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국제화’ 하려다… 투자 심리 ‘폭삭’(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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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국제화’ 하려다… 투자 심리 ‘폭삭’
중국 위안화 가치 폭락은 중국 정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해 반시장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결과일까? IMF와 무디스 그리고 <이코노미스트>의 시각은 다르다. 이번 일이 오히려 외환시장 자유화의 결과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415호] 승인 2015.08.28 01:40:49
경제
‘위안화 국제화’ 하려다… 투자 심리 ‘폭삭’
중국, ‘통화 바스켓’ 골인할 수 있을까?
8월11일 중국 위안화 가치(미국 달러화 대비)가 1.9% 폭락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큰 폭의 가치 하락이다. 다음 날(1.9%)과 그다음 날(1.1%)까지 겨우 3일 동안 위안화 가치는 모두 4.66% 떨어졌다. 전 세계 유수 언론 가운데 상당수는 일제히 ‘인민은행(중국의 중앙은행)이 수출 실적을 높이기 위해 위안화 가치를 절하시켰다’며 중국 정부 때리기에 나섰다. 근거를 갖춘 혐의다. 중국의 7월 수출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9%나 떨어졌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 가치 절하의 동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는 반응들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 자유화’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사실상 환영 성명을 냈다. “중국의 새로운 환율정책은 본격적인 변동환율제 도입을 위한 첫걸음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가 자본시장의 자유화를 진전시킬 것으로 보인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위안화 가치의 절하를 기계적으로 ‘중국 정부의 반시장적인 외환시장 개입’으로 연결해왔다. 그런데 IMF와 무디스의 평가를 감안하면, ‘8월11~13일의 위안화 가치 하락은 외환시장 자유화의 결과’였다는 말이 된다. 세계적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8월15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진실은 (인민은행의 목표가 ‘위안화 평가절하’였다는 주장의) 정반대 편에 있다. 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의 결정을 시장에 맡겨놓고 방관(stand aside)했다. 위안화가 계속 급락하니까 그제야 개입했다.”
인민은행이 개입한 것은 맞다. 다만 그 목표는 위안화 가치 절하의 저지였다.
이런 속사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먼저 중국의 환율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관리변동환율제(원칙적으로 시장의 외환 수급에 따라 자국 통화가치를 결정하지만 정부가 직간접으로 개입하는 방식)’를 채택하고 있다. 중국 내의 금융기관들 역시 위안화 등 여러 통화를 매일 거래한다. 그러다 보면 수급에 따라 각 통화의 가격(환율)이 매겨진다. 그야말로 ‘시장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장 가격(예컨대 6위안에 1달러)을 이튿날 아침 인민은행에 보고한다. 인민은행은 제출받은 통화 가격들의 평균치를 금융기관 영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기준환율’로 고시한다. 다만 이날 거래되는 위안화의 가격(환율)이 기준환율 대비 2% 이상 떨어지거나 올라가면 인민은행이 개입한다. 위안화 가격이 너무 내려가면 달러화 등의 외국 통화로 위안화를 사들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매각한다.
이대로라면 손색없는 ‘관리변동환율제’다. 그러나 인민은행의 실질적 구실은 금융기관들이 보고한 환율의 평균치나 계산하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해당 금융기관 중 대다수가 중국의 국유은행이다. 인민은행은 단지 국유은행들에게 ‘보고용 위안화 환율’을 불러주기만 하면 된다. 혹은 융통성을 발휘해서 평균치(?)를 계산하는 방법도 있다. 인민은행이 매일 아침 고시하는 기준환율은 전날의 실제 거래 상황과 동떨어진 것으로 유명했다.
