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 올시다. 양들의 침묵
보라보라님의 글을 읽고
다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양의 침묵의 내용은
이미 다수의 횡포와 투표독재의 허울로
구시대적 정신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의 차이를 서로 존중하며
합치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로마가 시저를 경계한게 바로 그의 독재다.
히틀러와 같은 악마를 생산한게
바로 투표에 의한 거짓 민주주의였다.
이에 많은 헌법학자글이 개선책을 내놨다.
양들의 침묵글을 아래 올린다.
양들의 침묵
05/20/2015 19:24
조회 24 | 추천 2 | 스크랩 0
IP 70.xx.xx.191
http://blog.koreadaily.com/deca75/874143 http://blog.koreadaily.com/images/list/ico_copy.gif
"양들의 침묵"
중앙블로그의 일부 블로거가 국민 과반수가 선택한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니 닭까끼 마사오의 딸이니' 뭐니 비아냥거리고 부정하는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함량 미달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의사결정을 토론이나 마라톤 협상이 아니라 투표로 한다. '의사결정은 표결로 한다.' 이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원칙이란 헌법, 법률, 도덕률보다 상위의 개념이나 가치로 절대 바꿀수 없다. '투표로 다수가 따르는 쪽으로 결정하고 소수는 이에 일체 군소리않는다‘ ..이게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민주주의에서 대화나 토론을 하는 이유는 투표에서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누가 더 인간적인가? 누가 더 선한가? 누가 정의인가? 누가 더 도덕적인가? ..등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역사가 아직 일천한 한국사회에선 중세나 유교 세대에서나 통할법한 이런 비현실적인 가치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고 시대착오적인 이런 자신을 자칭 진보라고 부른다.
기대할 수 없는 것에 기초하여 만든 제도나 정책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만약에 민주주의가 ‘타협의 원칙’이나 ‘ ‘소수 배려의 원칙’ 등에 기반하고 있는 제도라면 지금까지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 사회, 이곳 중앙 블로그에서의 모든 논쟁이나 갈등은 ‘누가 옳은가’에서 비롯된다. 갑이 옳으냐 을이 옳으냐를 놓고 말이나 논리로 결판을 내자고 들면 필경 난장판으로 끝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누가 더 정의롭고 선이며 옳은가’를 따지지 않는다. ‘누구의 의견이 더 논리적인가’ 도 따지지 않는다. 다만 단 하나 ‘누가 다수인가’만 묻는다.
2차대전 당시 독일 국민의 다수가 나치즘을 선택했다. 때문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의회에서 다수당이 되었고 그 당수인 히틀러가 수상이 되었다. 히틀러의 통치는 불법적이고 폭력적이었지만 나치의 집권은 합법적이었다. 독일국민은 이 결정에 대해 혹독한 대가와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약 천만명의 독일인이 죽었고 독일땅 거의가 초토로 변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한 민주주의 체제였기 때문에 나치의 집권을 막을 수 없었다. 이게 민주주의다. 나치즘이 옳고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독일 국민의 다수가 원했기 때문에 집권했던 것이고 그 책임은 독일 국민이 지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분명히 옳지 않을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다수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옳다는 이유로 결정을 하는 제도가 아니다. 단지 다수이기 때문에 결정하는 제도이므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옳다는 가정을 하지 않는다. 오랜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다수결보다 더 공평하고 공정하고 나은 의사결정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는 ’대화나 타협의 원칙‘이란 없다.
‘다수결의 원칙’은 오랜 인류 역사에 었었던 모든 정치제도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놓고 1년여 이상 정치적 기동을 하는 유가족이나 좌파 세력을 비난하는 쪽을 향해 '사망자가 네 자식이라면 감히 그런 말..' 운운하는 진보의 유아적 감성으로는 감히 흠집을 낼 수 없는 불변의 원칙이다.
공공정책이나 정치적 이념, 제반의 사회적 이슈 등에 정답이 확실하다면 민주주의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가 정답이라고 믿기 때문에 인민 민주주의를 단지 95% 상회하는 찬성율을 찍어내는 거수기로서만 활용했다. 북조선노동당 흉내내며 일제히 당원증 치켜드는 통진당의 대의원 전체회의 모습 보면 입맛이 씁쓰름해지곤 했다. 이런 시대에 역행하는 한심한 정당이 민의에 의해 퇴출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 중 또 하나는 다원주의다. 이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공산주의식 거수기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 서구식 발전된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한 국가 대부분의 정책이나 사회적 담론에서 정답이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중요해진다. 내 의견도 그저 나의 의견일 뿐이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의견을 단순히 묵살해버릴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절차를 거쳐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근데 한국의 좌파나 진보들은 여전히 거수기 민주주의, 공산주의식 인민민주주의를 추종하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
이들은 그냥 자신들이 보기에 정답같으면 그게 바로 정답으로 확신한다. 주관적 확신과 객관적 진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자신에게 아무리 진리 같아도 남의 입장에서는 거짓일 수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왜 너는 이 확실한 정의, 진리를 부정하지? 넌 혹시 국민의 적이 아닌가? 악의 화신이 아닌가?' 이런 식의 유아적, 독선적인 발상에 빠져 논리를 전개한다.
