 신여성이었고 미모도 출중했다. 김대통령은 차씨와의 사이에 홍일(弘一)과 홍업(弘業) 두 아들을 두었고, 셋째아들 홍걸(弘傑)씨는 이희호 여사의 소생이다.

“대통령의 동서라는 이유 때문에 매도당하고 불명예 퇴진하고 싶지 않아 사표를 냈다.”

지난 8월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재희(徐載熹·73) 원장은 임기를 11개월 앞두고 사표를 제출했다. 건강재정보험이 파탄난 상태에서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 500억원대의 심평원 새 사옥 매입을 추진했다 여론의 강한 빈축을 산 뒤끝이었다. 서씨는 “심평원 사옥 이전 가계약을 하고 물러나려 했지만 여러 말이 나와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지난해 7월 심평원 초대원장으로 발탁됐다.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고령인 데다 행정경험이 전혀 없어 자격시비가 일기도 했다. 심평원은 병원과 약국이 청구하는 진료비 내역을 심사 평가하는 기구다. 직원만 1,140여명에 달한다.

서재희씨는 DJ의 동서, 즉 첫부인 차용애씨의 동생 은경(恩卿)씨의 남편이다. 은경씨는 DJ의 첫부인 차용애 여사의 유일한 여동생이다. 해방후 목포에서 용애·은경 자매는 미모로 정평났다. 은경씨는 영화 “산유화”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정도로 미모를 자랑했다. DJ는 첫부인 용애씨 형제들에 대해서도 눈에 띄지 않게 애정을 쏟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용애 여사는 5남2녀 중 둘째다. 위로 오빠 원식씨가 있고, 밑으로 태식·은경·인식·우식·창식씨 등이 있다. 현재 경동시장번영회 회장을 지내고 있는 창식씨는 지난해 정현준사건때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정현준­이경자­금감원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의 열쇠를 쥔 핵심인물로 떠올랐지만 해외로 도피한 조직폭력배 출신 오기준씨와 한동안 어울려 다닌 것이 세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대변인 성명에서 차씨와 김홍일 의원의 연관성에 의혹을 제기하며 대통령 친인척비리로 몰아가려 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5공을 감동시킨 차남 김홍업의 러브스토리

김대통령 내외는 자녀의 결혼을 자유의사에 맡겼다.

첫째아들 홍일(민주당 국회의원)씨는 경희대 정외과를 나와 윤혜라(尹惠羅)씨와 결혼했다. 윤혜라씨는 둘째 홍업씨의 친구이자 현 스포츠서울21 사장인 윤흥렬(尹興烈)씨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홍일씨는 동생 홍업씨의 주선으로 아내를 맞은 셈이다. 두사람은 1974년 8월15일 혼례를 올렸는데, 묘하게도 이날은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운명한 날이기도 하다. 김홍일 의원의 장인 윤경빈(尹慶彬)옹은 독립유공자로서 현정부 출범 직전인 1998년 1월16일 광복회 회장에 취임했다. 윤회장은 일본 메이지대 법학부 출신으로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의 경위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윤회장의 광복회장 취임 당시 전임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히고 광복회원들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김홍일 의원의 처남인 윤흥렬씨는 홍업씨와 경희대 동기동창이고, 충무로에서 영화 조감독으로 시작해 CF 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CF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정치에 접목시켜 지난 대선 때에는 홍업씨와 함께 홍보기획사 ‘밝은세상’을 만들어 김대중 후보의 TV 광고를 포함해 홍보전의 야전사령관으로 맹활약했다.

최근 인천공항사건에서 이상호 전 개발사업단장이 외압의 장본인 중 한 명으로 거론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윤씨가 사장으로 있는 스포츠서울21은 이번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에어포트72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윤씨는 이상호 전 단장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둘째아들 홍업씨는 현재 아태재단 부이사장이다. 경희대 경영학과를 나왔고 친구 윤흥렬씨와 함께 ROTC로 군복무를 마쳤다. 홍업씨는 경희대를 나온 신선련(申仙蓮)씨와 1984년 결혼식을 올렸다. 학교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이후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신선련씨 집안에서는 딸이 DJ의 아들과 연애한다는 눈치를 채고는 극력 반대했다.

신선련씨의 부친은 박정희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냈고 당시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재직중이던 신현수(申鉉守)씨. 강제로 선을 보게 하는 등 ‘DJ 아들’과 떼어 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당시 캐나다대사관에 근무하던 선련씨는 집안에 “홍업씨와는 결혼하지 않을 테니 미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해서 1983년 12월 도미한다. 하지만 이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홍업씨와 선련씨의 결혼작전이었을 뿐이었다. 두사람은 신부측 집안 사람들의 참석 없이 워싱턴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문동환 목사가 신부측 집안 어른 노릇을 대신했다.

졸지에 딸을 미국 정치 망명객의 아들에게 빼앗긴 신현수씨는 사표를 낼 각오로 감사원장에게 사실을 보고했는데, 뜻밖에도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홍업씨의 결혼은 언론에 재갈이 물린 5공 정권 당시 일반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치권에 적잖이 회자된 유명한 ‘러브스토리’였다. 신선련씨는 현재 메릴린치증권 간부로서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활동하고 있다.

막내아들 홍걸씨는 현재 미국유학중이다. 고려대 불문과를 1년 다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부모를 따라 도미했다. 1991년 부산의 사업가 임정상씨(작고)의 딸 미경씨와 결혼한 뒤 계속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홍일·홍업 두 이복형제와는 달리 국내 정치권에 이렇다 할 인연은 없다. 다만 지난해 총선 직전 한나라당 이신범 의원이 홍걸씨 부부가 미국 LA 인근의 호화주택에서 살고 있다고 폭로함으로써 구설에 올랐는데, 나중에 이 주택은 홍걸씨 소유가 아닌 조풍언씨 소유로 밝혀졌다. 조풍언씨는 DJ에게 일산 자택을 사준 교포. 이신범 전 의원과의 공방전은 법정으로까지 비화했고, 나중에 홍걸씨의 새로운 주택이 밝혀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서로 소를 취하함으로써 흐지부지됐다.


