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것은 정당하다는 말인가?
2005년 3월 시네마현의 ‘독도조례’와 관련하여 뉴욕한인들은 25일경 항의 시위 및 규탄 성명서를 채택하였고 이러한 시위직후 김나현씨는 독도 스티커 를 자비로 제작하여 뉴욕 한인회를 방문, 홍보물배포의 필요성을 한인회측과 의논바 있으며 그와 관련한 한국일보기사.
성명서 일부
“뉴욕, 뉴저지 및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45만 한인동포들은 독도가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년) 이래 한반도의 부속도시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 사령부가 지령 677호를 통해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영구히 제외하고 당시 한반도의 합법 통치기구였던 미 군정에 반환한다고 명시한 국제법상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16일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안을 가결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 표명과 함께 분노한다. 특히 올해가 한일 우정의 해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역사학자들이 교과서 기술을 통해 한일 고대사를 왜곡하고 주한 일본대사 등 일본의 지도층 인사들이 도발적인 언동을 일삼음으로써 한국민 및 해외 한인동포들의 선린우호 의지를 해치고 있음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홍보물배포 관련’ 입력일자: 2005-04-26 (화)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독도라는 영문 이름 ‘DOK DO'와 태극기를 넣은 스티커를 자비로 제작, 배포하고 있는 김나현씨가 25일 한인회관을 방문, 뉴욕한인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김나현씨는 자신이 독도 스티커를 제작, 배포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뉴욕한인회를 비롯해 한인 동포사회에서도 독도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부탁했다. 뉴욕한인회는 26일 정기총회에 참석하는 한인들에게 독도 스티커를 나눠줄 예정이다.“ <장래준 기자>
-----------------------------------
‘K'씨는 2009년 6월 정도에 소위 뉴욕학부모협(최윤희)에 전화하여 당시에 벌이고 있던 ‘동해운동’에 참가의사를 밝혔다. 전화도 3번 정도 하였으나 한번 만 연결이 되었고 두 번째 부터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당시 플러싱 방송국은 아마도 하루에 10회 이상 방송을 통하여 ‘학부협’의 동해운동을 홍보하였고 일간지도 연일 관련 홍보물을 실었는데 그 기간이 약 4~5개월이나 지속되었다. (30년 이상 살지만 한 문제로 이렇게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일은 접하지 못하였다.)
당시 2세들의 동해 역사인식을 바르게 심어줘야 한다며 뉴욕 맨하탄 시디홀 부근의 교육관련 빌딩에서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대대적인 홍보로 많은 수의 동포들이 참가가 예상되어 버스 9대를 플러싱 특정 마켓앞에서 대기 시켜 집결지로 간다는 상황이었다. 이리하여 'K'씨도 행사 3일전에 전화하여 참가 의사를 밝혔는데 무슨 이유인지 행사 하루전날 전격적으로 취소가 되었다.
4~5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간지에 대대적이 홍보를 하였고 방송은 하루에 10회 넘게 홍보하던 그 ‘동해’운동이 무슨 이유로 행사 하루전날 취소가 되었는가 말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이에 대하여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 보지 못하었다.
그런데 나중에 흘러나오는 말은 “‘K'씨는 전화 연락도 하지 않았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 ‘K’씨의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니가 말이다. 이후 'K'씨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창조적인 안건들을 내어놓았는데 그것이 광복 66주년 되던 2011년도의 일이다. 당시 뉴욕 일본 영사관 앞에서의 시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평화존중 한국해'의 첫 선을 보였다.
이후 그 날의 시위의 현장 사진을 포함한 동영상 '한국해선포가독도를지킨'동 영상을 제작하여 Youtube에 올렸다. 그리고 댓글형식으로 “한국의 동해와 일본의 서해가 되는 중간 지점에 ’평화존중‘라인의 설치를 제안 합니다.”하여 사실상 '제2의 이승만라인'을 시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한 의미를 인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K'씨는 독자적으로 이러한 운동을 지속하는 가운데 2012년 4월 'IHO'회담이 끝난 직후 음성 파일을 제작하여 플러싱 방송국, 뉴욕한인회 등 동포사회에 배포 하였는데 그 음성파일의 중요 내용은 ‘동해/일본해’ 병기표기운동을 반대한다는 것과 운동의 방향이 ‘평존라인’의 설치로 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었다. (‘K'씨가 말을 하지 못한다고?)
2011년 6월 정도부터 일본의 자민련 소속 3명의 의원들이 울릉도를 시찰, 방문한다하여 법석을 떨었고 한편으로는 미국과 영국이 IHO가 설정한 ‘일본해’ 단독 표기를 지지하는 듯한 보도가 있어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K'씨는 뉴욕 특정단체장에 연락하여 비공식적으로 한번 만나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길 희망한다는 요지의 내용을 전달하였는데 바로 얼마후 그 단체장이 플러싱 라디오 방송국에 나와서 “우리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사안만 다루는 단체”라고 하여 사실상 만남을 거부하였다. 'K'씨는 참으로 실망 하였다 한다.
만나자고 하였을 당시 이미 ‘중간라인’과 관련한 안건이 준비되어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만나 주었다면 운동의 방향은 큰폭의 진전이 있었을 것이고 당시의 상황에서 한반도 물길 만들기에도 바람직한 영향이 있었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김나현씨가 동참 한다는 연락을 하니 메머드급 운동이 하루아침에 폭격을
맞은 듯 주저 앉아버린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 없
이 그냥 지나간다.
그 잘 생기고 유식한 동해/일본해 병기가 동포들에게 무슨 감동 주었나?
