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님 코끼리 만진다!
중국? 장님 코끼리 만진다!
누가 중국을 제대로 아는가? 단지 글 몇 줄로 중국역사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굳이 요약하면 중국의 역사는 B.C 3천년 경 황하문명-하-은-주-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秦)에서 청(淸)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 거대한 중국대륙을 처음 하나로 통일한 사람은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였으며, 그 이후 한-위-진(사마염)-남북조시대-수-당-송-원-명-청(1616년부터 1912년) 등으로 이어지다가 일단 중국의 왕조 시대는 끝이 났다.
그 이후의 역사는 19세기 말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싼 청과 일본의 갈등은 청일전쟁으로 이어졌으며, 1895년 황해 해전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 만주족인 청(淸)나라는 그 길로 내리막을 걸었다. 이어 장개석의 국민당이 국민정부를 세웠으나 모택동에 의해 무너지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것이 지금의 ‘중국’이다. 이어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장개석은 1885년 하나의 성(省)으로 독립했던 대만으로 옮겨가서 정권을 유지했지만, 결국 본토 수복은 물거품이 되었고 대만은 ‘중화민국’ 대신 ‘중화타이페이(chines Taipei)’로 전락하고 말았다.
눈을 돌려보면, 중국에는 일찍이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는 게 있었다. 여기에서 中은 가운데, 중심이라는 뜻이며 華는 문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이미 4천 년 전에 이미 고유문자를 발명해냈고 그 외 나침반, 화약, 인쇄술, 제지술 등의 4대 발명품으로 세계 문명발상지 중의 한 곳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진시황제((秦始皇帝)는 기원전 221년 당시에 이미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시키는 등 그 ‘선진적 문화’를 계승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후 수 천 년 동안 자기들만이 천하의 중심이며 가장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역대의 중국 통치자는 여타의 나라들은 오랑캐 정도로 생각하고 배척했다. 그러다 중국의 자칭 ‘세상 중심’의 생각이 깨진 것은 그 유명한 ‘아편전쟁’ 때문이었다.
1840년에서 42년까지 영국과 청나라가 격돌한 이 전쟁은, 아편수입으로 인한 피해와 은(銀) 의 유출을 막기 위해 청 황제는 아편무역 금지령을 내리는 한편 영국 상인들의 아편을 불태우고 밀수업자들을 처형함으로써 야기되었다. 이에 영국은 무역 보호를 구실로 해군을 파견, 전쟁이 발발했으며 청(淸)이 패하고 굴욕적인 ‘난징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결과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99년간 할양(1997년 7월1일 중국에 반환, 홍콩특별행정구로 명명됨)되고 광저우등 5개 항구를 개항하며 영사관설치와 함께 전쟁배상금 1,200만, 아편 보상금으로 6백만 불을 영국에 지불하게 했다. 이후 중화사상에 젖어있던 중국은 점차 유럽과 일본 등 자본주의 세계의 종속적 시장으로 재편되었고, 특히 난징조약체결을 통해 중화사상에서 깨어남으로써 아편전쟁은 중국에게 있어 근대화의 의식을 일깨워준 문화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기도 했다.
각설하고, 또 다른 측면의 중국을 한번 들여다보자...중국은 땅이 넓고(약960만㎢) 인종과 인구(약 13억5천만명) 수가 많다보니, 중국인에게는 평생 해볼 수 없는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요리 종류가 너무 다양해 다 먹어보지 못하고 둘째, 글자 숫자가 너무 많아 제 나라 글을 다 배울 수 없으며 셋째, 땅이 너무 넓어 다 다녀보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중국에는 없는 것이 없다. 단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발달한 게 장사이고,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상(華商)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 보다는 특히 근세 중국 서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뭣보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였다. 그러나...모택동 이후 전격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가 등소평이었다. 그는 ‘횐 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로 중국을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변화시켰다. 그래서 지금의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이고 경제는 철저히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됐다. 이 기묘한 구조가 언제 어떻게 변화될지는 중국 자신도 모른다고 한다.
