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隨筆]
<정관(靜觀)으로 바라본 봄꽃(春花)의 신비(神祕)>
이른 봄(春) 아침(朝), 아직 공기(空氣) 속에 겨울(冬)의 찬 기운(氣運)이 남아 있을 때 나는 마당(庭)과 길가(路邊)에 피어나는 작은 꽃(花)들을 바라보며 잠시 걸음(步)을 멈춘다. 그저 스쳐 지나가면 보이지 않을 장면(場面)들이지만, 마음(心)을 고요히 하고 바라보면 자연(自然)은 언제나 깊은 이야기(物語)를 들려준다. 조선 시대(朝鮮時代)의 선비(士) 최립(崔岦)이 말한 정관(靜觀), 곧 마음(心)을 고요히 하여 사물(事物)을 바라보는 태도(態度)는 이러한 순간(瞬間)에 더욱 빛을 발(發)한다. 자연(自然)은 말이 없지만, 고요히 바라보는 이에게는 언제나 깊은 뜻(意)을 전(傳)한다.
가장 먼저 모습(模樣)을 드러내는 꽃(花)은 크로커스이다. 아직 땅(地)이 완전히 녹지 않은 이른 시기(時期)에, 작고 단정(端正)한 꽃(花)이 흙(土)을 밀어 올리듯 피어난다. 보라색(紫色)이나 노란색(黃色)의 작은 꽃잎(花葉)은 겉보기(外觀)에는 연약(軟弱)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놀라운 생명(生命)의 의지(意志)가 담겨 있다. 혹독(酷毒)한 겨울(冬)을 견디고 가장 먼저 세상(世上)에 얼굴을 내미는 모습(模樣)은 마치 자연(自然)이 보여주는 강인함(強靭)의 상징(象徵)과도 같다. 크로커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人間)의 삶(人生) 또한 이러한 조용한 강인함(強靭) 속에서 지속(持續)된다는 생각(思想)이 든다.
크로커스가 봄(春)의 문(門)을 열면, 곧이어 수선화(水仙花)가 고개를 든다. 길게 뻗은 잎(葉) 사이에서 피어나는 노란 꽃(花)은 맑고 단정(端正)한 아름다움(美)을 지니고 있다. 수선화(水仙花)의 모습(模樣)에는 화려(華麗)한 과시(誇示)가 아니라 맑고 깨끗한 청초함(淸楚)이 담겨 있다. 바람(風)에 살짝 흔들리는 그 모습(模樣)은 마치 자연(自然)이 스스로의 순수함(純粹)을 조용히 드러내는 듯하다. 정관(靜觀)의 마음(心)으로 바라보면, 수선화(水仙花)는 인간(人間)이 지녀야 할 마음(心)의 맑음과 절제(節制)를 일깨워 주는 듯하다.
조금 더 시간(時間)이 흐르면 산(山)과 들(野)은 갑자기 밝은 노란빛으로 물든다. 바로 개나리이다. 가지(枝)마다 한꺼번에 터지듯 피어나는 꽃(花)들은 마치 봄(春)의 축제(祝祭)를 여는 듯한 화려함(華麗)을 보여준다. 겨울(冬)의 긴 침묵(沈默)을 깨고 세상(世上)을 밝히는 이 노란 물결(波)은 사람(人)의 마음(心)까지도 환하게 만든다. 자연(自然)은 이처럼 때로는 소박(素朴)하게, 때로는 화려(華麗)하게 자신(自身)을 드러내며 계절(季節)의 변화(變化)를 알린다.
그리고 마지막(最後)으로 마치 왕관(王冠)을 쓴 듯한 위엄(威嚴)을 지닌 목련(木蓮)이 피어난다. 크고 두툼한 꽃잎(花葉)이 하늘(天)을 향(向)해 펼쳐지는 모습(模樣)은 다른 꽃(花)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雰圍氣)를 만든다. 목련(木蓮)의 꽃(花)은 화려(華麗)하기보다 고귀함(高貴)과 품위(品位)를 느끼게 한다. 가지(枝) 끝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그 모습(模樣)은 마치 자연(自然)이 봄(春)의 절정(絶頂)을 장엄(莊嚴)하게 장식(裝飾)하는 듯하다.
몇 해(年) 동안 이러한 꽃(花)들의 피어나는 순서(順序)를 지켜보며 나는 자연(自然)의 놀라운 조화(調和)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크로커스의 강인함(強靭), 수선화(水仙花)의 청초함(淸楚), 개나리의 화려함(華麗), 그리고 목련(木蓮)의 고귀함(高貴)이 서로 다른 시간(時間) 속에서 차례(次例)로 나타나며 봄(春)이라는 한 편(篇)의 긴 시(詩)를 완성(完成)한다. 색깔(色彩)도 모양(模樣)도 서로 다르지만, 그 모든 차이(差異)가 하나의 질서(秩序) 속에서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다.
조선(朝鮮)의 선비(士)들이 말하던 정관(靜觀)의 태도(態度)는 바로 이러한 자연(自然)의 질서(秩序)를 깨닫는 마음(心)의 자세(姿勢)일 것이다. 서둘러 지나가면 보이지 않지만, 마음(心)을 고요히 하고 바라보면 자연(自然)의 모든 현상(現象)에는 깊은 의미(意味)가 담겨 있다. 꽃(花)이 피는 순서(順序), 색(色)의 조화(調和), 모양(模樣)의 다양성(多樣性)까지도 우연(偶然)이 아니라 자연(自然)의 오묘(奧妙)한 섭리(攝理)를 보여준다.
봄꽃(春花)을 바라보며 나는 인간(人間)의 삶(人生) 또한 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思想)을 한다. 어떤 사람(人)은 크로커스처럼 강인함(強靭)으로 삶(人生)을 시작(始作)하고, 어떤 이는 수선화(水仙花)처럼 맑은 마음(心)으로 세상(世上)을 밝힌다. 또 어떤 이는 개나리처럼 활기(活氣)와 열정(熱情)으로 주변(周邊)을 밝히고, 어떤 이는 목련(木蓮)처럼 조용한 품격(品格)으로 삶(人生)을 완성(完成)한다. 서로 다른 모습(模樣)이지만,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한 사회(社會)의 봄(春)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봄꽃(春花)을 바라보는 시간(時間)은 단순(單純)한 자연(自然) 감상(鑑賞)이 아니라 마음(心)을 비추는 작은 성찰(省察)의 시간(時間)이 된다. 조용히 바라보는 정관(靜觀)의 눈(眼)으로 자연(自然)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美)과 신비(神祕), 그리고 삶(人生)의 지혜(智慧)를 발견(發見)하게 된다. 봄(春)마다 다시 피어나는 꽃(花)들은 그렇게 말없이 우리에게 자연(自然)의 섭리(攝理)와 삶(人生)의 깊이(深)를 가르쳐 주고 있다. ***
2026. 3. 8.
崇善齋에서
{솔티}
English Translation: https://www.ktown1st.com/blog/VALover/348583
日本語 飜譯: https://www.ktown1st.com/blog/VALover/3485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