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내 마음의 隨筆] <함께 읽는(共讀) 도산(島山)의 희망편지(希望便紙)>

2026.03.22

[내 마음의 隨筆]


<함께 읽는(共讀) 도산(島山)의 희망편지(希望便紙) — 인공지능(人工知能) 시대(時代)의 정관(靜觀)과 인간(人間)의 길(道)>


오늘(今日) 우리(我等)는 알고리즘(演算法)이 판단(判斷)하고, 기계(機械)가 글(文)을 쓰며, 데이터(資料)가 세상(世上)을 설명(說明)하는 시대(時代)에 살고 있다. 그러나(然) 이 눈부신(耀眼) 기술(技術)의 흐름(流動) 속(中)에서, 한 세기(世紀) 전(前) 안창호(安昌浩)의 ‘희망편지(希望便紙)’를 다시 펼쳐보는 일(事)은 단순한(單純) 회고(回顧)가 아니라, 미래(未來)를 향한 질문(質問)이 된다.


도산(島山)의 글(文)은 빠르지 않다. 오히려(寧) 느리다. 그러나(然) 그 느림 속(中)에는 방향(方向)이 있다. 인공지능(人工知能)이 속도(速度)를 제공(提供)한다면, 도산(島山)은 방향(方向)을 제시(提示)한다. 오늘날(今日) 우리(我等)가 놓치고 있는 것(事)은 어쩌면 속도(速度)가 아니라 방향(方向)일지도 모른다.


AI(人工知能)는 방대한(龐大) 데이터(資料)를 통해 패턴(樣式)을 찾고 예측(豫測)한다. 하지만 도산(島山)의 편지(便紙)는 인간(人間) 내면(內面)의 윤리(倫理)와 결단(決斷)을 요구(要求)한다. 데이터(資料)는 가능성(可能性)을 말하지만, 도산(島山)은 책임(責任)을 묻는다. 이 둘의 긴장(緊張)은 오늘날(今日) 가장 중요한(重要) 철학적(哲學的) 과제(課題)가 된다.


기계(機械)는 오류(誤謬)를 줄이기 위해 학습(學習)하지만, 인간(人間)은 의미(意味)를 찾기 위해 사유(思惟)한다. 도산(島山)의 희망편지(希望便紙)는 바로 그 ‘의미(意味)’를 향한 사유(思惟)의 기록(記錄)이다. 그것은 효율(效率)보다 가치(價値), 결과(結果)보다 과정(過程)에 대한 이야기(物語)다.


현대(現代) AI(人工知能) 시스템(體系)은 점점 더 인간(人間)의 역할(役割)을 대체(代替)하려 한다. 그러나 도산(島山)은 인간(人間)이 대체(代替)될 수 없는 존재(存在)임을 전제(前提)한다. 그의 글(文) 속(中)에서 인간(人間)은 도구(道具)가 아니라 목적(目的)이다. 이는 기술(技術) 중심(中心) 시대(時代)에 다시 회복(回復)해야 할 관점(觀點)이다.


도산(島山)은 끊임없이(不斷) 자기(自己) 수양(修養)을 강조(調)한다. 오늘날(今日) 우리(我等)는 기계(機械)를 학습(學習)시키는 데 익숙(熟達)하지만, 정작(正作) 자기(自己) 자신(自身)을 학습(學習)시키는 데는 소홀(疏忽)하다. 그의 편지(便紙)는 ‘자기(自己) 갱신(更新)’의 필요성(必要性)을 조용히(靜) 일깨운다.


AI(人工知能)는 최적화(最適化)를 추구(追求)한다. 그러나 도산(島山)은 성숙(成熟)을 추구(追求)한다. 최적화(最適化)는 효율(效率)의 문제(問題)이지만, 성숙(成熟)은 존재(存在)의 문제(問題)다. 이 차이(差異)는 작지 않다. 오히려 인간다움(人間性)의 본질(本質)을 가르는 기준(基準)이 된다.


오늘날(今日) 우리(我等)는 정보(情報)의 홍수(洪水) 속(中)에 살고 있다. 그러나 도산(島山)의 글(文)은 정보(情報)가 아니라 지혜(智慧)를 말한다. 정보(情報)는 쌓이지만, 지혜(智慧)는 길러진다. 이 점(點)에서 그의 편지(便紙)는 ‘느린 지식(遲緩 知識)’의 중요성(重要性)을 일깨운다.


도산(島山)이 강조(調)한 공동체(共同體) 정신(精神)은 AI(人工知能) 시대(時代)에 더욱 절실(切實)하다. 기술(技術)은 개인(個人)을 고립(孤立)시키기 쉽지만, 그의 사상(思想)은 사람(人)과 사람(人)을 연결(連結)한다. 네트워크(網絡)가 연결(連結)을 만든다면, 공동체(共同體)는 관계(關係)를 만든다.


