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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2019.11.22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이민을 온지 오래됐어도 유교적 사고 체계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는 한인 가정이 의외로 많다. 미국생활을 오래 했기에 서구적인 개방의식이 강할 것 같지만 대개의 경우 의외로 모국에 사는 사람들 보다 오히려 더 강한 유교의식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을 떠날 때 가지고 있던 의식체계가 그대로 남아 있어 그러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여성들의 경우 이런 의식체계를 지니고 있는 시부모와의 관계가 결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곳에 살면서도 명절이나 기일 때 꼬박꼬박 제사를 지내는 가정도 꽤나 있다. 명리학상 여성사주에 있어 재성은 시어머니를 의미하고 비겁이 시아버지를 의미하는데 사주에 재성과 일지가 상층하면 시부모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고 재성이 약하고 비겁이 중첩된 여성의 경우에도 시부모와의 관계가 바쁜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나 여성사주에 관살이 태왕하면 시아버지와의 관계가 나쁜 것이 특징 이였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시어머니와의 고부갈등이 주를 이루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갈등을 겪는 경우는 드문 것도 예나 지금이나 유사한데 미국가정의 경우 시어머니와의 고부갈등 보다는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많은 것이 눈에 띄는 특이점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시집살이가 고된 경우 보다 장모살이가 고역인 예가 많다. 예전에 상담했던 김 여인은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과는 반대로 시아버지 때문에 매우 힘들어 했던 케이스여서 특이나 기억에 남는다. 김 여인의 사주팔자를 처음 보았을 때 사주팔자에 관살이 태왕하여 시아버지와의 관계가 나쁠 것이라 추정했고 상담을 하니 역시나 그랬다. 


시아버지는 CPA로 오랫동안 회계 일을 해오시던 분이다. 시아버지는 가정에서 폭군 이였다. 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식들이 성장하여 결혼하고 아이까지 두었어도 아버지인 자신의 말에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색이면 난리를 쳤다. 젊은 시절부터 강팍했던 성격이 나이 들어 손자손녀가 주렁주렁 달렸어도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지는 듯했다. 이 집이 전형적으로 시시콜콜한 제사마저 빼먹지 않는 집안 이였다. 그래서 이 집안의 며느리들은 시도 때도 없는 제사 때문에 등골이 빠졌고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으면 육두문자는 물론 제사상이 패댕겨쳐 지기도 했다. 자식들이나 며느리들 모두 고양이 앞의 쥐 마냥 아버지 앞에만 서면 가슴이 콩닥거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지경 이였다. 


이런 집안에 김 여인이 시집을 간 것이다. 시어머니는 물론 아들ㆍ딸 누구 하나 이런 폭거에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제사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들까지 두고 살고 있는 아들ㆍ딸 가정사에까지 ‘콩 놔라 팥 놔라’ 안하는 참견이 없었다. 손자ㆍ손녀 학교 선택까지 개입해 전공을 무엇을 하는 게 좋겠다. 학교는 어디에 지원을 해라 등등 오지랖이 천지를 덮을 듯 했다. 자기 의견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그날은 천둥과 번개가 치듯 난리굿이 났다. 김 여사님은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왔고 UCLA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여성 이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폭거에 가족들이 모두 쥐죽은 듯 반항을 못하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도저히 더 이상 못 참고 입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님! 정말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김 여인의 첫 대항에 처음 시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벌리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주변에 있던 가족들도 놀라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이어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숨죽여 지켜봤다. 시아버지는 한참 만에 허! 허! 헛웃음을 짓더니 “너 지금 시아버지인 내게 하는 말이냐?”라고 하며 어이없다는 듯이 김 여인을 바라보더니 “너 지금 어디 아프니? 혹시 약이라도 잘 못 먹은 거 아니니?”라고 하더니 불같이 화를 냈다. 김 여인 역시 내친김에 할 말을 다하며 시아버지의 그릇된 행동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모두 바른말 이였다. 김 여인은 주변에서 식구들이 하나라도 나서서 자기편을 들어줄지 알았는데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침묵을 지키고 들만 있었다. 이렇게 시아버지와 한바탕하고 난 뒤 시아버지와 원수가 됐다. 


시아버지는 김 여인의 남편인 아들을 불러 심하게 쥐 잡듯이 야단을 친 뒤 “그런 년은 더 이상 우리 집 식구가 될 자격이 없다. 그러니 당장 그년과 이혼 수속을 시작해라.”라고 하며 이혼을 아들에게 강요했다. 이 소리를 전해들은 김 여인은 그런 말도 안 되는 강요를 들으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다는 남편이 너무 병신 머저리처럼 느껴져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런 폭군 아버지 밑에서 기가 눌려 살아서 길들여져 있었다는 측은 지심이 생기기도 했다. 아들ㆍ딸 남매까지 두고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아온 아들 내외를 헤어지게 하려고 날뛰는 시아버지의 정신상태가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듯했다. 김 여인은 시아버지에게 “제가 아는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아무래도 아버님께서 한 번 그분을 만나 상담을 받아보셔야 될 것 같아요. 그게 좋겠어요!”라고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말을 하니 


이번에도 시아버지는 기각 막힌 표정으로 한동안 멍하게 며느리인 김 여인을 바라보더니 “니... 니가... 나를... 정신병자로 몰아? 이 세상에 근본도 없는 미친년 같으니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니가 미친년이다 이년아!” 며느리에게 쌍욕을 해대며 분해 펄펄 뛰는 것 이였다. 결국 김 여인과 시아버지는 철천지원수처럼 되고 말았다. 이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김 여인 남편 이였다. 수시로 아들을 호출해서 이혼을 하라고 펄펄 뛰며 화를 내는데 시달려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거였다. 상식적으로 보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시아버지이지만 세상에는 상식에 어긋나는 많은 인간과 상황을 수도 없이 보아왔기에 필자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였다. 


결국 시아버지와의 갈등문제로 부부사이에도 싸움이 잦아졌다. 결국 지친 김 여인이 이혼이라는 심각한 상황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다 친한 친구의 소개로 필자를 찾게 된 것 이였다. 결국 김 여인은 이혼을 선택했다. 필자가 이혼을 권유하진 않았지만 당시 김 여인의 운에 대해 쾌를 짚어보니 ‘중부지환’의 쾌가 나와 다툼으로 인한 부부이별수를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나왔고 그리 나온 대로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고부간의 갈등문제로 필자와 상담한 분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시아버지와의 갈등문제로 상담한 예의 그리 흔치 않기에 특히나 기억에 남는 상담 이였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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