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을 국가 공휴일로 하면?
안되겠습네까?
대한민국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날이 있습네다. 그러나
4월 28일을 국가공휴일(National Holiday) 로 하는게 어떠할까 합네다~
2016년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제471주년 탄신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은 1545년 4월 28일 태어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애국과 충의(忠義)를 길이 전승하고, 민족자주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 1967년 문교부령에 의해 ‘충무공 탄신기념일’로 제정되었고, 1973년 ‘충무공 탄신일’로 법정기념일에 포함되었으며, 2013년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행사는 그가 전사한 직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45년 이후 충무공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매년 탄신제전을 올렸으며, 1960년대부터는 이순신을 구국의 영웅이자 애국군인의 표상으로 삼으며 본격적으로 기념 행사를 거행하였다.
• 1966년 대통령 특별지시에 의해 충남 아산 현충사의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었고, 1968년에는 서울 광화문에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충무공 동상이 세워졌다. 1970년대에는 한산도 제승당(制勝堂) 등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이 진행되었다.
• 1980년 해군에서 임진왜란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복원한 거북선을 최초로 건조하였으며, 1998년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맞아 충남 아산에 동상이 건립되는 등 1980년대 이후에도 기념사업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순신(李舜臣, 1545년 (인종 원년) 4월 28일[2] (음력 3월 8일) ~ 1598년 (선조 31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한성 출신이다.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선조 9년) 무과(武科)에 급제[3]하여 그 관직이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발포진 수군만호, 조산보 만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정헌대부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본인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고 깊은 효심을 지닌 선비의 모범으로 평가된다. 장수로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부하들을 잘 통솔하는 지도력, 뛰어난 지략, 그리고 탁월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여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뒤 선무공신 1등관에 추록되고 증 의정부우의정에 추증되고 덕풍군에 추봉되었다가, 광해군 때 다시 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되었고, 정조 때에는 증 의정부영의정으로 가증(加贈)되었다.
고려 때 정5품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덕수 이씨의 시조 이돈수(李敦守)의 12대손이며, 조선 초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지낸 이변(李邊)[4] 의 후손이다. 외가는 초계 변씨(卞氏), 처가는 온양 방씨(方氏, 당시에는 상주 방씨)이다. 그의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다.] -위키백과-
듕귁의 장웨이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순신 장군을 평가하였다 합네다.
=> => => => 아래 참조 => => => =>
중국 장웨이린 교수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와 고백
장 웅기자(truelook@hanmail.net) 2015.09.29 15:24:44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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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장웨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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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와 고백 ♡
조선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일본 교수들의 말만 듣고 학술 연구회에서 거북선을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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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배가 400여년 전에 있었단 말인가?
우리가 우리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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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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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회의 이름은
'이순신' 이었다.
일본교수진의 도움으로 책 7권을 하루만에 다 읽고 책을 놓은 뒤.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소리...
<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를 구할수 있는 위인이 있다면 누구일까 물었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
나는 한참동안이나 창문 너머를 바라보다 말했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거라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거북선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의아해 했다.
400여년전 조선과 일본의 전쟁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께 말한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조선 수군 장수 이순신은 5천명도 안되는 군사와 50척도 안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 대군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모두 승리
하여 조선을 구할수 있었다.
일본군은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싸움의 고수들이었고 동아시아 최강의 전력이었다.
당시 조선 수군은 물고기나 잡고 농사나 짓던 나약한 병사들 이었으나,
단 1년만에 훈련시켜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수 있는 군대
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 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까지 일본군에 점령되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 여년 전에 만들어 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한다.
나는 1시간 정도 더 시간을 추가하여 이순신 장군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전 학생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장웨이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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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의 일환인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았다가
이순신 학술회를 시작으로 고구려 역사 편입작업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말한다.
역사학자가 후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두가지 부끄러움이 있다.
