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나의 미국이민 생활 50년

2024.04.23

나의 50년 이민생활.

지난 50년전을 기억해보면 기분에는 5년밖에 안되는 느낌으로 세월에 빠름을 실감을하는 요즘이다.

나름데로 학생 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져 부모님이 등교와 하교시 픽업과 드롭을 해주셔서 아무런 생각없이 세월이 지나갔던것같고 본격적으로 자주성가의 길이 열렸던때인

대학생시절으로부터 생생한 추억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고등학교시절에는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싶어 부모님에게 졸랐던일 그래도 안사주셨던일

이제야 나이가 들고보니 안전상 이유었다고 깨닳음을 가지게됐고, 그청춘시절 밤이면 밤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놀던때 그렇게도 엄하게 채찍을 드셨었던 아버지 또한 그이유를 이제야 깨닳게되였다.

그당시에는 그러한 부모님이  싫어서 대학생활중에 군대를 지원해서 갔었을 정도..다행히 군생활을 US NAVY로 하여서 배타고 세계일주는 지루는 하였지만 하였던 경험이 있다.

그러던중에  25살정도에현재의 아들을 낳았고, 91년도인가 엘에이폭동시 웨스턴4가에 가주마켙 옥상에서 폭도들을 막으려고 총을들고 밤을세웠었던 기억들..유튜브에 아직도 생생하게 나의 얼굴이 찍혀있다…두건을 두르고 ㅋㅋ

제대후에는 어였한 한가장으로서 살아야했기에전공이였던 컴퓨터회사를 다니면서 첫사회에

첫발을 디뎠었다.

그당시에는 우리 삼촌과 아버지또래에 분들이  8가와 노르만디코너의 동서식품파킹장에서

아침일찍 일일잡부일을 하느라 무수하게 모여들계셨던 시절이다.현재의 새벽에 홈디포앞에 멕시칸들같이….. 생각을해보면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엘에이 한인타운이 발전을하게됐고

현재의 젊은이들이 그나마 알바일을 쉽게 잡을 수가 있게된 것이다.

세월이 가면서 아들이 커감에따라 기초생활비는 벌어야해서 모기지융자회사, 이민변호사사무장, 회계사무실,부동산

등등을 영위해가면서 30,40대를 지냈었고 39살때에는 286 윈도우시절 마이크로소프트일로 시애틀로 홀혈단신으로 시애틀로 이사를하였었다 그러니까 거의 30년전이다.

정말 단돈 700불을 가지고 시애틀로와서 하숙비 500불을 선불로 지급하니까 200불이 남았던

기억이 있다.

이곳 시애틀사람들은 엘에이에서 왔다고하면무슨 사고를치고 도망온것 같은 눈초리로 바라보던때이다. 더불어 텃세 ㅠㅠ 

다행히 엘에에에서융자를할 때 알던 미국은행인을시애틀에서 만나…여러가지 기초생활에 필요한 자동차니뭐니 많은 도움을 받아서 오늘에 이룰수가있게된것이다.

상당한 귀인으로 현재도 명절때가 되면 꼭 초대를해주는 미국인부부이다..세월이 30년이나 흘렀으니 그분들의 건강도 많이 안좋아진 것은 자연의 현상이다.

나름데로 가치있는일을 후배들을위해서 하는것도 보람이되여서 현재의 미국생활 상담의일을 하고있고,나역시 나이가되여그런지 활동에 범위가 좁아지는 것을 실감을한다. 몇 달전에는


손목이뻣뻣함을느껴서 병원에 가보니 류마티스 질환에 거렸다고하여 현재는 약을 복용중에 있고

그 좋아하는 골프도 못하고 지내는 할아버지아닌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다..우울하게…술도 못먹게하고  ㅠㅠ


미국생활에서 아무리 성공을했다고한들 한번 병에 걸리면 한달내에 전재산 병원비로 날립니다.

내주위에 성공했다고들 하는 지인들 거의다 사망을했고요 아니면 건강보험없어서 한국으로 귀국한 친구들.....

건강이 최고입니다!

한가지 반가운소식은 워싱턴주는 이번 올 중반기부터 불체자에게도 시민권자같이 100% 건강보험을 무상으로 들어준다는 주법이 통과가 되였다는 소식 입니다. 반가운소식 이군요!


다행인 것이 그동안에미국생활에 멘토링을한 경험으로 후배 젊은이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에 보람을 느끼면서 현재 하루하루를 뜻 깊게 보내고 있어 행복할 뿐 입니다…


여러 이민후배님들 홧팅입니다! 건강 하십시요!



좋아요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