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隨筆]
<공과 사를 구분하는 지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보이지 않는 경계선 위를 오가며 살아간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이고, 동시에 직장의 동료이며 사회의 시민이다. 이처럼 한 사람 안에 여러 역할이 공존하지만, 그 역할들이 뒤섞일 때 삶은 쉽게 혼란에 빠진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은 단순한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질서의 문제다.
직장에서의 감정이 고스란히 가정으로 옮겨오고, 가정의 갈등이 다시 공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들 때,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소모하게 된다. 공적인 자리에서 개인적 친분이나 감정이 기준이 되면 신뢰는 쉽게 균열을 일으키고, 사적인 공간에 공적인 긴장과 경쟁을 들여놓으면 마음은 쉴 곳을 잃는다. 공과 사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사람은 중심을 잃고 관계 또한 흔들린다. 그러나 그 경계를 분명히 세우는 순간, 삶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그것은 차갑게 선을 긋는 일이 아니라, 각 영역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다.
동양의 고전인 대학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바로 세우고, 가정을 다스린 후,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 문장은 공과 사를 단계적으로 구분하면서도, 서로의 질서를 인정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개인의 수양이 사적인 영역이라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공적인 영역이다. 그 둘은 연결되어 있지만, 결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 우리는 감정에 휩쓸리기 쉽다. 억울함, 분노, 서운함이 판단을 대신하려 한다. 그러나 공적인 문제는 원칙과 책임의 언어로 다루어야 하고, 사적인 상처는 이해와 용서의 언어로 풀어야 한다. 이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위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문제를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바라보고,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해낸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신뢰를 낳고, 신뢰는 다시 그를 지켜주는 힘이 된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인생의 많은 갈등은 상황이 복잡해서라기보다, 공과 사의 경계가 흐려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은 오해도 공적인 자리로 번지면 갈등이 되고, 공적인 비판을 사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면 상처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공적인 판단인가, 사적인 감정인가?”를 스스로 묻는 순간, 마음은 한 걸음 물러선다. 그 한 걸음의 거리감이 지혜다.
공과 사를 구분한다는 것은 냉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책임감을 갖는 일이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개인적 호불호를 내려놓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계산을 멈추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 균형이야말로 성숙의 표지다. 결국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은 거창한 능력이 아니라, 이러한 작은 분별에서 나온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안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감정은 존중하되, 판단은 원칙에 맡기고, 관계는 보호하되, 책임은 회피하지 않는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는 지혜는 바람이 거세게 불 때 배의 방향을 잡아주는 키와 같다. 그 키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한, 우리는 어떤 풍랑 속에서도 결국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
2026. 2. 24.
崇善齋에서
{솔티}
English Translation: https://www.ktown1st.com/blog/VALover/3484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