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믿음 없이 살아온 30년 세월

2022.05.23




                    믿음 없이 살아온 30년 세월


 부부로 살아감에 있어 제일 밑바탕이 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뀐다 해도 끝까지 서로를 지켜줄 사람은 부부밖에 없다. 자식도 ‘품안의 자식’이라고 머리 커서 독립하고 나면 아무 소용없다. 자식이 내가 늙었을 때 무언가 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포기 하는 게 옳다. 자식에 대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베푸는 사랑’이지 나중에 어떤 보답을 바랄 수 있는 사랑은 아니다.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 면서 내가 느끼는 기쁨 그 자체가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이다. 자식에게서 노후에 뭔가를 해 줄 것을 바라는 것은 ‘실망과 배신감’만을 내게 되돌려 줄 것이다. 따라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배우자뿐이다. 


‘모든 자식들은 부모에게 이미 12세 이전의 유소년 기에 자신들이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미 모두 갚았다’는 말이 있다. 즉 품안의 자식이었을 때 자라면서 그들은 이미 재롱과 씩씩하게 커가는 모습으로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에 대한 보답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12세가 넘어 사춘기를 거치면서 부모가 아닌 자신또래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고 부모로부터 떨어지는 연습을 본능적으로 하기 시작한다. 이시기에 부모와 갈등하고 반항하기도 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른바 ‘자아형성’의 시기인 것이다. 이렇듯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듯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자식들이 서서히 부모 곁을 떠나고 나면 남는 것은 부부뿐이다. 그런데 이때 부부사이마저 원만치 못하면 가뜩이나 떠난 자식 때문에 허전한판에 처절하게 고독해진다. 


필자가 상담을 하다보면 자식 다 키워놓고 이제 좀 의무에서 벗어나 모처럼 한가해지는 시기에 부부갈등을 겪다 헤어지는 부부를 종종 보게 된다. 이른바 ‘황혼이혼’이 많아지는 추세다. 배우자에 대한 미움이 있어도 아직 어린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다가 그 의무에서 벗어나자 그동안 참았던 불평과 분노가 화산 터지 듯 한꺼번에 터져버려 이런 결과를 낳기도 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애들 커서 독립할 때까지만 이를 악물고 꾹 참고 살자’고 계획을 세워 놓았다가 그 시기가 되자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이들도 많다. 이렇듯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이런 감정을 숨기고 살아온 이들 부부생활은 그동안 서로 간 얼마나 불행했을 것인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부부로 살면서도 이렇듯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으니 두 사람 다 모두가 가여운 사람인 것이다. 


필자의 고객이신 K여사님이 필자를 찾아와 한숨이 늘어진다. K여사님은 예전부터 필자와 상담을 하며 부부갈등에 대해 여러 번 의논을 하신 분이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에 사시던 이모님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당시 막 설립된 한국계 은행에 근무중이였는데 술‧담배 안하고 교회 열심히 다니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이모님의 말만 믿고 감행한 결혼이었다. 이모님이 말씀하신대로 남편은 술‧담배하고는 거리가 멀었고 매주 일요일 교회도 열심히 다니며 찬양대 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K여사님 또한 어릴 때부터 독실한 믿음이 있는 가정에서 자랐고 자신 또한 믿음생활에 열심히 여서 주위 사람들 모두 아주 이상적인 부부라고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첫날밤부터 남편이 변태적인 성행위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한번 화가 나면 부인과 말도 안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생활이 몇 달씩 갔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다른 여자들과 변태적인 섹스행각을 벌인 사진 등을 지니고 다녔다. 일부러 보라는 듯이 집안 여기저기에 흘리고 다니기까지 했다.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 지옥 같은 시간이 흘렀고 큰아들이 태어났다. 다행이도 아들이 태어난 뒤에는 이런 행위가 수그러드는 듯했고 남편도 아들을 무척이나 귀여워하여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잠자리 문제로 가끔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아이 키우는 재미에 잊고 살았고 둘째 아들이 또 태어나자 어쩐 일인지 이때부터는 잠자리 요구도 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남편이 변태적인 행위를 일삼았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또 다른 갈등이 잠복하고 있었다. 


남편이 얼마나 쫀쫀한지 생활비를 부인에게 한 번에 맡기지 않고 그때그때 쌀 1포대 얼마, 반찬값 얼마, 아이 분유 값 얼마 하는 식으로 꼭 필요한 것을 요구할 때만 마지못해 그 돈에 딱 맞춰주고 영수증과 몇 십 불만 차이가 나도 생난리를 쳐댔다한다. 다행히도 결혼할 때 친정집에서 남편 모르게 해 준 돈이 있어 이 돈으로 메꾸며 겨우겨우 생활해 나갔지만 이런 치사한 남편에 대한 경멸감과 자신에 대한 모멸감 때문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친정 부모님이 딸의 사는 모습과 손자들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 미국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 오셨고 일주일 정도 머물고 가셨을 때 남편이 묻기를 “장모님이 얼마나 주고 가셨어?” 하길래 “엄마가 무슨 돈을 주고가? 엄마아빠 형편도 좋지 않은데! 애들 옷이며 장난감 사주신 돈만해도 얼마인데!” 라고 하니 안색을 싹 바꾸며 “일주일 묵은 방세하고 매끼니 먹은 식사비만 해도 얼만데 그까짓 장난감 쪼가리하고 애들 옷이 몇 푼 간다고 퉁 치러 들어? 야~ 진짜 상종 못할 양반들이네!” 라고 하며 장인장모를 두고 쌍욕까지 해대자 더 이상 남편이 사람새끼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어린자식들 보고 참고 또 참고 살았다. 속으로 이를 갈면서... 십여년 동안 필자와 가끔 상담을 하면서도 남편과의 갈등문제를 한 번도 빼놓은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 왈 “다행이도 아이둘이 다 잘 되는 사주팔자를 타고났고, 여사님 말년운도 궁상떨고 살 팔자는 아닌듯하니 애들보고 어떡하든 참고 사세요!” 라는 말로 위로해 드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이 두 부부를 억지로 이어주고 있는 아이들이 자라 부모 곁을 떠나고 나면 두 분이 과연 살 수 있을까? 싶었다. 결국 갈라서게 될 것이라 보여져서 그런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그때가 온 듯했다. K여사님 한숨이 늘어진 끝에 하시는 말씀이 “세상에 인간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동안 모은 돈으로 한국에 조그만 APT를 사 놓자고 해서 작은 APT를 오래전에 사 둔적이 있는데 당연히 부부명의로 해 놓은 줄 알았는데 저에게는 말도안하고 지 형 앞으로 명의해 놓고는 저에게 거짓말을 했지 뭡니까? 그리고 이번에 알아보니 매년 세금신고를 하면서 자기 혼자 이름으로만 쇼설 연금을 부어서 저는 늙어도 쇼셜탈게 하나도 없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아주 처음부터 수 십 년간 저를 쫓아내려고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겁니다. 이 인간을 어쩌면 좋습니까?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마침내 종착점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경우 미국법상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 수 없어 변호사를 찾아가 신중하게 상담해 보시라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부부로 살면서도 서로가 믿음없이 살아온 이 두 분이 가여울 따름이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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