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내 마음의 隨筆] <미시시피 강 위의 살아 있는 말들: ‘허클베리 핀’의 남부 구어체 유머>

2026.02.15

[내 마음의 隨筆]



<미시시피 강 위의 살아 있는 말들: ‘허클베리 핀’의 남부 구어체 유머>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을 처음 읽는 독자는 종종 당황한다. 문장은 영어인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영어와는 어딘가 다르다. 철자는 틀린 것 같고, 문법은 엉성해 보이며, 말투는 거칠다. 그러나 몇 장만 넘기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이며, 어설픔이 아니라 천재적인 설계라는 사실을.


이 소설의 저자 Mark Twain은 남부 미시시피 강 유역 사람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 놓으려 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여러 가지 방언(dialects)을 사용했다고 직접 밝힌다. 흑인 노예의 말투, 가난한 백인 소년의 말투, 시골 무식자의 말투, 그리고 약간 점잖은 소시민의 말투까지—각기 다른 음색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진다. 이 소설은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음성 기록물에 가깝다.

예를 들어 Huck은 “You don’t know about me…”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You don’t know about me without you have read a book…” 같은 식으로 말한다. 문법 교사는 고개를 저을지 몰라도, 독자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 그 어색함 속에는 소년의 솔직함과 자유분방함이 살아 있다. 틀린 영어가 아니라, 현실적인 영어인 셈이다.


남부 구어체의 특징 중 하나는 발음을 그대로 철자로 옮긴다는 점이다. “going to”는 “gwyne to”가 되고, “because”는 “’kase”가 된다.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해 주는 듯한 느낌이다. 글이 아니라 귀로 듣는 소설이 된다. 우리는 활자를 읽으면서도 소리를 상상하게 된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과장과 완곡어법이다. 남부 사람들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빙 돌아 표현하거나 우스갯소리로 감춘다. 누군가를 “ornery”(괴팍한)라고 부르거나, “rapscallion”(장난꾸러기 악동)이라고 부를 때, 그 안에는 꾸짖음과 애정이 동시에 들어 있다. 욕 같지만 정이 묻어 있다.


특히 Jim의 말투는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의 영어는 문법적으로 어긋나 있지만, 그 속에는 따뜻함과 지혜가 담겨 있다. 겉으로는 어눌해 보여도, 도덕적 판단에서는 오히려 Huck보다 더 성숙하다. 이 대비는 언어의 겉모습과 인간의 내면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이 출간된 19세기 후반, 많은 비평가들은 이 소설의 “거친 언어”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바로 그 거침이 이 작품을 고전으로 만들었다. 만약 모든 인물이 문법적으로 완벽한 표준 영어를 사용했다면, 우리는 미시시피 강의 냄새도, 흙먼지도, 뗏목 위의 바람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남부 구어체는 자유의 언어이기도 하다. Huck은 문법 규칙보다 양심을 따른다. 사회적 규범보다 마음의 소리를 따른다. 그의 투박한 말투는 제도권 교육과 문명 사회의 위선을 은근히 풍자한다. 말이 거칠수록, 진실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우리가 이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어색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의 다양성을 체험하고, 표준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영어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문학은 그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그릇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을 읽는 일은 단순히 한 소년의 모험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말의 박물관을 거니는 일이며, 인간의 목소리가 얼마나 다채롭고 유머러스한지를 발견하는 여행이다. 문법을 잠시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사람의 숨결을 듣게 된다. ***


2026. 2. 15. 


崇善齋에서


{솔티}


English Translation: https://www.ktown1st.com/blog/VALover/348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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