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한 김박복氏!
김박복(가명)씨는 지독히도 운이 없는 사내다. 나이 50이 넘도록 결혼도 못했고 평생 천불이상을 여유 돈으로 지녀보질 못했다. 그의 불행은 태어날 때부터 예정되어 있는 듯했다. 어머니가 박복씨를 잉태한 것은 그녀의 불행이자 박복씨의 불행의 시작 이였다. 박복씨의 어머니도 기구한 팔자를 타고났음인지 어려서부터 천애고아로 떠돌다 술집 작부의 길로 들어섰고 실수(?)로 아빠가 누구인지도 헷갈리는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되었고 중절수술의 때를 놓쳐 박복씨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한다. 아기를 낳고 얼굴을 들여다보니 단골 천씨 영감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주정뱅이 박씨를 닮은 것 같기도 한 게 영~ 헷갈렸다. 아비 얼굴도 모르고 술집 이곳저곳을 떠도는 엄마를 따라 어린 시절을 보냈다. 눈칫밥을 먹고 자라다보니 성정이 삐뚤어 졌고 싸움질과 도둑질에 익숙해진 삶이였다.
학교에 가서도 손꼽히는 말썽꾸러기였고 공부에는 소질이 없고 흥미도 없어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 말았다. 16살 때 엄마는 폐암으로 구질구질하고 한 많은 삶을 접었다. 천애고아가 된 박복씨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도둑질하다 잡혀 소년원 생활도 했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어느 정도 영글자 본격적인 깡패생활이 시작됐다. 청량리 인근 깡패조직인 ‘까불이 파’의 일원으로 588 사창가 창녀들의 뒤를 봐주며 이른바 기둥서방 역할로 밥 먹고 살게 된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영희라는 여자를 만나면서부터 정신 차리고 바른 생활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살림을 차린다. 깡패생활을 접고 이런저런 막노동을 하다 목돈을 벌기위해 배를 타게 된다. 바다에서 몇 년 만 모진 고생을 하면 생활 기반을 마련 할 수 있다는 희망에 선택한 길이였다. 어렵사리 선원수첩을 마련하고 원양어선 잡부생활이 시작됐다. 돈을 벌어 꼬박꼬박 영희에게 부쳤고 돈이 모이면 작은 전셋집이라도 장만하여 새 출발할 희망에 모진 고생을 이겨냈다. 하지만 이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영희가 바람이 나서 딴 놈과 붙어 열심히 땀 흘리느라(?) 붙여준 돈을 모두 탕진하고 튄 것이다. 박복씨는 바다에서 매일 매일 굵은 땀방울을 흘렸고 영희도 제비 놈과 재미 보느라 매일 매일 땀방울을 흘린 것이다. 하나는 바다에서 하나는 육지에서 서로 열심히(?) 땀방울을 흘렸다. 눈이 뒤집혀서 영희를 찾아다녔다. 잡기만 하면 영희를 죽이고 자기도 죽을 결심 이였다. 옛날 깡패 친구들을 동원하여 1년 가까이를 쫒아 결국 영희를 잡았는데 제비 놈 아기를 가져서 배가 만삭 이였다. 배부른 여자를 때려죽일 수도 없어 진정하고 물으니 제비 놈이 있는 돈 없는 돈 죄 빼돌리고 배까지 부르게 한 뒤 도망갔단다. 너무도 한심한 생각에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이나 울고 난 뒤 깨끗이 영희를 용서했다. 배가 만삭인데도 그 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해 뼈만 남은 영희를 보니 옛날 엄마가 생각났다. 처음 영희를 좋아했던 것도 영희가 엄마를 너무도 닮아서였는데 옛날 엄마가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고 배가 부른 채 갖은 고생 속에서 자신을 낳았을 생각을 하니 모른 체 할 수가 없어 영희를 거둬들였다.
