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April 14, 2025)
“흑인 승객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
나는 미국 중부 위스칸신주에서 25년째 살고 있는데, 여기 미국사람들은 양복을 잘 입지 않고, 청바지와 같은 평상복을 즐겨 입는 것 같다. 심지어 장례식이나 골프장에서도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파트타임 채플린으로 취업이 되었을 때, 매니져가 채플린의 복장은 단정한 평상복이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처음에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출근을 했더니, 함께 일하는 흑인 채플린이 나 한테, “왜 늘 정장을 하고 출근하냐?”고 묻길래, 내가 “내가 평상복을 입고 있으면, 미국인 환자들이 나를 “중국집 배달 보이”로 볼 것 같아서”라고 하자 그 채플린이 웃었다.
우버 운전을 하면서 미국인들이라도 인종에 따라 영어가 약간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흑인 승객을 태우고 우리 교회 옆을 지나가다가 내가 손가락으로 우리 교회 건물을 가리키며, “내가 이 교회 목사다”라고 하자, 그 승객은, “You IS?” (당신이 이 교회 목사라고?)하며 놀라워 했다. 내가 더 놀랬던 것은, 미국 사람이, “You IS?”라고 하는 것을 듣고, “미국사람도 문법적으로 틀린 말을 쓰는구나” 하고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흑인동네에서 내 차로 승객을 태워주며 흑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배울 기회가 있다. 흑인밀집지역은 도로면이 평탄치 않는데도 그대로 방치된 곳이 많았고, 변변한 가게들도 없고, 거리에는 수리를 못해 찌그러진 차들이 굴러 다니는 것을 종종 본다.
대부분 미혼모나 이혼녀 밑에서 아이들이 자라니, 아이들이 부모의 양육과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음주, 흡연, 마약사용과 총기사고에 노출되어 제 명대로 못 살고 일찍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주로 가게일, 식당일, 청소, 공장일등 저임금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지만, 흑인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며 백인중심의 미국사회에서 유색인종의 한을 안고 살아 가고 있다.
내 자가용 승객의 대부분은 차가 없는 가난한 흑인들인데, 늦은 밤에 후디 옷을 입은 젊은 흑인이들이 타면 겁이 좀 났지만, 지금은 익숙하고 편해져서 정다운 느낌 마저 든다.
대통령 선거철에 어떤 흑인 젊은 승객에게, “이번 대통령 후보중 누구를 지지하느냐? 트럼프냐 아니면 해리스냐?”하고 물었더니, 그 흑인 청년은, “난, 투표 못해요?”라고 했다. “왜 투표 못하느냐?”하고 물었더니, “나는 중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라 투표권을 박탈당해서 투표 못해요.”라고 했다. 호기심에서, “무슨 죄를 짓고 감방 갔다 왔냐?”고 묻고 싶었지만,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가 나도 제 명에 못살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또 한번은 아침에 출근하는 흑인 청년을 태워 주었는데, 밀와키 기술전문대학에서 청소와 경비일을 하는 직원인데, 직원의 특혜로 18학점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어서 지금은 “용접사”가 되기 위해 용접강의를 듣고 있다고 했다.
그 청년은 자기 아버지가 18살때 자기를 낳은 후, 19살에 권총살인죄를 범해 감옥에 가서 25년을 살고 나왔는데, 그동안에 엄마는 다른 남자와 재혼했고, 아버지는 출소 후 다른 여자와 만나 살고 있는데, 25년만에 처음 만난 아버지는 아버지와 같은 느낌보다는 그냥 먼 친척이나 동네 아저씨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친아버지와 만난 후 자기와 아버지는 굵은 목소리도 닮았고, 개를 좋아하고, 채소밭 가꾸기도 좋아하는 유전적인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며칠전에는 병원에서 퇴근하면서, Lyft 앱을 켜자, 병원입구에서 내 차를 태워 달라는 요청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흑인 청년 승객에게, “어디가 편챦해서 병원을 다녀 가시는지?” 물어 보았더니, “외상후 트라우마와 우울증 치료”를 받고자 병원을 다녀 간다고 했다. 내가 “제대 군인이냐? 참전용사냐?”하고 물었더니, “참전 용사는 아니고, 25살 먹은 우리 형이 내 눈앞에서 복면을 한 남자들에게 총격을 당해 죽는 모습을 목격한 그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복면을 했기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수사도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아, 자기 형은 죽고, 남은 가족들은 지금도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백인들이 아메리칸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빼앗고, 흑인노예들을 착취하여 부강함을 이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백인위주로 사회가 돌아가나, 흑인들이 인권투쟁을 하여, 나같은 동양인 이민자에게도 일자리를 주어 살 수 있도록 해 주니 나는 백인들과 흑인들 모두로 부터 은혜를 입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