AI(人工知能)는 객관성(客觀性)을 지향(指向)하지만, 인간(人間)은 관계(關係) 속(中)에서 의미(意味)를 형성(形成)한다. 도산(島山)의 글(文)은 바로 그 관계(關係)의 윤리(倫理)를 강조(調)한다. 이는 오늘날(今日) AI(人工知能) 윤리(倫理) 논의(論議)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도산(島山)의 희망(希望)은 낙관(樂觀)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責任) 있는 선택(選擇)에서 비롯(由來)되는 희망(希望)이다. 오늘날(今日) 우리(我等)는 기술(技術)에 대한 낙관(樂觀)과 불안(不安)을 동시에(同時) 느끼지만, 도산(島山)은 그 사이(間)에서 ‘선택(選擇)의 윤리(倫理)’를 제시(提示)한다.


AI(人工知能)는 질문(質問)에 답(答)을 준다. 그러나 도산(島山)은 질문(質問) 자체(自體)를 다시 묻게 한다. 우리(我等)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기술(技術)을 사용하는가. 그의 편지(便紙)는 질문(質問)의 깊이(深度)를 확장(擴張)시킨다.


기술(技術)은 점점 더 인간(人間)을 편리(便利)하게 만든다. 그러나 도산(島山)은 인간(人間)을 강(强)하게 만들고자 한다. 편리함(便利性)은 외부(外部) 조건(條件)이지만, 강함(强度)은 내면(內面)의 상태(狀態)다. 이 대비(對比)는 오늘날(今日) 더욱 선명(鮮明)해진다.


도산(島山)의 글(文)에는 조용한(靜謐) 결기(決氣)가 있다. 그것은 외치는 힘(力)이 아니라, 견디는 힘(力)이다. AI(人工知能) 시대(時代)에 필요(必要)한 것도 어쩌면 이 ‘내면(內面)의 견고함(堅固性)’일지 모른다.


우리(我等)는 종종 기술(技術)을 통해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하려 한다. 그러나 도산(島山)은 인간(人間) 자체(自體)가 문제(問題)이자 해답(解答)임을 말한다. 기술(技術)은 도구(道具)일 뿐이며, 방향(方向)은 인간(人間)이 결정(決定)해야 한다.


AI(人工知能)가 창의성(創意性)을 모방(模倣)하는 시대(時代)에, 도산(島山)은 진정한(眞正) 창의성(創意性)의 뿌리(根源)를 묻는다. 그것은 기술(技術)이 아니라 인격(人格)에서 나온다. 인격(人格) 없는 창의성(創意性)은 오래 지속(持續)되지 않는다.


도산(島山)의 희망편지(希望便紙)는 미래(未來)를 예측(豫測)하지 않는다. 대신 미래(未來)를 준비(準備)하게 한다. 이는 AI(人工知能)의 예측(豫測) 기능(機能)과는 다른 차원(次元)의 지혜(智慧)다. 준비된 인간(人間)만이 변화(變化) 속(中)에서도 중심(中心)을 잃지 않는다.


그의 글(文)을 읽다 보면, ‘느림(遲緩)’이 단점(短點)이 아니라 힘(力)이라는 것(事)을 깨닫게 된다. 깊이(深度) 있는 사유(思惟)는 언제나 느리다. AI(人工知能) 시대(時代)일수록 이러한 느림(遲緩)의 가치(價値)가 더욱 중요(重要)해진다.


결국(結局) 도산(島山)의 희망편지(希望便紙)는 기술(技術)에 대한 이야기(物語)가 아니라 인간(人間)에 대한 이야기(物語)다. 그리고 그 인간(人間)은 여전히(依然) 불완전(不完全)하지만, 동시에(同時) 가능성(可能性)으로 가득 차 있다.


인공지능(人工知能) 시대(時代)에 이 책(冊)을 다시 읽는다는 것(事)은 과거(過去)를 되돌아보는 일(事)이 아니라, 미래(未來)를 다시 설계(設計)하는 일(事)이다. 그리고 그 설계(設計)의 중심(中心)에는 언제나 인간(人間), 그리고 인간(人間)의 도덕적(道德的) 선택(選擇)이 놓여 있다. 


  • 우리 민족 사회가 합동하지 못하고 분리한 상태에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한인이 대한인을 서로 믿을 수 없는 것이요, 서로 믿을 수 없이 된 것은 서로 속이기 때문입니다. 


  • ‘동포에게 고하는 글(갑자논설)’ 중에서 
  • 도산 안창호  ***


2026. 3. 22. 

崇善齋에서

{솔티}


English Translation: 

日本語 飜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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