IMF·무디스가 ‘위안화 가치 하락’을 환영한 이유
이랬던 인민은행이 위안화 폭락의 날인 8월11일, 엄청난 선언을 했다. 금융기관들이 전날 거래했던 실제 결과에 따라 기준환율을 고시하겠다는 내용이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환율제도를 시장 원리에 좀 더 근접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IMF와 무디스가 지지한 이유다. 문제는, 이처럼 ‘시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했더니 위안화 가치가 폭락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인민은행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위안화 폭락 이틀째인 8월12일 늦은 오후다. 시장이 패닉에 휩싸이자 어쩔 수 없이 ‘달러(등 외환) 팔아 위안화 사자’를 감행했다. 그 덕분에 3일째인 8월13일에는 위안화 하락 폭을 1.1%로 줄였고, 다음 날(8월14일)에는 0.05% 올리는 데 ‘성공’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미국 달러화 대비)는 8월11~13일 동안 모두 4.66% 떨어졌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시장의 흐름 자체가 ‘위안화 하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위안화 가치(미국 달러 대비)는 2005년 이후 10년 동안 30% 넘게 올랐다. 매년 어김없이 평균 3% 정도 절상됐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와 다름없는 국제통화 시장에서, 한 나라 통화의 가치가 이 정도로 일관된 방향을 고수하기는 힘들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기간 인민은행이 감행한 외환시장 개입은 가치 절하보다 절하 방지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인민은행의 진정한 목표가 ‘수출 부양’이었다면, 4.66% 절하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수준의 위안화 가치로 돌아가려 해도 10% 이상 절하해야 했다.
그렇다면 인민은행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중국 정부와 공산당 내 보수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해온 ‘위안화 국제화’다. 이를 위한 숙원사업 중 하나의 성패가 오는 연말에 결정된다. 바로 IMF 발행 통화라고 할 수 있는 SDR(특별인출권)의 통화 바스켓에 위안화를 편입시키는 작업이다(31쪽 상자 기사 참조). 이를 심사 중인 IMF는 인민은행의 소망이 성취되려면 ‘위안화의 가치가 당국의 의지가 아닌 시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수차례 신호를 보낸 바 있다. 인민은행으로서는 ‘외환시장에서 손을 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IMF에 보여줘야 했다.
더욱이, 역설적으로 보면 시운까지 맞아떨어졌다. 마침 중국 정부와 공산당 내 보수파가 위안화의 가치 절하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사실 보수파에게 위안화 국제화는 결코 긴급한 국가 과제가 아니다. 이에 비해 인민은행은 위안화 국제화라는 목표 아래 금융시장 개방(외국인들이 중국 기업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하는 조치), 완전태환(위안화와 해외 통화의 자유로운 교환), 자본통제 폐지 등을 주장해왔다. 보수파 시각에서 인민은행은 ‘경제에 대한 국가(공산당) 통제’라는 사회주의 원칙을 뒤엎을 수 있는 개혁 급진파다. 그러나 보수파가 봐도 중국 경제의 위기는 심각했던 모양이다. 중국 경제의 주된 동력인 수출 제조업 부문이 악화되면, 고용난 심화는 물론 이에 따른 대중적 반발이 거세질 참이었다.
<뉴욕 타임스>(8월17일)에 따르면, 리커창 총리가 지난 7월 소집한 국무원 회의에서는 ‘당면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출을 촉진해야 하며, 그 수단으로 위안화 가치 절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국무원은 회의 직후 “중국은 위안화를 더욱 유연하게 운용해서 수출을 활성화해야 한다”라는 지침을 내렸다. 사실상 가치 절하 요구다. 인민은행과 보수파의 이해관계가 일시적으로 기묘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물론 보수파의 ‘목표(위안화 가치 절하)’가 인민은행에게는 ‘목표(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발생한 부수적 효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인민은행이나 공산당의 의도와 상관없이 위안화 가치 하락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매우 불안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적어도 8월20일 현재까지는 그렇다.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8월18일 6.15% 폭락한 뒤 소폭 반등한 데 이어 8월20일에는 다시 3.4%나 주저앉았다. 지난 7월의 대폭락에 이어 또다시 폭락 장세가 출현한 것이다.
낙관론보다 비관론 더 키우는 위안화 가치 하락
이번의 위안화 가치 하락은 ‘앞으로 수출 회복이 뒤따르면서 중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론보다 ‘대폭의 가치 절하까지 감행하는 것을 보면 중국 경제가 안 좋긴 안 좋은 모양’이라는 비관론으로 기울었다. 인민은행이 의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절하시킨 것은 아니지만, 투자자들에게 이런 속사정까지 파악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더욱이 ‘이번의 가치 절하 규모가 충분하지 않았다(10% 정도는 떨어져야 수출 실적 회복이 가능)’는 평가는, 위안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리라는 관측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중국 당국이 8월18일 금융시장 부양을 위해 1200억 위안(약 22조원)을 푼 조치도 ‘호재’가 아니라 ‘정부마저 경제 전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해석되면서 증시 폭락을 부채질할 정도다. 술이 절반 정도 채워진 술잔에 대해 ‘절반이나 남았다’가 아니라 ‘절반밖에 없네’라는 투자 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의도가 무엇이었건 위안화 가치 하락은 중국 경제에 대한 회의감만 부추긴다.