막강한 이희호 집안

김대통령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다. 목포 북교초등학교를 나와 목포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고향인 목포에서 일본인 해운회사를 인수해 운영하고 신문사 사장을 지내는 등 해방후 사업가로 승승장구했지만, 집안 덕을 본 것은 없다. 반면 이희호 여사쪽은 결혼 당시 집안에서 말린 것도 당연하다 싶을 만큼 ‘짱짱한’ 집안이다.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전을 졸업한 후 충남 삽교에서 잠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해방후 서울사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1954년 미국 테네시주 스카릿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이화여대 강사, YWCA 총무, 여성문제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이희호 여사는 서울 토박이로 전주(全州) 이씨(李氏) 완창대군파 이용기(李龍基)씨와 이순이씨 사이의 6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용기는 세브란스의전을 나왔고 대한민국 의사면허 제4호다.

이여사 부친은 대한민국 의사 4호

이여사의 큰오빠 강호(康鎬·작고)씨는 경기고·서울상대를 졸업하고 한신증권 사장과 한국증권협회장을 지낸 금융통이다. 야당 지도자로서 DJ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해줬다고 한다. 강호씨는 4남1녀를 두었는데, 둘째아들이 형택(亨澤)씨다. 형택씨는 지난 19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의해 ‘DJ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던 인물이다. 서울사대부고와 한국외국어대학을 나와 당시 동화은행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현정부 들어 동화은행이 퇴출되면서 잠시 금융계를 떠났다가 1999년 1월7일 예금보험공사 전무로 ‘화려한 복귀’를 했다. 예금보험공사는 부실채권 정리 기구인 자산관리공사와 함께 금융구조조정에 따른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양대 금융감독기관이다. 주로 부실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상당수 금융기관의 대주주로 자리잡고 있다. 나라 예산보다 많은 공적자금 110조원 이상을 ‘주무르는’ 핵심 기관인 것이다. 형택씨가 막중한 자리인 예금보험공사 전무로 임명받은 뒤 세간의 뒷공론과 언론의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요컨대 퇴출은행 간부가 어떻게 구조조정과 개혁의 핵심기구에 앉느냐는 비판이었다.

강호씨의 장남 원택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석재공장과 화장품 원료를 만드는 화학회사를 경영했다. 3남 정택씨는 서울대 농대와 워싱턴주립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다 현재는 컨설팅회사 고문으로 있다. 4남 선택씨는 경기고·서울대 의대를 나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심장전문의로 개업했고, 외동딸 순원씨의 남편 김영찬씨는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둘째오빠 이경호(李經鎬)씨는 내과의사다. 서울 약수동에서 개원하기도 했다. DJ가 대통령후보로 나섰을 때인 1971년 주치의를 맡기도 했다. 1977년 사망했다. 경호씨는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다. 장남 영작(英作)씨가 현재 한양대 석좌교수. 경기고·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 오하이오주립대에서 통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최근까지 미 국립보건원 산하 ‘아동 및 인산생성연구소’ 통계학실장으로 근무했다. 여론조사가 본격 도입된 1987년 대선 때부터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막후에서 통계전문가로서 DJ를 보좌했다.

지난 3월 “1997년 대통령선거 전략보고서”라는 거창한 책을 펴내면서 지역연합론을 통한 정권재창출을 강조해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영작씨의 부인 정기란씨는 5선 국회의원 및 교통부 장관을 지낸 정헌주(鄭憲柱)씨의 딸이다. 차남 세작(世作)씨는 동성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현재 영동합동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의 선배로 절친한 사이다.

태호(台鎬)씨는 이희호 여사의 바로 위 오빠다. 일본대학 전기공학부를 나와 일본 여자와 결혼했다. 해방 후 경방·조선방직 등 국내 방직업체에서 공장장을 지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이여사의 바로 아래 여동생이 영호(英鎬)씨. 본명은 이광자. DJ가 끔찍이 아끼는 ‘처제’다. 야당 시절 DJ가 손님이 끊이지 않는 동교동(또는 일산) 자택이 번거롭다고 느껴질 때마다 찾는 이른바 ‘목동 안가’의 주인이다. 동교동 가신들은 ‘목동 이모네’라고 부른다. 주택은행 부장으로 정년퇴직한 남편과는 1992년 사별했고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외아들 김형기씨가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교수이고 며느리 허영숙씨는 청와대 여성정책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영호씨 밑으로 이여사의 남동생 셋이 더 있다. 상호(商鎬)씨는 고미술상이고, 철호(喆鎬)·성호(聖鎬)씨가 있다. 예비역 대령으로 예편해 부동산 임대업 등을 해온 철호씨는 5남1녀를 두었는데 아들 셋이 현직 대학교수이다. 막내 성호씨는 현재 조그만 해외여행 알선업체인 아펙스관광 대표인데, 6·25 직후 도미해 미국 에모리 대학을 졸업하고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성호씨는 미국 현지에서 제법 큰 여행사를 경영해 본 경험도 있는데, 야당 시절부터 DJ의 해외 일정을 주선하는가 하면 에모리 대학·조지 워싱턴 대학 동창 등 다양한 인맥을 동원해 막후에서 김대통령을 도왔다.

[출처] 歷代 대한민국 대통령의 宗親 그리고 친인척 大解剖|작성자 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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