이번 우리 대통령의 파격적인 중국 전승기념절 참석으로 갑자기 그들의 속살이 보고 싶어졌지만 허나, 들여다볼수록 중국은 역시 ‘장님 코끼리 만지기’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중국은 과거 굴욕적으로 ‘난징조약’을 당했던 그 시절의 ‘종이호랑이’가 아닌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누가 중국을 제대로 아는가? 단지 글 몇 줄로 중국역사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굳이 요약하면 중국의 역사는 B.C 3천년 경 황하문명-하-은-주-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秦)에서 청(淸)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 거대한 중국대륙을 처음 하나로 통일한 사람은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였으며, 그 이후 한-위-진(사마염)-남북조시대-수-당-송-원-명-청(1616년부터 1912년) 등으로 이어지다가 일단 중국의 왕조 시대는 끝이 났다.
그 이후의 역사는 19세기 말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싼 청과 일본의 갈등은 청일전쟁으로 이어졌으며, 1895년 황해 해전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 만주족인 청(淸)나라는 그 길로 내리막을 걸었다. 이어 장개석의 국민당이 국민정부를 세웠으나 모택동에 의해 무너지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것이 지금의 ‘중국’이다. 이어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장개석은 1885년 하나의 성(省)으로 독립했던 대만으로 옮겨가서 정권을 유지했지만, 결국 본토 수복은 물거품이 되었고 대만은 ‘중화민국’ 대신 ‘중화타이페이(chines Taipei)’로 전락하고 말았다.
눈을 돌려보면, 중국에는 일찍이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는 게 있었다. 여기에서 中은 가운데, 중심이라는 뜻이며 華는 문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이미 4천 년 전에 이미 고유문자를 발명해냈고 그 외 나침반, 화약, 인쇄술, 제지술 등의 4대 발명품으로 세계 문명발상지 중의 한 곳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진시황제((秦始皇帝)는 기원전 221년 당시에 이미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시키는 등 그 ‘선진적 문화’를 계승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후 수 천 년 동안 자기들만이 천하의 중심이며 가장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역대의 중국 통치자는 여타의 나라들은 오랑캐 정도로 생각하고 배척했다. 그러다 중국의 자칭 ‘세상 중심’의 생각이 깨진 것은 그 유명한 ‘아편전쟁’ 때문이었다.
1840년에서 42년까지 영국과 청나라가 격돌한 이 전쟁은, 아편수입으로 인한 피해와 은(銀) 의 유출을 막기 위해 청 황제는 아편무역 금지령을 내리는 한편 영국 상인들의 아편을 불태우고 밀수업자들을 처형함으로써 야기되었다. 이에 영국은 무역 보호를 구실로 해군을 파견, 전쟁이 발발했으며 청(淸)이 패하고 굴욕적인 ‘난징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결과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99년간 할양(1997년 7월1일 중국에 반환, 홍콩특별행정구로 명명됨)되고 광저우등 5개 항구를 개항하며 영사관설치와 함께 전쟁배상금 1,200만, 아편 보상금으로 6백만 불을 영국에 지불하게 했다. 이후 중화사상에 젖어있던 중국은 점차 유럽과 일본 등 자본주의 세계의 종속적 시장으로 재편되었고, 특히 난징조약체결을 통해 중화사상에서 깨어남으로써 아편전쟁은 중국에게 있어 근대화의 의식을 일깨워준 문화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기도 했다.
각설하고, 또 다른 측면의 중국을 한번 들여다보자...중국은 땅이 넓고(약960만㎢) 인종과 인구(약 13억5천만명) 수가 많다보니, 중국인에게는 평생 해볼 수 없는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요리 종류가 너무 다양해 다 먹어보지 못하고 둘째, 글자 숫자가 너무 많아 제 나라 글을 다 배울 수 없으며 셋째, 땅이 너무 넓어 다 다녀보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중국에는 없는 것이 없다. 단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발달한 게 장사이고,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상(華商)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 보다는 특히 근세 중국 서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뭣보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였다. 그러나...모택동 이후 전격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가 등소평이었다. 그는 ‘횐 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로 중국을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변화시켰다. 그래서 지금의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이고 경제는 철저히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됐다. 이 기묘한 구조가 언제 어떻게 변화될지는 중국 자신도 모른다고 한다.
이번 우리 대통령의 파격적인 중국 전승기념절 참석으로 갑자기 그들의 속살이 보고 싶어졌지만 허나, 들여다볼수록 중국은 역시 ‘장님 코끼리 만지기’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중국은 과거 굴욕적으로 ‘난징조약’을 당했던 그 시절의 ‘종이호랑이’가 아닌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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