매우 불길한 조짐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에 자금을 투입한 이유는 위안화 가치가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중국의 기준금리는 3~4% 정도다. 같은 기간, 미국은 사실상 0%였다. 더욱이 위안화는 매년 3% 정도 절상되어 왔다. 즉, 미국에서 돈을 빌려 중국에 투자하면 6~7%(기준금리+절상률) 정도의 수익률이 기대된다. 엄청난 규모의 핫머니가 중국으로 건너와 부동산과 증시를 받쳐주었다.
이런 국면이 뒤집히고 있다. 정확한 시기는 불투명하지만,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은 조만간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다. 투자자들이 위안화 가치가 계속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면, 더 이상 중국에 투자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난해 중국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2500억~5000억 달러로 평가된다.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도 엄청난 규모의 외국인이 중국 증시에서 탈출할 것이다.
인민은행은 지독한 모순에 빠졌다. IMF의 눈치를 살펴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으면,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 금융시장이 황폐화되면, SDR 편입 역시 헛된 꿈으로 전락하게 된다. 중국 정부와 보수파 입장에서도 수출 부양을 위해서는 위안화 가치를 절하시켜야 하는데, 이는 자칫 경쟁적인 통화 절하(환율전쟁)로 국제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어 수출국 중국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더욱이 위안화 가치 절하는 중국 정부의 경제개혁 목표 중 하나인 내수 강화(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품 물가가 상승)와 위안화 국제화(국제통화의 가치는 가급적 높은 수준에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에도 역행한다. 지금까지 중국 경제 발전의 양대 동력이었던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모두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 하려다… 투자 심리 ‘폭삭’
중국 위안화 가치 폭락은 중국 정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해 반시장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결과일까? IMF와 무디스 그리고 <이코노미스트>의 시각은 다르다. 이번 일이 오히려 외환시장 자유화의 결과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415호] 승인 2015.08.28 01:40:49
경제
‘위안화 국제화’ 하려다… 투자 심리 ‘폭삭’
중국, ‘통화 바스켓’ 골인할 수 있을까?
8월11일 중국 위안화 가치(미국 달러화 대비)가 1.9% 폭락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큰 폭의 가치 하락이다. 다음 날(1.9%)과 그다음 날(1.1%)까지 겨우 3일 동안 위안화 가치는 모두 4.66% 떨어졌다. 전 세계 유수 언론 가운데 상당수는 일제히 ‘인민은행(중국의 중앙은행)이 수출 실적을 높이기 위해 위안화 가치를 절하시켰다’며 중국 정부 때리기에 나섰다. 근거를 갖춘 혐의다. 중국의 7월 수출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9%나 떨어졌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 가치 절하의 동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는 반응들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 자유화’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사실상 환영 성명을 냈다. “중국의 새로운 환율정책은 본격적인 변동환율제 도입을 위한 첫걸음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가 자본시장의 자유화를 진전시킬 것으로 보인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위안화 가치의 절하를 기계적으로 ‘중국 정부의 반시장적인 외환시장 개입’으로 연결해왔다. 그런데 IMF와 무디스의 평가를 감안하면, ‘8월11~13일의 위안화 가치 하락은 외환시장 자유화의 결과’였다는 말이 된다. 세계적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8월15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진실은 (인민은행의 목표가 ‘위안화 평가절하’였다는 주장의) 정반대 편에 있다. 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의 결정을 시장에 맡겨놓고 방관(stand aside)했다. 위안화가 계속 급락하니까 그제야 개입했다.”
인민은행이 개입한 것은 맞다. 다만 그 목표는 위안화 가치 절하의 저지였다.
