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t ist tot 신은 죽었다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했다] - 독일어로 Gott ist tot '신은 죽었다'라 했다.
-펌-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했다]는 서양 형이상학이라는 뜨겁고 견디기 어려운 갈증의 사막에 던져진 하나의 청 량제이다. 그 문체의 박진감 넘치는 남성다움과 그 속에 담긴 혁명적 사상은 이론적 꼼꼼함이나 숙고의 깊이를 넘어서서 인간의 의지에 호소하고 결단을 요구하는 시적으 로 표현된 선언과도 같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운명이나 유한성과 마 주하여 그것에 굴복하거나 하느님의 나라로 움추리며 도망가기를 거부하면서, 그것들 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극복하려는 니체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핵심 사상이 이 책 의 곳곳에 흐르고 있다.
이 책의 사상적 내용의 구상은 1881년 8월 니체가 루 살로메에게 버림받은 후 병고 와 고독을 달래 보려는 비통한 심정으로 유럽을 여행하던 중 실바프라나 호숫가의 한 숲속을 걷고 있을 때 피라밋처럼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 곁에서 번개같이 떠오른 영감 을 얻어 이루어졌다.
이로부터 18개월 후인 1883년 황홀한 도취감 속에서 마치 짜라 투스트라가 니체를 방문한 듯 10일 만에 이 책의 제1부가 완성되었다. 이 책의 제2부 와 제3부의 집필 기간도 10여 일에 불과하였으며 다만 제4부가 완성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면 이처럼 불꽃같이 완성된 이 책을 통해 니체가 말하고자 했 던 것을 무엇이었을까? 중세시대에 인간의 삶을 영위하고 생각하는 데 기준이 되는 것은 하느님이었다. 근대 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과거의 억압적 전통뿐만 아니라 신의 지위와 권으를 부정하고 오로지 인간 능력에 의존하려는 사태가 초래되었다.
자유로운 인간을 목표로 한 근대 성은 전통과 권위를 벗어나 인간의 이성에 의존한 합리성의 보편적 우위와 더불어 질서 잡힌 사회 체계의 구조를 성취하였다. 그러나 이런 자유의 획득과 동시에 인간적 가치나 존엄성이 무시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대상의 효율성과 유용성에 의해 판단 되는 사태가 나타난 것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 건으로 취급하는 비인간화된 기계적 태도와 체계가 곳곳에 스며들게 되었다. 이런 징 후를 날카롭게 예감하면서 니체는 이런 질식할 듯한 제도와 이성적 체계로부터의 해 방을 눈앞에 그리면서 참다운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는데, 그것이 상징적 표현이 바 로 이 책의 서문에서 짜라투스트라가 말하고 있는 "신은 죽었다" 이다.
왜 이렇게 인간은 자기를 가두어 놓은 '새장'을 만들게 된 것일까? 니체는 그것이 역사 적 기원을 감성적이고 의지적인 인간적 삶의 이쪽 세계를 가짜라고 멸시하고 거부하 면서 이데아의 저쪽 세계, 하느님의 나라만을 진짜로 생각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기독교주의자로 들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들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싸우는 전사 이며 이쪽 세계인 대지를 회복시키려는초인이다.
초인은 어떤 확고한 근대적 이성의 체계나 절대 진리의 숨막히는 새장에 갇혀 안주하는 자를 혐오하고, 그런 안일한 주의 를 박차고 뛰어나와 생성하고 운동하며 이행하고 변화무쌍한 살아있는 삶 자체로 뛰 어 드는 자이다. "먼저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그대는 새롭게 태어나기를 원할 수 있 단 말인가!"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적이고 맹목적인 삶의 의지가 아니라 운명이나 고통과 마주 쳐서 더욱 강해지려 하고 더욱 상상하려는 적극적인 힘에의 의지를 내세운다. 그것은 일면적이고 협소한 이성의 차원이아니라 우리의 모든 존재를 고통에 내맡기며 회피하 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여 더욱 강해질는 것이다.
이러한 힘에 대한 의지의 구현으로서 자기 긍정의 최고 형식이 바로 동일자의 영원한 회구라는 사상으로 이 책에서 표현되 고 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사상을 논리정연한 산문적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상의 고정된 실 체를 확인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아니 이런 실체의 확인은 니체의 사상과는 걸맞지 않는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해석의 무한한 다양성에 놓여 있는 이 책의 의미야 말로 니체가 목표로 한 것일지도 모르며 이 책이 영원하고 무진장한 사유의 보고임을 말해 주는 것일 수 있다. 니체는 흔히 실존주의자이며 해체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독해 하는 데 있어 확립된 철학사적 배경이 필연적으로 전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은 굳이 우리가 철학사적 배경의 맥락 위에 놓지 않고서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진 지하게 반성할 때 발생하는 근원적으로 인간에 던져진 물음에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이런 각자 나름대로의 해서의 광대한 자유만이 니체를 만나는 지평을 온 전하게 확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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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했다]는 서양 형이상학이라는 뜨겁고 견디기 어려운 갈증의 사막에 던져진 하나의 청 량제이다. 그 문체의 박진감 넘치는 남성다움과 그 속에 담긴 혁명적 사상은 이론적 꼼꼼함이나 숙고의 깊이를 넘어서서 인간의 의지에 호소하고 결단을 요구하는 시적으 로 표현된 선언과도 같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운명이나 유한성과 마 주하여 그것에 굴복하거나 하느님의 나라로 움추리며 도망가기를 거부하면서, 그것들 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극복하려는 니체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핵심 사상이 이 책 의 곳곳에 흐르고 있다.