정치나 일상에서 진리, 정의, 도덕, 양심을 입에 달고 다니는 자는 항상 민주사회 공공의 적이다. 주위에 이런 사람 있다면 가능한 멀리하라. 자기 입장도 하나의 의견일 뿐이지 자신이 뭐라고 감히 진리, 정의를 주장하는가.
중앙 블로그의 일부 진보 좌파들은 민주주의 운운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표현의자유, 사상의 자유가 없는 전체주의로 보인다.
비유하자면 나치 치하의 독일 같은 상황으로 블방의 좌파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실은 전체주의 그 자체란 것이다.
선전, 선동은 소수가 다수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도구이다. 이명박 정권 초기, 광우병 광란이 있었다.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뇌 송송 구멍 탁탁 난다는 선동에 휩쓸려 나치식 집단 최면에 빠져 광인병에 걸린 국민의 모습을 보았다. 오랜 폭력과 소요로 유무형의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치렀다. 안타깝지만 이것도 민주주의의 일면이다.
적진에서 오히려 우군에게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을 흔히 x맨이라 부른다. 지난 총선,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정권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정희, 김용민의 활약이 그러했다. 레닌이 말한 쓸모있는 바보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곳 블로그에서도 연일 황당한 소설을 엮은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진리라 신봉하고 연일 퍼오는 수고를 하는 x맨들이 있다. 이에 대항해 조중동이나 우파 매체의 글을 퍼오는 보수 x맨들도 있다.
선전, 선동은 대게 소수의 몫이다. 합리적 보수는 이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적 안목이나 시국관을 지키면 될 뿐 같이 뒤엉켜 욕설이나 인신 공격으로 이전투구판에 발 담그지 말길 바란다.
연일 포스팅되는 깡통 진보의 고성방가나 어설픈 잡설에 다소 귀가 시끄럽거나 눈이 불편해도 보수가 정권을 다시 잡는데 도움을 주는 감사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욕이나 비아냥보다는 가끔 격려나 감사의 인삿말을 전하라. 그러면 고단한 이민생활에 지친 심신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이곳 블로그가 상호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정과 사랑이 넘치는 훈훈한 공간으로 바뀌지 않을까 한다.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이게 진실이다..이게 정의다..' 라고 선동하려는 양치기 소년들이 대다수 양들의 침묵이 무섭다는걸 깨닫지 못하는 한 자신들이 바라는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허튼 입놀림이 아니라 오직 표로서만 심판한다.
다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양의 침묵의 내용은
이미 다수의 횡포와 투표독재의 허울로
구시대적 정신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의 차이를 서로 존중하며
합치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로마가 시저를 경계한게 바로 그의 독재다.
히틀러와 같은 악마를 생산한게
바로 투표에 의한 거짓 민주주의였다.
이에 많은 헌법학자글이 개선책을 내놨다.
양들의 침묵글을 아래 올린다.
양들의 침묵
05/20/2015 19:24
조회 24 | 추천 2 | 스크랩 0
IP 70.xx.xx.191
http://blog.koreadaily.com/deca75/874143 http://blog.koreadaily.com/images/list/ico_copy.gif
"양들의 침묵"
중앙블로그의 일부 블로거가 국민 과반수가 선택한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니 닭까끼 마사오의 딸이니' 뭐니 비아냥거리고 부정하는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함량 미달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의사결정을 토론이나 마라톤 협상이 아니라 투표로 한다. '의사결정은 표결로 한다.' 이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원칙이란 헌법, 법률, 도덕률보다 상위의 개념이나 가치로 절대 바꿀수 없다. '투표로 다수가 따르는 쪽으로 결정하고 소수는 이에 일체 군소리않는다‘ ..이게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민주주의에서 대화나 토론을 하는 이유는 투표에서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누가 더 인간적인가? 누가 더 선한가? 누가 정의인가? 누가 더 도덕적인가? ..등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역사가 아직 일천한 한국사회에선 중세나 유교 세대에서나 통할법한 이런 비현실적인 가치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고 시대착오적인 이런 자신을 자칭 진보라고 부른다.
기대할 수 없는 것에 기초하여 만든 제도나 정책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만약에 민주주의가 ‘타협의 원칙’이나 ‘ ‘소수 배려의 원칙’ 등에 기반하고 있는 제도라면 지금까지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 사회, 이곳 중앙 블로그에서의 모든 논쟁이나 갈등은 ‘누가 옳은가’에서 비롯된다. 갑이 옳으냐 을이 옳으냐를 놓고 말이나 논리로 결판을 내자고 들면 필경 난장판으로 끝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누가 더 정의롭고 선이며 옳은가’를 따지지 않는다. ‘누구의 의견이 더 논리적인가’ 도 따지지 않는다. 다만 단 하나 ‘누가 다수인가’만 묻는다.