이런 속사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먼저 중국의 환율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관리변동환율제(원칙적으로 시장의 외환 수급에 따라 자국 통화가치를 결정하지만 정부가 직간접으로 개입하는 방식)’를 채택하고 있다. 중국 내의 금융기관들 역시 위안화 등 여러 통화를 매일 거래한다. 그러다 보면 수급에 따라 각 통화의 가격(환율)이 매겨진다. 그야말로 ‘시장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장 가격(예컨대 6위안에 1달러)을 이튿날 아침 인민은행에 보고한다. 인민은행은 제출받은 통화 가격들의 평균치를 금융기관 영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기준환율’로 고시한다. 다만 이날 거래되는 위안화의 가격(환율)이 기준환율 대비 2% 이상 떨어지거나 올라가면 인민은행이 개입한다. 위안화 가격이 너무 내려가면 달러화 등의 외국 통화로 위안화를 사들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매각한다.
이대로라면 손색없는 ‘관리변동환율제’다. 그러나 인민은행의 실질적 구실은 금융기관들이 보고한 환율의 평균치나 계산하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해당 금융기관 중 대다수가 중국의 국유은행이다. 인민은행은 단지 국유은행들에게 ‘보고용 위안화 환율’을 불러주기만 하면 된다. 혹은 융통성을 발휘해서 평균치(?)를 계산하는 방법도 있다. 인민은행이 매일 아침 고시하는 기준환율은 전날의 실제 거래 상황과 동떨어진 것으로 유명했다.
IMF·무디스가 ‘위안화 가치 하락’을 환영한 이유
이랬던 인민은행이 위안화 폭락의 날인 8월11일, 엄청난 선언을 했다. 금융기관들이 전날 거래했던 실제 결과에 따라 기준환율을 고시하겠다는 내용이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환율제도를 시장 원리에 좀 더 근접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IMF와 무디스가 지지한 이유다. 문제는, 이처럼 ‘시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했더니 위안화 가치가 폭락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인민은행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위안화 폭락 이틀째인 8월12일 늦은 오후다. 시장이 패닉에 휩싸이자 어쩔 수 없이 ‘달러(등 외환) 팔아 위안화 사자’를 감행했다. 그 덕분에 3일째인 8월13일에는 위안화 하락 폭을 1.1%로 줄였고, 다음 날(8월14일)에는 0.05% 올리는 데 ‘성공’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미국 달러화 대비)는 8월11~13일 동안 모두 4.66% 떨어졌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시장의 흐름 자체가 ‘위안화 하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위안화 가치(미국 달러 대비)는 2005년 이후 10년 동안 30% 넘게 올랐다. 매년 어김없이 평균 3% 정도 절상됐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와 다름없는 국제통화 시장에서, 한 나라 통화의 가치가 이 정도로 일관된 방향을 고수하기는 힘들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기간 인민은행이 감행한 외환시장 개입은 가치 절하보다 절하 방지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인민은행의 진정한 목표가 ‘수출 부양’이었다면, 4.66% 절하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수준의 위안화 가치로 돌아가려 해도 10% 이상 절하해야 했다.
그렇다면 인민은행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중국 정부와 공산당 내 보수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해온 ‘위안화 국제화’다. 이를 위한 숙원사업 중 하나의 성패가 오는 연말에 결정된다. 바로 IMF 발행 통화라고 할 수 있는 SDR(특별인출권)의 통화 바스켓에 위안화를 편입시키는 작업이다(31쪽 상자 기사 참조). 이를 심사 중인 IMF는 인민은행의 소망이 성취되려면 ‘위안화의 가치가 당국의 의지가 아닌 시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수차례 신호를 보낸 바 있다. 인민은행으로서는 ‘외환시장에서 손을 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IMF에 보여줘야 했다.
