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불상 (펌)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불상
동아사이언스
기사입력 2013년 10월 08일 11:07 | 최종편집 2013년 10월 09일 18:00
불교가 석가모니에 의해 탄생된 이후 거의 5백 년 간 무불상 시대로 있다가 간다라에서 불상이 처음으로 태어났다. 무불상 시대가 500년이나 이어진 것은 석가모니가 자신을 개인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간다라 지역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Ashoka the Great, 기원전 304~기원전 232)때이다. 그는 호불왕이라고 불릴 만큼 불교의 포교에 전념했는데 그 일환으로 수많은 불탑을 세웠다. 그런데 간다라 지역에 알렉산더 대왕 때 이주했던 그리스인들이 계속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문화의 도입을 받아드리고 있었다.
불교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와 그레코로만 식의 건축이나 조각을 견지한 것이다. 이른바 ‘불교화된 간다라 예술’로 불교사원에서 코린트식 기둥머리 등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그리스인이 모델이 된 불상도 만들었다. 이때의 불상은 그리스 조각과 다를 바 없었다. 여하튼 일단 불상이 만들어지자 불교도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는데 간다라에서 불교 예술이 다른 지역과는 달리 꽃피운 이유를 일본인 나가사와 가즈도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불상이 태어난 동기는 원천적으로 간다라에서 터전을 잡은 그리스인들의 생활 풍습 때문이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건설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그리스인들은 간다라 지방에 들어와서 불교와 접촉하자 신전과 조각이 없는 종교에 한없는 불만을 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인 조각가들은 새로운 종교를 위해 불상을 만들고 사원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최초의 불상은 완전한 의미의 붓다가 아니라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보리수 밑에 있는 것으로 보아 깨달음 직전에 있는) 보살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된다.
불교에서 불상이 없던 시대 뒤에 곧바로 불상의 조성에 이르지 못하고 보살상의 조성이라는 과도적 단계를 거쳤으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초기의 조각가들은 붓다를 나타내는 상을 창안하는 것보다는 세속의 세계와 인연을 맺고 있는 보살을 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부담이 적었다는 설명으로 이해될 수 있다.
불상이라는 개념이 태어나자 통례적인 불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대체로 기원후 1세기 중엽에는 이미 통례적인 불상의 형식이 태어났다.
간다라에서 창안된 완전한 의미의 불상은 커다란 천을 몸에 감싸 두르고 아무런 장신구도 걸치지 않은 차림이다. 당시 간다라를 포함한 인도에서 유행하던 불교 승려의 복장에 기초한 것으로 커다란 천은 승려들이 입는 세 가지 옷(三衣) 가운데 가장 격식을 갖추어 입는 대의(大衣)를 나타낸 것이다.
반면에 머리는 승려들처럼 삭발하지 않고 긴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서 상투를 틀었다. 이를 우슈나샤라고도 부르는데 붓다의 머리 모양이 이처럼 불교의 출가 수행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형상을 갖게 된 것은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대인상(大人相, 뛰어난 인간의 신체적 특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불상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1세기경인데 중국 불상은 처음 인도 양식으로 조성되다가 점차 중국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운강, 용문, 돈황 석굴의 초기 불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신라에서 처음에는 중국 불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조성되어 얼굴이 갸름하고 몸이 날씬한 중국 남북조시대 불상의 모습으로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체형과 얼굴, 복식 등이 변화하고 불상도 다양하게 조성되는데 재료와 방법도 여러 가지를 사용했다.
참고문헌 :
『李圭泰 코너』, 이규태, 조선일보사, 1985
『한국불교사개설』, 김영태, 경서원, 1986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나가사와 가즈도시, 민족사, 1990
『『한국불교미술의 형식』, 문명대, 한연, 1999
『간다라 미술』, 이주형, 사계절, 2003
『다르마로드』, 조병활, 작은박물관, 2005
『경주문화권』, 국민대학교국사학과, 역사공간, 2006
『세계인과 함께 보는 한국 문화 교과서』, 최준식, 소나무, 2011
네티즌 역사동우회, http://cafe.naver.com, 네티즌 애기맘마, http://cafe.naver.com
「나이테 이용해 국내 最古 나한상 찾았다」, 박태진, 더사이언스, 2013.03.29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2578
동아사이언스
기사입력 2013년 10월 08일 11:07 | 최종편집 2013년 10월 09일 18:00
불교가 석가모니에 의해 탄생된 이후 거의 5백 년 간 무불상 시대로 있다가 간다라에서 불상이 처음으로 태어났다. 무불상 시대가 500년이나 이어진 것은 석가모니가 자신을 개인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간다라 지역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Ashoka the Great, 기원전 304~기원전 232)때이다. 그는 호불왕이라고 불릴 만큼 불교의 포교에 전념했는데 그 일환으로 수많은 불탑을 세웠다. 그런데 간다라 지역에 알렉산더 대왕 때 이주했던 그리스인들이 계속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문화의 도입을 받아드리고 있었다.