거듭 말하지만 “동해/일본해 병기”는 언발에 오줌누기와 같은 효과 밖에
없다. 이 언발에 오줌 누는 안건에 수억의 국민 성금과 천문학적인 지원금
이 들어갔지만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 없고 그저 힘없는 ‘K’에게만 온갖
잡탕적인 루머를 퍼트린다.
이러한 것은 정당하다는 말인가?
성명서 일부
“뉴욕, 뉴저지 및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45만 한인동포들은 독도가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년) 이래 한반도의 부속도시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 사령부가 지령 677호를 통해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영구히 제외하고 당시 한반도의 합법 통치기구였던 미 군정에 반환한다고 명시한 국제법상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16일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안을 가결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 표명과 함께 분노한다. 특히 올해가 한일 우정의 해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역사학자들이 교과서 기술을 통해 한일 고대사를 왜곡하고 주한 일본대사 등 일본의 지도층 인사들이 도발적인 언동을 일삼음으로써 한국민 및 해외 한인동포들의 선린우호 의지를 해치고 있음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홍보물배포 관련’ 입력일자: 2005-04-26 (화)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독도라는 영문 이름 ‘DOK DO'와 태극기를 넣은 스티커를 자비로 제작, 배포하고 있는 김나현씨가 25일 한인회관을 방문, 뉴욕한인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김나현씨는 자신이 독도 스티커를 제작, 배포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뉴욕한인회를 비롯해 한인 동포사회에서도 독도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부탁했다. 뉴욕한인회는 26일 정기총회에 참석하는 한인들에게 독도 스티커를 나눠줄 예정이다.“ <장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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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는 2009년 6월 정도에 소위 뉴욕학부모협(최윤희)에 전화하여 당시에 벌이고 있던 ‘동해운동’에 참가의사를 밝혔다. 전화도 3번 정도 하였으나 한번 만 연결이 되었고 두 번째 부터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당시 플러싱 방송국은 아마도 하루에 10회 이상 방송을 통하여 ‘학부협’의 동해운동을 홍보하였고 일간지도 연일 관련 홍보물을 실었는데 그 기간이 약 4~5개월이나 지속되었다. (30년 이상 살지만 한 문제로 이렇게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일은 접하지 못하였다.)
당시 2세들의 동해 역사인식을 바르게 심어줘야 한다며 뉴욕 맨하탄 시디홀 부근의 교육관련 빌딩에서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대대적인 홍보로 많은 수의 동포들이 참가가 예상되어 버스 9대를 플러싱 특정 마켓앞에서 대기 시켜 집결지로 간다는 상황이었다. 이리하여 'K'씨도 행사 3일전에 전화하여 참가 의사를 밝혔는데 무슨 이유인지 행사 하루전날 전격적으로 취소가 되었다.
4~5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간지에 대대적이 홍보를 하였고 방송은 하루에 10회 넘게 홍보하던 그 ‘동해’운동이 무슨 이유로 행사 하루전날 취소가 되었는가 말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이에 대하여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 보지 못하었다.
그런데 나중에 흘러나오는 말은 “‘K'씨는 전화 연락도 하지 않았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 ‘K’씨의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니가 말이다. 이후 'K'씨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창조적인 안건들을 내어놓았는데 그것이 광복 66주년 되던 2011년도의 일이다. 당시 뉴욕 일본 영사관 앞에서의 시위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평화존중 한국해'의 첫 선을 보였다.
이후 그 날의 시위의 현장 사진을 포함한 동영상 '한국해선포가독도를지킨'동 영상을 제작하여 Youtube에 올렸다. 그리고 댓글형식으로 “한국의 동해와 일본의 서해가 되는 중간 지점에 ’평화존중‘라인의 설치를 제안 합니다.”하여 사실상 '제2의 이승만라인'을 시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한 의미를 인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K'씨는 독자적으로 이러한 운동을 지속하는 가운데 2012년 4월 'IHO'회담이 끝난 직후 음성 파일을 제작하여 플러싱 방송국, 뉴욕한인회 등 동포사회에 배포 하였는데 그 음성파일의 중요 내용은 ‘동해/일본해’ 병기표기운동을 반대한다는 것과 운동의 방향이 ‘평존라인’의 설치로 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었다. (‘K'씨가 말을 하지 못한다고?)
2011년 6월 정도부터 일본의 자민련 소속 3명의 의원들이 울릉도를 시찰, 방문한다하여 법석을 떨었고 한편으로는 미국과 영국이 IHO가 설정한 ‘일본해’ 단독 표기를 지지하는 듯한 보도가 있어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K'씨는 뉴욕 특정단체장에 연락하여 비공식적으로 한번 만나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길 희망한다는 요지의 내용을 전달하였는데 바로 얼마후 그 단체장이 플러싱 라디오 방송국에 나와서 “우리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사안만 다루는 단체”라고 하여 사실상 만남을 거부하였다. 'K'씨는 참으로 실망 하였다 한다.
만나자고 하였을 당시 이미 ‘중간라인’과 관련한 안건이 준비되어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만나 주었다면 운동의 방향은 큰폭의 진전이 있었을 것이고 당시의 상황에서 한반도 물길 만들기에도 바람직한 영향이 있었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김나현씨가 동참 한다는 연락을 하니 메머드급 운동이 하루아침에 폭격을
맞은 듯 주저 앉아버린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 없
이 그냥 지나간다.
그 잘 생기고 유식한 동해/일본해 병기가 동포들에게 무슨 감동 주었나?
거듭 말하지만 “동해/일본해 병기”는 언발에 오줌누기와 같은 효과 밖에
없다. 이 언발에 오줌 누는 안건에 수억의 국민 성금과 천문학적인 지원금
이 들어갔지만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 없고 그저 힘없는 ‘K’에게만 온갖
잡탕적인 루머를 퍼트린다.
이러한 것은 정당하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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