더욱이, 역설적으로 보면 시운까지 맞아떨어졌다. 마침 중국 정부와 공산당 내 보수파가 위안화의 가치 절하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사실 보수파에게 위안화 국제화는 결코 긴급한 국가 과제가 아니다. 이에 비해 인민은행은 위안화 국제화라는 목표 아래 금융시장 개방(외국인들이 중국 기업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하는 조치), 완전태환(위안화와 해외 통화의 자유로운 교환), 자본통제 폐지 등을 주장해왔다. 보수파 시각에서 인민은행은 ‘경제에 대한 국가(공산당) 통제’라는 사회주의 원칙을 뒤엎을 수 있는 개혁 급진파다. 그러나 보수파가 봐도 중국 경제의 위기는 심각했던 모양이다. 중국 경제의 주된 동력인 수출 제조업 부문이 악화되면, 고용난 심화는 물론 이에 따른 대중적 반발이 거세질 참이었다.
<뉴욕 타임스>(8월17일)에 따르면, 리커창 총리가 지난 7월 소집한 국무원 회의에서는 ‘당면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출을 촉진해야 하며, 그 수단으로 위안화 가치 절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국무원은 회의 직후 “중국은 위안화를 더욱 유연하게 운용해서 수출을 활성화해야 한다”라는 지침을 내렸다. 사실상 가치 절하 요구다. 인민은행과 보수파의 이해관계가 일시적으로 기묘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물론 보수파의 ‘목표(위안화 가치 절하)’가 인민은행에게는 ‘목표(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발생한 부수적 효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인민은행이나 공산당의 의도와 상관없이 위안화 가치 하락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매우 불안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적어도 8월20일 현재까지는 그렇다.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8월18일 6.15% 폭락한 뒤 소폭 반등한 데 이어 8월20일에는 다시 3.4%나 주저앉았다. 지난 7월의 대폭락에 이어 또다시 폭락 장세가 출현한 것이다.
낙관론보다 비관론 더 키우는 위안화 가치 하락
이번의 위안화 가치 하락은 ‘앞으로 수출 회복이 뒤따르면서 중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론보다 ‘대폭의 가치 절하까지 감행하는 것을 보면 중국 경제가 안 좋긴 안 좋은 모양’이라는 비관론으로 기울었다. 인민은행이 의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절하시킨 것은 아니지만, 투자자들에게 이런 속사정까지 파악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더욱이 ‘이번의 가치 절하 규모가 충분하지 않았다(10% 정도는 떨어져야 수출 실적 회복이 가능)’는 평가는, 위안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리라는 관측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중국 당국이 8월18일 금융시장 부양을 위해 1200억 위안(약 22조원)을 푼 조치도 ‘호재’가 아니라 ‘정부마저 경제 전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해석되면서 증시 폭락을 부채질할 정도다. 술이 절반 정도 채워진 술잔에 대해 ‘절반이나 남았다’가 아니라 ‘절반밖에 없네’라는 투자 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의도가 무엇이었건 위안화 가치 하락은 중국 경제에 대한 회의감만 부추긴다.
매우 불길한 조짐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에 자금을 투입한 이유는 위안화 가치가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중국의 기준금리는 3~4% 정도다. 같은 기간, 미국은 사실상 0%였다. 더욱이 위안화는 매년 3% 정도 절상되어 왔다. 즉, 미국에서 돈을 빌려 중국에 투자하면 6~7%(기준금리+절상률) 정도의 수익률이 기대된다. 엄청난 규모의 핫머니가 중국으로 건너와 부동산과 증시를 받쳐주었다.
이런 국면이 뒤집히고 있다. 정확한 시기는 불투명하지만,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은 조만간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다. 투자자들이 위안화 가치가 계속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면, 더 이상 중국에 투자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난해 중국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2500억~5000억 달러로 평가된다.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도 엄청난 규모의 외국인이 중국 증시에서 탈출할 것이다.
인민은행은 지독한 모순에 빠졌다. IMF의 눈치를 살펴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으면,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 금융시장이 황폐화되면, SDR 편입 역시 헛된 꿈으로 전락하게 된다. 중국 정부와 보수파 입장에서도 수출 부양을 위해서는 위안화 가치를 절하시켜야 하는데, 이는 자칫 경쟁적인 통화 절하(환율전쟁)로 국제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어 수출국 중국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더욱이 위안화 가치 절하는 중국 정부의 경제개혁 목표 중 하나인 내수 강화(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품 물가가 상승)와 위안화 국제화(국제통화의 가치는 가급적 높은 수준에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에도 역행한다. 지금까지 중국 경제 발전의 양대 동력이었던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모두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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