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판테온, 로마(이탈리아)

2018.09.03



 

판테온에 묻힌



라파엘로


P
antheon
 


 

로마에서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로마 시대의 건축물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기원후 79년에 지은 콜로세움이고, 또 하나는 기원전 25년에 지은 판테온(Pantheon)이다.
판테온은 ‘모든(Pan) 신(Theo)’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는 뜻이다.
당시 집정관이던 아그리파가 건축했다.
그러나 서기 80년 로마를 힙쓴 대화재로 소실됐으며
현재의 건물은 118-128년 사이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다시 건축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가 숨졌을 때 독수리가 그의 시체를 낚아 하늘로 올라 갔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바로 그 자리에 신전을 짓고 수 세기 동안 숭배의식을 거행했다.
당시는 동물을 잡아 번제를 드리는 것이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방법이었다.




연기는 뚫려있는 천장 구멍을 통해 순식간에 밖으로 빠져 나간다.
제사를 지내지 않을 때도 밑에서는 횃불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열기는 높은 곳으로 올라 가고 열기 때문에 비는 안으로 들어 오지 않았다.
판테온 돔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있는 이유다.




판테온이 있는 로톤다 광장을 10년만에 다시 찾았다.




판테온을 둘러 싸고 있는 로톤다 광장에는 노천카페가 많다.




거리 한 켠에서는 거리예술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콘수엘라 벨라스케스(베사메 무쵸 작곡자)가 노래하듯 예술가는 베사메 무쵸를 부드럽게 부르고 있다.




‘내게 다가와 사랑을 속삭여 줘요, 사랑이 불타는 장미빛 입술로 내게 키스해줘요,
베사메 무쵸’. 고대신전, 마차, 카페, 파스타, 젊음, 돌바닥, 와인, 거리예술가, 그리고 베사메 무쵸.
판테온 앞 로톤다 광장은 언제나 낭만이 넘쳐 흐른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함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




판테온 건물에는 창문이 없다.
하지만 강한 햇살이 비추이면 그 안은 아주 환하다.




지름 9미터의 거대한 구멍(오쿨루스)이 돔 위로 뚫려 있기 때문이다.
구멍으로 들어 온 빛은 코퍼(Coffer)에 반사되어 반사된 빛은 내부를 더 밝게 해준다.




돔은 위로 갈수록 가벼운 재료를 사용했다.
그래서 기둥없이 만들어진 돔이지만 오랜세월을 끄떡 없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신전이었던 판테온은 609년부터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로 바뀌었다.
동로마제국의 포카스 황제가 교황에게 판테온을 기증하자 신전이 교회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교회의 이름은 ‘순교자들의 성모 마리아 교회(Santa Maria degli Angeli e dei Martiri)’.
현재 이곳에서는 주일미사를 매 주 드리고 있다.




*특히 성령강림절 미사 후에는 오쿨루스를 통해 수 만 개의 장미꽃잎이 판테온 내부로 날아 들어 온다.
붉은 장미는 예수님의 피와 성령을 상징하는 것으로 고대 축제에서 유래한 이탈리아 교계의 오랜 전통이다.




판테온 안에는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ctor Emmanuel II)와..




그의 아들 움베르토 왕(Umberto I)의 묘소가 있다.





Raphael Sanzio



*그러나 이곳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라파엘로 산치오(Raphael Sanzio)의 무덤이다.

라파엘로가 누군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483년 마르케주 우르비노(Urbino)에서 태어난 라파엘로는 페루지노의 공방에서 그림을 배웠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그는 17세에 벌써 그림의 대가가 되어 있었다.




피렌체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의 멘토가 되기도 했다.
라파엘로는 자신보다 31세가 연장인 다빈치를 존경했다.




*이때 그린 작품은 그란두카의 성모 마리아, 무덤에 안치되는 그리스도, 초원의 성모 마리아 등이다.




그가 로마에 온 것은 1508년으로 알려져 있다.
건축가 브라만테의 천거로 율리우스 2세 교황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교황은 젊은 화가에게 바티칸 궁전 네 개의 방을 벽화로 장식하는 임무를 맡겼다.
라파엘로의 방으로 불리는 네 개의 방은 서명의 방, 엘리오도로의 방, 화재의 방, 콘스탄티누스의 방이다.




방 하나하나에는 라파엘로가 심혈을 기울여 그린 프레스코화가 방들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방은 단연 아테네 학당이 그려져 있는 서명의 방이다.




기둥과 기둥이 아치로 연결돼 있는 바티칸의 로지아(복도)의 벽화도 라파엘로의 작품이다.
그렇다고 라파엘로가 회화에만 그의 천재성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




산타 마리아 델 포폴라 교회의 치기 예배당(Cappella Chigi),
판돌피니 궁전, 비도니 궁, 아킬라 궁을 설계한 것도 바로 그였다.





Margherita Luti



*르네상스 미술사가 바사리에 의하면 라파엘로는 재능있고 상냥했으며 유쾌한 성격의 얼굴은 미남이었다.
라파엘로는 많은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마르게리타 루티'라는 여인이다.

라파엘로는 그녀를 모델로 하여 몇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제빵사의 딸(La Fornarina)’이라는 작품이다.
루티는 빵을 만드는 빵집의 딸이었다.

루티의 팔에는 라파엘로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파란색 리본이 있고
왼 손 세 번째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어 있다.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결혼서약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세상에는 알리지 않았다.




라파엘로는 당시 후원자였던 베르나르도 추기경의 조카(마리아 빕비에나)와 약혼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사랑하지 않았던 라파엘로는 추기경에게 결혼은 3-4년 후에나 하겠다고 말했으며
그 이후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결혼은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빕비에나는 1520년 결혼식을 올리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3월의 어느날 라파엘로는 루티를 만나 서로를 탐욕하는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된다.
집으로 돌아 온 그는 심한 열병을 앓았다.




그리고는 안타깝게도 1520년 4월 6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라파엘로는 그가 원한대로 판테온에 묻혔다.




그리고 그가 남긴 재산은 모두 루티에게 넘겨졌다.
하지만 4개월 후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잠적해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그녀는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라파엘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업실에서는 마르게리타 루티의 초상화가 발견됐다고 한다.
현재 라파엘로의 석관 위 오른쪽에 묻힌 사람은 공식 약혼녀였던 마리아 빕비에나다.



글, 사진: 곽노은





P
antheon, Rome




*표시의 이미지(3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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