웬수놈의 자식을 자기가 키우게 된 게 한심했지만 ‘다~ 운명이다.’라 생각하고 영희와 살림을 시작했다. 영희는 참으로 생각이 없는 여자였다. 돈을 벌어다 주면 그 다음날 생각은 안하고 갖다 주는 대로 족족 써버렸다. 여기에다 원체 ‘끼’가 많아 동네 사내놈 이놈 저놈 가리지 않고 붙어먹었다.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을 박복씨는 맨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보다 못한 통장영감이 “김씨 술 좀 줄여! 그리고 마누라한테 신경 좀 써!”라고 해서 ‘저 영감이 나한테 왜 저런 소리를 하지?’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랬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영희년을 차버리고 돌아서는데 제비 새끼놈이 “아빠, 아빠 나도 데려가! 엉 엉”하고 우는데 마음이 아팠다. 영희 때문에 한 10년 헛수고만 하고나니 사는 게 지겨웠다. 그 후 전국을 떠돌며 노동일을 하며 부평초처럼 지냈다. 엔간히도 재수가 없어 돈이 조금 모일만 하면 꼭 일이 터져서 돈이 흘러나갔다. 그러다 보니 목돈이라고는 모을 수가 없었고 그때그때 벌어서 그때그때 먹고사는 게 다였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인지 미국에 오게 되었다. 당시는 미국비자 받는 게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할 정도로 어려웠는데 소년원 동기 한 놈이 비자브로커 장사를 하고 있어서 이것저것 가짜로 서류를 만들어주어 미국에 오게 된 것이다. 미국에 방문비자로 와서 그냥 불법체류자로 살았다. 하숙집에서 만난 건축 노가다들을 따라다니며 건축 일을 배웠다. 기술도 없는 잡부이지만 그래도 한국사람 이라고 멕시칸들 보다는 조금 더 돈을 쳐주었다. 한 달 에 15일~20일 정도 일을 하면 하숙비 내고 담배 값에 소주 값 정도가 남았다. 미국에 와서도 그달 벌어 그달 쓰고 마는 생활의 연속 이였다. 항상 신분문제가 걱정 이였는데 누군가 소개를 해서 12살이나 더 먹은 과부를 하나 만나게 되었다.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였는데 체구가 하마 같았다. 술도 잘 먹고 담배는 꼴초에다 잠잘 때는 코고는 소리가 탱크 굴러가는 소리 같았다. 여자로서는 눈을 씻고 보아도 매력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영주권을 해준다는 말에 꾹 참고 과부 집으로 들어갔다. 살림을 합친 것이다.
이 하마 아줌마가 생긴 거 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게 색정이 너무 강했다. 박복씨를 깔고 앉아 씩씩거리면 박복씨는 숨이 막혀 눈앞이 깜깜해지고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몇 달을 견뎠다. 눈치를 보며 슬슬 하마아줌마를 피하자 하마아줌마는 “자기, 사랑이 식은 거야?”라고 소름 돋는 애교를 부리며 투정 했지만 박복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것 같아 짐을 싸서 하마의 집을 탈출했다. 영주권은 물 건너갔다. 괜히 몇 달 동안 몸만 축나 뼈만 남았다. 이렇게 살다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세상 살기가 싫어졌다. 바다에 빠져 죽기로 마음먹고 술을 진탕 마신 뒤, 차를 몰고 바닷가로 향했다. 차를 운전하면서 마지막으로 노래 테잎을 틀었다. 조용필의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라는 노래를 들으며 통곡했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 후졌던 게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바닷가로 차를 모는데 아~ 하필이면 앞에서 음주검문을 하고 있었다.
죽지도 못하고 음주검문에 딱 걸렸다. 수갑 차고 경찰서로 끌려갔고 무척이나 추운 냉골 방에서 한잠도 못자고 벌벌 떨었다.(이놈들은 잡혀 온 사람들을 얼려 죽이려는 건지 아니면 냉기로 고문하는 건지 몰라도 밤새 에어컨을 틀어댔다고 한다.) 다행히 이민국으로 넘기지는 않아서 다음날 아는 사람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그리운(?)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박복씨가 필자 앞에서 울부짖는다. “선생님 아무리 박복하다해도 어떻게 죽으러 가다가 죽지도 못하고 죽도록 고생만 하나요?” 참 기가 막힌 박복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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