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만 잘 살면 무슨 재미...(퍼온 글)
인물 오디세이] 낯선 엘살바도르서 거상 꿈 이룬 '억척이'
'자랑스런 한국인상' 카이사(CAISA)그룹 하경서 대표
"혼자만 배 부른 장사는 오래 못가
종업원과 이익 나눠야 진정한 사업"
이런 문제적 남자를 봤나.
늘 남들이 확신하는 길이 아닌 그 반대 방향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려가는 이 남자,엘살바도르의 한인 거상 카이사(CAISA)그룹 하경서(미국명 데이비드 하.52) 대표다. 그의 첫인상은 대표라는 직함이 어색하리만치 개구쟁이 소년 같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금세 그 첫인상은 뇌리에서 사라진다. 천진난만한 소년 같다고 느껴지는 찰나, 안경 너머 빛나는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간의 이력에 대해, 그의 집념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를 건네 오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미국 사업체를 접고 남들 말리는 엘살바도르 행을 선택한지 어느새 12년 세월. 그 짧다면 짧은 시간 속에서 현지에서도 알아주는 기업체를 일군 하 대표는 지난 8일 미주동포후원재단(이사장 김재권)이 선정한 '제 10회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상했다. 수상 일주일 전 업무 차 LA를 방문한 하경서 대표를 한인타운에서 만나봤다.
#가난했지만 치열했던 청춘
3형제 중 장남인 그는 1973년 열 살 때 모친과 함께 LA에 왔다. 특별한 기술도, 밑천도 없었던 모친은 무작정 봉제공장에 취직해 허드렛일부터 시작했고 일요일에도 일감을 집에 가져오는 어머니를 도와 그렇게 그는 봉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그의 모친은 5년 만에 봉제공장 하나를 차릴 수 있게 됐다. 말이 봉제공장이지 방 하나에 중고기계 몇 대 들여놓고 직원도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만 하는 고단한 노동이었다. 당시 하 대표는 어머니를 도와 일감도 받아오고 배달도 하면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주경야독 끝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중소 규모의 봉제 공장 세 곳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치열한 청춘이었다. 그가 엘살바도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로 미국 봉제업이 위기를 맞게 되자 1994년 저렴한 인건비와 면세 혜택이 있는 엘살바도르에 공장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뒤 10여 년은 LA와 엘살바도르를 오가며 사업을 하다 2003년엔 아예 LA쪽 사업을 접고 가족들을 데리고 엘살바도르로 향했다.
#엘살바도르의 한인 거상
현재 카이사그룹 내 사업체는 총 16개로 엘살바도르 뿐 아니라 LA,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까지 진출해 있으며 연 매출 3억3000만 달러에 종업원 수만도 6000여명에 달한다. 주 종목은 봉제업이지만 그 외에도 커피농장, 패키징 제조업, 건설업, 부동산, 리조트 등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많은 사업 중 지금의 그를 있게 한 효자 업체는 단연 텍스옵스(TexOps). 텍스옵스는 세계 상위 2% 수준의 기계 설비와 제작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스포츠웨어 전문 제작 업체다. 현재 이 곳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핫한 스포츠 브랜드인 룰루레몬(Lululemon)을 비롯 리복, 이탈리아 대표 바이크 전문 브랜드 카스텔리(Castelli) 등 세계 굴지의 스포츠웨어를 제작하고 있다. 최근 그는 지금껏 쌓아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 론칭을 앞두고 있을 만큼 스포츠웨어 제작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라 자부한다.
이처럼 엘살바도르 진출 20년이 채 안 돼 한인 거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결로 그는 주저 없이 꾸준한 재투자를 꼽았다.
"매년 총수익의 3% 이상은 꼭 기계 설비와 종업원 교육에 재투자합니다. 덕분에 봉제공장의 경우 최첨단 설비와 테크놀로지를 어느 업체보다 빠르게 도입해 세계 최고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죠. 또 직원들 교육을 위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당장은 돈이 들어가는 것 같아도 결국 그 투자는 배반하지 않고 다시 돌아오니까요."