불교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와 그레코로만 식의 건축이나 조각을 견지한 것이다. 이른바 ‘불교화된 간다라 예술’로 불교사원에서 코린트식 기둥머리 등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그리스인이 모델이 된 불상도 만들었다. 이때의 불상은 그리스 조각과 다를 바 없었다. 여하튼 일단 불상이 만들어지자 불교도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는데 간다라에서 불교 예술이 다른 지역과는 달리 꽃피운 이유를 일본인 나가사와 가즈도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불상이 태어난 동기는 원천적으로 간다라에서 터전을 잡은 그리스인들의 생활 풍습 때문이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건설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그리스인들은 간다라 지방에 들어와서 불교와 접촉하자 신전과 조각이 없는 종교에 한없는 불만을 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인 조각가들은 새로운 종교를 위해 불상을 만들고 사원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최초의 불상은 완전한 의미의 붓다가 아니라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보리수 밑에 있는 것으로 보아 깨달음 직전에 있는) 보살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된다.
불교에서 불상이 없던 시대 뒤에 곧바로 불상의 조성에 이르지 못하고 보살상의 조성이라는 과도적 단계를 거쳤으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초기의 조각가들은 붓다를 나타내는 상을 창안하는 것보다는 세속의 세계와 인연을 맺고 있는 보살을 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부담이 적었다는 설명으로 이해될 수 있다.
불상이라는 개념이 태어나자 통례적인 불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대체로 기원후 1세기 중엽에는 이미 통례적인 불상의 형식이 태어났다.
간다라에서 창안된 완전한 의미의 불상은 커다란 천을 몸에 감싸 두르고 아무런 장신구도 걸치지 않은 차림이다. 당시 간다라를 포함한 인도에서 유행하던 불교 승려의 복장에 기초한 것으로 커다란 천은 승려들이 입는 세 가지 옷(三衣) 가운데 가장 격식을 갖추어 입는 대의(大衣)를 나타낸 것이다.
반면에 머리는 승려들처럼 삭발하지 않고 긴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서 상투를 틀었다. 이를 우슈나샤라고도 부르는데 붓다의 머리 모양이 이처럼 불교의 출가 수행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형상을 갖게 된 것은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대인상(大人相, 뛰어난 인간의 신체적 특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불상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1세기경인데 중국 불상은 처음 인도 양식으로 조성되다가 점차 중국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운강, 용문, 돈황 석굴의 초기 불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신라에서 처음에는 중국 불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조성되어 얼굴이 갸름하고 몸이 날씬한 중국 남북조시대 불상의 모습으로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체형과 얼굴, 복식 등이 변화하고 불상도 다양하게 조성되는데 재료와 방법도 여러 가지를 사용했다.
참고문헌 :
『李圭泰 코너』, 이규태, 조선일보사, 1985
『한국불교사개설』, 김영태, 경서원, 1986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나가사와 가즈도시, 민족사, 1990
『『한국불교미술의 형식』, 문명대, 한연, 1999
『간다라 미술』, 이주형, 사계절, 2003
『다르마로드』, 조병활, 작은박물관, 2005
『경주문화권』, 국민대학교국사학과, 역사공간, 2006
『세계인과 함께 보는 한국 문화 교과서』, 최준식, 소나무, 2011
네티즌 역사동우회, http://cafe.naver.com, 네티즌 애기맘마, http://cafe.naver.com
「나이테 이용해 국내 最古 나한상 찾았다」, 박태진, 더사이언스, 2013.03.29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2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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