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상가 허리우드 극장과 맞단 골목에는 허름한 국밥집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요즈음과 같은 하이 인플레이션 시절에 도봉산을 간다고 해도 김밥과 막걸리 한병을 사면 만원 가까이 드는데, 이곳 골목에서는 그래도 소고기 냄새가 나는 국밥 한 그릇에 단돈 삼천원입니다.
송해가 딴따라로 채 돈을 많이 벌기 전 단골로 다녔다는 국밥집은 공자처럼 늙은 노인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단일 메뉴 국밥을 시키고 알미늄 양재기에 따라주는 막걸리를 일률적으로 하나씩만 시켜 반주로 마시고 있었습니다.
내 옆에 앉았던 70 내외의 어떤 노인은 수원에서 전철을 공짜로 타고 이곳으로 매일같이 출근한답니다. 국밥에 막걸리를 마신 다음, 이내 허리우드 극장에 가서 매일같이 영화를 본다고 했습니다. 영화 제목과 내용은 상관없이 철지난 영화를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본답니다.
기형도 시인은 채 서른도 되기 전 파고다공원(탑골공원)의 돌담길 파고다 극장에서 심야영화로 '뽕2'를 보다가 뇌졸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어떻게 그렇도록 객적은 영화를 보다가 기형도 답지 않게 죽을 수 있는가가 큰 화제거리였습니다. 아마도 기형도는 지금의 노인들처럼 옛날식 극장에서 반쯤 누워 화면은 가끔씩 보면서 태고의 아늑함과 추억을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1952~) ‘거룩한 식사’ 전문
이상은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본인의 글을 이곳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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