그렇다고 그의 사업이 늘 평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귀가 얇아서인지(웃음) 사기도 잘 당하고 덜컥 사업체를 인수했다 문제가 생겨 크게 고생한 적도 있었죠. 결국 사업가란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렇게 적잖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사업이란 사람 장사죠. 사기 당했다고 사람을 믿지 못하면 사업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문제를 두려워해 판을 벌이지 못하고 주춤하기보다는 일단은 저지르고 보는 거죠. 그렇게 실수를 통해 교훈을 배우는 것이고 그 경험이야 말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최고의 자산인 셈이죠."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엘살바도르에서 그가 얻은 것은 단순히 사업가로서의 성공만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작정하고 벌이는 종업원 복지 확대와 사회 환원 사업으로 인해 그는 엘살바도르 현지인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텍스옵스에는 현지에서도 보기 드문 직원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고 영어, 컴퓨터, 요가 클래스 등도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 엘살바도르 사이클링 국가대표 선수들 중 일부를 선발, 훈련 지원과 월급까지 제공하며 후원하고 있는 중이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사업체와 별도로 10대 미혼모들을 위한 셸터를 건립하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직업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그의 사업체는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구직자들에게 인기 사업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일까. 서바이벌만도 힘든 낯설고 물선 타국에서 현지인들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미는 이 이방인의 속내는. 이 속물적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했다.
"혼자만 잘 살면 뭐 하겠어요? 돈 많다고 세끼 먹을 거 네 끼 먹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옷 더 걸쳐 입을 것도 아니고. 결국 직원들과 함께 성장해야만 기업이 건강하고 장수 할 수 있죠. 어차피 직원들과 오래도록 기업을 하고 싶다는 게 제 꿈인 이상 직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혜택을 주기위한 궁리는 계속 될 것입니다."
이 행복한 궁리 덕분에 언젠가부터 그에게 사업은 골치 아픈 밥벌이가 아닌 즐거운 놀이며 취미가 됐단다. 배부른 허세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단언컨대 그의 놀이는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험난한 '맨땅에 헤딩'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남들이 말리는 그 길을 찾아 오늘도 지도 밖으로 행군 중이다.
이주현 객원기자
'자랑스런 한국인상' 카이사(CAISA)그룹 하경서 대표
"혼자만 배 부른 장사는 오래 못가
종업원과 이익 나눠야 진정한 사업"
이런 문제적 남자를 봤나.
늘 남들이 확신하는 길이 아닌 그 반대 방향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려가는 이 남자,엘살바도르의 한인 거상 카이사(CAISA)그룹 하경서(미국명 데이비드 하.52) 대표다. 그의 첫인상은 대표라는 직함이 어색하리만치 개구쟁이 소년 같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금세 그 첫인상은 뇌리에서 사라진다. 천진난만한 소년 같다고 느껴지는 찰나, 안경 너머 빛나는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간의 이력에 대해, 그의 집념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를 건네 오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미국 사업체를 접고 남들 말리는 엘살바도르 행을 선택한지 어느새 12년 세월. 그 짧다면 짧은 시간 속에서 현지에서도 알아주는 기업체를 일군 하 대표는 지난 8일 미주동포후원재단(이사장 김재권)이 선정한 '제 10회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상했다. 수상 일주일 전 업무 차 LA를 방문한 하경서 대표를 한인타운에서 만나봤다.
#가난했지만 치열했던 청춘
3형제 중 장남인 그는 1973년 열 살 때 모친과 함께 LA에 왔다. 특별한 기술도, 밑천도 없었던 모친은 무작정 봉제공장에 취직해 허드렛일부터 시작했고 일요일에도 일감을 집에 가져오는 어머니를 도와 그렇게 그는 봉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그의 모친은 5년 만에 봉제공장 하나를 차릴 수 있게 됐다. 말이 봉제공장이지 방 하나에 중고기계 몇 대 들여놓고 직원도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만 하는 고단한 노동이었다. 당시 하 대표는 어머니를 도와 일감도 받아오고 배달도 하면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주경야독 끝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중소 규모의 봉제 공장 세 곳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치열한 청춘이었다. 그가 엘살바도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로 미국 봉제업이 위기를 맞게 되자 1994년 저렴한 인건비와 면세 혜택이 있는 엘살바도르에 공장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뒤 10여 년은 LA와 엘살바도르를 오가며 사업을 하다 2003년엔 아예 LA쪽 사업을 접고 가족들을 데리고 엘살바도르로 향했다.