★ 한가지는 히틀러가 200만 유태인을 죽인것보다
그 역사를 감추며 숨기는 것이고,
★ 또 한가지는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날이 있습네다. 그러나
4월 28일을 국가공휴일(National Holiday) 로 하는게 어떠할까 합네다~
2016년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제471주년 탄신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은 1545년 4월 28일 태어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애국과 충의(忠義)를 길이 전승하고, 민족자주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 1967년 문교부령에 의해 ‘충무공 탄신기념일’로 제정되었고, 1973년 ‘충무공 탄신일’로 법정기념일에 포함되었으며, 2013년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행사는 그가 전사한 직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45년 이후 충무공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매년 탄신제전을 올렸으며, 1960년대부터는 이순신을 구국의 영웅이자 애국군인의 표상으로 삼으며 본격적으로 기념 행사를 거행하였다.
• 1966년 대통령 특별지시에 의해 충남 아산 현충사의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었고, 1968년에는 서울 광화문에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충무공 동상이 세워졌다. 1970년대에는 한산도 제승당(制勝堂) 등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이 진행되었다.
• 1980년 해군에서 임진왜란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복원한 거북선을 최초로 건조하였으며, 1998년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맞아 충남 아산에 동상이 건립되는 등 1980년대 이후에도 기념사업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순신(李舜臣, 1545년 (인종 원년) 4월 28일[2] (음력 3월 8일) ~ 1598년 (선조 31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한성 출신이다.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선조 9년) 무과(武科)에 급제[3]하여 그 관직이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발포진 수군만호, 조산보 만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정헌대부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본인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고 깊은 효심을 지닌 선비의 모범으로 평가된다. 장수로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부하들을 잘 통솔하는 지도력, 뛰어난 지략, 그리고 탁월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여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뒤 선무공신 1등관에 추록되고 증 의정부우의정에 추증되고 덕풍군에 추봉되었다가, 광해군 때 다시 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되었고, 정조 때에는 증 의정부영의정으로 가증(加贈)되었다.
고려 때 정5품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덕수 이씨의 시조 이돈수(李敦守)의 12대손이며, 조선 초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지낸 이변(李邊)[4] 의 후손이다. 외가는 초계 변씨(卞氏), 처가는 온양 방씨(方氏, 당시에는 상주 방씨)이다. 그의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다.] -위키백과-
듕귁의 장웨이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순신 장군을 평가하였다 합네다.
=> => => => 아래 참조 => => => =>
중국 장웨이린 교수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와 고백
장 웅기자(truelook@hanmail.net) 2015.09.29 15:24:44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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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장웨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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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와 고백 ♡
조선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일본 교수들의 말만 듣고 학술 연구회에서 거북선을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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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배가 400여년 전에 있었단 말인가?
우리가 우리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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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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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회의 이름은
'이순신' 이었다.
일본교수진의 도움으로 책 7권을 하루만에 다 읽고 책을 놓은 뒤.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소리...
<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를 구할수 있는 위인이 있다면 누구일까 물었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
나는 한참동안이나 창문 너머를 바라보다 말했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거라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거북선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의아해 했다.
400여년전 조선과 일본의 전쟁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께 말한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조선 수군 장수 이순신은 5천명도 안되는 군사와 50척도 안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 대군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모두 승리
하여 조선을 구할수 있었다.
일본군은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싸움의 고수들이었고 동아시아 최강의 전력이었다.
당시 조선 수군은 물고기나 잡고 농사나 짓던 나약한 병사들 이었으나,
단 1년만에 훈련시켜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수 있는 군대
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 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까지 일본군에 점령되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 여년 전에 만들어 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한다.
나는 1시간 정도 더 시간을 추가하여 이순신 장군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전 학생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장웨이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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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의 일환인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았다가
이순신 학술회를 시작으로 고구려 역사 편입작업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말한다.
역사학자가 후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두가지 부끄러움이 있다.
★ 한가지는 히틀러가 200만 유태인을 죽인것보다
그 역사를 감추며 숨기는 것이고,
★ 또 한가지는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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