2차대전 당시 독일 국민의 다수가 나치즘을 선택했다. 때문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의회에서 다수당이 되었고 그 당수인 히틀러가 수상이 되었다. 히틀러의 통치는 불법적이고 폭력적이었지만 나치의 집권은 합법적이었다. 독일국민은 이 결정에 대해 혹독한 대가와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약 천만명의 독일인이 죽었고 독일땅 거의가 초토로 변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한 민주주의 체제였기 때문에 나치의 집권을 막을 수 없었다. 이게 민주주의다. 나치즘이 옳고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독일 국민의 다수가 원했기 때문에 집권했던 것이고 그 책임은 독일 국민이 지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분명히 옳지 않을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다수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옳다는 이유로 결정을 하는 제도가 아니다. 단지 다수이기 때문에 결정하는 제도이므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옳다는 가정을 하지 않는다. 오랜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다수결보다 더 공평하고 공정하고 나은 의사결정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는 ’대화나 타협의 원칙‘이란 없다.
‘다수결의 원칙’은 오랜 인류 역사에 었었던 모든 정치제도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놓고 1년여 이상 정치적 기동을 하는 유가족이나 좌파 세력을 비난하는 쪽을 향해 '사망자가 네 자식이라면 감히 그런 말..' 운운하는 진보의 유아적 감성으로는 감히 흠집을 낼 수 없는 불변의 원칙이다.
공공정책이나 정치적 이념, 제반의 사회적 이슈 등에 정답이 확실하다면 민주주의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가 정답이라고 믿기 때문에 인민 민주주의를 단지 95% 상회하는 찬성율을 찍어내는 거수기로서만 활용했다. 북조선노동당 흉내내며 일제히 당원증 치켜드는 통진당의 대의원 전체회의 모습 보면 입맛이 씁쓰름해지곤 했다. 이런 시대에 역행하는 한심한 정당이 민의에 의해 퇴출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 중 또 하나는 다원주의다. 이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공산주의식 거수기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 서구식 발전된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한 국가 대부분의 정책이나 사회적 담론에서 정답이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중요해진다. 내 의견도 그저 나의 의견일 뿐이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의견을 단순히 묵살해버릴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절차를 거쳐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근데 한국의 좌파나 진보들은 여전히 거수기 민주주의, 공산주의식 인민민주주의를 추종하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
이들은 그냥 자신들이 보기에 정답같으면 그게 바로 정답으로 확신한다. 주관적 확신과 객관적 진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자신에게 아무리 진리 같아도 남의 입장에서는 거짓일 수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왜 너는 이 확실한 정의, 진리를 부정하지? 넌 혹시 국민의 적이 아닌가? 악의 화신이 아닌가?' 이런 식의 유아적, 독선적인 발상에 빠져 논리를 전개한다.
정치나 일상에서 진리, 정의, 도덕, 양심을 입에 달고 다니는 자는 항상 민주사회 공공의 적이다. 주위에 이런 사람 있다면 가능한 멀리하라. 자기 입장도 하나의 의견일 뿐이지 자신이 뭐라고 감히 진리, 정의를 주장하는가.
중앙 블로그의 일부 진보 좌파들은 민주주의 운운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표현의자유, 사상의 자유가 없는 전체주의로 보인다.
비유하자면 나치 치하의 독일 같은 상황으로 블방의 좌파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실은 전체주의 그 자체란 것이다.
선전, 선동은 소수가 다수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도구이다. 이명박 정권 초기, 광우병 광란이 있었다.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뇌 송송 구멍 탁탁 난다는 선동에 휩쓸려 나치식 집단 최면에 빠져 광인병에 걸린 국민의 모습을 보았다. 오랜 폭력과 소요로 유무형의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치렀다. 안타깝지만 이것도 민주주의의 일면이다.
적진에서 오히려 우군에게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을 흔히 x맨이라 부른다. 지난 총선,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정권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정희, 김용민의 활약이 그러했다. 레닌이 말한 쓸모있는 바보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곳 블로그에서도 연일 황당한 소설을 엮은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진리라 신봉하고 연일 퍼오는 수고를 하는 x맨들이 있다. 이에 대항해 조중동이나 우파 매체의 글을 퍼오는 보수 x맨들도 있다.
선전, 선동은 대게 소수의 몫이다. 합리적 보수는 이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적 안목이나 시국관을 지키면 될 뿐 같이 뒤엉켜 욕설이나 인신 공격으로 이전투구판에 발 담그지 말길 바란다.
연일 포스팅되는 깡통 진보의 고성방가나 어설픈 잡설에 다소 귀가 시끄럽거나 눈이 불편해도 보수가 정권을 다시 잡는데 도움을 주는 감사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욕이나 비아냥보다는 가끔 격려나 감사의 인삿말을 전하라. 그러면 고단한 이민생활에 지친 심신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이곳 블로그가 상호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정과 사랑이 넘치는 훈훈한 공간으로 바뀌지 않을까 한다.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이게 진실이다..이게 정의다..' 라고 선동하려는 양치기 소년들이 대다수 양들의 침묵이 무섭다는걸 깨닫지 못하는 한 자신들이 바라는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허튼 입놀림이 아니라 오직 표로서만 심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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