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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알프스 산자락 3 화 휴센(Fussen)에서

2018.01.09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바라 본 포토포인트


알프스 산자락 3 화 휴센(Fussen)에서

이태리 볼차노에서 독일의 휴센까지 버스로 거의 5 시간이 소용된다.
서둘러 가 보았자 그곳 휴센에 도착해서 관광을 할 일정을 잡을 시간이 안될 것 같아
오전에 볼차노에 머물면서 타이롤 고고학 박물관(Tyrol Museum of Archeology)에서
소위 오트지 얼음 사람(Otzi Iceman)을 가보기로 했다.

얼음사람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1991년 샤날스탄(Schalstal)이라는
빙하 속에서 완전하게 보존된 5,300년 된 미이라를 발견하였다.
이 발견으로 털과 가죽으로 된 옷과 신발, 그리고 무기와 연장
등으로 청동기 이전의 생활상을 완전하게 볼 수 있었다.
다만 나를 슬프게 한 것은 이 아이스맨의 사인이
다른 인간이 무기로 그를 살해 했다는 사실이었다.
5,300 년 전 인간의 문명이 태동되던 그때부터 인간은 서로 죽고 죽이고 했다니 말이다.
이태리 볼차노에서 독일 휴센까지는 버스로 거의 6 시간이 걸렸다.
버스가 안락한 면에서는 기차보다 못하지만 우선 기차를 타려면
무거운 가방들을 열차까지 지하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꽤나 걸아야 하지만
버스는 바로 길가에 정거장 앞에서 버스 운전사가 짐들을 버스 짐칸으로 넣어주니
아주 편하고 또 값도 싸서 나는 기차보다 버스를 좋아 한다.

그러나 이번 휴센으로 가는 버스는 그리 좋은 행운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운전수가 이태리 사람인데 아예 영어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휴게소에 들려 몇 분 정차라는 안내의 말도 없이 혼자 커피마시고
자기 마음대로 떠나서 회장실도 마음대로 갈수 없을 정도이었다.
아마도 이런 불평은 내가 값싼 포도주를 휴게소 곳곳에서 살 수 있었는데
그 못된 운전기사 때문에 못 사서 이런 기억이 오래 남는 듯하다.
드디어 휴센에 도착했으나 또 한 번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시내에서 떨어진 공터 같은 곳이 정류장 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우리를 내려놓고 떠나 버렸다.

다행이 누구를 마중 나온 사람이 우리 3 명 여자만 시내로 태워주고 그리고 그들이
택시를 버스 정류장으로 보네서 호텔로 오는 소동이 있은 후에 채크인 했다.
휴센은 오스트리아 접경 쪽에 있는 도시로 12-13 세기에
구축된 방어성벽이 소개되는 정도의 도시이었다.
그러나 19 세기에 지었다는 베네딕트 수도원을 보니 꽤나 규모가 컸다.
우리는 늦은 오후에 시내 거리를 거닐고 베네딕트 수도원
등을 구경하다가 호텔에서 추천한 식당에 들어갔다.
바바리아 지역의 유명한 요리 돼지무릎고기를 튀긴
학세(Schweinshaxe)라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이었다.
그러나 식당 주인이 조금 전 중국 단체손님이
모두 학세를 시키는 바람에 재료가 없다고 한다.
내일 꼭 올 터이니 준비하라고 하면서 입맛을 다시며 호텔로 돌아 왔다.
호텔 로비가 꽤나 시끄러웠다.
왠가 하고 보니 젊은 아가씨들이 커다란 백팩 이나 가방을 들고 체크인 하고 있었다.
모두가 달라 보아 내가 어디서 왔느냐 했더니 태국, 중국, 한국,
일본에서 혼자 아니면 둘이서 배낭여행을 하는 20 대에 아가씨 들이었다.
이 발랄한 아가씨들을 국경을 넘어 모두 친구처럼 어울리는 것을 보다가 얼핏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20년이나 30 년 후에는 우리 세대들이 즐겨 쓰던 전쟁이란 단어는
역사시간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인터냇으로 만나고 또 이렇게
서로 만나서 이웃과 모두 어울리는 세
계의 미래가 될 것이란 말이다.
다음날 나는 휴센을 방문하는 가장 주된 목적인
노이슈바인 성을 찾는 것으로 하루의 일정을 잡았다.
이 성을 방문에 앞서 다시 루드비히 2 세(1845-1886)의 190 센티가
넘는 훤칠한 키에 어딘지 고뇌에 찬 얼굴이 떠오른다.
그가 동성애자이다, 또 작곡가 바그너의 미친 왕이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정신병자로 낙인이 찍혀서 베르크 성으로 유배되고
그리고 스텐버그 호수에 익사했다고 알려졌지만
아마도 타살로 보이는 그이 생의 종말은 프로리센(독일)의 철의 수상 비스마크 시절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가운데에 끼어서 오스트리아 편에 섰다가
오구라드는 바이에른 왕으로 현실 도피로 동화 속에 나오는
꿈같은 성을 지는 것이 그의 생이 아니었나 싶다.

노이슈바인 성 방문에 앞서 바로 마주보이는 호헨슈방가우(Hohenschwangau) 성을 방문했다.
루드비히 2 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 세가 사냥하는 계절에 머무르던 궁으로
지었으나 루드비히 2 세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지네기도 했다고 한다.
고틱 양식으로 별로 특징적인 것은 없었다.
다시 언덕으로 내려와서 이제 노이슈바인(Neuschwanstein) 성을 쳐다보았다.
아마도 라인강의 로렐라이 언덕과 바로 이 노이슈바인성이 유럽 아니 전 세계의 달력 사진으로
제일 많이 사용된 것으로 익히 보아온 성이라 앞에 성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이 꽉 찬 것 같았다.
마차를 타고 올라가려다가 너무 마차를 타려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섰다가
공연히 시간만 소비하고 마차 타기를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영어 해설구릅에 끼어서 궁내를 돌아보았다. 화려하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돈이 많이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참으로 괘나 돈이 많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 무리한 궁 짖는 강행군으로 19 세기 힘없는 왕이라 돈 지불을
제대로 못해 건축업자에게 소송을 당하고 그래서 아마도
루드비히 2 세가 정신병자라고 왕의 자리에서 쫓겨 난 것도 결국 돈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마네스크의 이 궁은 결국 그의 미완성의 작품이었으나 역설적으로 오늘날에
와서는 년 간 130 만의 관광객이 찾아오며 휴센 이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다.
피곤한 다리를 끌며 다시 휴센으로 돌아와서 어제 들렸던 식당으로 갔다.
약속대로 스바인스학세 라는 돼지 무릎 튀김 요리가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여기다가 이곳에서 만들어진 포도주를 마시면서 나의 휴센 일정을 끝냈다.
알프스 산자락을 돌아다닌 즐거운 일주일 이었다.
알프스여 



 엔슈방가우 성에서 바라 본 마을 풍경


노이슈반슈타인 성



마차를 타고 갈까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바라 본 호엔슈방가우 성




베네딕토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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