#엘살바도르의 한인 거상
현재 카이사그룹 내 사업체는 총 16개로 엘살바도르 뿐 아니라 LA,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까지 진출해 있으며 연 매출 3억3000만 달러에 종업원 수만도 6000여명에 달한다. 주 종목은 봉제업이지만 그 외에도 커피농장, 패키징 제조업, 건설업, 부동산, 리조트 등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많은 사업 중 지금의 그를 있게 한 효자 업체는 단연 텍스옵스(TexOps). 텍스옵스는 세계 상위 2% 수준의 기계 설비와 제작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스포츠웨어 전문 제작 업체다. 현재 이 곳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핫한 스포츠 브랜드인 룰루레몬(Lululemon)을 비롯 리복, 이탈리아 대표 바이크 전문 브랜드 카스텔리(Castelli) 등 세계 굴지의 스포츠웨어를 제작하고 있다. 최근 그는 지금껏 쌓아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 론칭을 앞두고 있을 만큼 스포츠웨어 제작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라 자부한다.
이처럼 엘살바도르 진출 20년이 채 안 돼 한인 거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결로 그는 주저 없이 꾸준한 재투자를 꼽았다.
"매년 총수익의 3% 이상은 꼭 기계 설비와 종업원 교육에 재투자합니다. 덕분에 봉제공장의 경우 최첨단 설비와 테크놀로지를 어느 업체보다 빠르게 도입해 세계 최고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죠. 또 직원들 교육을 위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당장은 돈이 들어가는 것 같아도 결국 그 투자는 배반하지 않고 다시 돌아오니까요."
그렇다고 그의 사업이 늘 평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었다. "귀가 얇아서인지(웃음) 사기도 잘 당하고 덜컥 사업체를 인수했다 문제가 생겨 크게 고생한 적도 있었죠. 결국 사업가란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렇게 적잖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사업이란 사람 장사죠. 사기 당했다고 사람을 믿지 못하면 사업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문제를 두려워해 판을 벌이지 못하고 주춤하기보다는 일단은 저지르고 보는 거죠. 그렇게 실수를 통해 교훈을 배우는 것이고 그 경험이야 말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최고의 자산인 셈이죠."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엘살바도르에서 그가 얻은 것은 단순히 사업가로서의 성공만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작정하고 벌이는 종업원 복지 확대와 사회 환원 사업으로 인해 그는 엘살바도르 현지인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텍스옵스에는 현지에서도 보기 드문 직원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고 영어, 컴퓨터, 요가 클래스 등도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 엘살바도르 사이클링 국가대표 선수들 중 일부를 선발, 훈련 지원과 월급까지 제공하며 후원하고 있는 중이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사업체와 별도로 10대 미혼모들을 위한 셸터를 건립하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직업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그의 사업체는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구직자들에게 인기 사업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일까. 서바이벌만도 힘든 낯설고 물선 타국에서 현지인들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미는 이 이방인의 속내는. 이 속물적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했다.
"혼자만 잘 살면 뭐 하겠어요? 돈 많다고 세끼 먹을 거 네 끼 먹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옷 더 걸쳐 입을 것도 아니고. 결국 직원들과 함께 성장해야만 기업이 건강하고 장수 할 수 있죠. 어차피 직원들과 오래도록 기업을 하고 싶다는 게 제 꿈인 이상 직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혜택을 주기위한 궁리는 계속 될 것입니다."
이 행복한 궁리 덕분에 언젠가부터 그에게 사업은 골치 아픈 밥벌이가 아닌 즐거운 놀이며 취미가 됐단다. 배부른 허세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단언컨대 그의 놀이는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험난한 '맨땅에 헤딩'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남들이 말리는 그 길을 찾아 오늘도 지도 밖으로 행군 중이다.
이주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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