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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마(魔)가 끼다!

2022.04.20




                   마(魔)가 끼다!  


 S씨는 이제 나이 60을 바라보는 사내다. 십여 년 전부터 간간히 필자와 상담을 하곤 했다. 오랜 세월 S씨를 접해오면서 필자가 느낀 점은 “세상에! 안 풀려도 어쩌면 이토록 안 풀리는 인생이 있을까!” 라는 것이다. S씨의 어린 시절은 좋았다. 중류가정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자녀교육에 적극적 이어서 삼형제 모두 좋은 성적으로 고교졸업 후 각각 명문대에 모두 진학 할 수 있었다. S씨도 연세대에 진학했고 재학 중 군대를 다녀온 뒤 졸업 하였다. 졸업 후 대그룹인 삼성계열사 무역파트에서 일하게 되었다. 유럽지역 담당 파트여서 유럽 여러 나라에 파견 근무도 하였고 업무 성적도 좋았다. 급여 수준도 국내 최고 대우 여서 인물 좋고 집안도 괜찮은 S씨는 일등 신랑감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평탄한 인생에 마(魔) 가 끼기 시작 했으니, 남녀 불문하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이성 문제에서였다. 영국지사에 파견근무 중 한 여성을 만났는데 화류계 여자였다. 한국에서 수만리 떨어진 천리타향 이국(異國)에서 만난 고국의 여성은 S씨에게 묘한 애잔함을 느끼게 했다. 한인들이 자주 출입하는 바(BAR)의 여급으로 일하는 여성 이었는데 영화배우처럼 예쁜 얼굴에 날씬한 몸매를 지닌 미인이었다. 어떤 사연으로 이 좋은 인물을 가지고 천리타향의 이국(異國) 술집에서 일하는 신세로 전락 했는지 모르겠으나 S씨하고는 말도 잘 통했고, 육체적으로도 서로 아주 잘 맞는 편 이여서 서로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결국 둘의 사이는 깊어졌고 S씨가 파견근무를 끝내고 귀국할 때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둘의 사이를 알게 된 S씨 부모 형제들은 난리가 났다. 


S씨와 함께 파견근무를 했던 동료 하나가 우연히 어떤 자리에서 이 여자 분에게 과도하게 친밀한 행동을 하며 아는 체를 했고 옆에서 우연히 이를 지켜본 S씨 식구 중 누군가가 이를 이상히 여겨 이 여자 분의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다. (S씨 식구 중 누군가가 S씨와 이 여성분과 함께 어느 자리에 갔는데 눈치 없는 옛 파견동료가 “미스 김! 미스 김이 여기에 웬일이야? 야! 많이 예뻐졌는데! 더 섹시해졌어! OO(영국에 있던 옛 한국식 술집이름)는 그만 둔거야? 이제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온 거야? 김 마담도 잘 있지? 옛날 미스 김 과 같이 일하던 미스 박은 지금 어디 사나? 야! 옛날에 우리 넷이서 화끈하게 잘 놀았는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S씨는 이 여자 분과 살림을 차렸고 아이(아들)까지 낳았다. ‘애까지 낳았는데 어쩔 거야?’ 라는 배짱이었다. 


이 작전은 맞아 들어가 펄펄뛰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둘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손자 녀석 재롱에 결국 아버지도 손을 들고 말았다. 이렇게 파란을 겪고 나서 상황이 안정되어 갈 때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예전의 눈치 없던 그 파견 동료와 마누라가 바람이 났다. 그놈도 유부남 이었는데 두 연놈이 눈이 뒤집혀 속된말로 ‘똥오줌 구별 못하고’ 날뛰었다. 연놈이 미치니까 자식도 소용없었다. 근본은 못 속인 다더니 숨어있던 화냥 끼 가 발동한 것이다. 아무튼 S씨는 이 재수 없는 여자를 만난 이후 되는 일이 없었다. 


우선 직장에서 짤~렸다. 갑자기 실업자가 된 것이다. 자기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노조에 대한 회사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선 게 화근 이었다. 회사에서 짤~리고 난 뒤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어 봤지만 회사와 맞선 경력이 문제가 되어 번번이 거절당했다. 여기에다 아들놈이 희귀병에 걸려 골골했다. 이 병원 저 병원 쫓아다니며 갖은 애를 썼으나 아비만 거덜 내놓고 덜컥 죽고 말았다. 취직이 안 되니 작은 사업이라도 해보려고 부모 형제들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정사정해서 꽤나 큰 규모의 당시 처음 유행하던 생맥주 호프집을 운영 했으나 2년을 버티다 영업 부진으로 쫄딱 말아먹고 말았다. 이 때문에 보증을 선 부모님 집 날려먹고 형 두 명 까지 신용불량자를 만들고 말았다. 


S씨는 가족에게 화근 덩어리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어 어머니 앞에서 눈물, 콧물 흘려가며 애원하여 어머니와 공모 아버지 모르게 몰래 인감도장을 훔쳐서 조상들 묘가 있는 선산 땅을 저당 잡혀 집장사에 나섰으나 공사 중 천장이 무너져 인부 1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문제 수습으로 결국 선산 땅까지 날리게 되었다. 나중에 이를 안 아버지는 노발대발 하다가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고 아버지의 고집으로 끝내 어머니와 이혼 하셨다. 부모님을 이혼까지 시킨 꼴 이였다. 이 지경에 이르자 식구들은 S씨만 보면 이를 갈~았고 식구 취급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어디 비빌 곳이 없자 미국에 오게 되었다. 마켓에서 막노동 하며 지내던 중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이 여인을 통해 영주권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여자가 지독한 노름꾼이었다.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그동안 몇 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모든 돈 홀랑 빼앗기곤, 결국 이혼하고 혼자 막노동 하며 살았는데 마켓에서 일하다가 짐이 발등에 떨어져 뼈가 부서졌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보험금과 보상금 까지 받을 수 있을 텐데 희한하게도 일이 꼬여 보상은커녕 치료비도 못 받고 마켓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억울한 마음에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했는데 하필이면 이 변호사가 아주 악질변호사여서 일은 제대로 안하고 돈만 계속 요구해 왔다. 변호사를 고소하니 마켓과의 싸움은 나중문제요, 이 변호사 놈과의 싸움에 급급한 꼴이 되었다. 결국 이 싸움에서도 져서 빚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친 발 때문에 힘든 일도 못하고 다리를 절 게 되었는데 이런 처지이니 취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여기에 다가 몇 년간 속을 끓이다 보니 당뇨병이 심해져 한쪽 눈마저 실명하게 되었다. 


안 되도 정말 너무 안 되는 세월이었다. 처지를 비관하여 죽으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질긴 목숨 끊어지지도 않았다. 장애 진단이라도 받아서 장애인 수당이라도 받아 먹으며 살아보고자 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장애진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정상인과 장애인의 경계 지점이라 했다. 왜 이런 진단이 나오는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결국 필자와의 상담을 거친 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도 죽으나 사나 내가 난 곳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60이 다 된 나이에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 식구들을 만날 면목이 없었으나 그래도 형제라고 형이 “어찌되었든 와서 한 번 부딪쳐보자. 어떻게 살 방도가 나오지 않겠니!” 라고 해주어 이 말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귀국 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웬수니 뭐니 해도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한가 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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