이 책의 사상적 내용의 구상은 1881년 8월 니체가 루 살로메에게 버림받은 후 병고 와 고독을 달래 보려는 비통한 심정으로 유럽을 여행하던 중 실바프라나 호숫가의 한 숲속을 걷고 있을 때 피라밋처럼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 곁에서 번개같이 떠오른 영감 을 얻어 이루어졌다.
이로부터 18개월 후인 1883년 황홀한 도취감 속에서 마치 짜라 투스트라가 니체를 방문한 듯 10일 만에 이 책의 제1부가 완성되었다. 이 책의 제2부 와 제3부의 집필 기간도 10여 일에 불과하였으며 다만 제4부가 완성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면 이처럼 불꽃같이 완성된 이 책을 통해 니체가 말하고자 했 던 것을 무엇이었을까? 중세시대에 인간의 삶을 영위하고 생각하는 데 기준이 되는 것은 하느님이었다. 근대 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과거의 억압적 전통뿐만 아니라 신의 지위와 권으를 부정하고 오로지 인간 능력에 의존하려는 사태가 초래되었다.
자유로운 인간을 목표로 한 근대 성은 전통과 권위를 벗어나 인간의 이성에 의존한 합리성의 보편적 우위와 더불어 질서 잡힌 사회 체계의 구조를 성취하였다. 그러나 이런 자유의 획득과 동시에 인간적 가치나 존엄성이 무시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대상의 효율성과 유용성에 의해 판단 되는 사태가 나타난 것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 건으로 취급하는 비인간화된 기계적 태도와 체계가 곳곳에 스며들게 되었다. 이런 징 후를 날카롭게 예감하면서 니체는 이런 질식할 듯한 제도와 이성적 체계로부터의 해 방을 눈앞에 그리면서 참다운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는데, 그것이 상징적 표현이 바 로 이 책의 서문에서 짜라투스트라가 말하고 있는 "신은 죽었다" 이다.
왜 이렇게 인간은 자기를 가두어 놓은 '새장'을 만들게 된 것일까? 니체는 그것이 역사 적 기원을 감성적이고 의지적인 인간적 삶의 이쪽 세계를 가짜라고 멸시하고 거부하 면서 이데아의 저쪽 세계, 하느님의 나라만을 진짜로 생각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기독교주의자로 들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들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싸우는 전사 이며 이쪽 세계인 대지를 회복시키려는초인이다.
초인은 어떤 확고한 근대적 이성의 체계나 절대 진리의 숨막히는 새장에 갇혀 안주하는 자를 혐오하고, 그런 안일한 주의 를 박차고 뛰어나와 생성하고 운동하며 이행하고 변화무쌍한 살아있는 삶 자체로 뛰 어 드는 자이다. "먼저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그대는 새롭게 태어나기를 원할 수 있 단 말인가!"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적이고 맹목적인 삶의 의지가 아니라 운명이나 고통과 마주 쳐서 더욱 강해지려 하고 더욱 상상하려는 적극적인 힘에의 의지를 내세운다. 그것은 일면적이고 협소한 이성의 차원이아니라 우리의 모든 존재를 고통에 내맡기며 회피하 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여 더욱 강해질는 것이다.
이러한 힘에 대한 의지의 구현으로서 자기 긍정의 최고 형식이 바로 동일자의 영원한 회구라는 사상으로 이 책에서 표현되 고 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사상을 논리정연한 산문적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상의 고정된 실 체를 확인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아니 이런 실체의 확인은 니체의 사상과는 걸맞지 않는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해석의 무한한 다양성에 놓여 있는 이 책의 의미야 말로 니체가 목표로 한 것일지도 모르며 이 책이 영원하고 무진장한 사유의 보고임을 말해 주는 것일 수 있다. 니체는 흔히 실존주의자이며 해체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독해 하는 데 있어 확립된 철학사적 배경이 필연적으로 전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은 굳이 우리가 철학사적 배경의 맥락 위에 놓지 않고서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진 지하게 반성할 때 발생하는 근원적으로 인간에 던져진 물음에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이런 각자 나름대로의 해서의 광대한 자유만이 니체를 만나는 지평을 온 전하게 확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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